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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 편지’의 진실 혹은 거짓<초점> ‘미국 스파이’와 ‘북한 테러리스트’의 반격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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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8.11.30  18:2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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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KAL858기 사건의 폭파범으로 사형을 언도받고 특사로 풀려난 김현희 씨가 장문의 편지를 통해 국정원의 ‘김현희와 안기부 죽이기’ 의혹을 제기함으로써 진실 여부에 따라 파문이 예상된다.

백성학과 김현희 공통점

김 씨의 이같은 공개적 행보는 역시 얼마 전 진정서를 제출하고 기자회견을 개최한 ‘백성학 미국 스파이 사건’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참여정부 시절 숨죽여 왔던 타칭 ‘미국 스파이’와 자칭 ‘북한 테러리스트’가 보수성향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며 자신의 억울함과 명예훼복을 시도하면서 ‘좌파정권 잔재청산’을 요구한 것이다.

참고로 ‘백성학 미국 스파이 사건’은 2006년 10월 31일 국회 문화관광위 국정감사장에서 신현덕 전 경인TV 공동대표가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이 정보팀을 운영하며 국가정보를 수집해 미국에 보고해왔다”고 폭로해 불거졌고, 그 배후로 리쳐드 롤리스 전 미국무부 부차관보가 지목됐던 사건이다.

KAL858기 사건은 1987년 11월 29일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두고 KAL858기가 115명의 승객을 태운 채 미얀마 안다만 상공에서 사라졌고,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는 북한 테러리스트 김승일과 김현희가 88년 서울올림픽 저지를 위해 공중폭파시켰다고 발표했지만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는 사건이다.

자칭 ‘북한 테러리스트’ 김 씨와 타칭 ‘미국 스파이’ 백 씨는 이전 ‘좌파정권’에 의해 억울한 피해를 받았고, ‘우파정권’인 이명박 정부가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인 점 외에도 우연의 일치 치고는 적잖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먼저 이들은 자신의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현 정부의 핵심 권력기관 여러 곳에 스스로 진정서를 제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백 씨는 지난 9월 3,4일 자신의 ‘미국 스파이’ 누명을 벗겨달라며 청와대와 국정원, 외교부와 대검찰청에 각각 진정서를 제출했고, 김 씨의 ‘편지’에는 “국정원, 검찰, 법원 등 국가 기관에 저의 진정을 호소”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김 씨는 “새 정부가 들어선 지 5개월이 흐른 지난 7월 하순경, 저는 국정원장 등 지휘부에 편지를 썼다”, “저는 최근(8월초) 검찰과 사법당국에 편지 형식으로 탄원서를 제출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백 씨는 지난 9월 29일 보수우익단체의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김 씨는 이동복 전 의원에게 보내는 장문의 편지 형식으로 자신의 문제를 공론화했다. 백 씨는 <신동아>를 통해 간접적으로, 김 씨는 <조갑제닷컴>에 직접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알렸다. [관련 외부기사 보기]

이들은 ‘좌파정권’은 물론 ‘우파정권’에 대해서도 실망감을 털어놓고 있는 점까지 꼭 닮았다.

백 씨가 국회위증 혐의에 대해 지난 10월 2일 2심 재판에서도 유죄를 선고받은데 대해 ‘미국 스파이’ 사건 관련자인 황장수 씨는 10월 24일 보수우익단체가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지금 세상이 우파세상이냐, 좌파세상이냐”며 “우파 시민단체가 문제 제기한 내용을 야당 의원이 검찰을 시켜서 공안적으로 조치를 하라고 요구하는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이명박 정권의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김 씨도 ‘편지’에서 “제가 (국정원) 지휘부에 편지를 보낸 지도 3개월의 시간이 흘렀지만, 지휘부는 답신하지 않고 있다”며 “대통령 직속기관인 국정원은 음모를 크게 저지른 탓인지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그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실망감을 표하고 “책임을 물으려고 여타 기관의 문을 노크해봤지만 아직 누구로부터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김현희 편지’, 새로운 사실들과 진위공방

어쨌든 중요한 것은 김 씨가 1998년 12월 김대중 대통령 당선 직후 비밀결혼과 함께 잠적한 뒤 10년 가까이 숨죽여 오다 ‘편지’를 계기로 스스로 가족사진까지 공개하며 나선 배경과 주장하는 내용의 진위 여부일 것이다.

