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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림성, 도문시 ‘대조선공업구역’ 승인 리용남 “조선의 인력 도문에 인입하려 한다”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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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09.16  11: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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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창춘시에서 열린 '제7회 중국길림.동북아투자무역박람회'(9.6-11) 연변부쓰 모습.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 연변조선족자치구에 속하는 도문(圖們, 투먼)시에 북한 근로자들이 일하는 ‘대조선공업구역’이 지난 8월말 승인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6-11일 중국 길림성 장춘시에서 열린 ‘제7회 중국길림.동북아투자무역박람회’에서 연변조선족자치주 ‘공작인원’으로 참여한 리용남(46세) 대외무역발전처장은 “도문시집중공업단지(개발구)가 지난 8월말에 길림성 정부로부터 대조선공업구역으로 승인받았다”고 확인했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대외무역을 총괄하고 있는 리용남 처장은 도문시 개발구 책임자의 말을 인용 “금후 대조선공업구역에서는 주요하게 대조선 수출업체에서 조선에 필요한 전기제품, 식품회사를 인입하는 동시에 조선의 인력을 도문에 인입하려 한다”며 “도문시 개발구는 길림성 나아가서는 중국의 제1의 대조선 개발구로서 조선의 인력을 인입하면 아주 큰 투자유치 효과를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간 북한 근로자들이 도문시 개발구에 설치될 북한공업구역에 출퇴근하는 형식으로 일하게 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하게 나돌았지만 도문시중공업단지가 ‘대조선공업구역’으로 지난 8월말 길림성 정부로부터 공식 승인받은 사실이 중국측 당국자를 통해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리 처장은 "조선 인력들의 출퇴근은 불가능하고 도문에 와서 일하고 숙식을 제공받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연길-훈춘 간 고속도로변에 설치된 길림성도문경제개발구 홍보 간판.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도문 톨게이트 모습.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대조선공업구역으로 승인된 도문경제개발구는 장춘-길림-훈춘 고속도로 도문 톨게이트 바로 옆에 위치해 있으며, 면적은 5.73㎦로 1992년 길림성의 비준을 받은 성급 경제개발구다. 

지난 6일 중국 장춘시의 한 호텔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리 처장은 북한과 중국 간의 경제협력에 대해 “이전에는 연변 지방정부에서 추진하던 것을 중앙정부에서 하고, 아마 동북아박람회가 끝나면 중앙정부에서 추진하던 것을 길림성 정부에다 권한을 주고 연변자치주와 훈춘과 같이 추진해나갈 것을 조직할 것”이라며 “차원이 중국 중앙정부와 조선 중앙정부 사이에서 추진하는 것으로 돼 추진력이 커졌다”고 전했다.

그 대표적 사례로 중국 정부가 아직 교통량이 많지 않은 장춘-길림-연길-훈춘 간 고속도로를 완공했고, 같은 구간의 고속철도를 2013년 완공 목표로 건설 중이라며 “그렇게 거금을 투자해서 하는 것은 라선항으로 뚫으려고 인프라를 조성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리 처장은 “지금 연변 상무국과 길림성 상무청에 등기한 이북에 투자한 업체는 23개 있고, 러시아에 투자 한 업체가 23개 있다”고 확인하고 “그러나 실은 100개도 더 된다. 많은 조선족들이 북에 가서 호텔하고 상점하고 술집하는 것도 허가를 안 받고 한다. 북한 허가만 받으면 된다”고 전했다.

북중경협의 성공사례로는 연변천지공업무역유한회사가 북한과 합영회사를 꾸려서 북한 철광을 수입해 중국에 철광 가공공장을 가동해 큰 기업으로 성장한 경우를 꼽았다.

리 처장은 연변지역에서 젊은이들이 대도시나 한국 등으로 떠났다며 “여기가 살기는 좋고 청정지역인데 자기 발전 기회가 없어서 못 돌아온다”고 안타까워했다. 또한 “항일전쟁 시기, 그 당시는 인구가 적었는데 전 연변지역에 12,000여명의 젊은이가 항일로 죽었다는데 그중 조선족이 11,000명이다. 대부분 우리 조선족이 항일했다”고 역사적 자부심을 강조하기도 했다.

다음은 리용남 연변조선족자치주상무국 대외무역발전처 처장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북중경협 “중국 중앙정부와 조선 중앙정부 사이에서 추진”

   
▲ 지난 6월 9일 라선특별시에서 열린 '라선경제무역지대 조중 공동개발 및 공동관리 대상착공식' 모습. [자료사진 - 통일뉴스]
□ 북중간의 경협이 오랫동안 말은 많았지만 진척이 없었다는 평가도 있다. 최근 김정일 위원장의 잇따른 중국 방문과 지난 6월초 황금평.라선지대 착공식으로 이전보다는 활기를 띠는 것 같은데 실상은 어떤가?

