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아 너는 불치의 실명아냐
=4.19의 정신도 행방불명되고 =

 

역사가 앞으로 전진을 하는데는 기본적으로 두 개의 여건이 요구되어지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것은 역사의 신이 타고 있는 수레에 두 개의 바퀴가 요구되어지는 것과 같다. 

하나는  역사의 진행에는 흔히 말하는바 필연성이라든가 역학성이라든가 하는 그 진행의 객관적인 방향적인 세력이요. 또 하나는 그 본질적인 것과 맞걸리는 특수한 구체적인 그 지역 그 민족의 현실적인 「시튜에이슌」으로서 이것은 말하자면 하나의 주체적인 조건이며 역량이다. 그 두 개가 병존하지 않고 하나의 바퀴가 결하게 되면 그 지역 그 민족의 역사는 앞으로 나가기가 어려워지고 자꾸만 암초위에 좌절되어 버릴 것이다.

 
백 철

 
이기성과 무력성
복고적 경향의 장정권


그 두 개의 여건에 대하여 내가 특히 중시하는 것은 두세번의 주체적인 인공적인 조건이다. 모처럼 주어진 재료를 내버려두면 비와 바람을 맞아 썩어버릴 수밖에 없는데 시간을 놓치지 않고 기민하게 그 재료를 다듬고 선용해서 역사적인 「스테이지」를 꾸미는 것은 더 이쪽의 주체적인 일에 속한다. 역사는 말하다시피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하나 더 부주를 달 것은 전후에 온 세계사적인 변모상을 두고 볼 때에 특히 후진한 국가의 현실에서 일수록 그런 역사적인 여건에 있어서 둘쨋번째 「액슨트」를 두고 봐야할 것같다. 말하자면 그 지역 그 민족의 역사가 앞으로 나가는데 있어선 우선 정치적인 「리더쉽」이 분명해야 한다는 것은 무슨 독재적인 정치형체같은 것을 「이메지」로 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지도자내지 그 지도권이 먼저 말한바 역사적인 객관적인 방향을 분명히 파악하고 그 방향으로 대첨하게 민족사적인 거보를 내디디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역사성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그 기회를 최대한도로 활용하는 일, 이 길밖에 역사를 전환시키고 창조할 방도는 없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그 실례는 많이 있다고 본다. 가령 인도의 신흥은 「네루」의 「리더쉽」에 의한 것이요. 최근의 「아랍」국가의 궐기는 「낫셀」의 지도력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 한국의 전후사에 있어서 치명적인 결점은 그 정치적 「리더쉽」이 약체인 조건이다. 이 약체라는 뜻에는 의외로 단순치 않은 조건들이 들어있다. 우선 눈이 어두워서 그 역사의 정당한 방향을 파악하지 못하는 조건도 들어 있거니와 둘째로는 그 방향을 희미하게나마 알고 있으면서도 조그만 목전의 이권 속으로 도피해버리는 것과 또 하나는 우유부단해서 실천에 옮기지 못한 무력성도 반영된 결과라고 보아야할 것이다.

그 조건의 어느 것에 주원인이 있든 간에 한국의 전후사가 일보의 전진을 못하고 그대로 암초위에 좌절되어버린 것은 그 책임이 전적으로 정권에게 있다는 것, 그 정권이 모처럼의 전후적인 귀중한 기회들을 의식적으로 혹은 무력한 ?운에 일실해에 버린 탓이라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다. 가장 가까운 실례가 지난 4.19의 사건과 그 뒤에 등장한 신정권적인 현실의 반영이라고보는 것이다.

4.19는 분명이 역사성이 자기의사를 표시한 귀중한 기회였다. 그것이 전정권이 민주국가적인 진행에 대한 반역사적인 부정한 정권인 것을 알려 준 것이며 자동적으로 앞으로 와야 할 역사적인 방향을 지시한 기회였다. 

또한 이 사건이 젊은 세대의 자발 자주의 의사와 실력에 의하여 성취되니 만큼 그 뒤의 현실은 자주적인 해결을 할 수 있는 계기를 암시한 기회이기도 하였다.