먼저 김 씨는 ‘편지’를 통해 2003년 이후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대표적인 것만 정리해도 △2003년 10월 국정원 모 직원으로부터 외국 이민을 권고받았다 △국정원 담당직원으로부터 전화로 수십차례 KAL기 사건에 관한 질문들을 받았다 △담당 경찰간부로부터 2년 정도 타지역에 거주해 줄 것을 요구받았지만 거절했다 △2003년 11월 국정원 담당관으로부터 MBC PD수첩에 출연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2003년 연말 국정원 청사 내에서 천주교 신부들과 설명회를 가지기로 약속했다 △2003년 11월 중순경 MBC PD수첩 기자들에게 밤에 거주지가 ‘습격’당했다 △그 이후 5년 동안 보금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피난 생활’을 하고 있다 △2005.2-2007.10 국정원 발전위로부터 조사받을 것을 십수차례나 요구받았지만 거부했다 △김만복 국정원장의 서신을 두 차례 거절하자, 2007년 2월 하순경 국정원 이모 수사국장과 직원들이 방문해 면담조사에 응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남편이 거절했다. △2008년 7월 하순경 국정원장 등 지휘부에 몇 차례 편지를 썼다 △2008년 8월초 검찰과 사법당국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등이다.

김 씨가 “만 5년 동안 제가 살던 보금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렇게 피난 생활을 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 기간 동안 저는 가짜로 낙인되어 있었고 부도덕한 여자로 만들어져 있었다”고 하소연한 것은 다소 주관적이긴 하지만 본인의 심경을 토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편지’는 김 씨의 기대와는 달리 먼저 진위공방에 휩싸이게 됐다. 김 씨의 ‘자필 편지’가 공개되자마자 필적 논란과 대리 작성 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26일자 <연합뉴스>는 “이 편지는 필체가 외관상 1987년 김현희씨가 쓴 자술서의 필체와 다른 점이 많아 김씨의 필체가 그 사이에 변한 것인지, 다른 사람이 쓴 것인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선 필적 감정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예컨대 1987년 12월28일자 진술서에선 '파' '최' '다' 후' '되여' '부부' '차' '타' '이' '서' 등의 글자가운데 아래로 쓰는 획은 대부분 괘선 밑으로까지 그어졌으나 이번 편지에선 모든 아래 획이 괘선에서 정확하게 끝나고 있고, 아리비아 숫자도 1987년 진술서에선 '7'이라는 생략체로 돼 있으나 이번 편지에선 정자체 7로 돼 있다”고 지적했다.

29일 열린 ‘KAL858기 사건 21주기 추모제’에서 ‘KAL858기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대책위’(이하 대책위) 서현우 조사팀장은 김현희 진술조서 등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편지는 김현희가 쓴 것이 아니라 ‘배후 세력’에 의해 씌여진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편지에는 대책위의 구체적인 활동상황이나 국정원 발전위와 진실화해위 활동사항 등이 폭넓게 포함돼 있어 정보의 양과 질, 필체와 필력 등을 감안하면 김 씨 혼자서 이 편지를 작성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국정원, “김현희가 상당히 오해하고 있는 것 같더라”

또한 김 씨가 ‘편지’에서 단정적으로 표현한 여러 정황과 사실관계가 현실과 부합되지 않은 점들도 수두룩해 ‘편지’에 거론된 사람들에 의해 반박받고 있다.

김 씨는 편지를 통해 “국정원은 지원 수준을 넘어서 어떠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기획하였고, MBC를 포함한 방송3사가 그 지원를 받아 제작.편집하는 등 서로 연계하여 공모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며 국정원과 방송사의 ‘연계’와 ‘공모’를 입증하기 위해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그러나 ‘편지’에 실명이 거론된 KBS 류지열 피디는 28일 <통일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국정원이 너무 불쌍하다. 나한테 시달림받고도 제공해준 것 하나도 없는데 도대체 뭐를 가지고 문제삼는 지 모르겠다”고 일축하며 “방송 내용 중 문제가 있다면 구체적으로 적시해보라. 언제든지 반박하겠다”고 불쾌해했다.

