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북도 대단히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현재 이들은 ‘과학 기술의 시대’라고 진단을 하고 그 방면으로 갑니다.”
『북조선실록』 발간이라는 방대한 작업을 진행 중인 김광운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초빙석좌교수는 5월 13일 오후 6시 서울 청계천로 전태일기념관 2층 공연장에서 열린 통일뉴스 월례강좌에서 ‘북조선 역사 이해와 북조선실록 발간’을 주제로 강연하며 이같이 말했다.
구체적으로 북한이 ‘노동자, 농민, 기술자, 과학자’로 순으로 호명하던 관습이 ‘과학자, 기술자, 노동자, 농민’ 순으로 바뀌었다고 짚었다.
김광운 초빙석좌교수는 1945월 8월 15일 해방일부터 북한(북조선) 관련 사료들을 편년체(編年體) 방식에 따라 일자별 자료들을 모아 평균 800쪽 내외의 210권 분량의 『북조선실록』을 내놓았지만 아직도 1957년 상반기에 머물고 있다. 200권 전체의 글자 수는 대략 1억9600만자로 이미 『조선왕조실록』 한글 번역본 분량을 훌쩍 넘어섰다.
‘시군 미래원’과 ‘연해주 바나나’
김 교수는 “예를 들면 대표적인 신문이 다섯 가지”라며 노동신문, 조선인민군, 청년전위, 민주조선, 평양신문을 꼽고 “그런데 지금은 최소 천 종은 넘는다”며 “많은 경우에는 전자신문을 만드는 거다”고 소개했다. 해결책은 테블릿PC의 보급이라는 것.
과거에는 <로동신문>에서 일괄적으로 봄철 파종기를 알렸다면 지금은 각 군단위, 면단위까지 파종 적기 일자를 달리해서 ‘시군 미래원’ 전자망을 통해 알려주고 있는 실정이다. ‘과학기술전당’을 중심으로 구축된 과학기술보급실망 체계가 말단 농민들에게까지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의 농업 역사 속에 잘 나타나 있다고. 산지가 많은 북한지역은 물을 끌어들이는 관개(灌漑)농업을 해야만 했고, 따라서 전력과 비료를 가장 많이 사용한 이른바 ‘공업적 농업’이 주종을 이뤘지만 사회주의권의 해체로 이를 유지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과학적 농업’으로 활로를 찾을 수 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김 교수는 최근 북러관계 강화 추이에 대해 “러시아와 북한의 첨단 군사기술의 이전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제일 눈에 띄었던 건 농업”이라며 러시아 연해주지역 농장에 북한의 농업 노동자들과 트랙터와 원료가 들어가서 지열을 이용해 온실농장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규모 온실농장을 운용하고 있는 북한이 “지열을 이용해 연해주에서 생산한 바나나가 서울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
또한 북한의 과학기술 인재라면 ‘김책공대’가 먼저 떠올리지만 최근 탈북자들은 ‘과학원 산하 이과대학’이 제일 수재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으로 지목한다면서, “85년경부터 각 도별로 좋은 학교들을 지정하고 수재반을 만들고 평양으로도 올리고 하는 일들이 쭉 진행이 되고 있었다”고 전했다.
“하드웨어를 투자할 수 있는 그런 자본은 없어서 소프트웨어 쪽으로는 많은 노력을 해서 일정한 성과를 계속 거둬들이고 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한미일 등 서방측은 북한이 사이버 상에서 가상화폐 탈취나 프로그램 개발 프로젝트 수주 등을 통해 핵과 미사일 개발에 전용될 수 있는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는 보고서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두 개의 국가에서 평화가 가능하다고?”
김 교수는 “북에서 역사를 서술하는 관점이나 방법을 완전히 바꾼 책은 회고록”이라며 고(故)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꼽고 “북은 민족주의 내지는 민족주의자들에게 일정한 거리가 있었던 게 사실이고 필요할 때는 끌어안았다. 하지만 또 시기가 좀 지나면 일정한 거리를 뒀었는데 회고록에서 그 부분을 그대로 솔직하게 써준 거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애국열사릉에 김규식, 최동오, 조소앙 등 민족주의 계열의 인사들의 묘역이 자리잡게 된 것도 이같은 흐름의 일환이라는 것.
특히 최근 북한이 남북 관계를 ‘적대적인 두 개의 국가’로 규정한데 대해 “자료적으로는 소련과 조선 노동당이 두 개 국가를 먼저 얘기했다”며 1950년대 중반, 미국의 ‘거수기’ 유엔이 중국을 부정하고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는가 하면, 한반도에서도 한국만을 유일 합법국가로, 유엔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기울이자 북한도 같이 가입해야 한다며 두 개 국가의 논지를 폈다고.
