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민족 자주적 평화통일의 기본방향  (상)

=남북협상을 통해 통일의 길로 나아가자=

 

이재춘

우리 민족의 유일한 과제인 통일의 기본방향은 민족자주적인 평화통일임을 그 누구도 부인할 사람은 없으리라고 본다. 그것은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침해 당함을 불원하며 피지배를 원하는 민족이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에는 50평생에 아직 한 번도 조국의 통일독립국에 생을 영위해 본 적이 없는 비참하고 애절한 역사적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번만은 생전에 조국의 통일을 보고 죽어야겠다는 민족의 염원을 한결같이 절규한다. 

이 당연한 민족의 자주성을 구태여 강조하지 않으면 안 될 슬픔은 비단 필자 개인만이 가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면 이제 통일운동의 기본방향을 정확하게 명시해 보자.

남북동포가 다 같이 수긍

.... 외세의존세력은 그 죄과를 역사가 응징할 터 .....

이기성에 통일이 좌우될 수 없다.

통일에도 단계가 필요

통일전선은 조속히 단일화 돼야 한다.

 

1. 평화통일

평화적 원칙만으로 조국의 통일을 달성함에는 부족하다. 왜냐하면 평화통일이란 무력의 수단이 아닌 것을 말하기 때문에 무력에 호소하지 않고 평화적 수단으로 한다고 하여 통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외세에 의하여도 평화적 방법에 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국통일의 기본방향이 바로 평화적이며 민족 자주적 통일이라야 한다. 왜냐하면 평화적 통일은 이미 지구에 생존하는 모든 인류가 거의 이 원칙을 지지할 뿐만 아니라 인류 자체도 이 원칙을 깨뜨릴 수 없으며 깨뜨리면 바로 국제적 고아가 될 뿐만 아니라 평화세력에 의하여 용서될 수 없고, 그 결과는 자멸인 것이다. 

그러나 이 평화적이란 어휘가 지닌 여러 가지 횡포가 있다. 이미 낡고 고립되기는 했으나, 우리나라에서 통일을 논의함에 있어 이구동성으로 장정권이나 민주당이나 신민당이나 혁신제정파 및 사회단체들이 한결 같이 평화통일을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헌법절차의 평화통일, 중립화 평화통일, 유엔감시하의 평화통일, 국제감시하의 평화통일, 민족자주적 평화통일,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평화통일, 민주사회주의에 입각한 평화통일 등 각양각색의 평화통일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각자의 생각에서 자기 위치에서 자기 주장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평화통일이란 남북협상의 방법으로 통일하자는 것을 말한다. 협상은 상대방의 존재적 가치를 인정함으로써만 성립될 수 있다. 만약 협상이 대등한 위치에서 성립되지 않는다면 이것은 형식적이거나 명목상의 협상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일방이 타방에 굴종하거나 혹은 강요당하는 결과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과거 허다한 조건에서 이것을 찾아 볼 수 있다. 한말의 제조약, 해방이후의 환율인상, 최근의 「한⋅미경제협정」등은 그 좋은 사례가 된다. 이것이 현실이라고 한다면 남북이 모두 그 존재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바로 조국통일의 회피책밖에는 안 된다.

이번 UN에서의 움직임이나 국내의 통일세력의 강대화 등 과거의 사고방식은 명실공히 과거의 역사적 현실에서만이 타당했을 것이다. 변화발전이 무쌍한 오늘의 현실에는 이 시간에 타당한 새로운 사고가 필요한 것이다. 어떤 일정한 역사적 조건에 타당한 원칙이 다른 역사적 시간에 즉 이미 조건이 다른 변화된 시간에도 그 원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 누구도 협상을 거역할 수 없는 역사적 현실에 당면했다. 이것이 바로 엄숙한 역사적 명령이다. 이미 오늘의 객관적 현실은 협상이란 역사발전법칙에 의한 필연적 산물이다. 협상의 불가피성은 군사적 즉 힘의 정책에서부터 평화적인 협상으로 전환됨에 따라 인류 역사이래 모든 사람의 공동염원이었던 평화정책이 도래하였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우리에게 생생한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화통일은 바로 협상을 뜻하는 것이며, 이 협상은 민족자주적이라야 한다는 소이가 여기에 있다.

