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일 가톨릭회관에서 KAL858기 22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제가 볼 때는 종점에 와 있다. 다만 국정원이 이것을 감추고 인정하지 않아서 답보상태에 있는 것이지, 안기부의 수사발표는 이미 다 무너져버렸다. 어느 것도 진실이 없다. 우리는 이미 이겼다.”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22주기 추모제’에 참석한 1백여 참석자들은 예상치 못한 신성국 신부의 선언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87년 11월 29일 중동 근로자 등 115명의 승객을 싣고 서울로 향하던 KAL858기가 사라진지 22년 만인 29일 오후 1시,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7층 강당에서 열린 추모제는 지난 6월 진실화해위에 진상규명 신청을 자진 철회한 뒤라 침울한 분위기로 시작됐다.

사회를 맡은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도 경과보고를 통해 “유독 KAL858기 사건 만은 의혹을 풀어주지 못하고 있고 정부기관의 외면을 받아왔다”며 안타까움을 표하고, 최근 이 사건의 주범으로 사형판결을 받고 사면받았던 김현희 씨가 공개활동에 나선 것을 두고 “가족들을 모욕하고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는 분들을 모욕하는 짓을 당장 그만두라”고 촉구했다.

이어 지난 2006년부터 교포사목을 위해 미국에 머물렀다 최근 귀국한 신성국 신부가 “제가 지난 약 4년간 미국에서 있었던 KAL858 진상규명 활동에 대해 여러분께 발표하겠다”고 운을 떼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신성국 신부는 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아왔다.

▲ 미국에서 귀국한 신성국 신부가 정보공개를 청구해 미국 정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들을 제시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신 신부는 “미국 의회 상원 하원 쪽에 여러분들의 진상규명에 대한 활동을 그쪽에 입장을 전달했다”는 점과 “미국에 있으면서 미국 언론과 접촉... 여러분들의 진상규명 요구와 지금까지 있었던 안기부의 거짓보고에 대해서 자료를 다 넘겨줬다”는 점을 전했다.

특히 미국에서는 KAL858기 사건이 테러사건으로 분류돼 전 세계 모든 항공기 사고 관련 자료를 보관중인 미국 국립문서보관서(NARA)에는 아무런 자료가 없고 미국 중앙정보국(CIA)에서 자료를 보관 중임을 확인했다며 “CIA 자료를 23쪽에 걸쳐서 받아왔는데, 이 자료의 내용도 3분의 1은 다 지워버렸다”고 밝히고 “다 영문으로 돼 있기 때문에 관련된 분들이 번역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미국 국무부로부터 “총 59개 항에 150페이지 자료를 받았다”며 “총 59개 항목 중에 20개 항목은 공개되고 나머지 39개 항목은 부분 공개 또는 비공개다. 실제로 우리가 알고 싶은 그 내용은 삭제시켜버렸다”고 밝혔다.

신 신부는 미 국무부 공개자료 중 일부 내용을 인용해 “미국 쪽에서는 (88 서울)올림픽과 KAL 폭파사건과 관련 맺는 것에 대해서 크게 부정적이었다”거나 “(북측 테러) 동기에 대해서 미국 쪽에서는 상당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는 등 새로운 사실들을 밝혔다. (상자 기사 참조)

신 신부는 KAL858기 사고에 대해 대한항공 측이 영국 재보험사인 로이드사에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은 문제를 추적 중에 있다며 “만일에 보험금 청구를 안했다는 것이 확인되면 대한항공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정원은 가족회의 분열을 바란다. 국정원은 분명히 우리를 회유할 것이고 협박할 것이고 우리에게 방해공작을 놓을 것이다”며 ”여러분들이 진상규명을 위해서 지금보다 더 합심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 차옥정 가족회 회장은 "가족들이 포기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사진 - 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김명운 추모연대 공동의장은 추도사를 통해 “10월 8일부터 의문사 유가족들이 모여 진실화해위에서 농성을 20일간 하고, 농성을 정리하면서 진상규명 신청을 철회했다”며 “진실화해위도 같은 정부 기구이기 때문에 협조를 통한 정보 이상으로 가면, 정보가 주어지지 않았다”고 한계를 지적했다.

김 의장은 “싸우지 않으면 어떠한 증거도 나오지 않을 것이고 사건 해결의 진전도 없을 것”이라며, 신청 철회 성명 중 “우리 유가족들은 이제 다시 의문사를 안고 길 위로 나선다. 규명되지 않은 가족의 죽음과 실종을 가슴에 묻고 해쳐온 지난 세월은 가혹했다. 그러나 우리는 국가권력이 저지른 인권유린을 고발하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는 대목을 들려줬다.

