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8일에 쫓겨나서부터는 여기서 계속 이섬수다(있어요). 아무리 해군기지가 국가사업이랜 해도, 지들 몸양 막 지으켄 하민 어떵할꺼라(자기들 마음대로 막 지으려고 하면 어떻게 하나). 이게 말이 되는거라?"

11일 낮, 겉보기와는 다르게 튼튼한 천막 안에서 '천막장' 김현석(가명)씨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제밤부터 천막 안에서 당직을 섰기 때문이다. 순번표에는 마을 주민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대찬 바다바람은 천막 틈으로 파고들었다. 언 몸을 녹이기 위해 천막 앞에서는 군불을 때고 있었다. 마을해안 이름을 딴 누렁이 '중덕'이는 외지인에게도 꼬리를 흔들어댔다.

천막 안은 10일 중국과 한국 간의 축구 경기 얘기가 한창이었다. "이놈의 나라는 한 번 져봐야지, 한 번 얻어터져야지 정신을 차리지." 의미심장한 얘기였다. 곳곳에 꽂혀 있는 '해군기지 결사반대' 노란색 깃발이 바람에 나부꼈다.

"억지로 하젠 하믄 부딪히는 게 당연한 거지. 민의를 무시하고, 제 고집만 부리면 결과는 안 좋아. 암 그럼." 70대 노인의 넋두리가 바람 속을 비집고 들려왔다.

▲ 11일 낮, 해군기지가 들어설 예정인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천동 강정마을을 찾았다. 주민들은 예정지 일대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사진-통일뉴스 고성진 기자]
예로부터 물이 많은 곳이라고 해서 붙여진 강정(江汀)마을, '해군기지 결사반대' 깃발은 마을 곳곳에 명패처럼 달려 있었다. 제주도의 여느 어촌처럼 한적한 분위기였지만, 도처에 걸린 해군기지 반대 현수막에서 민심을 읽을 수 있었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천동에 속한 이 마을은 해군기지 문제로 근 3년 동안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주민들의 천막농성도 해를 넘겨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18일 해군기지 착공식 예정지 부근에서 천막농성을 벌이던 주민 51명은 경찰에 의해 강제로 연행됐다. 그 후로 해군 측은 예정지 일대에 펜스를 치고 철조망으로 주위를 막아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상태다. 주민들은 부근에서 천막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해군기지 기공식을 앞두고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는 등 건립을 추진하려는 쪽과 주민들 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지금 강정마을은 총칼을 안 들었을 뿐이지, 과거 4.3사건보다 더 피 튀기게 공권력과 싸우고 있어요. 불법이라며 연행하는 공권력에 주민들은 모두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맞설 준비가 되어 있어요. 2년 10개월 동안 막대기 하나 들지 않고 평화적인 시위를 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막다랐을때는 어떻게 할 지 우리도 모릅니다. 주민들이 다 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요."

▲ 강동균 강정마을회장과 강정마을회관에서 만났다. [사진-통일뉴스 고성진 기자]
강동균 강정마을회 회장은 마른 기침을 연신 내뱉었다. 줄담배도 계속됐다. 3년 넘게 끊은 담배는 회장을 맡고 해군기지 반대 활동을 하면서 다시 피게 됐다. 요즘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는 그의 말은 엄살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해군과 제주도가 강정에 해군기지를 지으려고 하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밖에 없어요. 2007년 4월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주민들이 찬성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2007년 8월 10일 주민투표에서는 주민의 94%가 반대를 해요. 어떻게 찬성이라는 결과가 나올 수가 있어요? 억지로 주민 여론을 짜맞추면서 제도적인 폭력을 가하고 있는 겁니다."

당초 강정마을은 해군기지 예상 후보지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2006년 자연생태우수마을로 지정될만큼 주변환경이 뛰어난 데다, 해안 지형도 바다쪽으로 튀어나와 항만이나 군사기지가 들어서기에 입지적으로도 타당성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제주도 내 8개 지역을 조사한 해군기지 환경영향평가에 강정마을은 조사지역으로 포함되지도 않았다. 해군기지의 가장 유력한 후보지는 산방산 근처의 화순항이었다. 5년 간의 주민들의 거센 반대, 다음 후보지는 위미리였다. 그 곳에서도 주민들의 반대는 계속됐다.

2007년 4월 10일, 김태환 도지사는 제주도의회에 나와 '화순과 위미 이외의 해군기지 후보지가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2주 남짓, 4월 26일 강정마을에서 여론조사가 실시됐고, 마을총회에서 해군기지 유치건'이 통과됐다. 강동균 회장은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김태환 도지사하고 우리가 해임시켰던 전 마을회장과의 물밑 접촉 사실이 드러나게 됐어요. 물밑 공작이 이뤄진 거죠. 전 마을회장은 지인들을 포섭하고, 어촌계에 1억~1억 5천을 주겠다고 하면서 포섭을 한 거죠."