례를 들면 남북교류의 문제 같은 것인데 남북의 통일은 아직 시일이 멀지 모르며 또 그 실현을 위해서는 계속해서 우방 자유국가의 도움을 기다려야 하겠지만 동시에 이 시기에 자주적으로도 그 통일의 날을 위한 여러 가지 준비적인 실험을 할 기회라는 것이 그 교류의 의사 표시가 아닌가 본다면 이것은 하였든 하나의 새로운 역사적인 방향을 암시한 장면이라고 보아서 틀림이 없는 것이다.

그러면 단적으로 반문해서 구정권과 교체한 새로운 정권이 이 4.19의 역사적 방향과 그 정신을 어느 만큼이라도 나타냈는가 하면 국민적으로 기대와 어그러진 실망이 큰 것이다. 새 정권은 낡은 정권에 대한 <앤티테제>인데, 그것이 <앤티테제>로서 아무 구실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신정권 앞에 주어진 새로운 과제들이란 단시일안에 해결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닌 줄 안다.

가령 국민경제의 부흥만하더라도 당국의 말과 같이 시간여유를 줘야할 것인지 모른다. 남북의 통일문제만 해도 먼저 건설 뒤에 통일이란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말들을 국민이 그대로 신뢰해봐도 좋은가하면 현실적으론 모두가 회의적이며 불신임을 표명하게 되는 점이다. 그것은 신정권이 <앤티테제>로서 단시일안에 단행할 수 있는 일까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그 태만 무력 무성의 때문이다.

례를 들면 소위 원흉 부정축재 또는 행정부의 일반부패면은 신정부로서 수개월내에 시범적인 엄격한 단행을 내줬어야 할 것인데 아무것도 단행하지 못하고 흐지부지 하는 동안에 어연간 4.19의 돌을 맞이하게 된 사실이다. 더구나 근래에 와서는 신정권이 그대로 구정권의 부패 부정의 「메카니즘」을 복습하고 있는 마각이 표면화되어버린 사실이다. 중석의 사건이 그렇고 보안법의 보강 등이 그 적례들이다.

결국 그런 개법이 국민의 정당한 요구와 권리까지도 말살하는 수단으로 되기 쉽기 때문에 악법의 성질을 띠게 되는 것이다. 오늘에 와서는 모든 것이 4.19 이전으로 복귀되고 있다는 인상이 아주 뚜렷해졌다.

내가 종사하고 있는 문학계도 요즈음 그 복귀적인 사실들이 노골화되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와서는 4.19의 정신이란 어디서나 찾아 볼 수 없이 행방불명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 이상 우리가 민족의 운명을 객관적인 역사성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비굴한 일이라고 느껴진다. 그 역사는 적어도 하나의 실명 환자에 대한 외과(안과)의와 책임은 다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역사는 여러 차례 한국의 현실을 수술대에 올려놓고 가료의 책임을 다한 셈이다. 

삼일운동 때는 어려웠다고 하더라도 8.15의 해방이 그런 귀중한 기회이며 지난 4.19가 또 하나의 「찬스」였던 것이다. 그러나 몇 차례의 외과의의 수술도 효험을 못보고 결국 한국은 불치의 실명아인가하는 절망같은 것이 우리 안계를 가로막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시 앞날을 신뢰해보는 여지는 남기기도 한다. 그 점은 역시 객관적인 역사성에 대한 신뢰이며 또 한편은 국내의 현실도 표면은 그처럼 절망색이지만 의외로 그 밑바닥에선 4.19에 튼 새싹이 쉬지 않고 자라가고 있다는 것을 신뢰하고 싶기 때문이다.(필자=평론가)

한국아 너는 불치의 실명아냐

한국아 너는 불치의 실명아냐 [민족일보 이미지]

韓國아 너는 不治의 失明兒냐
=四.一九의 精神도 行方不明되고 =

 
歷史가 앞으로 轉進을 하는 데는 基本的으로 두 개의 與件이 要求되어지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것은 歷史의 神이 타고 있는 수레에 두 개의 바퀴가 要求되어지는 것과 같다. 

