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부상학생의 소회


죽은 동료와 백성에 미안

..... 나는 이 꼴 볼려고 싸우진 않았다..........

 

건국대 2학년(22세) 수도의대 부속병원 809호실

박인병

 

4.19혁명에서 우리가 바르게 인식해야 할 일은 민주당이 혁명의 주동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전 국민의 힘으로 성취한 혁명의 제1단계에서 제2단계의 과업을 민주당에게 위임한 것이다. 그런데 이건 혁명정부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만하고 있으니 혁명이라는 말을 하고 싶지도 않다.

무엇이 혁명인가? 각성 못한 국회의원 ?악한 행동거지는 또한번 국민의 심판을 받기에 알맞고, 부정축재의 처리는 하지도 않으니 부정축재자들과 장정권과는 일가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이정권 때보다 나아진 것은 고사하고 훨씬 못해져가니 처음에 너무 민주당을 믿어버린 것이 잘못인 것 같다. 

입법부도 사법부도 행정부도 자유당 때보다 잘하는 것이 있다면 한번 내세워보라. 혁명정부라는 것이 이렇게 무능하고 소극적이며 과단성이 없고서야 어찌 혁명을 완수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이런 무능한 정권이 오래 계속될 리가 없다. 현재 나날이 높아가는 불만은 반드시 또 폭발할 것이다.

야에 있을 때와 어쩌면 그렇게 달라졌는지 납득이 안 되는데 여론을 잘 받아들여 해나가려는 자세를 일년이 걸려도 세울 수 없었다는 것은 정신을 안 차린 증거가 아니겠는가. 정치는 몇 사람이 감투를 쓰기 위해서 또 도둑놈이 예전보다 더 잘 먹고 잘 입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집이 아니면 정치가 안 되는 법이 없고, 외국산의 고급 자동차를 타고 다니지 않아도 정치는 된다. 자유당에게 심한 박해를 입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공로상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우리가 4.19때 「데모」의 선두에 선 것은 이런 꼴을 보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니다. 사방에서 이정권 때보다 더 못살게 되었다는 소리가 병실에 흘러들어오니 가슴이 미여지는 듯하다. 병신이 되고서 또 이런 백성의 원망을 들어야하는 처지가 그저 한심스럽다. 장정권은 지금 잘못하면 이중의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첫째로 위임받은 혁명과업의 「사보타쥬」와 둘째 제2혁명 후에 일어날 혼란과 민생고에 대한 책임이 곧 이것이다. 지금 이 시기는 장정권에게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자칫 잘못하면 영원히 역사상의 죄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꼴을 보려고 싸웠던가? 내가 부상당한 일주년이며 나의 동료들이 목숨을 잃은 일주년을 맞이하니 죽어간 동료들과 잘살기를 바라는 백성들에게 미안하기 짝이 없다.


(아래사진설명)○... 이 처열한 모습을 보라... 낭만한 사월의 날에 「독재의 앞잡이」 「기생충과 같은」 깡패에 맞아 쓰러진 젊은 학생의 피투생이... 악한과도 같았던 폭정 십이년을 참다 참다 일어선 항쟁의 선구자가 독재의 앙칼진 몽둥이에 쓰러져 이렇게 아무렇게나 뒹굴던 그날...

4.19 부상학생의 소회

4.19 부상학생의 소회 [민족일보 이미지]
4.19 부상학생의 소회 [민족일보 이미지]

四.一九 負傷學生의 所懷

 

죽은 同僚와 百姓에 未安

..... 나는 이 꼴 볼려고 싸우진 않았다..........

 

建國大 二學年(22歲) 首都醫大 附屬病院 八○九號室

朴仁秉

 

四.一九革命에서 우리가 바르게 認識해야 할 일은 民主黨이 革命의 主動이 아니었다는 點이다. 全國民의 힘으로 成就한 革命의 第一段階에서 第二段階의 課業을 民主黨에게 委任한 것이다. 그런데 이건 革命政府로서는 到底히 생각할 수 없는 일만하고 있으니 革命이라는 말을 하고 싶지도 않다.

무엇이 革命인가? 覺醒못한 國會議員 ?惡한 行動擧止는 또 한번 國民의 審判을 받기에 알맞고 不正蓄財의 處理는 하지도 않으니 不正蓄財者들과 張政權과는 一家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李政權때보다 나아진 것은 姑捨하고 훨씬 못해져가니 처음에 너무 民主黨을 믿어버린 것이 잘못인 것 같다. 立法府도 司法府도 行政府도 自由黨때보다 잘하는 것이 있다면 한번 내세워보라. 革命政府라는 것이 이렇게 無能하고 消極的이며 果斷性이 없고서야 어찌 革命을 完遂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이런 無能한 政權이 오래 繼續될 理가 없다. 現在 나날이 높아가는 不滿은 반드시 또 爆發할 것이다.

野에 있을때와 어쩌면 그렇게 달라졌는지 納得이 안되는데 輿論을 잘받아들여 해나가려는 姿勢를 一年이 걸려도 세울수 없었다는 것은 精神을 안차린 證據가 아니겠는가. 政治는 몇사람이 감투를 쓰기 위해서 또 도둑놈이 예전보다 더 잘먹고 잘입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집이 아니면 政治가 안되는 法이 없고, 外國産의 高級 自動車를 타고 다니지 않아도 政治는 된다. 自由黨에게 심한 迫害를 입었기 때문에 그것에 對한 功勞賞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우리가 四.一九때 「데모」의 先頭에 선 것은 이런 꼴을 보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니다. 四方에서 李政權때보다 더 못살게 되었다는 소리가 病室에 흘러들어오니 가슴이 미여지는 듯하다. 病身이 되고서 또 이런 百姓의 원망을 들어야하는 處地가 그저 寒心스럽다. 張政權은 只今 잘못하면 二重의 責任을 져야한다는 것을 銘心하여야 한다.

첫째로 委任받은 革命課業의 「사보타쥬」와 둘째 第二革命後에 일어날 混亂과 民生苦에 對한 責任이 곧 이것이다. 지금 이 時期는 張政權에게 있어서는 가장 重要한 時期이다. 자칫 잘못하면 永遠히 歷史上의 罪人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꼴을 보려고 싸웠던가? 내가 負傷當한 一週年이며 나의 同僚들이 목숨을 잃은 一週年을 맞이하니 죽어간 同僚들과 잘살기를 바라는 百姓들에게 未安하기 짝이 없다.

 

○... 이 悽烈한 모습을 보라... 浪漫한 四月의 날에 「獨裁의 앞잡이」 「寄生虫과 같은」 깡패에 맞아 쓰러진 젊은 學生의 피투생이... 惡寒과도 같았던 暴政 十二年을 참다참다 일어선 抗爭의 先驅者가 獨裁의 앙칼진 몽둥이에 쓰러져 이렇게 아무렇게나 뒹굴던 그날...

[민족일보] 1961년 4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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