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 (서울노동광장 사무처장)


▲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을 역임한 정광훈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이 13일 별세해 17일 민주사회장이 치러졌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의장님.
어쩌면 참으로 권위적일 수 있는 이 호칭이 당신의 이름과 결합되면 마치 화학 변화를 일으키듯 새로운 고유명사가 돼버립니다.

정광훈 의장님,
당신을 아는 모든 이들은 이렇게도 당신의 부재에 슬퍼하고 있는데, 영정 사진 속 당신은 온화하게 웃고 계시네요.

의장님을 처음 봰 건 2001년 초입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민중연대’라는 사회운동단체 상근 활동가 생활을 시작한 저에게 당신은 ‘민중’, 그리고 ‘민중의 지도자’의 삶을 몸소 가르쳐 주셨습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직 후 당신은 2003년부터 ‘민중연대’ 상임대표 직을 맡으셨지요. 소위 운동권 각양각색의 정파가 모여있던 상설공동투쟁체 ‘민중연대’.

그 안에서 당신의 소탈함은 누구와도 벽을 만들지 않았고, 격의없이 어울리게 했습니다. 생각과 사상이 좀 달라도, 사람들은 늘 당신을 찾았고 함께 하고 싶어했습니다.

당신은 참 검소했습니다.
그리고 늘 가볍게 길 떠날 채비를 하셨습니다.
단 두벌의 옷으로 한 계절을 나며, 불필요한 짐을 만들지 않으셨지요. 요즈음 같은 날씨엔 청색 남방과 황토색 면바지를 즐겨 입으셨는데, 그 차림에 밀짚모자, 검은색 가방 하나 메고 전국의 농민 현장, 노동 현장, 지역 현장을 누비셨습니다.

“Our word is our weapon!(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당신은, 가진 것 없고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민중들이 무엇으로 의식화되고 무엇으로 저항해야 하는지 잘 아셨기에 이 말을 특히 좋아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쉽게, 더 오래 기억될 수 있도록 우리의 말을 전할까 늘 고민하셨어요.

▲ 고인의 장례식은 '민중의 벗'을 기리는 자리였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고향땅 해남에서 축지법 써서 이곳까지 왔소”
“Down Down WTO! Down Down FTA!”
이는 당신의 그런 사색이 응축된 정광훈표 언어들입니다.

저는 응어리진 가슴을 뻥 뚫어주고 박장대소케 하는 당신의 발언만큼이나, 눈을 빛내며 그것을 듣고 있던 사람들의 표정을 잊을 수 없습니다.

당신은 늘 공부하셨습니다.
먼 출장 길에서도, 잠깐씩 머무르던 사무실에서도 항상 두세 권의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어요. 그렇게 인상깊게 읽은 책들은 다시 지역에 있는 활동가들 손에 쥐어졌습니다.

그리고 늘 사람들에게 편지를 하셨지요.
당신의 고민과 시대의 안부가 담긴 그 편지는 받는 이로 하여금 ‘지금 여기에서’ 본인이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하는지 늘 떠올리게 하는 거울이었습니다.

의장님, 사람들이 당신을 ‘혁명가’라고 부릅니다.
민중이 모여있는 현장으로 쉼없이 달려가 그 속에서 끊임없이 인연을 만들고 키워오셨습니다.

그 수많은 인연들이 당신을 ‘시대의 별’이라고 합니다.
그런 지도자를 곁에서 뵐 수 있었던 건 제게도 큰 영광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당신의 모습을 쉽게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온몸으로 보여주신 낙관과 신념, 이제 은혜 받은 사람들이 나서서 세상을 바꿔가야겠지요.

의장님, 사진 속 그 미소로 우리를 지켜봐 주십시오.
당신을 가슴에 담고 우리가 천리길을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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