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행복을 방해할 악법

국가보안법의 보강

자유를 부정하련 것, 그것이 바로 「팻시즘」이다

 

허 현

 

“착취로 국가유지”

몽둥이로 다스릴 순 없다.

 

법이라 하는 것이 조문에 있다하면 그 과업은 문법가의 것이다. 그 조문이 어떠한 정신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법은 만인의 일이다. 불행한 일은 너무도 법이 정신이 빠진 문법에 불과한 것이며, 또는 법은 만인이 작성하는 것이라 소수인이 대다수에 부과하는 의지인 것이다.

고전적 자유주의자인 J.S. 밀은 위의 말에 반대로 대다수가 소수에게 의지를 강요하면 어찌하나 두려워하였던 것이다.

법은 사회체제 및 그 과정을 수행하려는 문구적 규약이다. 따라서 법은 사회세력의 집중적 표현인 정치에 의하여 좌우되는 것이다. 정치는 인간공동생활의 최고 조직체이다. 그 정치의 정책을 표현하며 실행하는 기관이 국가이다. 따라서 본래는 알 수 없으나 현세에 있어서는 국가는 최고 주권체이다.

그 최고의 주권체인 국가는 그 국가의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여야 할 것이다. 불란서의 사상가 루소가 일찍이 지적한 바와 마찬가지로 정치가의 주요관심이 국가의 평화이고 국민의 행복은 아니다. 

그러하므로 고래로 평화와 질서라는 미명하에서 각종의 막대한 비참이 연속하여 왔던 것이며, 그러한 비인간적 사실을 무수한 승려학자가 변호하여왔던 것이니 고대 애급(이집트) 인도의 종교가들은 말할 것 없이 아리스토테레스 이하의 모든 형이상학자들이 그러하였다.

국가라 하는 것은 위에서 말한바와 마찬가지로 공동생활의 최고 조직체인 까닭에 여러 사상가들이 주장하는바나 마찬가지로 국가를 보안하는 것은 국가의 지상의무이다. 국가의 안전을 보호한다는 것은 양면이외 있으니 기1은 국의 침해이며 기2는 내부적 파괴이다. 

왜냐하면 양자는 다 공동생활의 안전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가 그 안전을 보호한다는 것은 그 국가가 어찌 구성되었느냐 하는 말이나 꼭 같은 말이다. 고대 애급의 국민은 파도를 중심으로 하여 승려계급이 있었던 것이며, 그 아래에는 무수한 노예가 굶주리고 학대를 받고 있었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하였는가 하는 것은 다음말로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노예들을 때려 주기위하여 나일강 하반에 있는 야자수들은 가지가 다 없어졌다는 것이며, 야자수 가지가 아까우면 그들을 나일강에 다 던져 버렸다는 것이다. 

또한 스파르타에서는 9천 지배가족이 2천5(백)만의 노예가족을 착취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것이 내가 위에서 말한 평화질서하의 불행이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국가안전을 보호하는 제1공화국 즉 이승만 정권하의 한국정부는 어찌되었냐를 검토하는 것이다.

한 국가를 유지하는 것은 생산가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경제생산자는 농민이었다. 도시에 주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생산적 사람들이었다.

국민을 위시하여 근로인들은 우리 국가를 유지하였다. 그 유지하는 방법은 일괄적으로 말하여 착취였다. 이것을 더 잘 알기 쉽게 말하자면 직접 간접의 모든 종류의 세금이었다.

세금이라는 말을 쓰기가 거북하면 각종 기부금이 있다. 그 기부라 하는 것이 강제적인 이상 세금이나 기본적으로 다를 것이 무엇이 있나? 왜냐하면 그러한 세금 기부금으로 우리는 李정권의 국가를 보호하였던 것이다. 

다른 기관은 막론하고라도 그 돈으로 질서와 평화를 유지하는 경찰과 군대를 유지하였던 것이다. 경찰의 문화적면을 제거한다면 경찰은 살인강도를 방지하였든 것이다.

범죄의 요소는 하나 둘이 아니겠지마는 위에서 말한 것을 강조하면 경찰은 특권계급의 유익과 안녕을 지켜주었던 것이니, 4.19후에 나타난 것으로 말하자면 반민족적 민주주의자들을 하층국민의 돈으로 번성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기초하에서 기들은 외원(외국원조)을 먹어치웠으며 귀속재산 그 타의 공공단체 및 산업기관을 다 먹어치웠던 것이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李정권의 정부는 일반대중을 착취하여 특권계급을 강제로 유지하여 결국 그것이 전면적으로 부패하여 쓰러졌던 것이다.

