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이준 열사의 자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헤이그특사기념사업회’ 발기인 이충열이 말고 여럿이 있다. 그들 일부는 족보를 만드는 기회를 타서 종친회를 접촉하여 족보에 올리고 버젓이 이준 열사의 자손 행세를 하려고 기념사업회를 드나든 사람이 있으며, 2007년 순국 백주년에는 <조선일보>에 자신이 이준 열사의 자손이라 주장하며 기사화하게 한 사람도 있다.

지난 20여 년간 이준 열사의 자손이라 주장해 온 몇 사람을 살펴보자. 그 사람들은 대체로 본인들이 나서서 주장한 것이고, 그러한 사실은 언론과 인터넷에 노출되어 있어, 실명 공개를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1. 이요한

조선일보, 2007년 7월 30일 자 기사. [사진 제공 – 이양재]
조선일보, 2007년 7월 30일 자 기사. [사진 제공 – 이양재]

이요한은 2007년 순국 백주년에 <조선일보>와 접촉하여 자신이 이준 열사의 현손(玄孫)이라고 주장하여 2007년 7월 2일 자 조선일보 A25면에 실린 장본인이다. 그러나 7월 30일 자 <조선일보>에서는 오보(誤報)에 관한 정정 기사를 실어야 했다. 이요한의 부친은 1960년대 한때 이준열사기념사업회를 드나들던 사람이다.

2. 이두봉 지검장

조선일보, 2020년 11월 7일 자 기사. [사진 제공 – 이양재]
조선일보, 2020년 11월 7일 자 기사. [사진 제공 – 이양재]

2020년 11월 7일 자 인터넷 <조선일보>에는 느닺없이 대전지검장에 재직 중인 이두봉 지검장이 이준 열사 후손이라고 기사화되었다. 왜 뜬금없이 이런 가시가 나왔을까? 이두봉 검사(현재 변호사)가 이준 열사의 직계 후손인지 외손인지를 주목하여 검토해 볼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그는 실향민이 많이 살았던 강원도 강릉 출신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몇 가지만 확인하면 금방 답이 나온다. 제적등본과 주변 친인척을 조사하면 된다. 그러나 요즘은 제삼자가 특정 인물의 제적등본을 뗀다든가, 주변 조사를 합법적으로 할 수가 없다. 오직 본인이 자료를 제공하기를 기다려야 한다. 본인의 주장만으로는 시빗거리를 만들 뿐이다.

3. 이충열 변호사

‘(사)헤이그특사기념사업회’ 홈페이지(http://hague.or.kr/)에서 발기인 명단 일부. [사진 제공 – 이양재]
‘(사)헤이그특사기념사업회’ 홈페이지(http://hague.or.kr/)에서 발기인 명단 일부. [사진 제공 – 이양재]

2022년 7월 14일 추모제에 이충열은 자신이 이준 열사의 증손자라고 주장하여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그의 부친 이정모(李正模, 1921.03.15.~?)는 1982년 판 『전주이씨완풍대군파세보』(발행인 이주경)에 자신이 이준 열사의 외아들 이종승(李鏞, 1884~1954)의 셋째 아들 이호(李浩)라고 수단(收單)하였다.

이정모는 1960년대부터 이준 열사의 손자라고 말도 안되는 주장해 온 사람인데 1981년에 완풍대군파 종친회를 구워삶아 1982년 판 『전주이씨완풍대군파세보』를 편찬할 때 본인을 이준 열사의 외아들 이용 장군의 삼자(三子)로 수단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사)일성이준열사기념사업회' 일성사상연구소(소장 이선준)와 이준 열사의 유족들은 이정모가 이준 열사의 자손으로 주장하던 1960년대부터 그를 이준 열사의 후손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이준 열사의 외아들 이용(이종승)은 1910년 가을에 경성을 떠나 블라디보스톡으로 간 이후, 1930년 연길 국자감가에서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될 때까지 20년 이상을 한번도 조선에 들어온 사실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이충열은 ‘헤이그특사기념사업회’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자신이 ‘이준 열사 유족(직계손)’임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행사할 목적으로 타인의 자격을 모용하는 자격모용에 해당”하는 것이다.

4. 이낙연 전 총리

2021년 5월에 출간된 『이낙연의 약속: 내 삶을 지켜주는 나라』에서 이낙연 전 총리가 문형렬 작가와 나눈 인터뷰 중에 “이준 열사께서 저희 조상이라는 것은 제가 성인이 된 뒤 알았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그 울분을 죽음으로 표현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결연하고 고통스러웠을지, 그 뜻을 늘 속에 품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낙연 전 총리는 전주이씨 완풍대군파 후손이기는 하지만 이준 열사의 직계는 아니다. 수 백년전에 갈라져 나간 이낙연 전 총리의 이런 홍보를 좋게 말한다면 “우리나라의 가문 의식에서는 이러한 경우 직계가 아니더라도 같은 종친이라면 모두 ‘이준 할아버지’라고 부른다”라고 말하는 정도가 될 것이다.