■ 지금까지는 연변 정부하고 훈춘시 정부에서 라선지역과의 협의를 했는데, 연변지역은 실력이 약한데, 길림성 정부에서 좀 도와준다고 했는데도 제대로 추진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 금년 6월 9일에 (중국) 상무부 장관과 아주국 아시아팀들이 와서 북한의 장성택 행정부장하고 연길에서 협의하고 라진에서 테이프도 끊고 그랬다. 그런 다음부터 차원이 중국 중앙정부와 조선 중앙정부 사이에서 추진하는 것으로 돼 추진력이 커졌다.

그러니까 중앙정부에서 1억 5천만 위엔(元)을 투자해서 원정리에서 라진항까지 도로를 보수한다. 1급도로로 하는데 금년 11월 전에 완공된다. 연변자치주에서도 10월말 전에 끝내라고 하는데, 중국정부에서 투자해서 하는 것이다.

6월 9일 당시에 상무부 장관 왔을 때 라선지역에 화학비료공장, 시멘트공장, 농산품가공공장 등 5개의 프로젝트들 지원하겠다고 조인했다.

총적으로는 이전에는 연변 지방정부에서 추진하던 것을 중앙정부에서 하고, 아마 동북아박람회가 끝나면 중앙정부에서 추진하던 것을 길림성 정부에다 권한을 주고 연변자치주와 훈춘과 같이 추진해나갈 것을 조직할 것이다.

중국 중앙정부에서도 길림성 정부에서도 여러 가지를 분석해보면 거기(라선)를 반드시 뚫어야 할 사항이다. 동북 3성에서 요녕성에 대련이나 몇 개의 항이 집중돼 있고 길림성이나 흑룡강성, 내몽고자치구는 항구가 없다. 그런데 자원매장량은 많다.

훈춘의 석탄을 라진항을 거쳐서 상해에 나르는 것을 2월부터 실행해 계속하고 있다. 내수물자를 해외 부두를 거쳐서 운반하는 것은 처음이고 이번에 테이프도 끊었다. 중국 세관에서 처음으로 이런 정책을 줬다.

동북3성 자원을 태평양을 거쳐서 상해나 연해지역에 수송하자면 출구는 조선 라진항 밖에 없다. 거리상 가장 빠른 경로가 라진이니까 유럽으로 나가더라도 라진이 최선지이다.

길림성 정부나 연변자치주 정부 분들이 아직 개방이나 추진력이 그래서 그렇지, 중앙정부 의도대로 하면 많이 추진했어야 한다. 지방정부에서는 아직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갈팡질팡하고 있다. 그게 문제다.

북중경협 “생활거점은 연길, 물류거점은 훈춘”

   
▲ 훈춘 권하세관에서 두만강을 건너면 북측 원정세관(왼쪽)으로 연결된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중앙-길림성-연변자치주-훈춘시로 이어지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연변조선족자치주나 훈춘시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 중국 정부에서 지난해까지 90억 위엔을 투자해서 장춘-길림-훈춘 고속도로를 놨다. 길림 지나면 고속도로가 아주 한적하다. 그런데 그런 고속도로를 훈춘까지 뚫었다. 장춘에서 연길까지 5시간, 연길에서 훈춘까지 1시간 정도 걸린다. 버스로 장춘에서 훈춘까지 7시간 정도 잡아야 한다.

그리고 또 훈춘부터 길림까지 고속철도를 놓고 있다. 이미 길림-장춘-베이징은 고속철도가 다 연결돼 있다. 그렇게 거금을 투자해서 하는 것은 라선항으로 뚫으려고 인프라를 조성하는 것이다. 고속도로는 완공됐고, 고속철도도 2013년이면 끝난다고 한다.

□ 연길과 훈춘이 고속도로와 고속철도를 통해 연결되면 북한 라선항으로 이어지는 거점이 될텐데, 특히 훈춘이 경제적 거점이 되나?

■ 연길이 거점이다. 중국에서는 다 훈춘이라고 하는데 직접 가보고 비교해보라. 연길은 연변자치주 수부도시고 여러 가지 조건이 잘 마련돼 있는데, 훈춘은 조금 열악하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말하듯 항구를 이용하려면 훈춘이 더 편리하다.

□ 예를 들어 포스코가 물류기지를 훈춘에다 마련한다는데.

■ 생활거점은 연길이 되고 물류거점은 훈춘이라고 볼 수 있다.

□ 연변의 젊은 인구가 한국 등 외부로 많이 유출된다고 하는데, 이런 경향이 역전될 수 있나?

■ 연변의 젊은 사람들이 연변에서 자기 능력을 발휘 할 수 없고 기회가 적어서 외부에 나가지, 연변에도 기회가 많고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키울 수 있다면 연변에 남을 것이다.