사리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외세와 결탁하지 않고는 그들의 이기주의를 충족할 수 없는 반민족자들의 반통일행위의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모두가 계급⋅사상 여하를 불구하고 민족적 입장으로 참되게 돌아와야 함을 엄숙히 역사가 명령하고 있다.

 
2. 민족자주통일

우리 민족은 일제하에서 외세의존주의자와 외세에서 벗어나기 위한 민족해방투쟁은 과감히 전개되었던 것이다. 진정한 애국투사들은 끝까지 굴함 없이 대중들 속에서 대중들을 향하여 대중과 같이 생활하고 대중들을 새로운 투쟁의 길로 인도하였던 것이다. 

1930년대의 민족해방투쟁은 1920년대의 평화적 방법으로부터 폭력적 방법으로 전환하였다. 이것은 결정적 기로에 직면한 우리 민족의 필연적인 투쟁강령이었다. 원산노동자총파업을 출발점으로 신흥탄광노동자항쟁, 암태농민항쟁 등등 민족해방투쟁의 기본세력인 노동자 농민들은 도처에서 일제와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을 반대하여 폭력으로 항거하여 나섰다.

이러한 투쟁의 불길은 청년학생들에게 영향을 주어 드디어 광주학생사건을 폭발시켰고, 전국적으로 파급되어 우리 청년학생들의 단결된 민족해방투쟁역량을 내외에 시위하였다.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위한 애국적 선진투사들은 그 투쟁대오를 정비하여 해외에서도 투쟁했다. 

만약 해방이후에 이승만이 외세와 신탁하지 않고 민족적 입장을 고수했더라면 오늘의 이 꼴은 면했을 것이요. 민족사는 전진되었을 것이다. 그는 수많은 애국지사를 암살하고 선량한 백성들을 죄없이 학살했고, 사회를 암흑천지로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죽지 않았다. 15년 이승만 「테로통치」하에 만재된 모순과 분노는 4⋅19에 그를 타도하고 말았다. 해방 전후하여 외세와 그 주구를 반대하는 거족적 투쟁행정에서 청사를 아름답게 빛낼 수 있는 무수한 기록을 남겨 놓았다. 우리 민족은 이와 같이 파? 많은 시련과 고통을 극복하면서 불굴의 의지로 무장된 애국선열의 유형무형의 지도하에 민족적 의지는 연마되고 육성되었다. 

우리 민족이 외세에 의존되고 있다는 사실은 곧 민족적 의식의 박약 때문이 아니고 8⋅15해방이 민족자주적 주장에서가 아니라 타방에 의한 고요한 선물이었다는 사실과 해방 후 역사적 사회적 여건이 필연적으로 혼란을 조성하였고, 외세의 본질을 잘못 인식한데서 온 것이다.

그러므로 일제시대에 온갖 수단으로 우리의 독립투쟁을 반대하고 독립투사를 무자비하게 학살하던 친일관료배가 해방 후 얼마 안 되어 외세의존세와 결탁하여 고개를 치켜들고 또다시 대중 앞에 군림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무엇으로 변명할 수 있을 것인지 우리 민족은 투쟁을 통하여 세계 어느 민족에게도 뒤 떨어지지 않는 우수한 민족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내부의 외세의존세력을 단호히 청산하여 단결만 한다면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 만약 역량이 없다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그들의 이기주의의 충족을 위하여 성좌의 꿈을 버리기 싫은 자일 것이다.

