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남북협상을 회상하며 - 저 산 너머 통일은 있을 것인가 (완)

 

송남헌

 

단정으로 민족분열

=양김선생 평양에 엄숙한 책망 회신=

수난역정 무엇으로 보상?

 

4월 25일 연석회의는 일단 끝마치고 4월 26일 남한에서 간 우리들은 연석회의 결정서만으로 만족을 못하고, 다시 김구, 김규식, 김일성, 김두봉 4김 회의를 개최하여 좀 더 앞으로의 구체적 방안을 모색할 것을 제의하였다. 그 결과 4월 26일밤 김두봉 저에서 4김회담이 개최되었었으나, 앞으로의 남북정세의 월이를 본 다음 대책을 수립하기로 하고 이날 밤의 회담을 다만 의례적인 회담으로 끝을 맺었다.

그 후 남한에 있어서 우리들의 극한반대에도 불구하고 남한사대주의자들에게 의하여 5⋅10선거는 실시되고 5월 31일 대한민국 국회가 소집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제극되었음인지 북한측으로부터 2회의 연락서신이 도착하였고 우리 쪽에서 2회의 답신을 발송하였다. 6월 초순에 북쪽 양김은 남쪽 양김선생에게 서신연락을 보낸 가운데 해주에서 급속한 회담을 갖고 싶어 하니 해주까지 월북할 것을 요청 하였다. 

여기 대한 회답으로서는 현재의 여건이 4월달 입북 때와는 변화가 많고 입북이 불가능하다는 거와 동시에 서신만으로써는 이해가 잘 안되니 체북 중인 벽초 홍명희 씨를 남하시켜 그 편에 요건을 상의할 것을 제의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 벽초의 남하는 실행 안되고 서신으로써 연락이 왔는데 그 요지는

1, 현재의 정세가 4월 달과는 급격한 변화가 생겼으므로 북한에 있어서도 새로운 선거를 실시하여 정권을 수립해야 되겠다는 것과 양김선생이 여기 호응해 달라는 요지였던 것이다. 

여기에 있어 양김선생은 국토양단과 민족분열을 방지하기 위하여 우리들은 4월 평양회담을 가졌었고, 앞으로도 계속 통일을 모색하자고 굳은 신약을 하였던 것인데 이제 남한에서 단정이 수립되니 거기 대항해서 북한에서 또 단정을 수립하겠다는 것은 이것도 민족분열 행위가 아니고 무엇이냐는 엄숙한 책망회신을 발송함으로써 남북의 교류는 이것으로 금일까지 단절되고 있는 것이다.

그 후 7월 12일에는 대한민국 헌법이 공포되어 8월 15일에는 대한민국 정부수립선포가 있었고, 북한 측은 8월 25일 해주에서 형식적 선거를 통하여 9월 9일에 최고인민회의 이름으로 조선인민공화국 수립공포를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으로 자주성을 망각하고 사대주의에 사로잡혀 민족분열의 절정에서 위험한 곡예사의 놀음을 한 나머지 급기야 6⋅25참변이란 민족의 죄악을 범하고 말았다.

회원하여 13년 그동안의 우리 민족의 수난의 과정은 무엇으로 보상할 수 없는 희생의 역정이었으나, 다시 돌아보아 이러한 수난은 또다시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야 될 것인가. 지금 국내외적으로 각성되어가는 민족자주의식은 저 검은 대륙으로부터 「아라비아」바다를 넘어 「풀로리아다」반도 「마이아미」의 대안인 「멕시코」만을 지나 「카리브」바다를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최근 요원의 불길같이 국내에서 통일의 불꽃이 일어나고 있다. 더구나 통일의 젊은 선봉들의 가슴을 찌르는 아우성 소리, 저 노도와 같은 외침, 남북의 양극세력은 젊은이의 입을 통하여 「이상 더 민족적 진실의 해명을 패배의식과 소수일파의 안일에 의해서 방해하지 말 것이며」 붉은 박쥐들의 「정치적 선전의 비열한 도구로 사용하지 말라!」는 저 소리가 들리는가? 우리 민족은 「강대국의 목적에 대한 수단」이 아니라는 말은 더 할 나위 없이 옳은 말이다.

이제 우리 민족은 평화롭게 자주적으로 번영하고 살 권리가 있다. 

서독 기민당 「루벤슈타인」 박사 말과 같이 우리는 한국통일문제나 통독문제가 세계에 격리된 단일문제가 아니라 세계문제의 일환이라 것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는 것을 기다리고 입만 벌리고 있을 시대는 지났다. 

세계의 여론 앞에 우리의 생존권을 호소해야 되겠다. 또 남북협상으로만 통일의 전부가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 서독의 통독정책이 서독의 장기분단으로 이민족화됨을 방지하고 민족적 정신적 유대를 견지하는 것을 지상목표로 청소년들에게 동서독 왕래여행을 장려하고 접촉교류를 적극 후원하는 그 양식 있는 민족의 모습을 한없이 부러워하면서 저 산 너머 통일을 하루 속히 쟁취해야 되겠다.

제1차남북협상을 회상하며 - 저 산 너머 통일은 있을 것인가 (완)

제1차남북협상을 회상하며 - 저 산 너머 통일은 있을 것인가 (완) [민족일보 이미지]
제1차남북협상을 회상하며 - 저 산 너머 통일은 있을 것인가 (완) [민족일보 이미지]

第1次南北協商을 回想하며 - 저 山너머 統一은 있을 것인가 (완)

 

宋南憲

 

單政으로 民族分裂

=兩金先生 平壤에 嚴肅한 責望 回信=

受難歷程 무엇으로 補償?

