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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 얽힌 운명의 실타래를 보다평화가 마음에 차오르는 길- 오키나와 여행기 ⑤
오키나와=오삼언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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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4.09  17: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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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노코 기지는 한반도의 운명과 얽혀있는 곳이다. [사진 - 통일뉴스 오삼언 통신원]

오키나와와 한반도의 운명

‘아시아의 하와이’라 불릴만큼 아름다운 섬, 오키나와에서 참혹한 전쟁을 떠올린다는 건 어색한 일이다. 게다가 그 전쟁이 부모가 아이를, 남편이 아내를 죽이는 강요된 집단자결, 집단학살이 이뤄진 아비규환의 지옥이었으니 더한 일이다.

그런데 오키나와에선 유적지를 통해서만 전쟁을 떠올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오키나와를 뒤덮은 미군기지는 여전히 전쟁이 현재진행형에 놓여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일본에 주둔한 미군기지의 75%, 오키나와 전체 면적의 20%를 차지하는 미군기지가 아니었다면 오키나와는 어쩌면 다른 얘기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오키나와는 여전히 전쟁을 말하고 있었다. 1945년과 2014년 현재를 교차하며 ‘아직 오지 않은 평화’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오키나와는 또 한반도의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한반도와 얽힌 운명을 보여주기도 했다.

1945년 오키나와 전투(전쟁)의 실상을 따라가니 제주4.3과 한국전쟁이 보였다. 가족이 가족을 죽이는 지옥과 다를 바 없었던 비극이 떠오른 것이다. 또 미.일 동맹, 한.미 동맹의 일환으로 각각 미군 기지가 들어선 오키나와와 우리나라의 닮은 모습도 겹쳤다.

운명이 본래 얽히는 것이라면 오키나와의 평화와 한반도의 평화는 같은 시계로 움직이게 되는 걸까.

슬프고 아름다운 헤노코 연안

“여기는 뭔가 슬프다….”
1945년 태평양전쟁에서 미군의 일본 본토 상륙을 막기 위해 희생양이 됐던 오키나와가 지금도 미군과 일본 본토를 위해 군사기지화가 돼있는 슬픈 운명을 떠올린 것일까. 버스 창밖을 물끄러미 내다보던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이 창밖에 시선을 꽂고 나즈막이 혼잣말을 했다.

헤노코 기지는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재균형 전략에 필수적인 지역으로 후텐마 기지의 이전 대상지다.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 대가로 후텐마 기지 이전을 제시하면서 새삼 주목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재무장의 길로 나서려는 일본과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헤노코 기지. 헤노코 기지도 이렇듯 한반도의 운명과 연결돼있다는 생각이 들 무렵, 헤노코 해변에 도착했다.

일행은 탄성을 질렀다. 헤노코 해변은 여느 오키나와 해변처럼 아름다웠다. 모래사장이 펼쳐진 해변은 눈부셨다. 천연기념물인 듀공, 바다거북이 살고 있다니 더욱 각별하기도 하다. 듀공은 초식만 하는 유일한 해양 포유류로 새끼를 안고 젖을 먹이는 모습이 사람을 닮아 옛 뱃사람들은 인어로 착각하기도 했단다.

   
▲ 헤노코 기지 농성장에는 ‘8년 그리고 3571일’ 싸워온 날짜가 표시돼 있었다. [사진 - 통일뉴스 오삼언 통신원]

   
▲ 농성장 안에 걸린 퀼트 형식의 그림을 헤노코 주민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다시 묶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오삼언 통신원]

바닷가 해변에 세운 천막농성장은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헤노코 신기지 건설 과정에서 사라질 지 모를 듀공을 그린 그림도 곳곳에 걸려있었다.

‘8년 그리고 3571일’. 농성장 입구에는 헤노코 기지 이전과 폐쇄를 요구하며 평화운동가들이 싸워온 날짜수가 표시돼있다. 1997년 1월 27일 연좌농성을 시작으로 ‘생명을 지키는 모임’을 결성해 미군기지 반대 투쟁을 해왔다. 농성한 지는 3571일째. 18년간 저항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바닷가가 바로 내려다보이는 농성장 앞에 앉아 일행은 헤노코 주민인 다나카 씨에게서 기지 문제와 관련해 설명을 들었다. ‘주민들은 헤노코 바다 매립 공사를 막기 위해 어선을 동원해 1년 넘게 해상 투쟁을 벌였다’, ‘싸워온 지 18년이 되고 있지만 일본 정부가 바다에 손을 못 대게 만들고 있다’는 얘기에 일행은 박수를 치기도 했다.

