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논단

제2공화국에의 항의

 

= 4.19부상자의 한사람으로서=

도대체 잘된 것이 무엇하나 있느냐

 

한동학

 

4.19혁명의 성과는 도시 무엇인가? 도처에서 들려오는 민생고의 하소연은 고사하고 혁명이 그렇게도 그 제거를 다짐한 부패나 비원부정은 좀채로 제거되지 않은 채, 오히려 역행현상까지도 산견한다. 이것은 혁명의 주체가 권력의 담당자가 되지 아니하고 기성정당에게 양보하여 소위 고요한 혁명을 바랐던 때문인 것이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지금의 현상은 한마디로 말하여 너무나 심하다. 실로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개혁되었느냐는 것을 반문하고 싶어진다.

뿐만 아니라 난동을 방지한다는 이름밑에 데모규제법이라는 것을 구상하여 일절의 평화적인 데모조차 불가능케 하려 할뿐만 아니라, 김일성만세를 부르는 사람을 잡아 가둘 법조차 미비하다는 미명아래 일절의 창의적인 또는 진보적인 운동을 억제하며 나아가서 모든 입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말문을 닫게 할 국가보안법의 강화를 획책하고 있는 형편에 이르러서는 어안이 벙벙하여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혁명은 결코 기성정치인을 위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님은 물론 아니다. 오직 국가와 민족의 더욱 강건한 발전을 위하여 낡고 썩은 정권을 타도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오늘 날의 이 현상은 이게 무슨 꼴인가? 일이 있을 때마다 정부가 취하는 태도란 실로 목불인견이라고 밖에는 할 수가 없다.

며칠 전만하더라도 북괴가 유엔정치위원회에 참석을 초청받게 되었다는 보도를 듣고서 뜻있는 사태의 돌변에 놀라며 한켠으로는 정부의 무위무능과 사대근성을 통탄할 때, 오직 정부만이 대승리요, 대환영이요하며 거의 자화자찬하다시피하는 모습이란 실로 가관이라기보다 요지경을 보는 느낌이었다.

이러한 일은 비단 이번만이 아니라 과거에도 왕왕 있었던 일로서 우리는 장정권의 사물판단하는 상식조차 의심하게끔 되고 있다. 가까운 예로 자주성이란 하나도 없이 환율을 한꺼번에 1300대 1로 올려서 물가를 거의 4할이나 앙양시켜놓고서도 물가를 올리지 않았다느니 또는 한나라의 국민으로서 그 인권이나 주권?호상 당연히 주장해야할 한⋅미행정협정도 「데모」를 하고 연설을 하며 ?민?동화하자. 한⋅미우호에 어떻다는 등으로 미국을 변명하는 조는 이것이 과연 한국의 정부냐는 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 사고방식에 있어서 어처구니없는 그들은 또한 그 치적에 있어서도 국민이 실망을 가중시키고 있다. 「케네디」도 양언하다시피 새로 수립된 정부의 평가는 성립 3개월간의 행적으로 좌우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장정권은 3개월은 고사하고 집권 8개월에 무엇을 하였는가?

언필칭 내지는 국토개발사업만 하더라도 그 무계획, 무체계가 식자들의 냉소를 사고 있는 것은 고사하고 예사 있는 조림사업이나 수리사업 등을 종합하여 이것이 국토건설사업임네 하는 따위는 더 말할 것 없고, 심지어 시가보다도 비싼 잉여농산물의 현물가격부로 도리어 노무자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 고작이다. 나는 ?이 매거하면 한이 없는 그 행정관리의 조?와 정책의 빈곤, 사고의 퇴폐, 그 위에 정실로 문란한 인사정책 등을 구태여 꼬집어서 정부의 흠을 나열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오직 여기 한마디 충고하고 싶은 것이 있다. 즉 현실을 있는 것 그대로 보고 아울러 언제나 자기의 마음과 능력을 인식 자각하라는 것이 그것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야 말로 사고방식에 있어서 민주적 태도라면 장총리나 기타 집권자들은 그 한국의 민주화를 위한 첫발자국으로서 자신들의 사물관찰의 태도부터 민주화하라는 것이다.

돌연히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처럼 허언하는 것은 시정배의 상술일지는 모르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임 맡은 정부가 할 일이 아님은 물론이거니와 오른 것을 있다하며 있는 것을 없다하는 따위는 아무리 선의로 해석하더라도 인간이하의 일이다. 이러한 비겁한 행동은 결국 자기네의 행동을 합리화하며, 그 권력을 더 좀 장기적으로 쥐고 있고 싶은데서 오는 유추한 행동임이 누가 모르랴마는 이러한 행동이 다름이 아니라 집권자들이, 그것도 보통집권자가 아니라 혁명의 뒷처리를 맡고 한국민주화의 대임을 자랑하면서 그 운명을 개척하려는 집권자들이 취하는 행동이니 슬픈 일이다.

때는 바야흐로 위기를 예감시키고 있다. 만일 정부가 이대로만 간다면 언제 어디서 4.19의 민권혁명을 저주하는 새로운 민중운동이 그야말로 민주주의를 저주하면서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이것은 실로 참을 수 없는 일이다. 과연 수수방관만 할 수 있겠는가. 위정자 제공에게 맹성을 촉구하는 바이다.

