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춘 방천 전망대에 ‘日本海(일본해)’ 안내판

▲ 두만강(오른쪽)이 흘러 나가는 전방이 동해다. 그러나 훈춘시 방천 전망대에 표지판은  '日本海'로 표기돼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저 앞쪽이 동해 바다고, 오른쪽 두만강 건너편이 북한, 왼쪽 철조망 건너편이 러시아입니다. 중국으로서는 동해로 직접 나갈 수 없는 것이 무척 아쉬울 것입니다.”

8일 오전 동해를 코앞에 두고 러시아 땅에 가로막힌 중국의 처지를 기자를 안내한 정재화 훈춘주재 포항시청 대표가 담담히 설명했다.

중국 길림성 연변(延邊)조선족자치주에 속하는 훈춘(琿春)시는 러시아와 북한과 국경을 맞댄 곳으로 방천(防川)에 있는 전망대는 이같은 지형을 한 눈에 살필 수 있는 곳이다.

▲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러시아(왼쪽)와 북한을 철교가 이어주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최근 이 철도를 타고 러시아를 방문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러시아와 북한 사이로는 철교가 놓여있고, 최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 철길을 따라 러시아 방문길에 올랐다.

평소에는 열차 운행을 좀처럼 보기 힘들다는 이 철길 러시아 쪽에서 마침 연기를 내뿜는 화물열차가 나타났지만 끝내 북쪽으로 이어진 다리를 건너지는 않았다.

그런데 정재화 대표가 전망대에 부착된 '日本海(Japanese Sea)' 안내판을 보고는 “예전부터 한국 관광객들이 동해라고 쓰는 등 훼손이 심했는데 새로 바꾼 것 같다”고 말했다.

훈춘 방천지역은 엄연히 연변조선자치주 구역이고, 바다가 직접 북한과 맞닿아 있는데도 굳이 일본해로 단독표기하는 중국 정부의 뜻이 잘 헤아려지지 않았다. 이 지역에 투자를 했어도 한국이 더했고, 하다못해 방천 전망대를 찾는 관광객도 한국인이 더 많을 텐데 말이다.

▲ 새로 두만강에 더 가깝게 건설 중인 훈춘 방천 전망대. 두만강 맞은 편이 북한 땅이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중국 정부는 방천 전망대 앞쪽 두만강에 바싹 붙여 웅장한 전망대를 새로 짓고 있는 중인데, 혹시 우리가 잘 모르는 중국의 장기적 구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남북 뱃길 끊긴 사이 북중 뱃길은 열려

정재화 대표가 몸담고 있는 포항시는 북한과 중국 동북부, 러시아로 이어지는 해로운송에 있어서는 부산보다도 거리가 가까워 잠재적 경쟁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지난해 5.24조치로 남북간 뱃길도 끊겨 북한 청진항이나 라선항으로는 직접 들어갈 수 없지만 지금도 포항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톡항으로는 화물선이 다니고 있다.

▲ 훈춘 창리해운합작유한회사에 20톤 트럭들이 정차해 있다. 이 트럭들이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권하-원정세관을 지나 라진까지 석탄을 실어날랐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중국과 북한 간에는 이미 지난해 연말 훈춘-라진-상해 노선으로 석탄을 실은 비정기 컨테이너선 운항이 개시된데 비해 우리는 남북간 정치적 문제로 라진항을 이용할 수 없는 형편이다.

한편 김진학 연변자치주한국인회 회장은 “남북관계가 회복되면 당장은 라선항보다는 청진항에 주목해야 할 것”이라며 “청진항은 지금 현재도 5만톤이 바로 접안할 수 있는 설비가 돼 있고 중국까지 철로가 연결돼 있지만 라선항은 훈춘에서 육로를 통해 들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중국 동북지역에서 나는 곡식들이 1년에 3,600만톤씩 남방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중국이 철도로 운송하려면 군사작전 하듯이 해야 할 정도고, 동북지역 자원들도 남방으로 운송해야 하는데 운송비라든가 시간이 많이 든다”며 “청진이나 라선을 통해 동북지역 곡식과 자원이 중국 남방으로 운송되면 엄청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포스코 물류센터가 들어설 부지. 훈춘 시내에서 방천 가는 길에 넓게 자리잡고 있으며, 기존 마을들은 헐릴 예정이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처럼 중국-북한-러시아 삼국의 요지에 위치한 훈춘은 국제적 물류거점 도시로 비약적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국내 대기업인 포스코도 훈춘 시내에서 방천 방향으로 가는 초입에 대규모 물류센터를 준비 중이다.