다나카 씨는 일본 정부와 미군 당국이 후텐마 기지의 위험성을 구실로 헤노코 기지 이전을 주장하고 있지만 1966년에 이미 미국이 헤노코 기지 건설을 계획했다고 덧붙였다.

   
▲ 바닷가가 보이는 농성장 앞에서 일행은 헤노코 기지와 관련한 설명을 들었다. [사진 - 통일뉴스 오삼언 통신원]

   
▲ 다나카 씨는 미군기지 반대 활동을 10년 해온 신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사진 - 통일뉴스 오삼언 통신원]

산호초와 듀공을 지키는 헤노코 주민의 18년 투쟁

“1950년 이후에 오키나와에 새롭게 만들어진 미군기지는 없습니다. 조금씩 미군기지를 없애나가야죠. 일본 정부가 포기하지 않고 헤노코 신기지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우리는 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1997년부터 (투쟁을)시작했는데 저는 2004년부터 활동해서 아직 신참입니다.” 소박한 웃음을 지으며 담담히 말하는 다나카 씨에게 일행이 질문을 했다. 통역은 서승 교수와 일행 중 한명이 도맡았다.

“힘들지 않으신가요?”
“특별히 힘들지 않습니다. 10년이든, 18년이든 힘들다고 하면 힘드니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미군기지 반대 투쟁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뭔가요?”
“앞바다 산호초에 미군기지가 들어서는 게 싫었습니다.”

다른 어떤 말이 필요할까. 산호초와 듀공을 아끼고 사랑하는 헤노코 주민, 다나카 씨의 답은 간결했고 표정은 밝았다. 헤노코 앞바다의 산호초와 듀공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에 웃고 있는 다나카 씨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봤다.

런닝셔츠에 적은 ‘미군기지 반대’

   
▲ 미군기지 철조망에 ‘미군기지 반대’ 등 각종 천 구호가 걸려있다. [사진 - 통일뉴스 오삼언 통신원]

   
▲ 헤노코 기지 앞에서 (사)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평화기행 일행. [사진 - 통일뉴스 오삼언 통신원]

일행은 농성장에서 내려와 백사장으로 향했다. 백사장 가운데를 가로질러 쳐진 미군 철조망까지는 걸어서 몇십분 걸리지 않았다.

‘후텐마 기지 이전 반대’ 등 각종 구호들이 철조망에 걸린 풍경은 가데나 미군기지 전망대처럼 생경했다. 미군기지 철조망에 나붙은 구호들을 한국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미처 천을 준비해오지 못해 아쉬워하던 일행 중 한명이 아이디어를 냈다. 누군가가 런닝셔츠를 벗어 한마디씩 적자는 것. 런닝셔츠에 한마디씩 적고 기념사진을 찍느라 일행은 어느새 아이들처럼 웃고 있었다.

‘평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만남은 오랜 벗처럼

   
▲ 츄라우미 수족관 관람에 앞서 진행된 돌고래 쇼. [사진 - 통일뉴스 오삼언 통신원]
 
   
▲ 츄라우미 수족관은 아름다운 장관이었다. [사진 - 통일뉴스 오삼언 통신원]

3박 4일 평화기행 일정은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일행은 세계 두 번째 규모를 자랑한다는 츄라우미 수족관을 찾았다. 당연히 멸종위기종인 ‘듀공’은 볼 수 없었지만 츄라우미 수족관은 장관이었다.

이어 일행은 전날 둘러본 치비치리(찌비찌리) 가마 앞 조각상을 만든 긴조 미노루 씨를 만났다. 오키나와 출신의 긴조 씨는 2005년 미군이 여중생을 윤간한 사건을 계기로 오키나와 현대사의 아픔과 투쟁사를 작품에 담고 있다. 10년간 작품활동을 한 긴조 씨는 평화예술가이자 오키나와 독립을 주장하는 민중활동가다.

   
▲ ‘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긴조 씨의 모습. [사진 - 통일뉴스 오삼언 통신원]

   
▲ 긴조 씨가 조각상들을 일행에게 설명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오삼언 통신원]
 
긴조 씨는 집 앞 마당에 세워져있는 조각상들을 일행에게 보여주며 하나하나 설명을 해줬다. 작품 중에는 오키나와에 끌려와 강제노역에 시달리던 조선인이 일본군에 무참히 처형당한 사건을 그린 ‘한’이 있었다.

