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이른바 ‘최고존엄 모독사건’을 ‘비상사건화’ 하면서 연일 대남 초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2일 인민군 최고사령부 대변인 성명에 이어 3일 국방위원회 내외신 기자회견, 4일 15만 명이 운집한 가운데 김일성광장에서 ‘최고존엄 모독 역적패당 규탄 평양시 군민대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노동신문>을 비롯한 북한 매체들은 일제히 정론, 논평 등을 통해 여론공세에 나서고 있고, 4일 조평통 대변인 담화는 물론 외무성 대변인 담화까지 나왔다.

○ 북한이 총공세 벌이는 3가지 직접적 이유

이번 북측의 대남공세의 직접적 원인은 이른바 ‘최고존엄 모독사건’으로 <헤럴드경제>가 지난달 28일 한 장의 사진을 보도하면서 불거졌다. 이 사진에는 인천의 한 군부대 내무반 문에 김정일-김정은 부자 사진과 비난구호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북측은 이에 대해 “최근 인천시에 주둔하고 있는 괴뢰군부의 내무반에서만도 벽채와 문짝들에 감히 백두산 절세위인들의 초상화를 제멋대로 걸어놓고 그 아래 위에 차마 입에 담지 못할 글까지 써붙이는 천하무도한 망탕짓을 벌여놓고 있다”고 비난했다.

북측은 지난해에도 김 부자 표적지 사건과 중부전선 모 부대의 구호와 현수막 사건 등이 발생한 사실을 적시했다. 이른바 ‘최고존엄 모독’이 반복되고 있는데 대해 강력 항의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북한 국방위원회는 3일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6월 중부전선에서 “최고존엄을 헐뜯는 구호와 현수막을 설치하는 놀음”이 발생해 결국 “괴뢰통일부를 내세워서 자기측 전방지역 개별적 지휘관이 장병 정신교육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설치한 것이라고 변명하면서 당국에서 해당부대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사죄편지를 우리 국방위원회 앞으로 보내온 적이 있다”고 폭로했다.

북측의 ‘통일부 사죄편지’ 폭로에 대해 통일부는 4일 북 국방위원회 앞으로 전통문을 보낸 사실은 인정했지만 “사죄편지를 보낸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북한이 지난해 6월 1일 남북간 정상회담을 위한 비밀접촉을 ‘돈봉투’까지 거론하며 폭로한 배경에도 김부자 표적지 사건과 중부전선 구호와 현수막 사건이 자리하고 있었고, 정부는 이를 부인했지만 북한은 ‘녹음기록’을 공개할 수 있다고 위협한 바 있다.

북측의 대남 공세에 대해 김형석 통일부 대변인은 5일 정례브리핑에서 “비방부터 북한이 즉각적으로 중단을 해야 하는 것이 기본 도리이다. 기본 순서”라며 “우리 정부가 소위 북한 당국과의 포괄적인 대화제의를 했다. 그리고 최근에 와서는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인도적 사안에 대해 대화를 제의했다”면서 “북한이 보다 적극적으로 호응해 나오는 것이 보다 앞선 수순”이라고 대응했다.

‘최고존엄 모독사건’ 외에도 이번 북측의 강경 공세에는 남측의 조문 불허와 키리졸브.독수리 훈련 등 그간 쌓인 불만이 자리잡고 있다.

북한은 고 김정일 위원장의 추모대회가 끝난 바로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 30일 국방위원회 성명을 통해 “리명박역적패당과는 영원히 상종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는가 하면 지난 2월 2일 국방위 정책국은 공개질문장에서 첫 번째 질문으로 “우리 민족의 대국상앞에 저지른 대역죄를 뼈저리게 통감하고 사죄할 결심이 되여있는가”라고 따져묻는 등 조문문제를 가장 심각한 현안으로 제기한 바 있다.