물론 문형렬 작가의 이러한 식의 인터뷰는 사실을 과대 포장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당시에 이준 열사의 가짜 자손에 늘 민감해 있던 외손들은 침묵 속에 지켜보았지만, 오히려 외손과 안면을 트고 있던 지인 민 모 씨가 과잉 반응을 하여 인터넷상에서 소동을 일으켰다.

5. 김경 목사가 증언하는 이순(李珣)

필자는 10년 전(2013년)에 필자의 페이스북에 ‘이준 열사의 자손 이야기’를 4편이나 연이어 쓴 적이 있다. 북청 출신의 김경 목사는 『한국기독교 건국공로자열전』에서 이순을 이준 열사의 종손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순(李珣)이 이준 열사의 종손이라면 이렬(李洌, 1905~?)의 아들 이한(李翰, 1935년생)과 같은 사람이라는 주장인데, 이순의 용모는 머리숱이 적고 이준 열사와 흡사하다. 여러 정황을 보았을 때 이순은 이준의 직계 종손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생전에 그것을 확실하게 증명할 수 없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유전자 감식이지만, 그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북한의 초대 도시경영상을 지냈기에 나서지 않겠다”라며 성급히 드러내는 것을 거부하였다. 이북에 있는 동생을 염려한 것일까? 이북에 있는 이준 열사의 고손자들을 만나보면 전쟁 시기에 종손 이한이 행방불명 되었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일단 여기에 비망록(備忘錄)으로서의 기록을 남긴다. 그리고 언제든 나는 이순의 아들 이 모씨를 만나 내가 아는 사실을 재확인해보고 싶다. 지금은 아래에 2013년에 내가 페북애 쓴 글 네 편중에 두 편을 갈무리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2013년 8월 18일 자 나의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에서. [사진 제공 – 이양재]
『2013년 8월 18일 자 나의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에서. [사진 제공 – 이양재]
『2013년 8월 13일 자 나의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에서. [사진 제공 – 이양재]
『2013년 8월 13일 자 나의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에서. [사진 제공 – 이양재]


6. 이남에는 이준 열사의 외손만 있다

가장 확실한 사실은 “현재 한국에는 이준 열사의 외손만이 있다”라는 것이다. 장녀 이송선(1885~1908)과 차녀 이종숙(1899~1983)의 자손들이다. 그런데 외손들마저 대부분은 젊은 시절에 자신이 이준 열사의 외손임을 감추고 살았다. 순국선열이나 독립운동가의 자손임이 밝혀지는 순간, 친일파 자손들이 주도하는 세상에서는 왕따 당하고 불이익에 처하기 때문이다.

현재 이준 열사의 유족대표로 활동하는 ‘조근송(趙根松)’은 이준 열사의 맏딸인 ‘이송선’의 손자이다. 그가 이준 열사의 외증손자임을 비로소 드러냈을 때는 2007년 7월 14일 순국 백주년 추모제 때이다. 조근송 이전의 유족대표로는이준 열사의 차녀 이종숙의 외동딸 유성천(1927~2011)이었다.

실제로 이용 장군의 직계 증손자가 남한에 있다면, 김경 목사가 말하는 이순처럼 북에 있는 가족의 불이익을 염려하여 당연히 자신을 감추고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북에서는 전쟁 통에 죽은 것으로 믿었을 것이다.

이런 형편이니 한국에서 이준 열사의 직계 자손이라고 나타나는 사람들은 “북의 이준 열사 직계 후손들에게 미칠 불이익을 생각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지금 이준 열사의 직계 자손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의 감추어진 본질이다.” 공식적으로 현재 한국에는 이준 열사의 외손 10여 명 이상이 생존해 있다.

7. 맺음말

아마도 나는 이준 열사의 후손들과 인연이 있는 것 같다. 1955년생인 내가 이준 열사의 차녀 이종숙 여사를 1982년에 그의 사직동 자택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리고 외손녀 유성천 여사도 2006년에 그의 자택(삼선동?)에서 만난 적이 있다. 2016년부터는 외증손자 조근송과 교유를 하고 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는 지난 40년 넘도록 이준 열사의 유족과 단선(單線)으로만 접촉해 온 것이다.

그들이 공개적으로 나서는 것을 꺼리는 것은 수구가 기념사업회를 장악하여 온 것과 관련이 있는가? 상황이 이런데 왜 가짜들은 계보를 조작하며 준동하는가? 무슨 이익을 얻으려고 대를 이어서 이준 열사의 직계라고 참칭하는가? 매우 심각한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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