이 생생한 역사적 교훈은 외세의존은 망국지도란 것과 어떠한 형태의 외세개입도 단호배격함으로써만이 민족자주적 평화통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현실적 역사조건하에서 민족자주적 평화통일의 길만이 통일을 조성할 수 있는 유일의 길인 것을 알았다. 이것만이 남북동포가 다 같이 수긍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일을 눈앞에 두고 참되게 우리 민족의 양심에 돌아가서 반성한다면 남이니 북이니 하여 정치적 사상적으로 시비할 것이 못된다. 

남에서 잘산다고 하여 북에서 싫어할 수 없으며, 북에서 경제발전이 잘된다고 하여 남에서 시기하거나 감출 필요가 없다고 본다. 북도 내 동포임에는 틀림없는 것이다.

남북에서 무엇인가 제 각기 건설해 놓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진정 우리 동포의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통일 후의 우리의 국가적 부가됨에는 틀림없다. 

전번 내한한 미국의 「울프」 박사의 대정부경제에 관한 보고에도 후진사회일수록 자율적인 노력에 의한 자립경제의 개척이 필요하다고 역설했고, 정부의 5개년계획을 비판하여 비관적인 결론을 내리었고, 남북교역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기이한 현상이라고 까지 말하였다.

그는 또 「당분간 국토분단이 지속할 것이라는 가상하에서도... 서로 경쟁적인 산업의 과대시설을 피하기 위하여... 특별한 남북통상교역을 고려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익할 뿐만 아니라 또한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지적한다. 

이와 같은 말을 만약 혁신계 인사가 「울프」박사이전에 주장한 사람이 있었더라면 정부와 보수정객들은 무어라고 말했을 것인지 참으로 아슬하다. 이렇듯 만인에게 평등해야 할 법률 자유 언론이 어떤 특정 개인은 마음대로 자유가 보장되고 타개인에는 엄격히 용서될 수 없는 한심한 꼴은 정말 분노의 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남에서 경사가 있으면 북에서도 기뻐해야 하며, 북에서 슬픈 일이 있으며 남에서 울어주어야 하는 것이 동포의 상도가 아니겠는가. 통일의 그날에는 16년간의 회포와 기쁨을 부모⋅형제⋅처자 간에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무슨 정치적 이해관계가 존재하며 불신의 감정이 있을 수 있겠는가? 정부는 남북의 대중이 서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을 터놓고 다음에는 더 발전시켜 남북 간에 통일을 논의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당장 통일이 되었으면 오죽 좋으랴마는 15년간의 외국 아닌 외국으로 존재했다는 사실에서 허다한 난관이 있으리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에의 단계를 가장 쉬운데서 부터 출발하여 점차 어려운 단계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본다. 

민간단체의 교류 즉 서신왕래에서부터 경제문화교류, 2단계에 가서 남북 간의 두 정권이 통일적 견지에서 경제발전계획 통일 후의 제반예비사업의 진행, 3단계는 최후 단계로서 협의에서 민주주의적 선거법의 제정, 제 자유의 보장, 자유선거에 대한 보장, 선거를 위한 남북 어느 곳이나 선거운동의 자유가 보장이 되어야 한다.

무엇 때문에 민족자주적인 위치를 떠나 중립화라야 하고, 중립화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중립화를 시켜 주시오」하고 누구에게 호소할 작정이며 우리의 통일은 중립화로 하겠다고 누구에게 주장해야 하는지? 우리 민족문제를 소련에게 가져가서 중립화로 해주시오 할 작정인지? 미국이나 영국이 생각하는 방향의 민주주의가 되면 오죽 좋겠소마는 자유민주주의가 될지 민주사회주의가 될지는 자유민주주의자나 민주사회주의자가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총선거에서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총선거 때 중립화를 선거 강령으로 내걸고 선거는 할 수 있을지언정 통일 전에 통일의 전제조건은 될 수 없다. 우리는 민족자주적 입장에서 통일하려는 것이지 중립화통일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중립화도 오지리식이니 서서 등 여러 가지 형태가 있는데 공식적으로 통일 전에 「나는 중립화통일을 하겠다」고 내어 걸 필요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므로 통일 전에 중립화를 내어 건 것은 중립화가 아니면 못하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지 이북에서 공산식 통일이 아니면 못하겠다고 한다면 중립화를 주장하는 사람은 중립화가 안 되니 통일 안하겠다고 주장해야 될 것이 아니냐 말이다. 