이러한 그림을 그려보면 애급의 그림이나 스파르타의 그림과 기본적으로 다른 것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근본문제는 어떠한 정부가 대다수를 표현하느냐하는 문제이며 특히 실질적인 생산자를 대표하느냐하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만일 어떠한 정부가 생산자 대중을 표현한다하면 그 정부는 반석위에 선 것이다. 대중이 착취를 당하는 정부로 그 대중의 물질적 및 정신적 고를 억압하려는 법은 카스트로의 말에 의하면 법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법은 국가의 실체가 되는 대중의 이익에 반하는 까닭에 대중 즉 생산자의 행복을 저해하는 법은 어떠한 방식을 막론하고 악법이다.

이러한 서론으로 우리가 제2공화국에 요청하여야 할 것을 추리할 수 있는 것이다. 국가안전을 위하여 외침을 막는 군대를 유지할 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 외침이 동에서 오느냐 또는 남북에서 오느냐는 여기서 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 다음 우리가 평화와 행복을 유지하는 것은 물질적 번영과 정신적 자유이다. 물질적 번영이라는 하는 것은 장총리의 말을 빌자면 경제제일주의이다. 대다수의 국민이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한다면 한 정권의 질서는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유지할 수 없이 어떠한 정권을 유지하려는 수단은 애급에서 한 것과 같은 수단을 쓰는 것으로 「루터」의 말을 빌자면 농민은 종교로 다스려라 그렇지 않으면 몽둥이로 다스려라는 격으로 되는 것이다.

우리의 직접적 외침이 공산주의라 하면 그것을 막는 외부적 직접적 수단은 군대이지만, 그 외침을 막고 내부적으로 그 위세를 막는 것은 민생이다. 이것을 못할진대 직접 간접으로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종류의 슬로간과 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그 법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슬로간이 많은 나라는 망한 나라라하였다.

우리가 자유를 부정하면서 어떠한 사람들만 살게 하는 것은 파시즘이다. 파시즘은 공산주의를 이길 수 없다. 또한 동시에 이길 가치도 없다. 왜냐하면 파시즘 하에서는 대중에게는 빵도 없고 입도 없다.(성대 문리대학장)

논단 / 대중의 행복을 방해할 악법

논단 / 대중의 행복을 방해할 악법 [민족일보 이미지]
논단 / 대중의 행복을 방해할 악법 [민족일보 이미지]

論壇


大衆의 幸福을 妨害할 惡法

國家保安法의 補强

自由를 否定하련 것, 그것이 바로 「팻시즘」이다

 

許 鉉

 

“搾取로 國家維持”

몽둥이로 다스릴 순 없다.

 

法이라하는 것이 條文에 있다하면 그 課業은 文法家의 것이다. 그 條文이 어떠한 精神을 表現하는 것이라면 法은 萬人의 일이다. 不幸한 일은 너무도 法이 精神이 빠진 文法에 不過한 것이며, 또는 法은 萬人이 作成하는 것이라 小數人이 大多數에 賦課하는 意志인 것이다.

古典的 自由主義者인 J.S. 밀은 위의 말에 反對로 大多數가 小數에게 意志를 强要하면 어찌하나 두려워하였던 것이다.

法은 社會體制 및 그 科程을 遂行하려는 文句的規約이다. 따라서 法은 社會勢力의 集中的 表現인 政治에 依하여 左右되는 것이다. 政治는 人間共同生活의 最高 組織體이다. 그 政治의 政策을 表現하며 實行하는 機關이 國家이다. 따라서 本來는 알 수 없으나 現世에 있어서는 國家는 最高 主權體이다.

그 最高의 主權體인 國家는 그 國家의 平和와 秩序를 維持하여야 할 것이다. 佛蘭西의 思想家 루소가 일찍이 指摘한 바와 마찬가지로 政治家의 主要關心이 國家의 平和이고 國民의 幸福은 아니다. 

그러하므로 古來로 平和와 秩序라는 美名下에서 各種의 莫大한 悲慘이 連續하여 왔던 것이며, 그러한 非人間的 事實을 無數한 僧侶學者가 변호하여왔던 것이니 古代 埃及(이집트) 印度의 宗敎家들은 말할 것 없이 아리스토테레스 以下의 모든 形而上學者들이 그러하였다.

國家라하는 것은 위에서 말한바와 마찬가지로 共同生活의 最高 組織體인 까닭에 여러 思想家들이 主張하는바나 마찬가지로 國家를 保安하는 것은 國家의 至上義務이다. 國家의 安全을 保護한다는 것은 兩面이外 있으니 其 一은 國의 侵害이며 其 二는 內部的 破壞이다. 왜냐하면 兩者는 다 共同生活의 安全을 破壞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國家가 그 安全을 保護한다는 것은 그 國家가 어찌 構成되었느냐 하는 말이나 꼭 같은 말이다. 古代 埃及의 國民은 파도를 中心으로 하여 僧侶階級이 있었던 것이며, 그 아래에는 無數한 奴隸가 굶주리고 학대를 받고 있었다.