북 국방위원회는 3일 기자회견에서도 “대국상을 당할 때에는 조상하러 나가겠다는 민간인들을 차단시키고 그래도 3국으로 돌아서 와서 조의를 표시하고 간 인사들에게 감옥으로 끌고가고 정말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못된 짓말 골라하는 역적패당”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실제로 제3국을 통해 방북해 조문하고 돌아온 코리아연대 조문대표 황혜로 씨에 대해 체포영장이 청구된 적은 있지만 황 씨가 남측으로 돌아오지 않고 제 3국에 머물고 있어 조문 문제로 감옥에 간 인사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하나의 직접적 이유는 지난달 27일부터 시작된 한미 합동군사연습인 키리졸브.독수리연습이다.

2일 최고사령부 대변인 성명은 “우리의 가슴아픈 애도기간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감행되는 리명박역적패당과 날강도 미제의 화약내풍기는 전쟁연습으로 우리 군대와 인민의 분노와 보복일념은 하늘끝에 닿고있다”로 시작하고 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한미합동군사연습에 대한 북측의 경고와 거부감은 익히 알려져 있으며, 특히 올해는 쌍용훈련까지 한미 양국 해병대가 참가한 가운데 열릴 예정이어서 북측은 더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틈

이처럼 ‘최고존엄 모독사건’과 조문문제, 한미군사연습이 북한이 인내하기 힘든 직접적 이유라면 보다 근원적 배경에는 남북관계 전반과 북미관계가 놓여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이다.

먼저 지난 4년간의 남북관계를 볼 때 북측으로서는 이명박 정부와의 관계개선에 더 이상의 미련을 가질 수 없다는 평가를 내렸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북측이 지난해 연초부터 대화공세를 펴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지만 남측이 호응하지 않았고, 류우익 통일부장관이 ‘유연성’을 내세우며 남북관계 개선 제스쳐를 보였지만 조문 차단, 민간교류 차단 등에서 ‘5.24조치’의 벽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것이다.

북한이 실명비판을 자제해오던 류우익 장관에 대해 본격 비판에 나섰고, 통일부가 제안한 고구려고분 병충해 방제를 위한 실무협의와 이산가족 상봉을 외면한 것도 이같은 북측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북한은 이명박 정부와 류우익 장관의 ‘유연성’에 기대를 접었고, 국방위원회가 ‘영원히 상종하지 않겠다’고 한 마당에 누가 남측과 대화에 나설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지난 ‘2.16 광명성절’ 행사를 다녀온 한 외국 국적자는 “북 인민들은 이명박 정부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고, 이명박 정부와 관계개선에 기대를 거느니 보다 김정은 최고사령관 중심으로 똘똘 뭉치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북측 대남 총공세의 또 하나의 배경으로는 최근 공동발표문을 내놓은 북미관계가 자리하고 있다는데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공감하고 있다.

북미 양국은 2월 23~24일 베이징에서 제3차 고위급회담을 갖고 29일 평양과 워싱턴에서 ‘북한이 영변 우라늄농축시설(UEP) 가동중단 등 사전조치를 취하고 미국이 24만톤의 영양지원을 하는’ 내용이 포함된 합의결과를 동시에 발표했다.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가 당분간 안정적으로 관리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토대로 남측에 대해 공세를 취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며,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 정책을 구사해 남측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는 것이다. 북측의 대남 공세가 북미간 합의문 발표 직후에 나온 점도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북 외무성도 4일 대변인 담화를 통해 “조선반도에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처럼 발악해온 이명박 역적패당은 최근 조미(북미)회담이 진전될 기미가 나타나자 그를 역전시켜 저들의 잔명을 유지해보려고 최후발악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공세를 폈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북미 간의 협상 내용 중 평화협정에 대한 강조 부분도 있기 때문에 미국이 한반도 긴장상황에 대해서 어떤 전략을 제시하는가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라며 “북미 양국이 어차피 상황 관리의 필요성에 공감하기 때문에 대화는 추진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북 국방위는 기자회견에서 대미관계에 대해 “대화와 전쟁은 양립될 수 없다”며 “앞에서는 대화를 제창하고 뒤에서는 대화 상대방에 대한 군사적 전복을 노리는 이중적 잣대는 미국의 본성”이라고 규정하고 “우리 군대는 언제 한번 미국과의 그 어떤 대화나 협상에 기대를 가져본 적이 없으며 우리를 군사적으로 압살하려는 원수들의 오만한 행위에 초강경으로 대답하는 것은 우리 혁명무력의 고유한 본성”이라고 압박했다.