그러므로 통일을 염원하는 사람은 모두 이 절대원칙인 민족자주적 입장에 단결하여야 하며 통일전선을 분열시키는 작용을 삼가야 한다.

세계역사상 민족해방투쟁을 할 때, 자주적 위치를 떠나 나는 어떤 식의 해방이라야 한다고 민족해방 전에 주장한 예를 보지 못했다. 대중에게 강요할 수 없음과 마찬가지로 어떤 제도나 사상을 타국에 강요할 수도 없고 이남이 이북, 이북이 이남에도 단호 강요할 수 없다. 

만약 강요한다면 그 자체가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오직 백성 전체의 의사에 의해서만이 결정되고 백성들만이 가지는 권리이다.

논단/ 민족 자주적 평화통일의 기본방향  (상)

논단/ 민족 자주적 평화통일의 기본방향  (상) [민족일보 이미지]
논단/ 민족 자주적 평화통일의 기본방향  (상) [민족일보 이미지]

論壇


民族 自主的 平和統一의 基本方向  (上)

=南北協商을 通해 統一의 길로 나아가자=

 

李載春

우리 民族의 唯一한 課題인 統一의 基本方向은 民族自主的인 平和統一임을 그 누구도 否認할 사람은 없으리라고 본다. 그것은 어느 民族을 莫論하고 民族의 獨立과 自由를 侵害 當함을 不願하며 皮支配를 願하는 民族이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에는 50평생에 아직 한번도 祖國의 統一獨立國에 生을 營爲해 본 적이 없는 悲慘하고 哀切한 歷史的 條件이기 때문이다. 이번만은 生前에 祖國의 統一을 보고 죽어야겠다는 民族의 念願을 한결같이 절규한다. 

이 當然한 民族의 自主性을 구태여 强調하지 않으면 안 될 슬픔은 비단 筆者 個人만이 가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면 이제 統一運動의 基本方向을 正確하게 明示해 보자.

南北同胞가 다같이 首肯

.... 外勢依存勢力은 그 罪過를 歷史가 膺懲할 터 .....

利己性에 統一이 左右될 수 없다.

統一에도 段階가 必要

統一戰線은 早速히 單一化돼야 한다.

 

 

一. 平和統一

平和的 原則만으로 祖國의 統一을 達成함에는 不足하다. 왜냐하면 平和統一이란 武力의 手段이 아닌 것을 말하기 때문에 武力에 呼訴하지 않고 平和的 手段으로 한다고 하여 統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外勢에 依하여도 平和的 方法에 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祖國統一의 基本方向이 바로 平和的이며 民族 自主的 統一이라야 한다. 왜냐하면 平和的 統一은 이미 地球에 生存하는 모든 人類가 거의 이 原則을 支持할 뿐만 아니라 人類 自體도 이 原則을 깨뜨릴 수 없으며 깨뜨리면 바로 國際的 孤兒가 될 뿐만 아니라 平和勢力에 依하여 容恕될 수 없고, 그 結果는 自滅인 것이다. 

