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매카나기」 대사의 이한에 대한 우리의 감회

 

우리는 이때까지 몇 차례 미국으로부터 대사를 맞이하였고, 전송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매카나기」대사의 경우처럼 심각한 환멸 가운데 작별을 고하지 않을 수 없는 전례를 보지 못했다.

우리의 이와 같은 환멸의 비애는 결코 동대사 개인에 대한 사적감정에서 오는 것도 아니오. 금후에 기대할 수도 있는 미국의 새로운 대한정책에 대한 「단념」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주권국가로서의 한⋅미 양국이 견지해야 할 기본이익의 바탕위에 「나도 살고 너도 살 수 있는 길」이 아무런 수사와 에누리 없는 현실적이며, 합리적인 사고와 실천을 통해서 재검토되어야 한다는 고조된 협동정신이야말로 우리의 이 심각한 환멸의 비애에 내재하는 요청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매카나기」대사가 국무성 극동문제담당 차관보로 영전하게 된 이 기회에 기탄없는 몇 가지 의견과 충고의 말을 진정해 두는 것은 어떠한 값진 선물보다 고귀하고도 시기에 알맞은 「우방인으로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우선 우리는 「매카나기」대사의 금반의 영전을 환영하면서도 어딘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그것은 6.25전쟁전후의 외교상 책임을 지고 불명예스러운 소환령을 받아 급거 귀국한 「무쵸」대사의 너무나 대차적인 경우를 연상케 한다. 「무쵸」대사의 좌천은 이승만 정권에 대한 미국측의 과대평가와 「갈페스」특사일행의 삼팔선 시찰을 상징적으로 「개나리꽃 구경」하러 온 것이 아니라고 단정한 이북 측, 정세파악과의 엄청난 차이에서 빚어진 당연한 결과였다.

이러한 정세파악의 오류는 4.19혁명 일주년을 맞이한 오늘의 남한사태를 정확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려하지 않는 미국의 태도를 통해서 그대로 되풀이되었다. 혁명은 다시 새로운 혁명을 부르고 있으며 장면정권의 무능과 실정은 일 년 전 이 독재의 최후발악에 못지않은 비민주방향으로 역전하고 말았다. 

평화와 민주주의의 미명아래 국민은 전쟁당시와 방불한 공포와 생활난에 허덕이고 있으니, 이래도 미국은 대한정책에 있어 성공했다고 자부할 수 있으며 「매카나기」 외교가 그처럼 높게 평가되어야 할 근거를 찾아내기에 힘든다. 국무성으로 부임한 후의 「매카나기」 외교가 한국에 있어서 현상유지를 제1의로 역전하리라는 것은, 우리의 막연한 기우만이 아니다.

사자처럼 첫 출발이 근사했다가 뒤끝을 좋지 않게 맺고 떠나간 동대사야말로 한국에 대해서 미국이 무엇을 기도하고, 있는가를 엿보게 하는 슬픈 「테스트⋅케이스」가 되는 것이다. 한국을 위해서 이처럼 적극적이면서 무책임한 「매카나기」 외교가 미국을 위해서 그처럼 불가결하다는 것으로 높게 평가된 이유를 도시 이해할 수 없는 동시에 그것을 좋아라고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것은 오로지 이 나라의 반동적인 보수, 반민주세력뿐 일 것이다.

미국이 한국의 이러한 반민주세력만을 상대로 하는 한, 대다수의 양심적인 이 나라 국민과 영원히 등져야 한다는 절대의 손실은 보충할 길이 없을 것이다. 그러한 근시안적 대한정책이 결과적으로 이 나라 민주발전과 통일의 길을 가로막게 되는 것이 분명하다.

민족자결의 깃발아래 확대 강화되어가는 아세아 아불이가(아프리카)의 자주세력은 이미 오늘과 내일의 주인공으로서 역사의 정로를 밟고 보조를 맞추어 전진하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끝으로 「매카나기」대사가 담당할 문제의 부서는 1945년 12월 「로버트슨」 국장의 이름아래 처음으로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안」이 발설되었고, 그것은 다시 「얄타」밀약에서 소련군의 내몽고, 만주 및 한국의 삼팔선 이북점령을 「종용한」 미국의 전시외교의 치욕스러운 족적이 남은 「극동국」이다. 

4.19혁명의 「탁월한 ‘방조자’요. 제2공화국의 정력적인 조산부」인 「매카나기」대사가 명예롭지 못한 과거를 청산하고서 한국의 통일문제와 민주화를 위하여 이제부터 문제의 「극동국」을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지?

바라건대 통일을 희원하는 이 민족의 갈망과 민주건설에의 열의를 십분 성찰하는 동시에 급전하는 국제사회의 사정변경에 좀 더 민감한 통찰력을 발휘함으로써 첫째로는 이 나라 민주발전에 대한 최소한도의 의무를 수행하는 동시에 평화공존을 위한 세계사적 사명달성에 흔연 협동해 줄 것을 미국 자신의 백년지계를 위해서라도 엄중히 요청하고 싶다.

사설/「매카나기」 대사의 이한에 대한 우리의 감회

사설/「매카나기」 대사의 이한에 대한 우리의 감회 [민족일보 이미지]
사설/「매카나기」 대사의 이한에 대한 우리의 감회 [민족일보 이미지]

社說/「매카나기」 大使의 離韓에 對한 우리의 感懷

 

우리는 이때까지 몇 차례 美國으로부터 大使를 맞이하였고, 餞送한 記憶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매카나기」大使의 境遇처럼 深刻한 幻滅 가운데 作別을 告하지 않을 수 없는 前例를 보지 못했다.