어쨌든 북한이 최근 G2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과의 동맹관계를 견고히 한데 이어 미국과의 관계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마당에 이명박 정부에게 굳이 손을 내밀 필요가 없는 국면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김정은 체제 강화와 무력충돌 가능성은?

북의 대남 공세가 궁극적으로 겨냥하고 있는 것은 김정은 체제의 강화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북한이 지금 내부적으로 권력승계를 위해 결속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남쪽과 각을 세우고 통미봉남 정책을 펴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난 4일 15만이 운집한 가운데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최고존엄 모독 역적패당 규탄 평양시 군민대회’에서 문경덕 평양시당 책임비서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은 동지를 정치 사상적으로, 목숨으로 사수하는 수령결사옹위 전위투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북한은 고 김일성 주석의 탄생 100주년인 4.15태양절을 맞아 대규모 경축행사와 당대표자회 개최 등을 앞두고 있으며, 내부 체제결속을 최고조로 끌어올릴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의 관건은 북한의 대남 총공세가 과연 물리적 충돌을 불러일으킬지의 여부다.

북은 총공세를 펴면서 “물리적타격을 기본으로 한 우리 식 성전”에 이미 “진입”했음을 경고했고, “우리 인민군대는 이번 특대형 범죄의 주모자들을 인천이든 서울이든 제주도이든 대양 건너 미국 땅이든 끝까지 따라 가서라도 땅속을 뒤져서라도 모조리 찾아내어 단호히 처단해버리고 추악한 미친개무리의 소굴을 최후멸망의 무덤으로 만들고야 말 것”이라고 극한적 표현을 사용했다.

특히 국방위는 기자회견에서 “군사적인 행동에 대해서 이 자리에서 말하여줄 수 없다”면서도 “우리가 단행하는 조치는 세계가 알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는 무자비하고도 강력한 특대조치들”이라며 “도발자들의 말로가 얼마나 비참한가를 세계가 이제 똑똑히 보게 될 것”이라고 섬뜩한 예고를 하기도 했다.

또한 “이런 격렬한 보복심리를 제지시킨다는 것은 사실상 우리로서도 불가능하다”며 “지금 우리 군인들은 누구라 없이 특대형 도발자들에게 보복의 불벼락을 들씌우라는 발사명령만을 순간순간 고대하고 있다”고 군부의 분위기를 전했다.

더구나 <노동신문>은 4일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판문점을 시찰했다고 보도했으며,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최근 전략로켓사령부 등 주요 군부대를 잇따라 시찰하고 있어 주목된다.

그러나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5일 “북한이 우리 정부하고 최고위층에 대해서 비방.중상하는 것을 계속 공식매체를 내보내고 있는데, 이러한 부분은 과거에도 굉장히 많이 자주 해오던 사례”라며 “우리 군 차원에서는 일체 이에 대해서 대응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했다.

김근식 교수는 “중국이 더 이상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물리적 충돌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본다”고 관측했다.

북측이 대남공세를 펴면서 극한 표현을 동원하고 물리적 타격을 예고한 적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적대감의 수위나 표현 강도가 어느 때보다 높다는 점에서 우려도 나오고 있다.

김연철 교수는 “남북관계 악화과정에서 겹쌓인 북의 불만이 터져나온 것이므로 긴장이 높아지면 우발적 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긴장의 고리를 차단하는 게 중요하다”고 신중한 대처를 주문했고, “핵안보정상회의가 전환점이 될 것이고 6자회담이 재개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