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8월 8일 오후 2시에 강북구 수유동 소재의 ‘근현대사기념관’에서 개막한 이준 열사 유해봉환 60주기 추모 특별전 “돌아오지 못한 헤이그 특사”에 유족대표 조근송 씨는 참석하지 못했다. 필자는 수차 그에게 연락하였지만, 그는 지금 가짜 유족 이 모씨에게 받는 스트레스로 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으며, 국가로부터 아무런 보조 혜택도 없이 생활고를 겪고 있다.

1. 이상설 주변의 친일 세력

탁월한 독립운동가 이상설(李相卨, 1870~1917)의 주변에는 항시 친일 세력이나 밀정, 심지어 악랄한 공작원까지도 있었다.

- 일본은 용정의 이상설 주변에 밀정을 투입하여 감시하였다. 이준 열사가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하고 용정의 이상설에게 전보를 보내 블라디보스톡에 오게 하여 만난다. 이상설이 그 전보를 받자 일본은 이준 열사가 블라디보스톡에 와 있음을 알았다. 당시 이상설의 블라디보스톡 행은 비밀이었으므로, 이상설의 최근 거리에 누군가가 일제의 비밀정탐원(밀정)이 있었던 것이다.

- 이준 열사의 부인 이일정은 이준 열사의 외아들 이용(李鏞)과 함께 1910년 가을에 경성에서 출발하여 하얼빈을 거쳐 10월 22일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하였고, 이상설이 주변에 머물렀다. 당시 일제의 악랄한 공작원은 이상설과 이일정의 추문(스캔들)이 있다고 거짓 정보를 퍼트렸다. 이것은 정탐이 아니라 공작이다. 그리고 그러한 공작 추문이 사실인 것처럼 현지의 일본영사관에도 보고된다. 즉 이상설 주변에는 밀정과 정탐원은 각기 암약하고 있었다.

이일정은 그 거짓 소문에 견디지 못하고 결국에는 귀국한다. 역시 이상설의 최근 거리에 일제의 밀정과 공작원이 복수(複數)로 있었다. 그러나 당시 이준 열사의 아들 이용은 이상설의 권업회에 가담하여 독립운동에 나선다.

- 이상설의 주변에 있던 일제의 밀정은 1917년에 이상설이 서거하기 직전까지는 그대로 암약하고 있었던 것 같다. 가장 최근 거리에 있던 그 자는 누굴까? 용정에서의 밀정과 블라디보스톡의 밀정은 같은 사람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일까?

일본의 비공개 자료를 더 찾아야 한다. 그러나 정탐 보고서는 쉽게 찾을 수 있는데 비공개 공작 자료는 접근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정탐 보고서도 일본영사관에서 취합하여 보고하므로 그 정보의 출처나 인명이 거의 모두 비밀에 싸여 있다.

- 그런데 세밀히 살펴보면 이상설이 사망한 1917년으로부터 30년 후, 대체로 1948년경에 이상설의 최근 거리에서 암약하였던 친일 세력의 영향력과 결이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일본이 해방후 한반도를 분단시키고 분열시킨 공작사업의 전형적인 수법이 이상설의 족질(族姪)들에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상설의 가계를 살펴보자. 이상설의 생부(生父)는 이행우(李行雨)이며 양부(養父)는 이용우(李龍雨)이다. 이상설에게는 이상익(李相益)이라는 친 동생과 이상직(李相稷)이라는 양 동생이 있었다.

그의 양 동생 이상직은 진천 지역의 독립운동가이다. 독립운동가 이상직의 행적은 이상설과 중첩되는 부분은 없음을 보면, 그는 용정이나 블라디보스톡의 이상설 주변에 머물렀던 사람이 결코 아니다.

그런데 친동생 이상익은 1899년 11월 14일 한성사범학교 교관(漢城師範學校敎官 敍判任六等)으로 임용되었고, 1902년 5월 28일에 4등으로 승급한다. 필자는 최근 이상익의 것으로 보이는 일부 행적을 확인하였다.

그런데 가장 문제가 되는 인물은 ‘이상익의 아들 이관희(李觀熙)’이다. 그는 해방후 이상설과 이준 열사의 동지적 관계를 갈라놓은 행위를 한 사람이고, 그의 그러한 행위에는 일본 극우가 적극적으로 협력하였다. 이러한 것을 미루어 보면, 이관희가 친일파였던 것은 거의 확실시 된다.