우리의 이와 같은 幻滅의 悲哀는 決코 同大使個人에 대한 私的感情에서 오는 것도 아니오. 今後에 期待할 수도 있는 美國의 새로운 對韓政策에 대한 「斷念」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主權國家로서의 韓⋅美 兩國이 堅持해야 할 基本利益의 바탕위에 「나도 살고 너도 살 수 있는 길」이 아무런 修辭와 에누리 없는 現實的이며, 合理的인 思考와 實踐을 通해서 再檢討되어야 한다는 高調된 協同精神이야말로 우리의 이 深刻한 幻滅의 悲哀에 內在하는 要請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意味에서 「매카나기」大使가 國務省 極東問題擔當 次官補로 榮轉하게된 이 機會에 忌憚없는 몇 가지 意見과 忠告의 말을 進呈해 두는 것은 어떠한 값진 膳物보다 高貴하고도 時期에 알맞은 「友邦人으로서의 禮儀」라고 생각한다.

于先 우리는 「매카나기」大使의 今般의 榮轉을 歡迎하면서도 어딘지 釋然치 않은 點이 있다.

그것은 六⋅二五戰爭前後의 外交上 責任을 지고 不名譽스러운 召還令을 받아 急遽歸國한 「무쵸」大使의 너무나 對蹉的인 경우를 聯想케한다. 「무쵸」大使의 左遷은 李承晩政權에 對한 美國側의 過大評價와 「갈페스」特使一行의 三八線視察을 象徵的으로 「개나리꽃 求景」하러온 것이 아니라고 斷定한 以北側, 情勢把握과의 엄청난 差異에서 빚어진 當然한 結果였다.

이러한 情勢把握의 誤謬는 四⋅一九革命 一周年을 맞이한 오늘의 南韓事態를 正確하고 客觀的인 立場에서 보려하지 않는 美國의 態度를 通해서 그대로 되풀이되었다. 革命은 다시 새로운 革命을 부르고 있으며 張勉政權의 無能과 失政은 一年前 李獨裁의 最後發惡에 못지않은 非民主方向으로 逆轉하고 말았다. 

平和와 民主主義의 美名아래 國民은 戰爭當時와 방불한 恐怖와 生活難에 허덕이고 있으니, 이래도 美國은 對韓政策에 있어 成功했다고 自負할 수 있으며 「매카나기」 外交가 그처럼 높게 評價되어야 할 根據를 찾아내기에 힘든다. 國務省으로 赴任한 後의 「매카나기」 外交가 韓國에 있어서 現狀維持를 第一義로 逆戰하리라는 것은, 우리의 漠然한 杞憂만이 아니다.

獅子처럼 첫 出發이 근사했다가 뒤끝을 좋지 않게 맺고 떠나간 同大使야말로 韓國에 대해서 美國이 무엇을 企圖하고, 있는가를 엿보게 하는 슬픈 「테스트⋅케이스」가 되는 것이다. 

韓國을 위해서 이처럼 積極的이면서 無責任한 「매카나기」外交가 美國을 위해서 그처럼 不可缺하다는 것으로 높게 評價된 理由를 都是 理解할 수 없는 同時에 그것을 좋아라고 双手를 들어 歡迎하는 것은 오로지 이 나라의 反動的인 保守, 反民主勢力뿐 일 것이다.

美國이 韓國의 이러한 反民主勢力만을 相對로 하는 限, 大多數의 良心的인 이 나라 國民과 永遠히 등져야 한다는 絶大의 損失은 補充할 길이 없을 것이다. 그러한 近視眼的 對韓政策이 結果的으로 이 나라 民主發展과 統一의 길을 가로막게 되는 것이 分明하다.

民族자결의 깃발아래 擴大强化되어가는 亞細亞 亞弗利加(아프리카)의 自主勢力은 이미 오늘과 來日의 主人公으로서 歷史의 正路를 밟고 步調를 맞추어 前進하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끝으로 「매카나기」大使가 擔當할 問題의 部署는 一九四五年 十二月 「로버트슨」局長의 이름아래 처음으로 韓國에 대한 「信託統治案」이 發說되었고, 그것은 다시 「얄타」密約에서 소련軍의 內蒙古, 滿洲 및 韓國의 三八線以北占領을 「慫慂한」 美國의 戰時外交의 恥辱스러운 足跡이 남은 「極東局」이다. 四⋅一九革命의 「卓越한 ‘幇助者’요. 第二共和國의 精力的인 助産婦」인 「매카나기」大使가 名譽롭지 못한 過去를 淸算하고서 韓國의 統一問題와 民主化를 위하여 이제부터 問題의 「極東局」을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지?

바라건대 統一을 希願하는 이 民族의 渴望과 民主建設에의 熱意를 十分 省察하는 同時에 急轉하는 國際社會의 事情變更에 좀더 敏感한 洞察力을 發揮함으로써 첫째로는 이 나라 民主發展에 대한 最小限度의 義務를 遂行하는 同時에 平和共存을 위한 世界史的 使命達成에 欣然 協同해 줄 것을 美國 自身의 百年之計를 위해서라도 嚴重히 要請하고 싶다.

[민족일보] 1961년 4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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