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욱, “KAL 폭파범이 가장 선량한 가냘픈 여성으로 둔갑해”

“김현희 이름으로 편지를 보내니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어느날 갑자기 북한에서 내려온 KAL테러 폭파범이 지금은 가장 선량한 인권침해를 받고 있는 가냘픈 여성으로 둔갑하는 것 같다.”

28일 안병욱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 위원장은 지난 25일 공개된 이동복 전 의원에게 보낸 장문의 ‘김현희 편지’에 대해 “또 다른 왜곡된 진실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87년 11월 29일 승객 115명을 태운 채 미얀마 안다만 상공에서 사라진 KAL858기 사건이 발생 21주년을 맞아 때아닌 ‘김현희 편지’ 공방으로 다시한번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고 있다.

KAL858기 폭파테러의 주범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특별사면된 김현희 씨가 지난 10월 말 이동복 전 의원에게 보내는 형식의 장문의 편지글을 통해 국가정보원(국정원)이 방송사 등을 동원해 ‘김현희와 안기부(안전기획부) 죽이기’를 시도했고 자신은 만 5년 동안 '피난 생활'을 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관련기사 보기] [편지 전문 보기]

이에 대해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이하 국정원발전위) 위원장을 역임한 안병욱 진실화해위원장은 이날 오찬 기자간담회에서 “며칠 전에 느닷없이 김현희 씨 편지가 공개되면서 일부 언론에 보도된 것으로는 마치 국정원이 북한에 의한 KAL테러를, 그 진실을 뒤집어엎기 위해서 김현희를 내세워 새로운 사건 조작, 음모를 꾸미기 위해서 자기를 계속 강압을 가했다고 둘러씌우는데”라고 말하고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터무니없이 김현희 이름으로 편지를 보”냈다고 말했다.

안병욱 위원장은 “선입관이나 압력이나 특정한 입장을 옹호하는 것은 왜곡, 편견은 어느 사건도 볼 수 없고 해오지 않았다”고 재확인하고 “(진실화해위에서) KAL기 사건도 조사된 결과를 그대로 발표할 예정이다”고 밝히고 “(발표)시간은 추정해서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KAL858기 사건은 국정원발전위가 2005년 2월 7대 의혹사건 중 하나로 선정하고 재조사했지만 지난해 10월 “북한 공작원에 의해 벌어진 사건”으로 결론을 내렸고, 진실화해위는 지난해 7월 11일 조사 개시 결정을 내리고 이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안 위원장은 “국정원 발전위원회는 임의기관이기 때문에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어떤 이야기도 들을 수 없지만 우리 위원회(진실화해위)는 수사권은 없지만 조사권이 있다”며 “동행명령장 발부하고, 그것도 응하지 않는다면 절차에 따라서 과태료를 부가하는 법이 있다”고 밝히고 “편지내용이 김현희 씨의 진심이라고 한다면 우리 조사 동행명령에 충분히 출두할 것이라 예상한다... 나는 거기까지 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 위원장은 “KAL기 사건 진실을 규명하는 데 있어서 김현희 씨의 진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그게 없으면 진실규명이 불가능하겠느냐”며 “그것은 또 별도의 차원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갑제닷컴> 앞장, 한나라당.<조선일보> 화답

김현희 씨의 편지글을 처음으로 공개한 조갑제닷컴은 김현희 씨와 가족의 사진을 공개하는가 하면 국정원 관계자의 발언을 소개하는 등 잇따라 관련 기사들을 게재하며 쟁점화에 앞장서고 있다.

27일 조갑제 씨는 “없는 의혹을 키워 깽판-억지-건달세력을 도와주는 MBC가 국민의 재산인 공중파를 사용하고 있다”며 “2010년 12월31일, 정부는 MBC에 대한 재허가를 不許하여 문을 닫게 해야 한다. 직원 4000명이 실직자가 되는 것이 국민 5000만 명이 사는 길이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26일 차명진 대변인 명의의 논평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음모가 있었다’를 통해 “노무현 정부시절에 KAL기 폭파사건의 진실을 뒤집기 위한 음모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국정원과 경찰, 방송사, 시민단체 등이 서로 긴밀하게 공모하여 김현희 등에 의한 KAL기 폭파사건을 북측에 의한 ‘대남테러사건’이 아니라 남측 정보기관에 의한 ‘테러조작사건’으로 진실을 180도 뒤집으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이다”고 김현희 씨의 편지 내용을 전제로 논지를 폈다.

논평은 “‘과거사위원회’는 이번 역사적 조작사건의 실행자들을 밝혀내고 그 배후도 조사해야 한다”며 “이 정도의 간 큰 공작을 힘 있는 기관들이 척척 손발을 맞춰가며 실행했다면 배후에 최고 권력자의 신호가 있었을 개연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는 음모의 세력들에게 유린당해야만 했던 김현희 씨의 인권, 엉뚱한 곳에 분노를 돌려야 하는 황당한 상황을 겪은 가족들의 희생에 대해 보상해 주어야 한다”며 “‘국회’도 ‘KAL기 폭파사건 진실조작 조사위원회’를 띄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용갑 전 한나라당 의원은 27일 라디오에 출연해 “이것이 사실이라면 국정원이 정권 코드에 따라서 국가 안보(를 좌우)한 것이기 때문에 도저히 우리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라며 “사실 여부를 밝히기 위해서 국회가 국정 조사를 할 수 있도록 방송을 통해서 청원드린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노무현 정권 5년 동안 벌어진 ‘과거사 뒤집기’의 광풍이 남긴 부끄러운 흔적이다”이다며 “김씨가 편지에서 주장한 내용이 사실인지를 규명하는 작업을 즉각 시작해야 한다”는 논지를 폈다.