“조선 청년인의 몸은 건장하게 표현하고 일본군은 인격을 상실한 채 겁을 먹은 얼굴로 묘사했다.” 긴조 씨의 설명처럼 ‘한’은 선명한 대비를 이뤘다.

서승 교수의 지인인 긴조 씨를 만난 채현국 이사장과 임재경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부회장은 오랜 벗을 만난 것처럼 반가워했다. 곧이어 치바나 쇼이치 씨가 찾아오면서 분위기는 더 화기애애해졌다.

치바나 쇼이치 씨는 1987년 전국체육대회에서 전쟁의 표상인 히노마루(일장기)를 끌어내려 불태운 사건의 주인공. 당시 개막행사에 참가한 고교 악대는 기미가요(국가) 연주를 거부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지명수배됐던 치바나 쇼이치 씨는 추후에 요미탄 마을 의원으로 당선, 3선 연임하기도 했다.

팔순에 가까운 선생님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일행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졌다. 한국어와 일본어, 때론 영어가 뒤섞인 선생님들의 대화는 긴조 씨 부부가 내놓은 20년 된 뱀술과 함께 꽃을 피웠다. 일본의 평화운동가로 꼽히는 긴조 씨와 치바나 씨는 20,30대 일행들에게도 따뜻한 눈짓과 웃음을 보이며 힘주어 악수했다.

긴조 씨 집을 떠나기 위해 버스에 오른 일행은 누구랄 것 없이 창밖으로 모두 손을 흔들었다. “글에서 봤던 일본 평화운동가를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네.”, “말이 안통해도 이렇게 통하는 게 있네요.” 긴조씨 집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제야 일행들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  임재경 선생과 긴조 씨가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포옹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오삼언 통신원]

   
▲ 왼쪽부터 서승 교수와 치바니 씨, 채현국 선생. [사진 - 통일뉴스 오삼언 통신원]

다음날, 류쿠왕국의 문화와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슈리성 방문을 끝으로 평화기행 일정은 마무리됐다. 여행길 동행에서 느낄 수 있는 남다른 친밀감에 3박 4일간 스스럼없어진 일행과도, 쉴틈없이 일행을 위해 강연과 해설을 해준 서승 교수와도 작별 인사를 해야 한다.

   
▲ 슈리성은 오키나와 고유 문화를 보여준다. [사진 - 통일뉴스 오삼언 통신원]

   
▲ 서승 교수가 슈리성에 대해 해설해주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오삼언 통신원]

   
▲ 류쿠왕국의 면모를 보여주는 슈리성. [사진 - 통일뉴스 오삼언 통신원]

실타래가 만든 희망, 그리고 연대

“오키나와 평화기행에서 어떤 걸 얻고 가십니까?” 일행 인솔자가 물으며 마지막 인사를 한다.

흔히 인연을 표현할 때 실타래가 이어져있는 모습을 그리곤 한다. 오키나와와 우리나라, 헤노코와 제주가 인연의 실로 연결돼있는 것 같은 상상이 펼쳐진다.

역사도 현재도 닮은 모습을 보여준 제주와 오키나와가 연결된 실타래는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반대 투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해 하던 다나카 씨와 평화운동 활동가들에게 이어지고 한반도 운명과 기묘하게 얽혀있는 헤노코 신기지 건설 반대 싸움을 벌이고 있는 주민들을 거쳐 평화기행 일행에까지 이어졌다.

희망의 실타래다.
“희망은 미래가 아닌 현재에 있다.” 채현국 선생의 말처럼 오키나와는 현재에 있는 희망을 보여줬다. “용기만 잃지 않으면 보이는 현재의 희망”을 말이다. 동아시아의 평화를 바라는 이들이 연결된 실타래는 ‘연대’라는 또 다른 이름이 붙여질 것이다.

“겨레하나, 용하고 고맙습니다.”
서승 교수를 비롯한 선생님들이 인사를 하고 돌아서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니 가슴이 뜨뜻해졌다. 마음에 평화로움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 서승 교수와 채현국 선생, 임재경 선생 등이 작별인사를 하고 걸어가는 뒷모습. [사진 - 통일뉴스 오삼언 통신원]

   
▲ (사)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의 오키나와 평화기행이 마무리됐다. [사진 - 통일뉴스 오삼언 통신원]

<연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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