(참조 ; [연재] 애서운동가 백민의 ‘신 잡동산이’(6) - ‘[장지연전서]의 [이상설 일기초]는 가짜 문서’)

2. 사단법인 헤이그특사기념사업회 설립에 대하여

‘사단법인 헤이그특사 기념사업회’ 추진위원회 홈페이지에 게시된 발기인 명단. [사진 제공 - 이양재]
‘사단법인 헤이그특사 기념사업회’ 추진위원회 홈페이지에 게시된 발기인 명단. [사진 제공 - 이양재]

인터넷에서 최근에 ‘사단법인 헤이그특사기념사업회’ 추진위원회 홈페이지를 보았고, 그 발기인 명단을 검토해 보았다. 

발기인 ;
이정은 /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수석연구원, (사)3.1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사)대한민국역사문화연구원장.
이〇〇 / 이준 열사 유족(직계손), 국제변호사.
이명수 / (현)충남아산시갑 국민의 힘 국회의원, 21대 국회의원(4선).
김태영 / (현)인디컴 총괄감독, (현)다큐멘터리 감독
김경원 / (현)사단법인유라시아문화연대 이사. (현)연극연출가 및 배우.
이연우 / (현)초려문화재단 이사장, (현)공주대학고 객원교수, 대한스포츠마케팅연구소 대표.
이강선 / (현)스튜디오 반 대표.
이정민 / (현)초려문화재단 명예홍보대사, (현)미추홀 오페라단 부단장, 피아니스트.

도움을 주시는 분들 ;
박봉수 / 뮤지컬 프로듀서.
박인구 / ㈜크림컴퍼니 대표.
태기수 / 소설가.

위의 발기인을 검토하여 보면, (존칭을 생략합니다) 이연우는 충청남도에서 ‘초려문화재단’을 운영하는 문화활동가라고 한다. 현재 ‘사단법인 보재이상설기념사업회’의 회장인데, 의외로 그 직책은 발기인 명단에서 밝히지 않았다. 명단에 있는 이정민은 ‘초려문화재단’의 명예홍보대사로 되어 있어, 이 단체는 이연우가 주도하여 발기하는 것 같다.

발기인 명단의 맨 위에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수석연구원이자 ‘(사)3.1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이정은이 올라 있다. 그리고 충남 아산시(갑) 지역의 이명수(국민의 힘 소속) 국회의원도 올라가 있다.

그런데 위 발기인 명단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발기인은 이준 열사의 유족이라 주장하는 국제변호사 이〇〇이다. 지난주 제23회 연재에서 다루었던 “이준 열사 자손고(子孫考)”에서 언급한 대로 그는 이준 열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다. 이렇게 가짜 자손까지 발기인으로 내세우는 상황은 정말 기만적인 촌극도 이런 촌극이 없다.

엄밀히 생각해 보자, ‘사단법인 헤이그특사기념사업회’가 무슨 필요가 있는가? 합법적으로 ‘사단법인 보재이상설기념사업회’가 엄연히 존속하고 있고, 일탈한 행동을 하고는 있지만 ‘사단법인 일성이준열사기념사업회’도 있다. 필자는 제13회 연재에서 헐버트 박사가 헤이그 특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그런데 ‘사단법인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도 있다.

지금 헤이그 특사로 기념사업회가 없는 분은 이위종(李瑋鍾, 1887~1920경) 지사이다. ‘이위종기념사업회’를 만들어야 할 일이지 ‘사딘법인 헤이그특사기념사업회’를 이준 열사의 가짜 자손을 참여시켜서까지 만든다는 것은 무슨 속셈일까?

(참조 ; [연재] 제13회 - ‘헐버트 박사의 1906년 위임장은 만국평화회의 특사 위임장이 아니었다’)

3. ‘사단법인 헤이그특사기념사업회’라니 허가되었나?