또한 김 씨가 대책위에 대해 “그들은 이른바 국정원의 ‘전위’조직었다”고 주장하며 대책위의 신동진 사무국장이 ‘국정원 과거사위’ 조사관으로 채용된 점, KAL858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 『배후』를 쓴 ‘서현우’(본명 서현필) 작가를 국정원이 ‘연계’ 속에 고소한 점 등을 들었지만 이 역시 반론에 부딪쳤다.

신동진 전 사무국장은 28일 <통일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나와 국정원이 미리 짜고 했다는 것은 사실도 아니고, 내가 국정원 조사관으로 가게 된 과정은 가족회의 강력한 추천으로 이루어진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며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다”고 일축했다.

서현우 작가는 “유독 나만 고소당해 고통을 받았는데 나를 국정원의 전위라고 하는데 한마디로 오도도 이런 오도가 어디 있느냐”며 “오죽하면 ‘차라리 나를 기소하라’고 했겠느냐”고 반문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30일 <통일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김현희가 상당히 오해하고 있는 것 같더라”며 “다 알다시피 우리가 방송을 컨트럴 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 시민단체를 동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고 부인했다.

김 씨가 “국정원은 ‘무지개 공작’ 문건이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통일 뉴스’에 문건을 제공하고 공개하도록 하는 아주 친절한 정보기관이었다”고 예시한 것 역시 넌센스다.

KAL858기 사건을 범정부 차원에서 87년 대통령 선거에 활용키로 한 이른바 ‘무지개 공작’은 2006년 8월 1일 국정원 발전위의 수사결과 중간발표 시 이미 그 존재가 널리 알려졌고, <통일뉴스>는 2007년 3월 5일 행정정보 공개청구를 신청해 그해 4월 4일 이를 단독보도했던 것이다. [관련 기사 보기]

이처럼 김 씨가 자신의 논지를 펴기 위해 전제로 삼은 여러 가지 의혹들은 대부분 김 씨가 잘못 알고 있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들이다.

‘편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남는 의혹들

편지에는 방송사들의 의혹제기에 대한 김 씨의 최초의 반론들도 제기돼 관심을 끌었다.

김 씨의 ‘편지’에서 구체적으로 제기된 반론은 △김 씨의 부친 김원석의 신분이 탈북자 고영환 씨에 의해 확인되었다 △해외실습 장소인 마카오, 중국 광주의 거주지에 대해 취재하지 않았다 △암호수첩에 기재된 2개의 번호는 맞고 두개의 번호는 일치하지 않았는데 모두 보도하지 않았다 △공작원 교육시 ‘이남화’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을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 △일본어 교육을 받은 이은혜에 대해 한결같이 함구했다 등이다.

그러나 이같은 사항들은 이미 국정원 발전위에서 다루어졌고, 대책위에서는 아직도 충분히 해명되지 않았다며 계속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사항들이다.

서현우 대책위 조사팀장은 29일 “김현희는 '일본인화' 교육을 받았지 ‘이남화’ 교육을 받았다는 내용은 진술서나 재판자료 어디에도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김 씨의 아버지 김원석과 관련한 의혹에 대해선 국정원 발전위가 최종결과 보고서에서 고영환 씨의 증언을 소개하면서도 “귀순자들의 증언은 ‘김원석’의 앙골라에서의 신분과 관련 ‘서기관’, ‘수산대표단’이라고 엇갈리는 내용을 진술하고 있어, 해당인물이 김현희의 부 김원석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며 “김현희의 자술 이외에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자료가 없으므로 단정하기 어려움”이라고 결론지은 바 있다. (국정원 발전위,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Ⅲ권, 368쪽)

또한 김 씨가 일본어를 배웠다는 ‘이은혜’가 일본인 납북자 명단에 들어있는 ‘다구치 아에코’와 동일인물이라는 객관적 물증은 아직 제시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관련 기사 보기]