"마을총회 상황도 말이 안 됐어요. 이제까지 마을총회에 참석하지도 않았던 어촌계와 해녀들이 대거 참석해 유치 찬성을 해 버린거죠. 총회 공고기간도 일주일이 아닌 3일뿐이었고, 안건도 해군기지 관련 건에서 총회에서는 해군기지 유치 건으로 바꿔버렸어요. 이 사람들이 조작이 얼마나 심했느냐 하면, 총회가 끝나기 전에 이미 인터넷에선 총회 결과가 다 나왔어요. 이미 언론에 보도자료를 만들어 놓은 거죠."

▲ 해군기지가 들어설 강정마을 해안은 올레길 7코스로 자연경관이 아름답다. '퇴진 김태환'이라는 글씨가 곳곳에 있었다. [사진-통일뉴스 고성진 기자]
대부분의 주민들이 뒷통수를 맞은 상황이었던 셈이다. 그 이후 8월 10일 주민투표에서 해군과 제주도의 방해 속에서도 700여 명이 참여해 투표를 성사시켰고, 반대표는 680표로 압도적이었다.

그럼에도 제주도와 해군은 해군기지 건설을 추진했다. 일부 주민들에게는 거액의 보상금액을 주겠다며 회유를 하면서 주민들 간의 갈등을 조장시켰다. '찬반 논란'을 부각시키는 등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쟁점을 흐리는 작업도 함께 병행됐다. 2년 10개월 동안 계속된 주민 갈등은 마을 분위기를 싸늘하게 바꿔놓았다.

"지역신문에서 설문조사를 했어요. 거기에 보면, 강정주민 40%가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된 갈등 때문에 자살충동을 느낀다고 나왔어요. 충격적인 결과죠. 지금까지 오순도순 살아온 마을이 국가가 갈기갈기 찢어오면서 자살충동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 강정마을 사람들의 마음은 피폐하고 황폐화됐어요. 형제끼리 싸우고, 삼촌 조카가 싸우고 있어요. '명절을 같이 지내나, 제사를 같이 지내나, 벌초를 같이 하나' 이제는 전부 안 해요. 과연 이렇게 만들어놓는게 국가사업이예요?"

주민 갈등으로 속을 태웠던 강 회장은 할 말이 더 많아 보였다. 마을에서 나고 자란 54살 토박이는 이전과 다른 마을 모습에 안타까운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매년 설날 오후 1시가 되면 마을 노인회관에서 노인분들을 전부 모셔놓고 강당에서 전 주민들이 새배를 드리는 신년하례회를 해왔어요. 그런데 이것이 작년부터 없어져버렸어요. 그렇게 오순도순 잘 살아왔던 마을이, 이 해군기지 문제로 해서 주민갈등으로 불거지고, 노인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잘 키우는 좋은 마을 풍습들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정말 미칠 노릇이죠."

"진짜 나라가 필요한 국가사업이라고 하면, 거짓말을 하지 말고 솔직하게 얘기하고 주민들에게 협조를 구하고, 양해를 구해야지, 이 사람들은 정말 말이 안 되는 짓들을 하고 있어요. 군사기지가 아니고 관광미항이라고 하면서 관광지로 만들겠다는 거짓말로 제주도민들을 우롱하고, 사람들을 속이고 있어요. 진짜 이러면 안 되잖아요."


강정마을주민 등 21명이 지난해 11월 해군기지 환경영향평가 심의위원 등 9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제주지방법원에 계류 중이며, 제주해군기지 건설사업 추진과정에 행정절차상 논란이 됐던 절대보전지역 변경처분에 대한 강정마을회의 집행정지 신청도 진행 중에 있다.

▲ 강정마을 해안에 세워진 평화를 기원하는 탑. [사진-통일뉴스 고성진 기자]
현재 해군기지 건립사업은 강동균 마을회장 등 450명이 지난해 4월 국방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방.군사시설사업 실시계획승인처분 무효확인 소송 결과와 공유수면 매립면허 등의 행정절차가 마무리될 때까지 무기한 연기해야 한다는 천주교 제주교구의 요청에 따라 당분간 중단된 상태다.

그러나 언제든지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특히 기공식을 시작으로 해군기지 건립이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 이번에 맞는 봄이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처음부터 강정에 오면서 도지사나 국방부 장관은 주민 동의 없이는 해군기지 건립 추진을 절대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주민 동의 과정이 전혀 없었죠. 이 사람들은 공권력을 가지고 제도적 폭력을 행사하면서 우리를 억누르고 있어요. 찬성하는 주민 일부를 등에 업어서 서로 주민들을 찢어놓고 있구요. 국가사업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이것이 주민들이 반대하는 이유이고, 이 싸움을 절대 멈출 수 없는 이유입니다."

"국방.군사시설 실시계획승인처분 무효확인 소송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습니다. 분명히 저희는 타당한 주장을 하고 있으며, 억지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은 저쪽입니다. 소송 결과가 안 좋게 나오더라도 이 싸움은 계속될 겁니다. 이것은 하나의 과정이죠. 결과가 좋게 나오면 힘을 받게 되겠죠. 그러나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가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이유는 변하지 않습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