차옥정 KAL858기 가족회 회장은 “가족들이 포기하지 말자”며 “저희가 앞장서서 하면 꼭 협조해달라”고만 호소했다.

차 회장은 미리 준비한 가족대표 인사말에서 “진실화해위 조사팀은 국정원 조사 흉내만 내고 우리 가족의 진술만 받으려 했고... 눈물을 머금고 6.17 취하서를 제출했다. 이것이 공식적 조사의 내역이다”며 “희생자에 대한 예우, 희생자에 대한 명예회복이 국가적 차원에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가자들은 115명의 이름이 적힌 대형현수막을 배경으로 차려진 분향소 앞에 헌화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 가족을 잃은 이들의 가슴 속 슬픔은 해가 가도 지워지지 않는다. [사진 - 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청주에서 아침 일찍 올라왔다는 김순식(73) 씨는 당시 스물다섯 꽃다운 나이에 스러진 딸 구인실은 스튜어디스였다며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가슴이 기가 막히게 아프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7살 때 아버지 심재민(당시 39) 씨를 잃었다는 의보(29) 씨는 “그 전에는 어머니께 들은 이야기 말고는 잘 몰랐는데 여기 나오면서 알게 됐다”며 “이 사건의 진상을 알리기 위해 젊은 사람들이 많이 노력해야겠고, 인터넷이 보편화 됐으니까 블로그 등에 많이 퍼지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류인자 KAL858기 가족회 부회장은 “일부 가족들이 양재동 추모탑으로 갔다고 해 실망도 했지만, 신 신부님이 오셔서 희망을 얻었다”며 “신부님께서 우리가 몰랐던 부분에 대해 커다란 선물보따리를 가져 오셔서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제가 지난 약 4년간 미국에서 있었던 KAL858 진상규명 활동에 대해 여러분께 발표하겠다.

먼저, 미국 의회 상원.하원 쪽에 여러분들의 진상규명에 대한 활동을 전달했다. 미국 의회가 이 사건을 알아야 할 이유는 당시 KAL858기 사건은 미국 내에서 테러사건으로 분류가 되어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다. 지금 미국과 북한이 관계 개선을 위해서 많은 접촉을 하고 있다. 그래서 저는 이 KAL858기 사건을 미국의 당국자들이 알고 북한과 이 사건에 대해서 논의할 수 있도록 자료를 제공했고, 의사를 전달했다. 그래서 북미 간에 이 사건이 안건으로 다뤄지기를 저희들은 바라고 있다. 특히 여러분들의 억울한 사정, 여러분들의 요구, 이런 모든 것들이 전달됐다.

두 번째, 미국 내에 이 사건에 관련된 자료가 있는지 제가 워싱턴 D.C.에 있는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 직접 가서 자료를 확인하고 왔다. 저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는데, 미 국립문서보관소는 전 세계 모든 항공사건에 관한 모든 자료를 다 보관하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우리 사건은 자료가 없었다. 우리 사건 자료가 없어서 제가 관계자에게 물어봤다. “왜 이 KAL858 사건은 자료가 빠졌는가?” 그쪽에서 대답하기를 우리 사건은 “항공기 사건으로 분류되지 않고 테러사건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미 CIA(중앙정보국)에서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철저히 우리 사건은 비밀문서로 관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저는 미 CIA에 요청했다. 우리 사건의 자료를 공개해달라고. 그래서 일부 받아왔다. 제가 CIA 자료를 23쪽에 걸쳐서 받아왔는데, 이 자료의 내용도 3분의 1은 다 지워버렸다. 얼마나 이 사건을 이들이 감추려고 하는지 많이 삭제돼 있고 일부만 공개돼 있다. 나중에 계속 분석 중에 있다. 다 영문으로 돼 있기 때문에 관련된 분들이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소득이 있었다. 2008년 10월에 미 국무부에 우리 사건에 관한 정보공개를 신청했다. 그래서 1년 만에 제가 국무부 자료를 받아냈다. 총 59개 항에 150페이지 자료를 받고, 최근에 받았기 때문에 이것을 지금 미국에 있는 법조계 박사들이 번역하고 있다. 번역이 끝나면 가족들에게도 내용을 공개할 예정이다. 다만 이 자리에서 몇 가지만 제가 요약본을 말씀드리면 총 59개 항목 중에 20개 항목은 공개되고 나머지 39개 항목은 부분공개 또는 비공개다. 실제로 우리가 알고 싶은 그 내용은 삭제시켜버렸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러나 일부 공개된 내용 중에 우리가 꼭 알아야 될 부분이 있어서 간단히 말씀드리겠다.

