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농민회총연맹 성명서> ‘영원한 청년, 농민들의 평생 동지, 전농의 든든한 벗’이었던 정광훈 전 의장님의 명복을 빕니다. 5월 13일 오후 정광훈 전 의장님의 영면소식에 320만 농민들은 큰 슬픔에 빠져있습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320만 농민들의 마음을 모아 애도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엄혹했던 독재정권시절,해남군 농민회를 결성하고 농민운동을 펼쳤으며, 전농 의장 이후에는 또다시 한국사회운동의 지도자로 하루도 쉼없이 활동하시던 정광훈 의장님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갈 길을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70평생 몇 번의 옥고에도 굴하지 않으시며 사회민주화와 농민해방 세상을 위해 뛰시기만 하셨던 정광훈 의장님의 삶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가르침이 될 것입니다. 농민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언제나 제일 앞자리에서 함께 투쟁하셨으며, 더불어 이 땅의 민중들의 아픔이 있는 곳, 사회 불의에 대항하는 곳에는 언제나 함께였습니다. 2003년 칸쿤에서 외쳤던 ‘다운다운 WTO'는 전 세계 민중들의 가슴에 아직도 메아리로 남아있으며 무거웠기만 했던 집회장에서 즐거운 말로 우리를 기분좋게 해주시던 분이셨습니다. 정광훈 전 의장님의 일생은 한국농민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역사였으며 그 삶은 언제나 농민들과 함께였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하에서 한국의 농업은 여전히 신자유주의 개방농정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정광훈 전 의장님이 이루고자 하셨던 농민해방세상은 아직도 멀기만 합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의장님의 삶을 따라 농민들이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더욱더 노력하겠습니다. 신자유주의 개방농정을 막아내고 식량주권을 실현하기 위해 더 열심히 투쟁하도록 하겠습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다시 한번 정광훈 전 의장님의 영면을 애도하며 정광훈 전 의장님의 뜻을 이어 신자유주의를 반대하고 식량주권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할 것입니다. 2011년 5월 13일 전국농민회총연맹 <한국진보연대 애도 성명> 일찍이 농민운동을 개척하시고, 민중연대투쟁을 이끄셨으며, 조직과 투쟁의 모든 성과를 당과 전선으로 결집하여 민중승리의 새 날, 자주민주통일의 새 세상을 열기 위해 70대 청년의 열정을 불태우시던 정광훈 상임고문께서 2011년 5월 13일 오후 8시 51분 결국 서거하셨습니다. 믿을 수도 없고 믿고 싶지도 않은 이 사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이 슬픔 앞에서 우리는 가장 경건한 자세로, 이 땅 변혁운동의 마음을 모아 삼가 고인의 영전에 최고의 존경과 최대의 애도를 드립니다. 우리는 헤아릴 수 없는 아픔에 떨고 계시는 유가족 분들에게 깊은 위로의 마음을 드립니다. 또한 가눌 수 없는 고통에 울고 계시는 전국의 모든 동지들에게도 위로의 인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서거 소식에 슬픔을 함께 나누시는 광주시민과 국민 여러분께도 깊은 인사를 드립니다. 민중에 대한 사랑, 변혁에 대한 열정, 혁명적 낙관과 전투적 기풍의 결합, 학습과 실천의 통일, 그리고 무엇보다 해맑은 웃음과 따듯한 가슴... 영원히 잊지 못할 고인의 모든 것을 우리들 가슴 속에 품고 있는 한, 그것을 우리가 남김없이 실천하는 한 고인은 우리와 함께, 역사와 함께 영원히 살아 계십니다. 광주민중항쟁의 한 가운데서 피 흘려 싸우신 고인께서, 광주민중항쟁 31주년을 맞아 항쟁의 영웅들과 함께 저기 부활하여 오시는 것이 보입니다. 2011년 5월 14일 한국진보연대 <진보신당 대변인 논평> 정광훈 고문 영면, 한국 민중운동의 소중한 별이 졌다 민중운동의 소중한 별이 졌다. 어제 정광훈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께서 영면하셨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정광훈 고문께서는 70년대 해남에서 농민회를 조직한 이래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전국민중연대 상임대표,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등 평생 남한 농민운동과 민중운동의 지도자로 살아오셨다. 