그는 “‘적대적’이라는 부분에 더 방점이 찍혀 있다”며 “반동문화에 대한 것 등 후속조치들은 북측 주민들에 대한 거였다”고 짚고 “51%는 북쪽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고, 49%는 남쪽 사람들에 대해서 ‘너희들하고 뭘 하기가 어렵지 않느냐’며 미국에 대한 자주성 상실 문제 등을 제기했다”고 해석했다.
김 교수는 특히 “우리 사회에서 마치 두 개의 국가에서 평화가 가능하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남북 간) 계속 갈등이고 우리 사회 내부에 있어서 수많은 낭비들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미 두 개의 국가가 80년 가까이 엄존하고 있는 객관적 현실에 더해 북한이 두 개의 국가를 들고나온 상황에서 차라리 두 국가의 양립을 통해 평화를 도모하자는 세간의 흐름을 비판한 셈이다.
그는 “우리 사회에 있어서의 어떤 내부적인 자기 변혁에 대한 노력들은 결국 그것이 통일로 가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평화라는 것은 결코 안 온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민족이라는 것은 뭐 누가 이렇게 한다고 해서 (이렇게) 되고 이런 게 아니지 않느냐. 역사적으로 형성이 된 거다”는 논지가 깔려있다.
남북은 그간 남북기본합의서(1991)에 근거해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규정해왔다.
『북조선실록』, 『조선왕조실록』처럼 온라인 열람 가능해질까?
그는 “북조선실록이라는 작업을 지금 계속하는 것은 이유는 아주 단순했었다. 남과 북이 서로 나뉘어서 서로 대립 갈등을 하고 있는데 서로가 서로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은 아무래도 그런 그 갈등이나 대립들이 좀 줄어들지 않겠는가 하는 그런 단순한 생각부터 시작을 했다”며 “역사라는 것은 현재가 우리가 해결해야 될 과제, 문제들을 과거에 있었던 사실들 속에서 반추를 해보면서 지혜를 얻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북한에 대해 “혁명 전통과 민족문화유산을 강조하면서 그들은 주체를 세웠다”며 “그들이 내세울 수 있는 게 주체와 자주이고, 민족 자주화의 실현을 했다”고 평가하고 “남쪽에서는 시민 민주주의 혁명과 수출 주도의 경제 성장을 이뤄냈다”며 “식민지 반식민지를 경험한 나라 치고 우리 대한민국처럼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뤄내는 나라는 사실상 없다”고 양측의 긍정적 측면을 도출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것을 보충해 주는 그런 입장에 있다”는 것.
북한은 역사 서술에 있어서도 “삶에 있어서의 어떤 기본적인 단위를 단일 민족으로 설정한 다음에 민족적 역사 서술을 한다”며 “북의 역사들을 사실 아닌 것이 사실인 것처럼 전달을 받고 살아왔다”며 국가보안법과 특수자료취급지침 등의 존재를 지적했다.
그는 북한 자료의 경우 “정책적 변화라든가 인물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 그런 부분이 있다”면서도 “북은 없는 거를 있었다고 하거나 하는 적은 없다. 다만 있었던 거 없는 척은 한다”고 평하고 “영웅주의적인 역사 해석이라든가 음모론 이런 것들에 힘을 실어줘서 북을 보게 되는 것은 대단히 곤란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우리는 체계적인 자료 수집이라든가 비판적 분석, 그것을 통한 어떤 이론 개발들이 꼭 필요하다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북조선실록』을 “처음부터 그냥 풀 텍스트를 입력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다”며 “작업 내용은 연표, 사진, 해설을 묶어서 간행을 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일자별 자료 선택과 편집은 일관성 유지를 위해 본인 혼자서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편년체 사료집 형식의 『북조선실록』은 1권당 700~800쪽 분량이며, 현재 210권, 1957년 상반기까지 출간됐지만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1994년 7월 8일까지 향후 1천권 이상이 발간될 예정이다. ‘북조선 정기간행물 DB구축’도 진행한다.
그는 장기적으로 『조선왕조실록』처럼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해 누구나 검색, 열람이 가능토록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고 “잘 모르면 갈등이 심해지지만 근거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갈등은 약화된다”며 “힘 닿는 데까지 계속 이 작업을 수행하려고 하고 있다”고 밝혔다.
통일뉴스 월례강좌는 평화3000이 후원하고 있으며, 6월 강좌는 오는 6월 10일 오후 6시 전태일기념관에서 박종수 전 북방경제협력위원장이 ‘러시아의 대외정책과 북러관계’를 주제로 진행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