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측 최고령 상봉자 김정례(96)씨는 작별상봉에서 북측의 딸 우정혜(71)씨를 만나자 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첫날 상봉 직전까지도 "긴장은 무슨, 딸 만나는데 좋기만 하지"라며 웃던 김씨였다. 하지만 딸을 다시 만날 때까지 세월이 기다려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김씨는 예감한 듯 했다. 딸 정례씨는 노모를 쓰다듬으며 "됐어 이제, 엄마"라고 달랬지만 "울지마, 인차(곧) 만나자"라고 말하던 와중에 결국 눈물을 쏟았다.
김씨는 작별상봉 중 북받치는 감정에 기력을 잃어 심장 통증을 호소하기도 했지만 안정을 취하고 의무실로 가자는 의료진의 권유를 뿌리쳤다. 1시간여의 만남이 끝나고 헤어질 시간이 되자 딸 정례씨는 어머니에게 큰 절을 올렸다. 노모는 휠체어에서 힘겹게 일어나 말없이 딸을 껴안았다. 김씨는 딸이 탄 버스가 먼 발치로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주섬주섬 약봉지를 꺼내기 시작했다.
"10년전만 만났어도.."

작별의 시간이 다가오자 민관씨는 휠체어에 앉아있는 아버지 리종렬씨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고는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라고 목놓아 울었다.
두살배기 딸과 유복자 아들을 60년 만에 만난 북측 안동근(86)씨도 어느덧 예순을 넘겨버린 딸의 손을 부여잡고 눈시울을 붉히다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남과 북의 자식들을 이어주고 웃으면서 헤어지자고 했던 그였다. 동근씨는 아무 말 없이 사탕을 까서 백발의 딸에게 내밀었다.
"건강하게 살아있으라"

'국군출신 이산가족'인 윤태영(79)씨를 만난 남측의 4형제는 애써 덤덤한 표정으로 형님을 맞았다. 태영씨는 "너희들을 만나니 더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나는 이제 만족한다. 너희들이 다 잘 살고 있는 것을 보니 대단하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보였다. 그러나 윤태형씨 형제들도 작별상봉 마지막 10분을 남기고는 더 이상 슬픔을 감추지 않았다. 형제들은 서로의 얼굴을 비비며 울음을 터뜨렸고 넷째 동생 상영(71)씨는 큰 형 태영씨를 등에 업고 "건강하세요"라고 절규하듯 말했다. 셋째 동생 상인(72)씨는 형의 볼에 입을 맞췄다.
북측 정영순(73)씨의 둘째 언니 양순씨는 75세의 나이에도 "한번 업어보자"며 힘겹게 동생을 업어줬다. 영순씨가 "나도 언니 한번 업어주고 싶다"며 등을 내밀었지만 양순씨는 "나는 지금 몸무게가 70kg이 넘는다"며 야윈 몸의 동생이 업지 못하도록 해 두 자매가 가벼운 실랑이를 벌였다.
상봉 시간이 끝나고 북측 가족들이 모두 버스에 오르자 이산가족면회소 앞마당은 울음 바다로 바뀌었다. 북측 가족들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묵묵히 고개를 숙인 채 면회소 앞에 주차돼 있는 3개의 버스에 올랐다.
"사랑해요, 또 봐요"

작별상봉 내내 북측 오빠 김진원(80)씨의 품에 안겨있던 남측 여동생 진녀(69)씨는 버스에 매달려 울부짖었다. 버스 창문 너머 오빠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창문은 이내 습기에 차 오빠 얼굴이 뿌옇게 흐려졌고 창문에는 손바닥 자국만 덕지덕지 남겨졌다. 분단의 벽과 같은 창문을 사이에 두고 두 남매는 손을 맞댔다. 진녀씨는 "문도 못 열게 하느냐"며 통곡했고, 버스에 시동이 걸리고 나서야 창문이 열렸다.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할 때까지 작은 창문을 통해 맞잡은 남매의 손은 떨어지지 않았다.
남측 상봉단 436명은 작별상봉 뒤 오후 1시께 금강산을 거쳐 남측으로 귀환하게 된다.
2일 오후에는 남측 2차 방문단 96명이 속초 한화콘도에 집결한 뒤 3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북측 가족 207명과 상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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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공동취재단/이광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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