□ 연변에는 조선어로 가르치는 연변대와 연변과기대가 있는 것으로 안다. 실제로 대학을 졸업한 고급인력이 많나?

■ 많다. 연변대학과 연변과기대 뿐만 아니다. 거기는 극소수고 대부분 학생들이 청화대, 북경대 등 대학이 1,000개가 넘는데 다 외지에서 다닌다.

여기가 살기는 좋고 청정지역인데 자기 발전 기회가 없어서 못 돌아온다. 지난해 8월 28일부터 연변에서 ‘두만강 무역상담회’를 했다. 그래서 외지에 나가서 사업하는 분들이 많이 왔다. 그들과 이야기해보니 자기가 할 수 있는 사업을 연변에서 할 수 있다면 다 돌아와서 하겠다고, 자기와 맞는 업종, 능력을 발휘할 곳이 없어서 못 온다는 것이다.

연변지역 3대 상품은 방직.목재.농산품

   
▲ 연변자치주의 3대 상품 중 하나가 목재품이다. 사진은 '제7회 중국길림.동북아투자무역박람회' 연변부쓰에 전시된 목재품 모습.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조선족은 학습열이 높은 것으로 안다.

■ 조선족의 교육수준은 중국 평균 교육수준의 2배다. 우리 속담에 ‘소 팔아서 공부시킨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공부는 다 잘한다. 다 좋은 대학 나오고 그런데 환경이 맞지 않아서 문제다.

□ 연변자치주상무국 대외무역발전처 처장을 맡고 있는데, 주로 어떤 일을 하나?

■ 연변의 무역을 총괄하고 있다.

□ 연변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는 제품은 어떤 것들이 있나?

■ 제일 많은 게 방직품, 목재품, 농산품, 이 세 개 상품이 제일 많다.

방직품은 거의 100%가 쌍방울이라든가 대경방직 등 큰 한국 업체가 들어와 있다. 여건이 좋은 것이 길림시에서 화학섬유가 많이 나오고, 중국의 면화를 이용해 해외로 내보낸다. 일본업체도 들어와서 옷을 만들고 있다.

목재품은 장백산이 있고, 연변지역이 80%가 산림이다. 그래서 목재품 자원이 풍부했다. 지금은 점점 나라에서 보호정책을 펴서 못쓰니까 러시아, 북한 같은 주변 나라에서 들여온다. 목재공업이 많이 발달해 있다.

그리고 농산품은 우리 지역이 청정지역이니까 유기농이라든지 녹색식품이 많이 난다.

□ 리 처장은 조선족 3세에 해당하나?

■ 그렇다. 할아버지 때 오셨고, 아버지도 함경북도에서 건너오셨다. 나는 중국에서 태어났고, 할아버지는 우리 아버지 6살 때인 1942년에 오셨다. 함경북도 명천이 고향이다.

큰아버지가 항일운동을 했다. 이사 못 가면 온 집안이 일본에 박해받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할아버지가 “너네 큰 아버지가 항일운동 안했다면 명천에 논도 있고 집도 있고 괜찮게 살았는데 중국에 와서 이렇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때는 북한이 잘 살 때다.

우리 연변 사람 80% 이상이 다 항일 후손들이다. 항일 하다가 핍박에 못 이겨서 중국으로 건너왔다.

□ 큰 아버지 성함을 밝힐 수 있나?

■ 항일하다가 돌아가셨다. 우리 아버지는 이동찬이고 큰아버지는 이동일이다. 연변 조양천지역의 홍도자지역에서 젊은 항일 대장을 하다 돌아가셨다.

“연변 사람 80% 이상이 다 항일 후손들”

   
▲ 연길 거리의 간판은 한글과 한자가 나란히 씌여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연변지역 분위기는 과거 항일운동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나, 살기만 어렵게 됐다고 평가하나?

■ 다 항일 한 사람이니까, 크게 이야기 안 하지만 알릴 건 알려야 한다. 한국이나 조선에서 총 한방 못 쏘는데 중국에서 다 항일해서 일본하고 싸움하던 사람들이고 그 후손들이다. 한국에서는 잘 인정 안 해주는데 북한에서는 잘 대해준다.

북한에서는 왜 그런가 하면 항일할 때 전우들도 있고, 김일성 주석과 같이 활동했거나 하면 자료정리를 많이 하기 때문에 서로 찾을 수 있다. 연변지역에도 김일성 주석과 같이 항일했던 분들이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다. 어떤 분은 어머니가 김일성 주석과 같이 있었다고 해서 아들들이 지금까지도 대우받는 것이 있다.

내 주변에도 한국에는 유공자만 한두 분 있는데, 조선에서 우대받는 분들은 많다.