그러나 이 平和的이란 語彙가 지닌 여러 가지 橫暴가 있다. 이미 낡고 孤立되기는 했으나, 우리나라에서 統一을 論議함에 있어 異口同聲으로 張政權이나 民主黨이나 新民黨이나 革新諸政派 및 社會團體들이 한결같이 平和統一을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大韓民國 憲法節次의 平和統一, 中立化 平和統一, 유엔監視下의 平和統一, 國際監視下의 平和統一, 民族自主的 平和統一, 自由民主主義에 立脚한 平和統一, 民主社會主義에 立脚한 平和統一 등 各樣各色의 平和統一이 있기 때문이다. 勿論 各自의 生覺에서 自己位置에서 自己主張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平和統一이란 南北協商의 方法으로 統一하자는 것을 말한다. 協商은 相對方의 存在的 價値를 認定함으로써만 成立될 수 있다. 萬若 協商이 對等한 位置에서 成立되지 않는다면 이것은 形式的이거나 名目上의 協商에 不過하다. 왜냐하면 一方이 他方에 屈從하거나 或은 强要當하는 結果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過去 許多한 條件에서 이것을 찾아 볼 수 있다. 韓末의 諸條約, 解放以後의 換率引上, 最近의 「韓⋅美經濟協定」등은 그 좋은 事例가 된다. 이것이 現實이라고 한다면 南北이 모두 그 存在的 價値를 認定하지 않는다면 바로 祖國統一의 回避策밖에는 안 된다.

이번 UN에서의 움직임이나 國內의 統一勢力의 强大化 등 過去의 思考方式은 名實共히 過去의 歷史的 現實에서만이 妥當했을 것이다. 變化發展이 無双한 오늘의 現實에는 이 時間에 妥當한 새로운 思考가 必要한 것이다. 어떤 一定한 歷史的 條件에 妥當한 原則이 다른 歷史的 時間에 卽 이미 條件이 다른 變化된 時間에도 그 原則이 適用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더 以上 그 누구도 協商을 拒逆할 수 없는 歷史的 現實에 當面했다. 이것이 바로 嚴肅한 歷史的 命令이다. 

이미 오늘의 客觀的 現實은 協商이란 歷史發展法則에 依한 必然的 産物이다. 協商의 不可避性은 軍事的 卽 힘의 政策에서부터 平和的인 協商으로 轉換됨에 따라 人類 歷史以來 모든 사람의 共同念願이었던 平和政策이 到來하였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우리에게 生生한 敎訓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平和統一은 바로 協商을 뜻하는 것이며, 이 協商은 民族自主的이라야 한다는 所以가 여기에 있다.

事理가 이러함에도 不拘하고 外勢와 結託하지 않고는 그들의 利己主義를 充足할 수 없는 反民族者들의 反統一行爲의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모두가 階級⋅思想 如何를 不拘하고 民族的 立場으로 참되게 돌아와야 함을 嚴肅히 歷史가 命令하고 있다.

 
二. 民族自主統一

우리 民族은 日帝下에서 外勢依存主義者와 外勢에서 벗어나기 爲한 民族解放鬪爭은 果敢히 展開되었던 것이다. 眞正한 愛國鬪士들은 끝까지 屈함없이 大衆들 속에서 大衆들을 向하여 大衆과 같이 生活하고 大衆들을 새로운 鬪爭의 길로 引導하였던 것이다. 一九三○年代의 民族解放鬪爭은 一九二○年代의 平和的 方法으로부터 暴力的 方法으로 轉換하였다. 이것은 決定的 岐路에 直面한 우리 民族의 必然的인 鬪爭綱領이었다. 元山勞動者總罷業을 出發點으로 新興炭鑛勞動者抗爭, 巖泰農民抗爭 등등 民族解放鬪爭의 基本勢力인 勞動者 農民들은 到處에서 日帝와 親日派, 民族反逆者들을 反對하여 暴力으로 抗拒하여 나섰다.