사설은 “무엇보다 먼저 막대한 국가 예산으로 운영되는 국정원과 노무현 정권 등장 이래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돋아나 국민 세금을 빨아먹었던 과거사위원회가 정권과 코드를 맞추기 위해 연약한 한 여성을 박해해 왔던 ‘권력 테러’의 진실이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며 “그 총대를 앞장서 메 온 방송 3사는 스스로 진실을 밝히고 사과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차옥정 “인간적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

이에 비해 정작 ‘김현희 편지’에 국정원과 '공모'했다고 적시된 방송사 관계자와 ‘KAL858기 가족회’(회장 차옥정, 이하 KAL858가족회),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공동대표 김병상, 이하 KAL858대책위) 관계자 등은 28일 <통일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한결같이 터무니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차옥정 KAL858가족회 회장은 “115명을 그렇게 했다는 사람이 숨죽이고 가만 있어야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인간적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 아니냐”며 “이동복, 조갑제 이런 사람들이 장난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차 회장은 “일단 내일 추모식 끝나고 정식으로 대응하려 한다”며 “처음부터 우리가 주장했던 대로 비행기 잔해 수색부터 하고 남북 공동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 5일 외교통상부와 미국 국무부, 북한 외무성에 북한의 테러지원국 해제과정에서 KAL858기 사건이 어떻게 논의됐는지를 공개질의한 바 있는 KAL858가족회와 대책위는 29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21주기 추모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김덕진 KAL858대책위 사무국장은 “지난 ‘좌파 정권’에서 뭔가 가짜 진술을 요구했다는 것은 얼토당토 않다고 생각한다”며 “상세하게 기억해 자세한 편지까지 썼는데 이것을 조사관이나 위원을 만나 진술하는 게 뭐가 어려운 건지 모르겠다”고 반박했다.

특히 “과거사위 통폐합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고, 지난 10년 ‘좌파 정권’을 원점으로 되돌리려는 절묘한 시기에 왜 이것이 나온지 모르겠다”며 “답답한 것은 김현희를 공개석상에 나오라고 할 수 밖에 없는데 공허한 메아리뿐이라는 점이다”고 말했다.

김현희 씨가 국정원이 방송 3사를 동원해 KAL기 사건 조작 의혹을 부풀렸다며 유일하게 이름까지 적시했던 류지열 KBS PD도 “국정원이 너무 불쌍하다. 나한테 시달림 받고도 제공해준 것 하나도 없는데 도대체 뭐를 가지고 문제 삼는지 모르겠다”며 “그냥 조용히 살지 실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류 피디는 “방송 내용 중 문제가 있다면 구체적으로 적시해보라. 언제든지 반박하겠다”며 “수사발표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할 때 김현희는 그때 뭘 했느냐”고 반문했다.

KAL858대책위와 국정원과의 공모가 있었다는 구체적 증거로 거론된 전 KAL858대책위 사무국장으로서 국정원발전위 조사관을 맡았던 신동진 씨는 “나와 국정원이 미리 짜고 했다는 것은 사실도 아니고, 내가 국정원 조사관으로 가게 된 과정은 가족회의 강력한 추천으로 이루어진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며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다”고 일축했다.

신동진 씨는 “11월 29일만은 최소한 조용히 지내야 할 사람이 뉴스 화제에 등장하는 액션을 했다는 것은 평소 조용히 살고 싶다고 했던 것과 모순된다”며 “왜 갑자기 지금 이러는지 모르겠고 정말 원해서 한 건지 의아스럽다”고 말했다.

‘김현희 편지’에서 국정원 직원들이 소설 『배후』의 서현우(본명 서현필) 작가 등을 고소한 사건도 국정원과 작가가 서로 ‘연계’하에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데 대해 서현우 작가는 “유독 나만 고소당해 고통을 받았는데 나를 국정원의 전위라고 하는데 한마디로 오도도 이런 오도가 어디 있느냐”며 “현재까지 조사과정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질문에 대해서는 회피하고, 이념의 문제라든가 신구정권의 권력투쟁의 행위로 환원시키려는 일종의 정치공세로서 비열한 행위이다”고 맹공했다.

서현우 작가는 “이번 편지는 김현희가 쓰지 않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편지 형태로 숨어서 뒤에서 하지 말고 전면에 나서서 과연 누구 말이 맞는지 객관적 진실이 무엇인지 언제든지 토론하자”고 역제의했다.

KAL858기가 승객 115명을 태운 채 안다만 상공에서 사라진 지 21년 만에, 이 사건으로 인해 북한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됐다가 해제된 지(8.11) 얼마되지 않아 김현희 씨가 장문의 편지를 통해 국정원과 방송3사, KAL858대책위를 성토하고 나섬으로써 이 사건의 진상규명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돼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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