미 국무부 공개문서에 대한 1차 검토 결과 “북한의 소행이라는 정황 증거가 쌓여져 가지만 사건을 일으킨 타이밍과 동기에 대한 의구심이 여전하다” 이것이 미 대사관과 국무부의 의견이다. ‘이 사건이 왜 이 시기에 일어났는가’ 동기에 대해서 미국 쪽에서는 상당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또 한 가지 “버마 남쪽 해안에서 구명보트가 발견됐고 이것이 KAL기의 잔해로 파악되었음을 이유로 추가적인 미국 PC-3 비행기를 보내달라던 한국 정부의 이전의 요구를 스스로 철회했다”. 당시 외무부 장관 최광수가 미국 쪽에 PC-3 비행기를 요청해서 계속해서 수색해달라고 미국 쪽에 요구했다가 대선 전에 이 구명보트가 발견되고 나서 이 요구를 철회해 버린다. 이 내용을 보면서 한국 정부가 이 사건 사고 수색에 대해서 얼마나 소극적이었나 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재밌는 의문거리가 하나 있다. 한국 정부에서는 안기부 수사발표문은 이 KAL858기 사건이 올림픽 방해를 위한 북한의 항공기 폭파사건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미 국무부에서는 다른 판단을 하고 있다. “올림픽 방해 시나리오는 그럴 듯하지만 타이밍이 영 아니다. 왜 올림픽에 대한 타협안을 평양이 받아들을 수 있도록 한국의 선거가 끝나기까지 기다리지 않았는가”. 미국 쪽에서는 올림픽과 KAL 폭파사건과 관련맺는 것에 대해서 크게 부정적이었다. 안기부 수사발표문과 국무부의 판단은 달랐다. 안기부는 올림픽과 직접 관련있다고 발표했다.

저희들이 앞으로 이 문서를 더 분석하고 검토해야겠지만 이 문서의 출처가 어딘가? 당시 한국 전두환 정권과 긴밀하게 관련있는, 친했던 주한 미대사 릴리가 미 국무부로 다 발송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자료들을 보면 한국 안기부가 전해준 자료를 토대로 미 국무부에 그대로 보고한 문서들이 많고 또 한 가지는 릴리가 자기 나름대로 코멘트를 많이 했다. 제일 안타까운 것은 39개 가려진, 삭제된 그 내용을 봐야 하는데, 그것을 지금 제가 또 추모제가 끝나면 가족들과 다시 상의해서 가려진 부분을 공개하도록 요청할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가 진행 중에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세 번째, 보험금과 보상금 관련된 내용이다. 제가 지금까지 대한항공사를 상대로 보험료 청구 여부를 확인 조사했다. ‘대한항공사가 영국 로이드 재보험사를 상대로 보험청구한 사실이 있는가?’ 그러나 저희들은 ‘보험청구한 사실이 없다’라고 자체 판단하고 있다. 이것도 영국의 로이드 보험사와 여러 가지 루트를 통해 확인 중에 있다. 만일에 보험청구 안했다는 것이 확인되면 대한항공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험금을 받아내야 한다.

제가 미국에 있으면서 우리 사건과 가장 비슷한 사건이 미국에서 있었다. 1988년도 팬암기 사건이다. 그것도 항공기 테러사건이다. 팬암사건은 미국 정부가 유족들을 위해서 발벗고 나서서 그 범인을 11년 만에 잡았다. 리비아에서 테러했다. 그리고 1인당 보상금으로 1천만 달러를 받아냈다. 1인당 우리나라 돈으로 125억 원. 이렇게 미국 정부는 자국민 피해자들을 위해 정부가 앞장서서 그런 노력을 했다. 그러나 우리 KAL858 사건은 우리 한국 정부가 전혀 그런 노력들을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김현희 우상화에만 앞장섰고 김현희만 가지고 장난을 쳤다. 이 팬암기 사건과 비교해보면 우리들은 너무 억울하고 원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진상규명이 중요하다. 진상규명이 되면 보상문제도 다시 협상에 들어가야 한다. 여러분들이 진상규명을 위해서 지금보다 더 합심해서 노력해야 한다.

