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잃은 계절풍(季節風) - 발의 절량보고(絶糧報告) (3)

 

살기 위해 목숨 걸고 밀수(密穗)

= 애들은 깡보리죽 한 끼로 연명(延命)=

아끼던 배마저 부숴지고

 
○.... 지난 4일의 폭풍우로 내 몸보다 더 아끼던 배가 흠뻑 부셔졌다.

배 나이는 스무살. 사람이면 한 남자라는 나이지만 목선은 그 수명을 다하고도 남은 것이다.

한 「톤」 남짓한 조그마한 이 배로 지금부터 조개잡이에 들어갈 판이다.

한 배에 너댓 사람이 타고 온종일 긁어 올려야 한 사람 앞에 한 동이 캐낸 꼴이 된다. 돈으로 따져서 천환 정도. 삼천포(三千浦) 서동(西洞)에 사는 이홍래(李洪來)씨는 열식구를 거느리고 있다. 

손바닥이 터지도록 하루 종일 밧줄을 당겨도 머리깎을 여유가 없다고 머리카락을 쥐어뜯는다. 다 쓰러져가는 초갓집에 사는 이씨는 아이들을 학교에 변변히 못 보내고 오늘도 깡보리죽을 먹는지 마는지 했다는 것이다.

 

○.... 서동(西洞)에는 이따위 배가 3십척 가량있는데 여기에 딸려 사는 목숨이 5백이나 된다.

해마다 이 철이 오면 조개잡이의 한창 때가 된다.

겨울철에 작업을 못한 이들은 지금 대부분이 쌀을 살 돈이라곤 쥐어 못보고 보리죽으로 연명한다.

밀수로 먹고 사는 사람이 한때 전 삼천포 시민의 3, 4할이나 된 적이 있다고들 한다. 24~25「노트」나 되는 조그만 쾌속정을 타고 「대마도」로 나가서 일본 물건을 몰래 날라 들인다. 2~3톤밖에 안 되는 「뽀트」에 생명을 걸고 파도를 헤치고 밀수꾼들은 대부분이 화장품을 가겨온다.

「파파야 설탕 비누」 「우데나 크림」 「매니큐어」 「단쪼」 「경마」등의 「포마드」 등. 그래서 국산보다 그다지 비싸지 않은 일제 물건들의 향내가 시가에 번졌지만 이 선창에는 그런 냄새가 풍기지 못한다. 게딱지같은 집들이 즐비한 이 곳 집뜰악에는 「쌀」을 쉬 찾아볼 수가 없다.

2십여만환만 있으면 새 배를 모을 수 있다지만 한평생 고기를 낚고 조개를 끌어 올려도 그날그날 살기가 어려운 것이다.

「국토개발사업이 뭔지 다 집어치우고 그곳에라도 갈 수 없겠능기오?」

이씨는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인다.(글⋅사진 = 곽인효 기자(郭仁孝 記者))

 

◇ 사진 = 다 낡아 빠진 고선(古船)을 유일한 생명의 끈으로 삼아 고치고 있다.[삼천포 서동에서]

빛 잃은 계절풍(季節風) - 발의 절량보고(絶糧報告) (3)

빛 잃은 계절풍(季節風) - 발의 절량보고(絶糧報告) (3) [민족일보 이미지]
빛 잃은 계절풍(季節風) - 발의 절량보고(絶糧報告) (3) [민족일보 이미지]
[민족일보] 1961년 4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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