하나는  歷史의 進行에는 흔히 말하는 바 必然性이라든가 力學性이라든가 하는 그 進行의 客觀的인 方向的인 勢力이요. 또 하나는 그 本質的인것과 맞걸리는 特殊한 具體的인 그 地域 그 民族의 現實的인 「시튜에이슌」으로서 이것은 말하자면 하나의 主體的인 條件이며 力量이다. 그 두 개가 竝存하지 않고 하나의 바퀴가 缺하게되면 그 地域 그 民族의 歷史는 앞으로 나가기가 어려워지고 자꾸만 암초위에 挫折되어 버릴 것이다.

 
白 鐵

 
利己性과 無力性
復古的 傾向의 張政權

 
그 두 개의 與件에 대하여 내가 특히 重視하는 것은 두세번의 主體的인 人工的인 條件이다. 모처럼 주어진 材料를 내버려두면 비와 바람을 맞아 썩어버릴 수밖에 없는데 時間을 놓치지 않고 機敏하게 그 材料를 다듬고 善用해서 歷史的인 「스테이지」를 꾸미는 것은 더 이쪽의 主體的인 일에 속한다. 歷史는 말하다시피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하나 더 部注를 달 것은 戰後에 온 世界史的인 變貌相을 두고 볼때에 특히 後進한 國家의 現實에서 일수록 그런 歷史的인 與件에 있어서 둘쨋번째 「액슨트」를 두고 봐야할 것같다. 말하자면 그 地域 그 民族의 歷史가 앞으로 나가는데 있어선 우선 政治的인 「리더쉽」이 分明해야 한다는 것은 무슨 獨裁的인 政治形體같은 것을 「이메지」로 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指導者내지 그 指導권이 먼저 말한바 歷史的인 客觀的인 方向을 分明히 把握하고 그 方向으로 大瞻하게 民族史的인 巨步를 내디디는 것을 意味하는 것이다. 그 歷史性을 올바르게 理解하고 그 機會를 最大限度로 活用하는 일, 이 길밖에 歷史를 轉換시키고 創造할 方途는 없는 것이다. 現實的으로 그 實例는 많이 있다고 본다. 가령 印度의 新興은 「네루」의 「리더쉽」에 依한 것이요. 最近의 「아랍」國家의 궐기는 「낫셀」의 指導力에 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 韓國의 戰後史에 있어서 致命的인 缺點은 그 政治的 「리더쉽」이 弱體인 條件이다. 이 弱體라는 뜻에는 意外로 單純치 않은 條件들이 들어있다. 우선 눈이 어두워서 그 歷史의 正當한 方向을 把握하지 못하는 條件도 들어 있거니와 둘째로는 그 方向을 희미하게나마 알고 있으면서도 조그만 目前의 利權속으로 逃避해버리는 것과 또 하나는 優柔不斷해서 實踐에 옮기지 못한 無力性도 反映된 結果라고 보아야할 것이다.

그 條件의 어느 것에 主原因이 있든 간에 한국의 戰後史가 一步의 前進을 못하고 그대로 暗礁위에 挫折되어버린 것은 그 責任이 全的으로 政權에게 있다는 것 그 政權이 모처럼의 戰後的인 貴重한 機會들을 意識的으로 혹은 無力한 ?운에 逸失해에 버린 탓이라고 結論지을 수 밖에 없다. 가장 가까운 實例가 지난 四.一九의 事件과 그 뒤에 登場한 新政權的인 現實의 反映이라고보는 것이다.

四.一九는 分明이 歷史性이 自己意思를 表示한 貴重한 機會였다. 그것이 前政權이 民主國家的인 進行에 대한 反歷史的인 不正한 政權인 것을 알려 준 것이며 自動的으로 앞으로 와야할 歷史的인 方向을 指示한 機會였다. 또한 이 事件이 젊은 世代의 自發 自主의 意思와 實力에 依하여 成就되니만큼 그 뒤의 現實은 自主的인 解決을 할 수 있는 契機를 暗示한 機會이기도 하였다.

