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11시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전국에서 모인 조문객 1천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 정광훈 의장의 영결식이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꿈이 있는 자에게 행복이 마중 나올 준비를 한단다. 혁명의 축제날 역사의 현장에서 화끈하게 만나자!" (2011.3.24 정광훈 의장이 농민회원에게 보낸 편지글에서)

지난 13일 교통사고 합병증을 이기지 못하고 숨을 거둔 고 정광훈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이 17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살아생전 함께 ‘혁명’을 길을 걸었던 김남주 시인과 열사들의 곁에서 영원한 잠에 들었다.

16일 추모문화제를 마치고 17일 오전 5시 30분 조선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식을 마친 운구행렬은 고인의 고향인 전남 해남군민회관 앞 군민광장에서 노제를 지냈다.

해남 노제를 마치고 오전 11시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전국에서 모인 조문객 1천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인의 영결식이 진행됐다.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은 조사를 통해 “일흔 세 살의 순결한 청년 정광훈 동지여 이렇게 가실 수는 없다”며 “어둠이 막바지가 칠흑인데 우리를 두고 이렇게 가셔서는 안 된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조사에 나선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정 고문의 마지막 활동이 4.27재보선운동이 되게 한 것이 죄스러울 뿐”이라며 “진보정치의 도약을 위해 정열 바친 정 고문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 반드시 민중과 함께 이겨 정 고문 영전에 다시 서겠다”고 다짐했다

고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북측본부 등은 조전을 보내고 “정 고문의 뜻밖의 서거에 큰 슬픔과 커다란 비통함을 느낀다”며 “고인의 유가족에 위로의 말을 전한다”며 고인이 살아생전 이루고자 한 민족의 자주와 조국 통일은 겨레의 곁에 살아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후 한미FTA 반대 투쟁 당시 모습을 담은 영상이 상영되고 고인의 영면을 기원하는 조가와 길닦음 굿이 이어졌다.

이날 영결식에서 유가족 대표로 인사를 전한 고인의 부인 최해옥 여사는 "이제는 나의 것도 아니고 여러분의 것도 아닌 먼 곳으로 가셨다. 이제는 행복하게 보내드린다”고 거듭 감사의 말을 전했다.

고인의 영전에 헌화.분향으로 1시간 가량의 영결식이 마무리되고 1천여명의 조문객과 함께 운구행렬은 금남로에서 삼성생명 사거리까지 행진하며 '한미 FTA저지하자. 조국통일 완수하자!'고 외쳤다.

영결식을 마치고 장지인 광주 북구 운정동 5.18 묘역으로 이동한 운구행렬은 하관 예배를 끝으로 모든 일정을 끝마쳤다.

▲16일 저녁 9시 조대병원 장례식장에 열린 추모문화제에 참가자들이 "정광훈 의장의 정신을 이어받자"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고 정광훈 의장의 추모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전국농민회 회원.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장례식장을 가득 메운 500여명의 조문객들이 '농민가'를 부르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고 정광훈 의장의 영전에 절을 올리는 조문객들. 5일장으로 진행된 고 정광훈 의장의 장례식에는 1만여명이 넘는 조문객들이 다녀갔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17일 오전 5시 30분 발인예배 모습.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발인식예배를 마치고 분향소를 나오는 고 정광훈 의장의 영정과 운구.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고 정광훈 의장의 관을 상주들이 운구차량에 옮기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고 정광훈 의장을 기리는 조사를 낭독하는 도중에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고 정광훈 의장의 영전에 술을 올리고 있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운구차량이 해남으로 이동하기 전 참가자들이 '농민가'를 부르며 결의를 다지고 있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고 정광훈 의장의 부인 최해옥 여사가 고인의 영전에 헌화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해남 노제를 지내기전 운구차량이 고인의 생가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고인이 고향 해남 마을어귀.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17일 오전 8시 조선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식을 마친 운구행렬은 고인의 고향인 전남 해남군민회관 앞 군민광장에서 노제를 지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해남 군민광장에서 노제를 진행하기 위해 마련된 고 정광훈 의장의 영정사진.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은 조사를 통해 “일흔 세 살의 순결한 청년 정광훈 동지여 이렇게 가실 수는 없다”며 “어둠이 막바지가 칠흑인데 우리를 두고 이렇게 가셔서는 안 된다”고 안타까워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고 정광훈 의장을 이제는 떠나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한 참가자 슬픔에 빠져있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노제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나왔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고 정광훈 의장을 기리는 진혼굿.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고 정광훈 의장의 부인이 최해옥 여사는 끝내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고 정광훈 의장을 기리는 만장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오전 11시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전국에서 모인 조문객 1천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 정광훈 의장의 영결식이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이날 영결식에는 민주노동당 의원단과,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 진보신당 노회찬 전대표 등을 비롯해 시민사회단체 대표들과 회원들이 참석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는 "정 고문의 마지막 활동이 4.27재보선운동이 되게 한 것이 죄스러울 뿐”이라며 “진보정치의 도약을 위해 정열 바친 정 고문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 반드시 민중과 함께 이겨 정 고문 영전에 다시 서겠다”고 다짐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문병란 시인은 '정광훈 동지 영전'에 <정녕 떠나십니까>를 바치며 “육신은 썩어 지하에 묻혀도/싸우는 영혼이여 기독의 깃발이여/다시 부활하소서 다시 일어나소서/(중략)/다시 돌아오소서/돌아와 우리들의 고향이 되소서/3천리 강산 통일굿 열리는 승리가 되소서/”라고 육신은 떠나지만 영원히 ‘민중의 벗’으로 남을 고인을 기렸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17일 오전 광주광역시 금남로에서 고 정광훈 의장의 영결식에서 진혼무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고 정광훈 의장의 딸은 박수를 치며 "아빠 정말 멋져요! "라며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고 정광훈 의장의 영전에 헌화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1천여명의 조문객과 함께 운구행렬은 금남로에서 삼성생명 사거리까지 행진하며 '내가 바로 정광훈이다. 비정규직 철폐하자. 한미 FTA저지하자. 조국통일 완수하자!'고 외쳤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광주 북구 운정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마련된 고 정광훈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의 묘. 고인은 해남군농민회를 함께 결성했던 김남주 시인의 곁에서 영면에 들었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고 정광훈 의장의 운구를 묘에 안치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고 정광훈 의장의 부인 최해옥 여사와 유가족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정찬훤 산이 서부교회 목사의 집도로 하관예배가 이뤄졌고 정 목사는 “정 고문은 선으로서 부활할 것”이라며 유가족들과 참가자들을 위로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고 정광훈 의장의 부인 최해옥 여사가 취토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고인의 영정을 바라보며 끝내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있는 민주노동당 이정희대표와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광주 북구 운정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마련된 고 정광훈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의 묘. 고인은 해남군농민회를 함께 결성했던 김남주 시인의 곁에서 영면에 들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참가자들은 “그가 행했던 민주화, 조국통일의 정신과 가치가 영원히 우리의 마음속에 남을 것”이라며 고 정광훈 의장을 가슴속에 담았다.그리고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겠다"며 투쟁의 결의를 다졌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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