이러한 鬪爭의 불길은 靑年學生들에게 影響을 주어 드디어 光州學生事件을 暴發시켰고, 全國的으로 波及되어 우리 靑年學生들의 團結된 民族解放鬪爭力量을 內外에 示威하였다. 祖國의 獨立과 自由를 爲한 愛國的 先進鬪士들은 그 鬪爭隊伍를 整備하여 海外에서도 鬪爭했다. 萬若 解放以後에 李承晩이 外勢와 信託하지 않고 民族的 立場을 固守했더라면 오늘의 이 꼴은 免했을 것이요. 民族史는 전진되었을 것이다. 그는 수많은 愛國志士를 暗殺하고 善良한 百姓들을 罪없이 虐殺했고, 社會를 暗黑天地로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 民族은 죽지 않았다. 十五年 李承晩 「테로統治」下에 滿載된 矛盾과 憤怒는 四⋅一九에 그를 打倒하고 말았다. 解放前後하여 外勢와 그 走狗를 反對하는 擧族的 鬪爭行程에서 靑史를 아름답게 빛낼 수 있는 無數한 紀錄을 남겨 놓았다. 우리 民族은 이와 같이 波? 많은 試鍊과 苦痛을 克服하면서 不屈의 意志로 武裝된 愛國先烈의 有形無形의 指導下에 民族的 意志는 연마되고 育成되었다. 우리 민족이 外勢에 依存되고 있다는 事實은 곧 民族的 意識의 박약때문이 아니고 八⋅一五解放이 民族自主的 主張에서가 아니라 他方에 依한 고요한 선물이었다는 事實과 解放後 歷史的 社會的 與件이 必然的으로 混亂을 造成하였고, 外勢의 本質을 잘못 認識한데서 온 것이다.

그러므로 日帝時代에 온갖 手段으로 우리의 獨立鬪爭을 反對하고 獨立鬪士를 무자비하게 虐殺하던 親日官僚輩가 解放後 얼마 안 되어 外勢依存勢와 結託하여 고개를 치켜들고 또다시 大衆앞에 君臨했다는 事實은 그들이 무엇으로 辨明할 수 있을 것인지 우리 民族은 鬪爭을 通하여 세계 어느 民族에게도 뒤 떨어지지 않는 우수한 民族이다. 그렇기 때문에 民族內部의 外勢依存勢力을 斷乎히 淸算하여 團結만 한다면 自身의 運命을 自身이 解決할 수 있는 充分한 力量을 가지고 있다. 萬若 力量이 없다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그들의 利己主義의 充足을 爲하여 星座의 꿈을 버리기 싫은 者일 것이다.

이 生生한 歷史的 敎訓은 外勢依存은 亡國之道란 것과 어떠한 形態의 外勢介入도 斷乎排擊함으로써만이 民族自主的 平和統一이 可能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現實的 歷史條件下에서 民族自主的 平和統一의 길만이 統一을 造成할 수 있는 唯一의 길인 것을 알았다. 이것만이 南北同胞가 다같이 首肯할 수 있기 때문이다. 統一을 눈앞에 두고 참되게 우리 民族의 良心에 돌아가서 反省한다면 南이니 北이니 하여 政治的 思想的으로 是非할 것이 못된다. 南에서 잘산다고 하여 北에서 싫어할 수 없으며, 北에서 經濟發展이 잘된다고 하여 南에서 시기하거나 감출 必要가 없다고 본다. 北도 내 同胞임에는 틀림없는 것이다.

南北에서 무엇인가 제 各其建設해 놓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眞正우리 同胞의 것 外에 아무것도 아니다. 統一후의 우리의 國家的 富가 됨에는 틀림없다. 전번 來韓한 美國의 「울프」 博士의 對政府經濟에 關한 報告에도 後進社會일수록 自律的인 노력에 依한 自立經濟의 開拓이 必要하다고 力說했고, 政府의 五個年計劃을 批判하여 悲觀的인 結論을 내리었고, 南北交易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奇異한 現象이라고 까지 말하였다.

그는 또 「當分間 國土分斷이 持續할 것이라는 假想下에서도... 서로 競爭的인 産業의 過大施設을 피하기 爲하여... 特別한 南北通商交易을 고려하는 것이 經濟的으로 有益할 뿐만 아니라 또한 可能性이 농후하다」고 指摘한다. 이와 같은 말을 萬若 革新系 人士가 「울프」博士以前에 主張한 사람이 있었더라면 政府와 保守政客들은 무어라고 말했을 것인지 참으로 아슬하다. 이렇듯 萬人에게 平等해야 할 法律 自由 言論이 어떤 特定 個人은 마음대로 自由가 保障되고 他個人에는 嚴格히 容恕될 수 없는 한심한 꼴은 정말 憤怒의 的이 되지 않을 수 없다.

