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革命) 한 해가 지났는데...

 

노다지의 맥(脈)을 더듬어서

오늘도 삶을 위(爲)해 「레일」로 10리(哩) 샛길로 10리(哩)

인간(人間)에서 격하(格下)된 두더지 생활(生活)

 

하루 여섯 번 - 마을의 변두리를 병풍처럼 둘러친 뫼와 뫼뿌리에 숨은 들 고양이 울음처럼 「사이렌」의 앙칼지고 구슬픈 여음이 긴 꼬리를 끌며 마을을 칭칭 휘감는다.

정오와 밤의 통금 예비 및 통금시간 말고도 여덟 시간의 간격을 두고 울리는 그 소리들은 수천 명의 광부들을 존엄한 「인간」의 위치로부터 「두더지」로 격하시키기 위해 육중한 암층(岩層)밑 검고 누른 「노다지」의 맥박이 들리는 곳마다 바위를 부수고 기어들게 한다.

「헬멧」의 갱내모(坑內帽)와 보안등(保安燈)의 푸른 「카바이드」 기운만이 「인간 두더지」들의 몸뚱아리를 갱내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가려주는 유일한 「무기」인 것이다.

장성(長省) 읍내서 오(五)리 가량 떨어진 금천 제 1갱을 살펴보자! 여기저기 천장으로부터 물방울이 떨어지는 「터널」은 소름이 오싹 일도록 조용하다. 아이들 주먹만 한 조약돌 한 개를 던져도 집채만 한 바위가 떨어지는 것 같은 환각이 치솟을 정도로 요란스런 소리가 울린다. 그런가하면 눈앞 「레일」을 굴러가는 운탄차(運炭車)의 「트렐러」 소리가 마치 수십 리 밖 하늘에서 천둥치는 소리 같기도 하다.

그런 「레일」을 따라 십리쯤 들어 간 곳에서부터 좌우로 큰 나무의 가지모양 뻗어 들어간 수십 개의 샛길이 나온다. 이 샛길을 따라 다시 십리 안팎 기어들어간 곳에서 어둠속에 총부리처럼 번득이는 무수한 눈알들을 볼 수 있다.

바로 「두더지」들의 얼굴이 그 캄캄한 장막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톡톡 톡톡 바위를 쪼아대고 검은 석탄덩어리를 뜯어대는 흡사 「솔로몬」왕의 동굴에 기어든 최초의 탐험가처럼 마디마디 신경을 얼어붙게 만든다.

말이 쉬워 「레일」로 십리- 샛길로 십리지만, 샛길 가운데쯤부터는 허리를 꾸부정하고 절반쯤 기어들어가야 한다. 그 샛길 좌우에는 또 무수한 샛길들이 있어 무릎걸음으로나 드나들게 마련이다.

글자 그대로 「미로(迷路)」다 - 「칸테라」 불은 이렇게 깊은 곳에 들어 갈수록 푸른빛이 더욱 위세를 떨친다.

백 촉 전등이 문제 아니다. 노련한 「두더지」들은 이 불빛이 없어도 그 위험하고 불편스런 갱내를 자기 집 안방 다니듯 한다. 그러나 익숙하지 못한 신출내기 「두더지」들은 「칸테라」 불빛이 없이는 한발자국도 꼼짝 못한다. 어느 틈에 온 몸이 흠씬 땀에 젖는다. 땀이 겹겹이 입은 바깥옷까지 배어 나온다.

그러나 신출내기들은 땀에 젖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그보다도 더 큰 공포가 더 절박한 위험의 환각이 그들의 정신을 송두리째 뺏고 마는 것이다. 수명(壽命)이 절로 줄어드는 이런 생활도 달포가 지나면 어느덧 익숙해진다.

이래서 수천 명의 「집시」군상과 같은 우리 땅의 「가난」이라는 이름의 죄인(?)들이 그 서글픈 유랑의 괴나리봇짐을 광산촌에 풀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계속)

김재형(金載亨) 기(記)


(사진 = 「헬멧」을 쓴 광부들이 보안등(保安燈)을 앞세우고 갱내로 들어가는 광경)

태백산맥(太白山脈)의 숨결 ⑦

혁명(革命) 한 해가 지났는데...

태백산맥(太白山脈)의 숨결 ⑦ [민족일보 이미지]
태백산맥(太白山脈)의 숨결 ⑦ [민족일보 이미지]

[민족일보] 1961년 5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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