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통일의 전진을 위하여

=남북학생회담을 남북정치회담으로 생각하는 집권당의 위대한 무식=

 
 

이른바 「스티븐슨」결의안이 통일에 관한 좌표를 적어도 6⋅25사변 이전의 선까지 회복시킨 것이라면 민통련 학생들의 남북접촉호소와 그에 대한 북한측의 즉각적인 반응은 기왕의 남북협상을 연상시키는 상태까지 문제를 추궁한 것으로써 요즘 우리 주변의 통일문제를 에워싼 동태는 실로 괄목할만한 것이다. 

이제 바야흐로 통일문제는 모색의 단계에서 구체적 실천의 단계로 옮아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통일문제가 현실적 실천의 단계에 옮아졌다하더라도 아직은 긴장의 도가니에서 헤어날 줄을 모르는 국제적 여건과 또한 황량하기만한 우리들의 주변을 살펴볼 때, 실로 일모도원의 감이 적지 않고 그 속에서도 특히 통일에의 이러한 전진을 앞에 놓고 연출하는 각계각층의 초점을 잃은 혼미야말로 더욱 답답하고도 서글픈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첫째로 우리가 서글프게 생각하는 것은 민통련 학생들의 남북협상요구에 대하여 현역 정치인들이 취하는 인식태도의 소박하고도 유치함이다. 무릇 협상의 성질에는 정치적인 것과 비정치적인 것이 있다. 

학생들이 학생이라는 독특한 신분을 배경으로 통일문제에 앞장서자는 그 태도는 그들이 내건 표어나 기치의 여하간에 그것은 순수히 비정치적인 것이요. 따라서 여기에 어떠한 정치적 선입견을 가미하여 지지요 반대요 할 성질이 것이 아니라, 현역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마땅히 권장해야 할 성질의 것이다. 공연히 그를 위험시하거나 부당하다고 단정하여 극구 훼방하는 것은 그들이 못할 일을 앞장서 - 개척하는 학생들의 고노를 치사하지는 못할망정 일국의 위정자로서 또는 정치인으로서 취할 태도가 아님은 물론이요. 혹은 꼬리에 붙어서 한목보자는 식의 태도는 더욱 취할 행동이 아니다. 

학생들의 요구는 어디까지나 학생적인 것, 학생의 것, 따라서 비정치적인 것으로 대하여 그를 통일문제라는 광범하고도 거족적이며, 동시에 차원이 몇 겹이고 겹쳐있는 복잡한 연관성 속의 하나로 이해함이 타당한 것이요. 그를 적대시하거나 또는 그를 불가침의 「타브」로 생각하는 것은 정치인 스스로의 자격상실을 의미하는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둘째로 지적해야 할 것은 통일문제에 관한 정부여당의 태만이다. 무릇 통일문제는 아무리 순수 민족적인 문제라 하더라도 미소냉전을 도외시하고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다. 

따라서 이 문제해결의 중요 책임은 적어도 민주적인 존재로 자처하는 정부가 있는 한, 그가 선도 서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문제이다.

그것은 남북의 경제나 문화교류와 같은 비정치적인 것으로 직접 구체적인 통일협상에 이르는 정치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정부 여당의 주요책임이다.

더구나 그를 호소하는 국민의 소리가 방방곡곡에서 팽배하면 할수록 시정의 제일과제가 아니면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여당의 태만은 무엇인가? 통일문제를 연구하는 것도 좋고, 중립제국이나 유엔에 대하여 한국을 재인식시키는 외교활동을 적극 추진하는 것도 좋고, 혹은 통일에 대비하여 경제건설을 서두르는 것도 좋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 현실적 실천단계에 들어섰다고 할 오늘날, 정부여당으로서는 국내외 정세에 발을 맞춘 어떠한 구체적인 복안을 가졌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뛰어나게 현실감각을 토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서 시대적 조류에 입각한 것이 아닌 한 대중립외교나 유엔외교를 아무리 강력하게 추진한다 하더라도 시대 역행적인 것으로는 아무 가치도 없다는 상식이하의 상식이 전제가 된다.

공연히 흔해빠진 안이한 변해로써 유엔감시하니 국제감시하니 하는 형식론만 되풀이하기에 국민은 납득하지 않는 것이다. 만일 김일성 정권이 「스탈린주의」정권이기에 적어도 「고물카」선까지는 자유화해야만 한다면 그것을 주장하든지 또는 통일에는 남북한의 화해가 필요하기에 국가보안법 따위는 크나큰 방해물이라고 하면 그런 것은 솔선 철폐하든지 하는 적극적이면서도 합리적인 통일방안이나 태도가 모든 국민은 물론이요, 적어도 냉전을 해소하려고 애쓰는 중립제국에 납득이 가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여당은 도리어 강력입법이요, 자유민주도 아닌 통일은 불원이요 하는 따위의 시대 역행적인 길만 걸으려 하고 있다.