 

四月二十五日 連席會議는 一段 끝마치고 四月二十六日 南韓에서 간 우리들은 連席會議 決定書만으로 滿足을 못하고, 다시 金九 金奎植 金日成 金枓奉 四金會議를 開催하여 좀더 앞으로의 具體的 方案을 摸索할 것을 提議하였다. 그 결과 四月二十六日밤 金枓奉邸에서 四金會談이 開催되었었으나, 앞으로의 南北情勢의 越移를 본다음 對策을 수립하기로 하고 이날 밤의 會談을 다만 儀禮的인 會談으로 끝을 맺었다.

그 後 南韓에 있어서 우리들의 極限反對에도 不拘하고 南韓事大主義者들에게 依하여 五⋅一○選擧는 實施되고 五月三十一日 大韓民國 國會가 召集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制戟되었음인지 北韓側으로부터 二回의 連絡書信이 到着하였고 우리쪽에서 二回의 答信을 發送하였다.

六月初旬에 北쪽 兩金은 南쪽 兩金先生에게 書信連絡을 보낸 가운데 海州에서 急速한 會談을 갖고 싶어 하니 海州까지 越北할 것을 要請 하였다. 여기 對한 回答으로서는 現在의 與件이 四月달 入北때와는 變化가 많고 入北이 不可能하다는거와 同時에 書信만으로써는 理解가 잘 안되니 滯北中인 碧初 洪命憙氏를 南下시켜 그 便에 要件을 相議할 것을 提議하였다.

그러나 그 以後 碧初의 南下는 實行안되고 書信으로써 連絡이 왔는데 그 要旨는

一, 現在의 情勢가 四月달과는 急激한 變化가 生겼으므로 北韓에 있어서도 새로운 選擧를 實施하여 政權을 樹立해야되겠다는 것과 兩金先生이 여기 呼應해 달라는 要旨였던 것이다.

여기에 있어 兩金先生은 國土兩斷과 民族分裂을 防止하기 위하여 우리들은 四月 平壤會談을 가졌었고, 앞으로도 繼續 統一을 摸索하자고 굳은 信約을 하였던 것인데 이제 南韓에서 單政이 樹立되니 거기 對抗해서 北韓에서 또 單政을 樹立하겠다는 것은 이것도 民族分裂 行爲가 아니고 무엇이냐는 嚴肅한 責望回信을 發送함으로써 南北의 交流는 이것으로 今日까지 斷絶되고 있는 것이다.

그 後 七月十二日에는 大韓民國 憲法이 公布되어 八月十五日에는 大韓民國 政府樹立宣布가 있었고, 北韓側은 八月二十五日 海州에서 形式的 選擧를 通하여 九月九日에 最高人民會議 이름으로 朝鮮人民共和國 樹立公布를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科程으로 自主性을 忘却하고 事大主義에 사로잡혀 民族分裂의 絶頂에서 危險한 曲藝師의 놀음을 한 나머지 급기야 六⋅二五慘變이란 民族의 罪惡을 犯하고 말았다.

回願하여 十三年 그동안의 우리 民族의 受難의 科程은 무엇으로 補償할 수 없는 犧牲의 歷程이었으나, 다시 돌아보아 이러한 受難은 또다시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야 될 것인가.

지금 國內外的으로 覺醒되어가는 民族自主意識은 저 검은 大陸으로부터 「아라비아」바다를 넘어 「풀로리아다」반도 「마이아미」의 對岸인 「멕시코」灣을 지나 「카리브」바다를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最近 遙原의 불길같이 國內에서 統一의 불꽃이 일어나고 있다. 더구나 統一의 젊은 先鋒들의 가슴을 찌르는 아우성 소리, 저 怒濤와 같은 외침, 南北의 兩極勢力은 젊은이의 입을 通하여 「以上 더 民族的 眞實의 解明을 敗北意識과 小數一派의 安逸에 依해서 妨害하지말 것이며」 붉은 박쥐들의 「政治的 宣傳의 卑劣한 道具로 使用하지 말라!」는 저 소리가 들리는가?

우리 民族은 「强大國의 目的에 對한 手段」이 아니라는 말은 더 할 나위 없이 옳은 말이다.

이제 우리 民族은 平和롭게 自主的으로 繁榮하고 살 權利가 있다.

西獨 基民黨 「루벤슈타인」 博士 말과 같이 우리는 韓國統一問題나 統獨問題가 世界에 隔離된 單一問題가 아니라 世界問題의 一環이라 것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는 것을 기다리고 입만 벌리고 있을 時代는 지났다. 世界의 輿論앞에 우리의 生存權을 呼訴해야 되겠다. 또 南北協商으로만 統一의 全部가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 西獨의 統獨政策이 西獨의 長期分斷으로 異民族化됨을 防止하고 民族的 精神的 紐帶를 堅持하는 것을 地上目標로 靑少年들에게 東西獨 往來旅行을 獎勵하고 接觸交流를 積極 後援하는 그 良識있는 民族의 모습을 限없이 부러워하면서 저 山너머 統一을 하루 速히 爭取해야 되겠다.

[민족일보] 1961년 5월 9일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