중국의 아주 유명한 시인이 연변에 와서 ‘연변에는 산마다 진달래, 마을마다 기념비’라고 했다. ‘산마다 진달래’는 항일하면서 피를 뿌려 진달래가 피었다는 것이고, ‘마을마다 기념비’는 마을마다 죽은 사람이 있어서 열사 기념비가 있다는 것이다.

연변 자료에 보면 항일전쟁 시기, 그 당시는 인구가 적었는데 전 연변지역에 12,000여명의 젊은이가 항일로 죽었다는데 그중 조선족이 11,000명이다. 대부분 우리 조선족이 항일했다.

우리 조선족들이 자긍심을 갖는 게 중국항일전쟁, 중국해방전쟁 영화에도 있다. 조선족들은 중국사람들 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잘 하고, 특히 항일전쟁이나 해방전쟁에서 싸움을 잘 한다. 지형을 잘 보고.

중국인 장군이 있지만 그 아래 연대장, 소대장은 다 조선족이 했다. 그런 중국 의용군이나 해방군에 조선연대는 싸움 잘하는 연대라고, 아주 날쌘 부대라고 했다. 이런 역사를 알아야 한다.

중국사람들이 조선족을 대하는 것은 다르게 대한다. 날쌔고 교육을 중시하고 위생적이고 어른을 공경하고 예절이 있다. 지난번에 상해에서 오신 교수들과 식사를 하는 데 “조선족이라면 딱 떠오르는 게 있다. 위생적이다. 예의범절 바르고, 교육을 중시하고, 교육 정도가 높고, 싸움 잘한다”고 하더라.

중국말에는 ‘군자는 입으로 말하지 손을 안 쓴다’는데 조선족들에게는 ‘입으로 말하다 안 되면 손찌검이 날아간다’는 말이 있다. 우스개 이야기지만 중국사람들 의식 속에 이렇게 돼 있다.

“조선의 인력을 도문에 인입하려 한다”

   
▲ 연길시 홍보책자 중 연변지역의 지리적 장점을 설명하는 도표. [자료사진 - 통일뉴스]
□ 연변에 있는 기업들이 북한 라선지역 등에 진출하나? 과거에 비해 추이에 변화가 있나?

■ 변화는 있다고 봐야 되는데, 지금 연변 상무국과 길림성 상무청에 등기한 이북에 투자한 업체는 23개 있고, 러시아에 투자 한 업체가 23개 있다. 그러나 실은 100개도 더 된다. 많은 조선족들이 북에 가서 호텔하고 상점하고 술집하는 것도 허가를 안 받고 한다. 북한 허가만 받으면 된다. 등록 안 해도 북한에 가서 기업하는 데는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등록을 잘 안 한다.

□ 큰 기업이 진출해 성공한 사례도 있나?

■ 연변천지공업무역유한회사는 북한과 합영회사를 꾸려서 철광, 북한말로 ‘자철광’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수입해 철광업을 처음 시작했다. 그러다가 중국에 철광석 가공공장을 해서 아주 큰 용두(龍頭)기업으로 컸다. 가공공장도 현대식으로 크게 지었다.

□ 연변지역에 가장 큰 천우그룹이 북한에 진출했는데 별로 성공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 길림천우그룹이라 하는데, 전규상 회장이 라진에 가서 시장건설 등을 했는데 건설업체고 무역도 좀 한다. 북한에 가서도 입찰에 들어가서 잘 한다. 라진에 홍콩자본, 실제로는 영국자본이 투자해 아주 현대적으로 비파도에 지은 영황호텔도 멋있고 고급스럽게 지어 조선 정부로부터 표창도 받았다. 그러나 원정부터 라진까지 도로 닦는 것은 안 하겠다고 한 것으로 안다.

□ 도문시에 북한 경제구역을 설치한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어떻게 추진되고 있나?

■ 도문시집중공업단지(개발구)가 지난 8월말에 길림성 정부로부터 대조선공업구역으로 승인받았다.

개발구 책임자의 말에 의하면 금후 대조선공업구역에서는 주요하게 대조선 수출업체에서 조선에 필요한 전기제품, 식품회사를 인입하는 동시에 조선의 인력을 도문에 인입하려 한다.

사실 우리 연변의 제조업체에서는 인력난을 많이 겪고 있다. 연변은 워낙 인구가 적은데 대학교를 졸업한 젊은 인력들은 상해, 북경 등 대도시에 남으려 하고 근로자들은 여기의 임금이 적어서 한국, 일본 등지와 중국 상해, 청도 등지에 나가 있어서 극심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도문시 개발구는 길림성 나아가서는 중국의 제1의 대조선 개발구로서 조선의 인력을 인입하면 아주 큰 투자유치 효과를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일부 언론의 보도처럼 북측 근로자들이 도문시로 출퇴근하면서 일하게 되나?

■ 아니다. 조선 인력들의 출퇴근은 불가능하고 도문에 와서 일하고 숙식을 제공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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