이러고서는 민주당 정권을 가리켜 통일을 희구하는 정권이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기에 정부가 할 일을 학생들이 스스로 선두에 서는 것이 아닌가?


셋째, 혁신정당에 묻는다.

여태까지 국민들은 혁신세력이야말로 통일을 가장 갈구하는 세력으로 간주하여 왔을 뿐만 아니라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여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구체적으로는 무엇을 하였는가? 무슨 협의회를 만들고 무슨 성명서를 발표하고 하는 따위로 통일운동을 전개하였다고 장담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나라 혁신세력의 비극이다. 

정당의 임무가 정권의 장악에 있는 것은 물론이지만 또한 학생들이 주장한 「남북학도회담」을 적극 찬성한다고 한다면 그의 실현을 위하여 구체적인 노력이 마땅히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속수무책으로 파벌싸움에만 정력을 기울이고 있는 현상은 무엇인가? 

동시에 정부여당의 비를 규탄하여 소수파의 의견을 시정상에 반영하는 것도 더욱 큰 임무가 아닐 수 없다. 무엇 때문에 정부 및 각 정당의 연석회의 등을 개최하여 통일문제의 전진에 앞장서지 못하는가?

이제 통일문제는 가능성의 모색에서 구체적인 실천의 제일보를 내어 디딜 단계에 들어간다. 물론 그렇다고 문제가 쉽사리 또는 빠른 시일 내에 성취해결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를 위한 노력은 꾸준히 그리고 용감하게 계속되지 않으면 안 된다. 

뿐만 아니라 문제가 벅차고 긴급하면 할수록 손쉬운 가능한 일부터 한걸음 한걸음 내어 디디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통일문제를 앞에 놓고 빚어내는 여러 가지 혼란의 정리 및 그 전진을 위하여 우선 그 실마리를 말해두는 바이다.

사설/ 통일의 전진을 위하여

사설/ 통일의 전진을 위하여 [민족일보 이미지]
사설/ 통일의 전진을 위하여 [민족일보 이미지]

社說

統一의 前進을 爲하여

=南北學生會談을 南北政治會談으로 생각하는 執權黨의 偉大한 無識=

 

이른바 「스티븐슨」決議案이 統一에 關한 座標를 적어도 六⋅二五事變以前의 線까지 回復시킨 것이라면 民統聯 學生들의 南北接觸呼訴와 그에 對한 北韓側의 卽刻的인 反應은 旣往의 南北協商을 聯想시키는 狀態까지 問題를 追窮한 것으로써 요즘 우리 周邊의 統一問題를 에워싼 動態는 實로 刮目할만한 것이다.

이제 바야흐로 統一問題는 摸索의 段階에서 具體的 實踐의 段階로 옮아졌다고 해도 過言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統一問題가 現實的 實踐의 段階에 옮아졌다하더라도 아직은 緊張의 도가니에서 헤어날 줄을 모르는 國際的 與件과 또한 荒凉하기만한 우리들의 周邊을 살펴볼 때 實로 日暮途遠의 感이 적지 않고 그 속에서도 特히 統一에의 이러한 前進을 앞에 놓고 演出하는 各界各層의 焦點을 잃은 昏迷야말로 더욱 답답하고도 서글픈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첫째로 우리가 서글프게 생각하는 것은 民統聯 學生들의 南北協商要求에 對하여 現役 政治人들이 取하는 認識態度의 素朴하고도 幼稚함이다. 무릇 協商의 性質에는 政治的인것과 非政治的인 것이 있다. 學生들이 學生이라는 獨特한 身分을 背景으로 統一問題에 앞장서자는 그 態度는 그들이 내건 標語나 旗幟의 如何間에 그것은 純粹히 非政治的인 것이요. 

따라서 여기에 어떠한 政治的 先入見을 加味하여 支持요 反對요 할 性質이 것이 아니라, 現役 政治人의 立場에서는 마땅히 勸獎해야 할 性質의 것이다. 空然히 그를 危險視하거나 不當하다고 斷定하여 極口 毁謗하는 것은 그들이 못할 일을 앞장서 - 開拓하는 學生들의 苦勞를 致謝하지는 못할망정 一國의 爲政者로서 또는 政治人으로서 取할 態度가 아님은 勿論이요. 或은 꼬리에 붙어서 한목보자는 式의 態度는 더욱 取할 行動이 아니다. 

學生들의 要求는 어디까지나 學生的인 것, 學生의 것, 따라서 非政治的인 것으로 對하여 그를 統一問題라는 廣汎하고도 擧族的이며, 同時에 次元이 몇 겹이고 겹쳐있는 複雜한 聯關性 속의 하나로 理解함이 妥當한 것이요. 그를 敵對視하거나 또는 그를 不可侵의 「타브」로 생각하는 것은 政治人 스스로의 資格喪失을 意味하는 以外에 아무것도 아니다.


