북측이 폭로한 지난 5월 9일부터의 남북 비밀접촉은 천안함 사건 해결에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결렬된 것으로 확인됐으며, 지난 연말과 올해 연초에 남북 고위 정보 당국자들이 극비 상호 방문한 사실도 확인됐다. 그러나 정부는 이에 대해 확인해주지 않거나 부인했다.

정통한 소식통은 “지난해 12월 북측 류경 보위부 부부장의 극비 서울 방문에 이어 올 1월 김숙 당시 국정원 1차장의 평양 답방이 사전에 있었고, 5월 9일부터의 비밀접촉이 이어졌다”며 “북측에서는 국방위 정책국 박철 소장과 아태위 원동연 부위원장, 통전부 맹경일 과장이 참석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른 소식통도 “김숙 차장이 방북한 것은 확실하다”며 “관계자를 통해 확인했다”고 전했다.

류경 부부장은 지난해 12월 남측을 방문한 뒤 올 상반기에 처형된 것으로 알려져 서울 극비방문과 연관성이 드러날 경우 파문이 예상된다.

그러나 확인을 요청받은 정부 관계자는 5일 “류경 부부장과 김숙 차장의 방남, 방북은 사실 무근이다”고 부인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확인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김숙 전 차장은 6일 “국정원에서 근무한 21개월여의 기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만 말했다.

앞서 <아사히>신문은 지난달 25일자 기사에서 “북한 국가보위부 류경 부부장과 남한 국가정보원 고위 당국자의 상호 방문에서 과거 사건들에 대한 유감표명과 1차 정상회담은 판문점에서 2차 회담은 평양에서 갖기로 했다”며 “남한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류경은 남쪽에 비밀을 누설한 혐의로 자신의 위치에서 축출되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비밀접촉 북측 당사자와 관련 <조선일보>는 6월 16일자 기사에서 국방위 정책국 ‘2인자’인 박철 인민군 소장이 북측 대표로 나섰다고 보도한 바 있으며, 원동연 부위원장과 맹경일 과장이 참석한 것은 처음으로 확인됐다.

노동당 통일전선부(통전부) 부부장을 겸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원동연(64)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위) 부위원장은 지난 2009년 남북 비밀접촉에서도 참가한 베테랑이며, 최근 북한 간부의 세대교체에 따라 부상하고 있는 40,50대 대표주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맹경일(48) 노동당 통일전선부(통전부) 과장은 남북 장관급회담 대표로 여섯 차례나 참석한 회담 전문가다.

정부 관계자는 “비공개 접촉에 누가 나왔는지 확인해줄 수 없고, 박철도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비밀접촉에 원동연, 맹경일이 참석했다면 통전부가 남북 비밀접촉에서 배제됐다는 식의 보도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된 것”이라며 “천안함 사건에 대한 담당부서가 국방위원회이고, 남측에서 청와대 비서관이 참석했기 때문에 국방위 관계자가 함께 나선 것일 뿐이지 실질적인 대남정책은 통전부가 맡을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또한 5월 9일부터의 비밀접촉에서 남측은 “대통령은 평양을 절대 먼저 안 간다. 판문점에서 먼저 하자”고 제안했고, 북측은 1차는 판문점에서 2차는 평양에서 회담을 갖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남측은 이명박 대통령이 5월 9일 ‘베를린 제안’을 통해 3차는 내년 3월말 서울에서 열릴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에서 갖자는 추가제안을 내놓았던 것.

특히 남북정상회담 의제로는 이명박 대통령의 경부고속도로 건설 경험을 살려 신의주-부산간 고속도로 개통과 러시아 가스관 연결, 포스코의 제철소 건설과 북측 철광석 채굴권 양도, 조선협력단지 구체화 등 굵직한 경협사업들이 포함됐다.

이 중 북측의 철광석 채굴권을 확보하는 조건으로 포스코의 북측 지역 제철소 건설은 이미 포스코 측에서 중국 현지 법인을 통해 추진해오던 것을 현 정부가 중단시켰던 사안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또한 신의주-부산간 고속도로는 남북정상회담이 뒤틀리면서 북.중 간에 먼저 단둥-평양 고속철도 건설이 합의된 점도 주목된다.

역시 최대의 난관은 천안함 사건에 대한 처리 문제였지만 의외로 양측은 ‘지난날 발생한 비극적 사건들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상호 노력하며, 우발적 사건으로 인해 희생된 가족과 희생자들에게 애도와 유감을 표명한다’는 선에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통한 소식통은 “천안함 사건 관련 북의 의견 표명을 남쪽은 정상회담 전에, 북은 회담에서 하겠다고 맞서서 난항을 겪었다”고 전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남측의 ‘선 천안함 의견 표명’ 요구는 북측에 대한 불신을 반영한 것이면서 남측의 행동 폭을 스스로 제한하는 것”이며 “2008년도에도 상호 신뢰가 없는 접촉으로 실패한 경험이 있는 북측 입장에서도 천안함 사과만 먼저 하기에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비밀접촉을 통한 정상회담 추진이 결정적으로 어그러진 것은 김태효 청와대 비서관의 등장 때문인 것으로 확인됐다.

소식통은 청와대가 베를린 제안의 진의를 북측에 전달한다고 흘리는가 하면, 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 사과를 거론하는 등 북측이 남측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 “김태효 비서관이 비밀접촉에 나서 판를 뒤집었다”고 말했다.

확인을 요청받은 정부 관계자는 5일 “우리는 천안함.연평도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했고, 북에서 거부해서 결렬됐다”고 이같은 사실을 부인했다.

2009년 싱가폴 비밀접촉 임태희 당시 한나라당 의원과 김양건 통전부장 간의 합의 역시 통일부 등의 강경입장에 부딪혀 무산된 바 있으며, 이에 대해 임태희 의원은 북측에 팩스를 보내 유감을 표명하고 기회가 되면 다시 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비밀접촉의 시발이 된 류경-김숙 극비 교환방문과 5월 9일부터의 비밀접촉 역시 임태희-김양건 라인이 배후에서 작용해 성사된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