例를 들면 南北交流의 問題같은 것인데 南北의 統一은 아직 時日이 멀지 모르며 또 그 實現을 爲해서는 繼續해서 友邦自由國家의 도움을 기다려야 하겠지만 同時에 이 時期에 自主的으로도 그 統一의 날을 爲한 여러 가지 準備的인 實驗을 할 機會라는 것이 그 交流의 意思 表示가 아닌가 본다면 이것은 하였든 하나의 새로운 歷史的인 方向을 暗示한 場面이라고 보아서 틀림이 없는 것이다.

그러면 端的으로 反問해서 舊政權과 交替한 새로운 政權이 이 四.一九의 歷史的 方向과 그 精神을 어느 만큼이라도 나타냈는가 하면 國民的으로 期待와 어그러진 失望이 큰 것이다. 새 政權은 낡은 政權에 대한 <앤티테제>인데, 그것이 <앤티테제>로서 아무 口實을 하지 못했다는 事實이다. 勿論 新政權앞에 주어진 새로운 課題들이란 短時日안에 解決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닌 줄 안다.

가령 國民經濟의 復興만하더라도 當局의 말과 같이 時間餘裕를 줘야할 것인지 모른다. 南北의 統一問題만해도 먼저 建設뒤에 統一이란데는 理由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問題는 그런 말들을 國民이 그대로 信賴해봐도 좋은가하면 現實的으론 모두가 懷疑的이며 不信任을 表明하게되는 點이다. 그것은 新政權이 <앤티테제>로서 短時日안에 斷行할 수 있는 일까지 아무것도 解決하지못하고 있는 그 怠慢 無力 無誠意 때문이다.

例를 들면 소위 元兇 不正蓄財 또는 行政部의 一般腐敗面은 新政府로서 數個月내에 示範的인 嚴格한 斷行을 내줬어야 할 것인데 아무것도 斷行하지 못하고 흐지부지 하는 동안에 어연간 四.一九의 돌을 맞이하게 된 事實이다. 더구나 近來에와서는 新政權이 그대로 舊政權의 腐敗 不正의 「메카니즘」을 復習하고 있는 馬脚이 表面化되어버린 事實이다. 重石의 事件이 그렇고 保安法의 補强 등이 그 適例들이다.

結局 그런 改法이 國民의 正當한 要求와 權利까지도 抹殺하는 手段으로 되기 쉽기 때문에 惡法의 性質을 띠게 되는 것이다. 오늘에 와서는 모든 것이 四.一九 以前으로 復歸되고 있다는 印象이 아주 뚜렷해졌다.

내가 從事하고 있는 文學界도 요즈음 그 復歸的인 事實들이 露骨化되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와서는 四.一九의 精神이란 어디서나 찾아 볼 수 없이 行方不明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 以上 우리가 民族의 運命을 客觀的인 歷史性의 責任으로 돌리는 것은 卑屈한 일이라고 느껴진다. 그 歷史는 적어도 하나의 失明 患者에 대한 外科(眼科)醫와 責任은 다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歷史는 여러 차례 韓國의 現實을 手術臺에 올려놓고 加療의 責任을 다한 셈이다. 三一運動때는 어려웠다고 하더라도 八.一五의 解放이 그런 貴重한 機會이며 지난 四.一九가 또 하나의 「찬스」였던 것이다. 그러나 몇차례의 外科醫의 手術도 效驗을 못보고 결국 한국은 不治의 失明兒인가 하는 絶望같은 것이 우리 眼界를 가로막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시 앞날을 신뢰해보는 餘地는 남기기도 한다. 그 點은 亦是 客觀的인 歷史性에 대한 信賴이며 또 한편은 국내의 現實도 表面은 그처럼 絶望色이지만 意外로 그 밑바닥에선 四.一九에 튼 새싹이 쉬지 않고 자라가고 있다는 것을 信賴하고 싶기 때문이다.(筆者=評論家)

[민족일보] 1961년 4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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