2007년 한미 FTA 저지 투쟁 당시 68세의 연세에 집회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구속돼 국제엠네스티로부터 양심수로 지정되기도 하셨다. 고인께서는 진보의 힘은 언제나 삶에서 투쟁하는 민중에게 있음을 보여주셨다. 언제나 쉽고 명쾌한 언어로 대중을 감동시킨 고인의 말씀은 지금도 우리 가슴 속에 살아 있다. 멕시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 부사령관 마르코스의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라는 말은 고인에 의해 호남 사투리로 절절하게 되살아났다. 고인께서 그토록 저지하고자 했던 한미 FTA가 국회 비준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닥친 소식이라 더욱 송구하고 안타깝다. 정부의 살농(殺農)정책으로 인해 올해도 아스팔트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는 농민의 처지 또한 그대로인지라 더욱 슬프다. 고인이 그토록 바라던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는데 고인만 세상을 떠나니, 그 슬픔 참기 어렵다. 언제나 투쟁하는 민중과 함께라면 나이가 들어도 청춘이라는 교훈을 몸으로 보여주신 정광훈 의장님, 부디 편히 잠드시길 기원한다. 한미 FTA 비준을 저지하고 고인의 뜻을 실현할 때까지 진보신당은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 드린다. 2011년 5월 14일 진보신당 대변인 강상구 <민주노동당 대변인 논평> 민중의 벗 故 정광훈 의장님, 민중과 함께 영생하소서 민중의 벗, 故 정광훈 의장님이 끝내 우리곁을 떠나셨다. 4.27재보궐선거 마지막 날, 선거지원유세를 마치고 귀가하시던 길에 불의의 사고를 당하셨던 故 정광훈 의장님이 어제 운명하셨다. 마치 친어버이를 떠나 보낸것처럼, 허전하고 외롭다. 의장님은 70여평생을 고통받는 민중의 참된 벗으로 살아오시면서, 가시밭길 오르막길 언제나 환하게 웃으며 헤쳐오셨다. 의장님의 생활은 가장 소박했지만, 세상 누구보다 고귀한 정신의 소유자였다. 의장님은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농민들과 함께, 자신보다 더 믿었던 노동자들과 함께, 일생을 민중의 벗으로 살아 오셨다. 민중과 함께라면 어떤 난관도 웃으며 헤쳐갈 수 있으며 민중승리에 대한 신념으로 언제나 당당한, 낙관이야말로 의장님의 귀중한 유산이다. 의장님은, 당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함부로 입어서는 안된다고 늘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민중과 함께 집권을 목표로 일하는 사람들은 겉과 속이, 앞과 뒤가, 처음과 끝이 언제나 한결같이 깨끗하고 정성스러워야 한다는 의장님의 사상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 누가 의장님을 대신해 우리 복장문제를 챙겨주겠는지, 누가 있어 겉다르고 속다른 남모르는 허위와 위선을 아프게 참회하게 하겠는지, 십년만 더 사셨더라도 이처럼 애절하진 않았을것이다. 친근하고도 통속적이며, 사색적이면서도 참신한 의장님의 대중연설은 백년가야 한 번 날까 말까한 명연설이었다. 민중에 대한 무한한 사랑에 기반하며, 끊임없는 탐구와 부지런한 학습 그리고 시대를 앞서가려는 선각자적 정신이야말로 의장님의 명연설을 이룬 요소였다. 무에서 유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피땀 흘리는 구체적인 노력이야말로 결실을 맺게 한다는 진리를 몸으로 보여주셨다. 의장님이 즐겨쓰신 챙 넓은 모자는 뜨거운 볕 내리쬐는 거리투쟁의 필수품이었으며, 의장님이 늘 매고 다니시던 배낭은 언제든 안락을 훌훌 털고 자신의 모든 것을 투쟁에 던지게 한 준비였다. 자신을 위해 등 뒤로 챙기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그 어떤 계산도 없이 양심이 가르키는대로 실천하며 시대앞에 당당했던 의장님의 생애야말로 우리 시대의 산 모범이었다. 비록 의장님의 육신은 우리곁을 떠났지만, 민중승리에 대한 낙관을 잃지 않으며 자기 양심에 따라 민중의 새세상을 위해 바쳐가는 그 누구에게라도 의장님은 뜨겁게 살아오실 것이다. 정광훈 의장님, 민중속에, 민중과 함께 영생하소서. 2011년 5월 14일 민주노동당 대변인 우위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