아직 포스코가 준비 중인 물류센터의 규모와 착공일 등은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북중경협 전문가들은 중국 국경절인 10월 1일 이후 150만평 규모로 착공식이 열릴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하고 있다.

포스코 측이 훈춘에 대규모 물류센터를 건립하는 것은 중국, 러시아는 물론 북한 라선경제무역지대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데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아직 라선 진출은 차단된 상태다.

한 북중경협 전문가는 “정부가 대북 제재조치의 일환으로 북한에 현금이 흘러들어가는 것을 차단하려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라선지역에 대한 토지 임대 등 선점효과를 놓치지는 말아야 한다”며 “일단 라선에 진출시키되 본격 개발을 늦추는 방식도 검토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 북측 원정세관. 비포장길에 트럭이 한 대가 지나가자 뿌연 먼지가 일고 있다. 최근에는 도로 공사로 인해 거의 드나드는 차량을 볼 수 없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올해 10월말 완공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는 훈춘-원정리-라진 간 도로건설 공사로 훈춘은 여기저기서 공사가 한창이고, 공사 탓에 원정세관에는 대형 화물트럭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북측 원정세관이 잘 보이는 권하(圈河)세관 인근에는 중국 장사꾼들이 발빠르게 장사판을 펼쳐놓았다.

러시아와 도로로 이어지는 장령자세관에는 러시아 사람들을 태운 버스가 심심찮게 목격되고 세관 앞에는 아예 러시아 특산품 매장도 자리잡고 있다.

훈춘은 국제도시답게 상점 간판들이 대부분 한국어-중국어-러시아 순으로 표시돼 있어 여느 도시와 다른 느낌을 줬다.   

조선족 사회의 안정화가 통일 준비에도 유리

▲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주도인 연길시내 모습. 한글과 한자가 간판에 나란히 씌여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처럼 훈춘을 비롯해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중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에 힘입어 경제건설에 활기를 띠어가고 있지만 현실에서 부닥치는 경제적 어려움은 여전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인구 25만명인 훈춘에서 택시운전을 하고 있는 한 조선족 기사는 “내 친구들 대부분도 대도시로, 한국으로 돈벌러 떠나 버려 일할 사람이 부족하고, 조선족 아이들이 제대로 된 민족교육을 받지 못하며 자라고 있다”며 “한국 기업들이 훈춘에 많이 들어와서 여기서도 먹고 살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최근 ‘연길(延吉)-용정(龙井)-도문(圖們)'을 행정적으로 통합해 ‘연용도시(延龙圖市)'라는 광역시로 묶어 개발계획을 추진하고 있지만 훈춘과 같은 상황은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주도인 연길도 마찬가지다.

인구 58만명 중 40%정도가 조선족으로 추정되지만 인구가 줄어드는 추세이며, 편부모 가정 등 아이들 성장 환경이 열악하기는 다름없기 때문이다.

▲ 훈춘시내 간판에는 대부분 한글, 한자, 러시아어가 나란히 씌여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김진학 회장은 “그동안 한국기업들이 이곳에 투자하려 해도 어려웠던 이유가 물류 때문인데, 이제 중국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 주고 있다”며 “언어 장벽이 없는 연변조선족자치구가 존재하고 있는 조건에서 굉장히 좋은 기회”라며 한국기업들의 적극적 투자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이같은 경제협력은 우회해서 남북 간의 경색관계를 푸는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조선족 사회가 안정화 되면 북한과의 접근성도 높아지고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회장은 최근 연변 조선족 여성이 한국에서 결혼해 아이를 낳았지만 이혼 후 데려온 아이들이 중국 국적도 없이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고 있다며, 이 아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조선족 사회의 노력이 시작됐다고 전하고 한국 사회와 정부의 관심을 촉구하기도 했다.

▲ 중국에서 러시아로 이어지는 장령자세관에는 러시아를 오가는 중국인과 러시아인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리용남 연변조선족자치주 대외무역처장은 “조선족은 항일운동가의 후손이고, 교육열이 높아 대학진학률도 중국인에 비해 2배나 높다. 뿐만 아니라 날쌔고 위생적이고 예절도 바르다고 평가받는다”며 “연변의 젊은 사람들이 자기 능력을 발휘하고 키울 기회만 있다면 연변에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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