南에서 慶事가 있으면 北에서도 기뻐해야 하며, 北에서 슬픈 일이 있으며 南에서 울어주어야 하는 것이 同胞의 常道가 아니겠는가. 統一의 그날에는 十六年間의 懷抱와 기쁨을 父母⋅兄弟⋅妻子間에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무슨 政治的 利害關係가 存在하며 不信의 感情이 있을 수 있겠는가? 政府는 南北의 大衆이 서로 接近할 수 있는 길을 터놓고 다음에는 더 發展시켜 南北間에 統一을 論議해야 한다고 본다.

勿論 當場 統一이 되었으면 오죽 좋으랴마는 十五年間의 外國아닌 外國으로 存在했다는 事實에서 許多한 難關이 있으리라고 본다. 그런 意味에서 統一에의 段階를 가장 쉬운데서부터 出發하여 漸次 어려운 段階로 發展시켜야 한다고 본다. 民間團體의 交流 卽 書信往來에서부터 經濟文化交流, 二段階에 가서 南北間의 두 政權이 統一的 見地에서 經濟發展計劃 統一後의 諸般豫備事業의 進行, 三段階는 最後 段階로서 協議에서 民主主義的 選擧法의 제정, 諸 自由의 保障, 自由選擧에 對한 保障, 選擧를 爲한 南北 어느 곳이나 選擧運動의 自由가 保障이 되어야 한다.

무엇 때문에 民族自主的인 位置를 떠나 中立化라야 하고, 中立化가 아니면 안된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中立化를 시켜 주시오」하고 누구에게 呼訴할 作定이며 우리의 統一은 中立化로 하겠다고 누구에게 主張해야 하는지? 우리 民族問題를 蘇聯에게 가져가서 中立化로 해주시오 할 作定인지? 美國이나 英國이 生覺하는 方向의 民主主義가 되면 오죽 좋겠소마는 自由民主主義가 될지 民主社會主義가 될지는 自由民主主義者나 民主社會主義者가 決定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總選擧에서 決定하는 것이다. 

그러면 總選擧때 中立化를 선거 綱領으로 내걸고 選擧는 할 수 있을지언정 統一前에 통일의 전제조건은 될 수 없다. 우리는 民族自主的 立場에서 통일하려는 것이지 中立化통일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中立化도 오지리式이니 서서등 여러 가지 形態가 있는데 公式的으로 統一前에 「나는 中立化통일을 하겠다」고 내어 걸 必要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므로 統一前에 中立化를 내어 건 것은 中立化가 아니면 못하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지 以北에서 共産式 統一이 아니면 못하겠다고 한다면 中立化를 主張하는 사람은 中立化가 안되니 통일 안하겠다고 主張해야 될 것이 아니냐 말이다. 그러므로 통일을 念願하는 사람은 모두 이 絶對原則인 民族自主的 立場에 團結하여야 하며 統一戰線을 分裂시키는 作用을 삼가야 한다.

世界歷史上 民族解放鬪爭을 할 때 自主的 位置를 떠나 나는 어떤 式의 解放이라야한다고 民族解放前에 主張한 例를 보지 못했다. 大衆에게 强要할 수 없음과 마찬가지로 어떤 制度나 思想을 他國에 强要할 수도 없고 以南이 以北, 以北이 以南에도 斷乎 强要할 수 없다. 萬若 强要한다면 그 自體가 民主主義가 아니다. 그것은 오직 百姓 全體의 意思에 依해서만이 決定되고 百姓들만이 가지는 權利이다.

[민족일보] 1961년 5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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