(사월혁명부상단최고위원)

독자논단/ 제2공화국에의 항의

독자논단/ 제2공화국에의 항의 [민족일보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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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者論壇

 
第二共和國에의 抗議

 

= 四.一九負傷者의 한사람으로서=

도대체 잘된 것이 무엇하나 있느냐

 

韓東學

四⋅一九革命의 成果는 도시 무엇인가? 到處에서 들려오는 民生苦의 하소연은 姑捨하고 革命이 그렇게도 그 除去를 다짐한 腐敗나 非遠不正은 좀채로 除去되지 않은 채, 오히려 逆行現象까지도 散見한다. 이것은 革命의 主體가 權力의 擔當者가 되지 아니하고 旣成政黨에게 讓步하여 所謂 고요한 革命을 바랐던 때문인 것이지만, 그렇다하더라도 只今의 現象은 한마디로 말하여 너무나 甚하다. 實로 무엇이 變하고 무엇이 改革되었느냐는 것을 反問하고 싶어진다.

뿐만 아니라 亂動을 防止한다는 이름밑에 데모規制法이라는 것을 構想하여 一切의 平和的인 데모조차 不可能케하려할뿐만 아니라, 金日成萬歲를 부르는 사람을 잡아 가둘 法조차 未備하다는 美名아래 一切의 創意的인 또는 進步的인 運動을 抑制하며 나아가서 모든 입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말문을 닫게 할 國家保安法의 强化를 劃策하고 있는 形便에 이르러서는 어안이 벙벙하여 말문이 막힐 地境이다.

革命은 決코 旣成政治人을 爲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님은 勿論아니다. 오직 國家와 民族의 더욱 强健한 發展을 爲하여 낡고 썩은 政權을 打倒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오늘 날의 이 現象은 이게 무슨 꼴인가? 일이 있을 때마다 政府가 取하는 態度란 實로 目不忍見이라고 밖에는 할 수가 없다.

며칠 前만하더라도 北傀가 유엔政治委員會에 參席을 招請받게 되었다는 報道를 듣고서 뜻있는 事態의 突變에 놀라며 한켠으로는 政府의 無爲無能과 事大根性을 痛嘆할 때 오직 政府만이 大勝利요, 大歡迎이요하며 거의 自畵自讚하다시피하는 모습이란 實로 可觀이라기보다 瑤池鏡을 보는 느낌이었다.

이러한 일은 비단 이번만이 아니라 過去에도 往往있었던 일로서 우리는 張政權의 事物判斷하는 常識조차 疑心하게끔 되고 있다. 가까운 例로 自主性이란 하나도 없이 換率을 한꺼번에 千三百對一로 올려서 物價를 거의 四割이나 昻揚시켜놓고서도 物價를 올리지 않았다느니 또는 한나라의 國民으로서 그 人權이나 主權?護上 當然히 主張해야할 韓⋅美行政協定도 「데모」를 하고 演說을 하며 ?民?動化하자. 韓⋅美友好에 어떻다는 등으로 美國을 辨明하는 調는 이것이 果然 韓國의 政府냐는 感을 갖게 하기에 充分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 思考方式에 있어서 어처구니없는 그들은 또한 그 治績에 있어서도 國民이 失望을 加重시키고 있다. 「케네디」도 揚言하다시피 새로 樹立된 政府의 評價는 成立 三個月間의 行績으로 左右된다는 것이 事實이라면 張政權은 三個月은 姑捨하고 執權八個月에 무엇을 하였는가?

言必稱내지는 國土開發事業만하더라도 그 無計劃, 無體系가 識者들의 冷笑를 사고 있는 것은 姑捨하고 例事있는 造林事業이나 水利事業 等을 綜合하여 이것이 國土建設事業임네하는 따위는 더 말할 것 없고, 甚至於 市價보다도 비싼 剩餘農産物의 現物價格付로 도리어 勞務者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 고작이다. 나는 ?이 枚擧하면 恨이 없는 그 行政管理의 租?와 政策의 貧困, 思考의 頹廢, 그 위에 精實로 紊亂한 人士政策 等을 구태여 꼬집어서 政府의 흠을 羅列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오직 여기 한마디 忠告하고 싶은 것이 있다. 즉 現實을 있는 것 그대로 보고 아울러 언제나 自己의 마음과 能力을 認識自覺하라는 것이 그것이다.

現實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야 말로 思考方式에 있어서 民主的 態度라면 張總理나 其他 執權者들은 그 韓國의 民主化를 위한 첫발자국으로서 自身들의 事物觀察의 態度부터 民主化하라는 것이다.

突然히 不可能한 것을 可能한 것처럼 虛言하는 것은 市井輩의 商術일지는 모르나 國民의 生命과 財産을 委任맡은 政府가 할 일이 아님은 勿論이거니와 오른 것을 있다하며 있는 것을 없다하는 따위는 아무리 善意로 解釋하더라도 人間以下의 일이다. 이러한 卑怯한 行動은 結局 自己네의 行動을 合理化하며, 그 權力을 더 좀 長期的으로 쥐고 있고 싶은데서 오는 幼椎한 行動임이 누가 모르랴마는 이러한 行動이 다름이 아니라 執權者들이, 그것도 普通執權者가 아니라 革命의 뒷處理를 맡고 韓國民主化의 大任을 자랑하면서 그 運命을 開拓하려는 執權者들이 取하는 行動이니 슬픈 일이다.

때는 바야흐로 危機를 叡感시키고 있다. 萬一 政府가 이대로만 간다면 언제 어디서 四.一九의 民權革命을 詛呪하는 새로운 民衆運動이 그야말로 民主主義를 詛呪하면서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이것은 實로 참을 수 없는 일이다. 果然 袖手傍觀만 할 수 있겠는가. 爲政者 諸公에게 猛省을 促求하는 바이다.


(四月革命負傷團最高委員)

[민족일보] 1961년 5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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