김 씨가 이동복 전 의원에게 ‘편지를 쓰게 된 동기’에서 “최 PD가 ‘장기영에게 꽃다발을 건네 준 소녀가 김현희가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한 것에 대한 대표님의 정중한 반론”을 거론했고, 이동복 전 의원은 ‘안내 말씀’에서 “김현희가 1972년 11월 4일 남북조절위원회 남측 공동위원장(이후락) 일행의 평양 방문 때 이들 일행이 탑승한 북한군 M18 헬리콥터가 평양 대동강 남쪽 역포의 간이 착륙장에 착륙했을 때 영업을 나왔던 화동의 하나가 바로 필자에게 꽃다발을 안겨주고 또 필자의 목에 붉은 스카프를 걸어준 소녀임이 밝혀졌”다고 교감하는 대목도 여전히 의혹에 쌓여있다. [관련 기사 보기]

‘김현희 편지’, 국정원 '신구파 갈등'의 산물?

이처럼 김현희 씨의 장문의 편지는 KAL858기 사건에 대한 의혹을 해소하는데 결정적 단서를 제공했다기 보다는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한편, 또다른 정치적 목적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김덕진 대책위 사무국장은 29일 추모제에서 “오히려 가족위와 대책위를 친북좌파로 몰아가고 있다”며 “실제 김현희 자신이 115명을 희생시킨 장본인이라면 자신의 불편함을 하소연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서현우 작가는 “현재까지 조사과정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질문에 대해서는 회피하고, 이념의 문제라든가 신구정권의 권력투쟁의 행위로 환원시키려는 일종의 정치공세로서 비열한 행위다”고 맹공했다.

김 씨는 편지에서 “2003년 경 친북성향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세상은 저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며 “국정원이 KAL기 조작의혹 사태를 기획 공작하고 음모를 꾸민 배경에는 참여정부의 정치이념과 연관이 많은 것 같았다”고 추정하고 “국정원에 제일 먼저 그 책임을 집중적으로 물어야 한다... 경찰당국, MBC 등 방송3사, ‘대책위’등에 대해서도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김 씨는 “국정원이 ‘안기부 죽이기’ 공연을 했다는 것, 이것은 하극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며 국정원 국내담당 박정삼 당시 1차장의 실명을 여러 차례 거론하고 고영구 전 국정원장에 대해서도 “국정원장으로 취임하기 전 재야시절, 민변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KAL기 사건 대책위원회’에 활동한 사실이 있다고 들었다”고 문제삼았다.

심지어 김 씨는 “참여정부는 국정원장과 차장 등 지휘부에 KAL기 사건과 관련된 자들을 정권 수립부터 임명하여, KAL기 사건을 정부 정책의 일환으로 사용하려 한 것 같다”고 추론하고 “그들은 임명 초기부터 KAL기 사건과 관련해 실질적인 정보운영방향을 깊이있게 논의했다고 생각된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민변 관계자는 30일 “고영구 전 원장이 재야시절 KAL858대책위에서 활동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확인했다. 한편 박정삼 전 1차장은 현재는 국정원을 퇴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발전위 조사관을 역임했던 신동진 전 대책위 사무국장은 “왜 갑자기 지금 이러는지 모르겠고 김현희가 정말 원해서 한 건지 의아스럽다”고 말했다.

한 소식통은 “국정원 구파와 신파의 싸움 같은데, KAL858 사건과 김현희를 써먹고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백성학 회장이 국회 위증죄로 2심에서 유죄를 판결받자 보수우익단체들은 “일명 ‘미스파이 사건’의 재조사를 위한 국정조사를 실시하라”고 요구하고 나섰고, 김현희 씨의 편지가 공개되자 한나라당 차명진 대변인은 26일자 논평에서 “‘과거사위원회’는 이번 역사적 조작사건의 실행자들을 밝혀내고 그 배후도 조사해야 한다”며 “‘국회’도 ‘KAL기 폭파사건 진실조작 조사위원회’를 띄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바야흐로 정권교체가 실감나는 현상들이 타칭 ‘미국 스파이’와 자칭 ‘북한 테러리스트’로부터 제기되기 시작한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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