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와 한반도의 운명‘아시아의 하와이’라 불릴만큼 아름다운 섬, 오키나와에서 참혹한 전쟁을 떠올린다는 건 어색한 일이다. 게다가 그 전쟁이 부모가 아이를, 남편이 아내를 죽이는 강요된 집단자결, 집단학살이 이뤄진 아비규환의 지옥이었으니 더한 일이다.그런데 오키나와에선 유적지를 통해서만 전쟁을 떠올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오키나와를 뒤덮은 미군기지는 여
오키나와와 제주는 분명 닮았다.두 곳 모두 따뜻한 날씨, 에머랄드 빛과 짙푸른 색 바다를 모두 가진 동북아시아의 아름다운 섬이다. 닮은 점은 이것만이 아니다. 일본 본토 방어 위해 요새화된 제주와 오키나와오키나와와 제주는 모두 일본 본토 방어를 위해 요새화된 역사를 갖고 있다.1945년 패색이 짙어가던 일제는 미군의 일본 본토 상륙 경로를 7가지로 설정하고
가혹한 운명.오키나와 사람들의 역사를 달리 뭐라 부를 수 있을까.사령관 우지시마 미츠루 중장의 항복 선언 없는 할복 자살 탓에 언제 끝날 지 모를 오키나와 전투(전쟁)도 결국 끝이 났다. 그러나 오키나와에 평화는 오지 않았다. 1952년 4월 28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되면서 일본 본토는 독립했지만 일본 정부가 오키나와를 미군에 넘기면서 미군 강점이
오키나와 남쪽의 이토만시에 자리한 마부니는 태평양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언덕이다. 일몰 시간에는 언덕을 비추는 햇살과 바다 색이 어우러져 곱디 고운 빛을 낸다.마부니 언덕 60만평의 너른 땅에 조성된 평화기념공원의 경치가 몰고 오는 평화로움이 더욱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태평양 전쟁 최대 규모의 전투이며 일본에서 유일하게 주민을 총동원한 지상전의
‘아시아의 하와이’로 불릴 만큼 오키나와는 아름다운 해변과 따뜻한 기후를 뽐냈다. 오키나와에 발을 디딘 1월 25일에도 오키나와는 봄날 같은 햇살과 바람으로 일행을 맞았다. (사)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에서 기획한 이번 오키나와 평화기행은 인권ㆍ평화 운동가이자 동아시아 연구학자인 서승 일본 리츠메이칸대 석좌교수가 직접 안내하고 동행하는 일정. 때문에 서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