그 程度가 얼마나 甚하였는가 하는 것은 다음말로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奴隸들을 때려주기위하여 나일江 河畔에 있는 야자樹들은 가지가 다 없어졌다는 것이며, 야자樹 가지가 아까우면 그들을 나일江에다 던져 버렸다는 것이다. 

또한 스파르타에서는 九千支配家族이 二千五萬의 奴隸家族을 搾取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것이 내가 위에서 말한 平和秩序下의 不幸이라 하는 것이다.

이러한 理由로 國家安全을 保護하는 第一共和國 卽 李承晩政權下의 韓國政府는 어찌되었냐를 檢討하는 것이다.

한 國家를 維持하는 것은 生産家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經濟生産者는 農民이었다. 都市에 住居하는 大部分의 사람들은 非生産的 사람들이었다.

國民을 爲始하여 勤勞人들은 우리 國家를 維持하였다. 그 維持하는 方法은 一括的으로 말하여 搾取였다. 이것을 더 잘 알기 쉽게 말하자면 直接 間接의 모든 種類의 稅金이었다.

稅金이라는 말을 쓰기가 거북하면 各種 寄附金이 있다. 그 寄附라 하는 것이 强制的인 以上 稅金이나 基本的으로 다를 것이 무엇이 있나? 왜냐하면 그러한 稅金 寄附金으로 우리는 李政權의 國家를 保護하였던 것이다. 

다른 機關은 莫論하고라도 그 돈으로 秩序와 平和를 維持하는 警察과 軍隊를 維持하였던 것이다. 警察의 文化的面을 除去한다면 警察은 殺人强盜를 防止하였든 것이다.

犯罪의 要素는 하나 둘이 아니겠지마는 위에서 말한 것을 强調하면 警察은 特權階級의 有益과 安寧을 지켜주었던 것이니 四.一九後에 나타난 것으로 말하자면 反民族的 民主主義者들을 下層國民의 돈으로 繁成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基礎下에서 其들은 外援을 먹어치웠으며 歸屬財産 그 他의 公共團體 및 産業機關을 다 먹어치웠던 것이다. 

簡單히 要約하자면 李政權의 政府는 一般大衆을 搾取하여 特權階級을 强制로 維持하여 結局 그것이 全面的으로 腐敗하여 쓰러졌던 것이다.

이러한 그림을 그려보면 埃扱의 그림이나 스파르타의 그림과 基本的으로 다른 것이 무엇인가하는 疑問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根本問題는 어떠한 政府가 大多數를 表現하느냐하는 問題이며 特히 實質的인 生産者를 代表하느냐하는 問題가 되는 것이다.

萬一 어떠한 政府가 生産者 大衆을 表現한다하면 그 政府는 盤石위에 선 것이다. 大衆이 搾取를 當하는 政府로 그 大衆의 物質的 및 精神的 苦를 抑壓하려는 法 은 카스트로의 말에 依하면 法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法은 國家의 實體가 되는 大衆의 利益에 反하는 까닭에 大衆 卽 生産者의 幸福을 沮害하는 法은 어떠한 方式을 莫論하고 惡法이다.

이러한 序論으로 우리가 第二共和國에 요청하여야 할 것을 推理할 수 있는 것이다. 國家安全을 爲하여 外侵을 막는 軍隊를 維持할 것은 다시 말할 必要가 없는 것이다. 그 外侵이 東에서 오느냐 또는 南北에서 오느냐는 여기서 論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 다음 우리가 平和와 幸福을 維持하는 것은 物質的 繁榮과 精神的 自由이다. 物質的 繁榮이라는 하는 것은 張總理의 말을 빌자면 經濟第一主義이다. 大多數의 國民이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한다면 한 政權의 秩序는 維持할 수 없는 것이다. 

維持할 수 없이 어떠한 政權을 維持하려는 手段은 埃扱에서 한 것과 같은 手段을 쓰는 것으로 「루터」의 말을 빌자면 農民은 宗敎로 다스려라 그렇지 않으면 몽둥이로 다스려라는 格으로 되는 것이다.

우리의 直接的 外侵이 共産主義라 하면 그것을 막는 外部的 直接的 手段은 軍隊이지만 그 外侵을 막고 內部的으로 그 威勢을 막는 것은 民生이다. 이것을 못할진대 直接 間接으로 自由를 抑壓하는 모든 種類의 슬로간과 法을 制定하는 것이다. 그 法은 果然 누구를 爲한 것인가? 슬로간이 많은 나라는 망한 나라라하였다.

우리가 自由를 否定하면서 어떠한 사람들만 살게 하는 것은 파시즘이다. 파시즘은 共産主義를 이길 수 없다. 또한 同時에 이길 價値도 없다. 왜냐하면 파시즘 下에서는 大衆에게는 빵도 없고 입도 없다.(成大 文理大學長)

[민족일보] 1961년 4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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