‘사단법인 헤이그특사기념사업회’ 추진위원회 홈페이지(http://hague.or.kr/) 첫 화면. [사진 제공 – 이양재]
‘사단법인 헤이그특사기념사업회’ 추진위원회 홈페이지(http://hague.or.kr/) 첫 화면. [사진 제공 – 이양재]

홈페이지(http://hague.or.kr/)를 들어가 보면 버젓이 ‘사단법인 헤이그특사기념사업회’라고 되어 있다. 사단법인으로 이미 허가된 것일까? 국가보훈처에서는 “허가한 사실이 없다”라고 한다. 혹시 서울특별시와 충청남도에서 외교부 산하로 허가한 것일까? 아니면 국민의 힘 소속의 이명수 국회의원이 힘을 써서 허가해 주겠다는 확답이라도 받은 것일까? 허가가 나기도 전에 사단법인임을 공표한다면 분명 이것은 위법적인 기만 행위이다.

필자는 유족대표 조근송에서 “이준 열사 유족이라며 가짜 유족 이〇〇이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는데, 그것을 그대로 둘 수 없으니 차라리 유족대표가 공식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어떻겠는가?”를 타진하였다.

그런데 가장 큰 우려가 있었다. 헤이그특사기념시업회를 발족시키는데 ‘사단법인 보재이상설기념사업회’의 현재 회장이 현직을 감추면서 나서는 것은, 그들 사업의 과거 행동으로 볼 때 ‘사단법인 일성이준열사기념사업회’를 흔들어 파괴하려는 목적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이다. 아무리 ‘사단법인 일성이준열사기념사업회’를 한때 극우들이 장악하여 정상적인 운영을 못 해 왔어도 이를 파괴하는 것은 안 되겠기 때문이다. ‘사단법인 일성이준열사기념사업회’는 빠른 정상화가 되어야 하겠는데 지금 그것이 안 되고 있다.

4. 맺음말 ; 유전자 감식을 권하는 사회

이준 열사의 자손임을 주장하는 가짜들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어느 법률가는, 이준 열사의 직계손이라고 주장하는 이〇〇의 유전자 감식을 하라는 것이다. “단재 신채호(申采浩, 1880~1936)의 손자도 가짜 자손으로 고통을 받았다”라고 말한다.

필자는 1983년경애 단재의 외아들 신수범(申秀凡, 1921~1991) 씨를 당시의 여의도관광호텔 2층에 있던 광복회 사무실에서 만난 적이 있다. 신수범씨의 혼인 관계는 좀 복잡한 면이 있으나, 현재 단재 신채호의 친손자이자 심수범씨의 아들 건은 확실하게 규명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법원에서 유전자 감식까지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조근송 유족대표는 이준 열사의 묘를 발굴해서는 안 되기에 유전자 검사를 주장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분명한 문서적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준 열사 자손의 유전자 감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북에 생존한 증손자와 고손자와의 유전자 감식을 제안하자고 했지, 수유동 유택(幽宅)에 이준 열사의 성체가 들어 계신다는 점을 알면서도 생각지 못했다.

묘소를 발굴하여 유전자를 감식하는 것은 최후의 수단이다. 우리 욕에 “제 할애비 묘라며 굴총할 놈”이란 욕이 있다. 굴총(掘塚)이란 남위 묘를 파헤치는 행위를 말한다. 가짜 자손을 규명하기 위하여 그렇게 해야 할 판이다.

5. 부기(付記) ; 윤석열 정부에 보내는 호소문(2)

나는 대한민국의 대통령님과 법무부장관님, 외교부 장관님, 보훈부장관님, 검찰총장님에게 다시금 정중하게 호소합니다.

지난주에 여기에 공개 호소문을 쓰고, 그 내용을 국민신문고를 통하여 국가보훈부를 포함한 아홉 곳의 정부 기관에 보냈습니다. 두 곳만 제외하고 법무부와 충청남도를 비롯한 여섯 곳의 정부 기관은 무책임하게도 국가보훈부로 이송하였습니다.

특히 충청남도와 서울시는 이준 열사의 가짜 자손이 ‘사단법인 이상설기념사업회’와 협력하여 사단법인을 만드는 지역으로 판단됩니다. 모두 ‘국민의 힘’이 광역지자체 장을 하는 지역입니다.

다시금 호소합니다. 이준 열사의 가짜 자손들이 출몰하는 것은 역사와 사회를 기만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나라에 보훈 정의를 세워주십시오.

아울러 ‘사단법인 헤이그특사기념사업회’를 발기인회와 이〇〇에 말합니다. “뒷말 말고, 나를 고소하려면 고소하세요. 귀측의 추태를 명확히 밝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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