둘째로 指摘해야 할 것은 統一問題에 關한 政府與黨의 怠慢이다. 무릇 統一問題는 아무리 純粹民族的인 問題라 하더라도 美蘇冷戰을 度外視하고서는 解決될 수 없는 問題이다. 따라서 이 問題解決의 重要 責任은 적어도 民主的인 存在로 自處하는 政府가 있는 限, 그가 先導서서 解決하지 않으면 안 될 問題이다.

그것은 南北의 經濟나 文化交流와 같은 非政治的인 것으로 直接 具體的인 統一協商에 이르는 政治的인 것에 이르기까지 政府 與黨의 主要責任이다.

더구나 그를 呼訴하는 國民의 소리가 坊坊曲曲에서 澎湃하면 할수록 施政의 第一課題가 아니면 안 된다. 그럼에도 不拘하고 政府與黨의 怠慢은 무엇인가? 統一問題를 硏究하는 것도 좋고, 中立諸國이나 유엔에 對하여 韓國을 再認識시키는 外交活動을 積極 推進하는 것도 좋고, 或은 統一에 對備하여 經濟建設을 서두르는 것도 좋다.

그러나 問題는 이제 現實的 實踐段階에 들어섰다고 할 오늘날, 政府與黨으로서는 國內外 情勢에 발을 맞춘 어떠한 具體的인 腹案을 가졌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뛰어나게 現實感覺을 土臺로 하지 않으면 안될 것으로서 時代的 潮流에 立脚한 것이 아닌 限 對中立外交나 유엔外交를 아무리 强力하게 推進한다 하더라도 時代 逆行的인 것으로는 아무 價値도 없다는 常識以下의 常識이 前提가 된다.

空然히 흔해빠진 安易한 辨解로써 유엔監視下니 國際監視下니 하는 形式論만 되풀이 하기에 國民은 納得하지 않는 것이다. 萬一 金日成 政權이 「스탈린主義」政權이기에 적어도 「고물카」線까지는 自由化해야만 한다면 그것을 主張하든지 또는 統一에는 南北韓의 和解가 必要하기에 國家保安法 따위는 크나큰 妨害物이라고 하면 그런 것은 率先 撤廢하든지 하는 積極的이면서도 合理的인 統一方案이나 態度가 모든 國民은 勿論이요, 적어도 冷戰을 解消하려고 애쓰는 中立諸國에 納得이 가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에도 不拘하고 政府 與黨은 도리어 强力立法이요, 自由民主도 아닌 統一은 不願이요하는 따위의 時代 逆行的인 길만 걸으려 하고 있다.

이러고서는 民主黨 政權을 가리켜 統一을 希求하는 政權이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기에 政府가 할 일을 學生들이 스스로 先頭에 서는 것이 아닌가?


셋째, 革新政黨에 묻는다.

여태까지 國民들은 革新勢力이야말로 統一을 가장 渴求하는 勢力으로 看做하여 왔을 뿐만아니라 적어도 外形上으로는 가장 强力하게 主張하여 온 것도 事實이다. 그러나 果然 具體的으로는 무엇을 하였는가? 무슨 協議會를 만들고 무슨 聲明書를 發表하고 하는 따위로 統一運動을 展開하였다고 壯談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나라 革新勢力의 悲劇이다. 

政黨의 任務가 政權의 掌握에 있는 것은 勿論이지만 또한 學生들이 主張한 「南北學徒會談」을 積極贊成한다고 한다면 그의 實現을 爲하여 具體的인 努力이 마땅히 있어야 함에도 不拘하고 束手無策으로 派閥싸움에만 精力을 기울이고 있는 現狀은 무엇인가? 同時에 政府與黨의 非를 糾彈하여 小數派의 意見을 施政上에 反映하는 것도 더욱 큰 任務가 아닐 수 없다. 무엇 때문에 政府 및 各 政黨의 連席會議 等을 開催하여 統一問題의 前進에 앞장서지 못하는가?

이제 統一問題는 可能性의 摸索에서 具體的인 實踐의 第一步를 내어 디딜 段階에 들어간다. 勿論 그렇다고 問題가 쉽사리 또는 빠른 時日內에 成就解決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를 爲한 努力은 꾸준히 그리고 勇敢하게 繼續되지 않으면 안 된다. 

뿐만아니라 問題가 벅차고 緊急하면 할수록 손쉬운 可能한 일부터 한걸음 한걸음 내어 디디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統一問題를 앞에 놓고 빚어내는 여러 가지 混亂의 整理 및 그 前進을 爲하여 우선 그 실마리를 말해두는 바이다.

[민족일보] 1961년 5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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