네 번째, 저는 미국에 있으면서 미국 언론과 접촉했다. 이 KAL858기 사건은 국내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 사건은 국제적인 테러사건이기 때문에 이 사건이 유엔 안보리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국제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미국 언론을 통해 여론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저는 여기 오기 전에 미국의 언론들에게 여러분들의 진상규명 요구와 지금까지 있었던 안기부의 거짓보고에 대해서 자료를 다 넘겨줬다. 그래서 앞으로는 세계적인 언론들의 협조를 받아서 전 세계 국제적인 차원에서 여론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이일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늘 미안했는데 선물 가져와 떳떳하다”
<인터뷰> KAL858 미국 자료 받아온 신성국 신부


▲ 귀국후 첫 인터뷰를 갖고 있는 신성국 신부. [사진 - 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통일뉴스 : 미국에서 무얼 했고, 얼마나 머물렀나?

■ 신성국 신부 : 2006년 10월 2일 들어가서 2009년 11월 27일 돌아왔다. 주로 캔사스와 시카고에서 교포사목을 했고 마지막엔 안식년을 보냈다.

□ 미국에서도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 같다. 그 이유는?

■ 이 사건의 진상규명은 가족들과의 약속이다. 처음부터 집행위원장을 맡으면서 진상규명을 위해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했고 이 약속을 지켜야 한다. 성직자로서 억울한 희생자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인권과 생명운동에 관심이 있어서 뛰어 들었다. 사제로서의 나의 소명이라는 생각을 갖고 일을 하고 있다.

□ 미 국무부 자료를 언제 어떻게 받아냈나?

■ 미국 지인을 통해 2008년 11월 30일에 미 국무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2009년 10월 28일 자료를 받아냈다. 총 59개 항목 150페이지로 20개 항목만 전면 공개됐다. 나머지 20개는 공개 불가, 19개는 부분 공개됐다.

□ 미 행정부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가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서야 결실을 본 이유는?

■ 부시 대통령 하의 공화당 정권에서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려 했다. 오바마 대통려이 되니까 협조해준 것이다.

▲ 미국 국무부의 정보공개 통보 공문. [사진 - 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새로운 사실들이 있었나?

■ 주로 추모제에서 발표한 내용들이다. 미 국무부 자료 중에서 사건 초기 미국이 보였던 반응은 우리 안기부 수사 발표 내용과 차이가 있다. 지금 번역 중인데, 김현희의 진술만 가지고 북한의 테러라는 증거를 제시한데 대해 미 국무부는 의아해 했다. 김현희가 진술한 북한과 관련됐다는 5가지 증거가 이미 현재 거짓으로 드러났다.

특히 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북한이 이 사건을 일으켰다는 데 대해 미 대사관 측은 “올림픽 방해 시나리오는 그럴 듯하지만 타이밍이 영 아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버마 남쪽해안에서 고무구명보트가 발견되자 미국에 요청했던 PC-3 비행기 파견을 스스로 철회한 새로운 사실도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대사관은 한국 안기부가 내놓은 것을 그대로 앵무새처럼 반복한 것이 대부분이다. 번역을 마무리하고 좀더 분석이 필요하다.

□ 미국인이나 재미교포들에게 KAL858기 사건을 설명하면 반응이 어땠나?

■ 교포들이 관심을 많이 보였다. 대화를 하면 다들 동의하고 전두환 정권 말기 사건이었고 대통령 선거에 이용한 것을 이해했다. 관심을 많이 보이고 협조적이었다. 얼굴도 몰랐던 많은 사람들이 나서서 도와주기도 했다. 우리 만의 외로운 투쟁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 향후 대응 방안은?

■ 자료를 계속 찾을 것이고, 전 세계 여론을 계속 확산시켜 나갈 것이다. 홈페이지 개선 등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갖도록 할 것이며, 유엔 각국 대표들에게 우리의 진상규명 노력을 계속 전달하겠다.

□ 귀국해 오랜만에 KAL858기 가족회 회원들을 만났는데, 소회는?

■ 오랫동안 가족들 곁을 떠나서 늘 마음이 무거웠고 미안한 마음을 가졌는데 다시 가족들을 만나서 기쁘다. 미국에서 내 나름의 성과를 선물로 가져와 한편으로 떳떳하다. 내년 1월 초까지가 안식년이지만 가족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서 일찍 들어왔다. 가족들이 끝까지 힘을 내고 있고, 가족들의 굳건한 진상규명 의지를 보면서 나도 큰 힘을 얻게 됐다.

오늘 22주년 추모제를 맞이했는데 이 사건이 거의 정점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정원이 아무리 감추고 싶어도 성공 못한다. 진실은 영원히 감출 수 없다. 국정원의 의도대로 가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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