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잃은 계절풍(季節風) - 발의 절량보고(絶糧報告) (1)


부황증 걸린 몸에 「부역(賦役)」이 웬말

애 낳고 굶어 죽은 여인도

젖 한 모금 못 먹은 핏덩이 남긴 채

 

○.... 밀수의 도시 삼천포(三千浦)라 하지만 5만 1천여명은 벌써 양식을 잃은 지가 오래다.

동금동(東錦洞) 철도부지에 사는 582세대에서 기아에 허덕이는 가구는 절반을 훨씬 넘는다. 이 마을 18방(坊)에 사는 사백명은 대부분이 일본에서 살다가 돌아온 사람들이다. 언제 당국에서 헐어버릴지도 모르는 움집에 사는 (사람)들은 지난 一월부터 「벳데기」죽으로 목숨을 이어왔다.

고구마 가루에 쑥을 섞어 얼버무린 돼지죽과 같은 「먹이」인 것이다.

 
○.... 가족 여섯을 거느린 곽(郭)씨 부인이 요 며칠전 아이를 낳고 굶어 죽었다.

아이를 낳고 「탯줄」을 끊으면서부터 먹을 것이 없어 젖 한 모금 못 먹인 핏덩어리를 남긴 채 영영 떠나고 만 것이다. 남편이 구두수선을 손이 닳도록 해도 아내의 목숨 하나 못 건졌다.

마을 사람들이 이 슬픈 주검 앞에 모여 통곡하고 뼈만 남아 죽어간 홀가분한 상여를 메고 나가 묻어 버렸다.

 
○.... 어둠이 덮인 이 천애(天涯)의 마을 - 젊은이들도 먹지 못해 시들어 버렸다. 일거리가 없고 먹을 것이 없어 축 늘어졌다.

「개떡」이라고 불리는 쑥떡마저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몇 안 된다고 방장을 지낸 정순모(鄭淳模, 55)씨는 간신히 혓바닥을 굴리며 부황증에 떠는 어린 것들의 머리를 쓸어 주었다.

「한달만 이대로 가다간 아사자 사태가 날낍니더...」

정씨는 양지쪽에 쭈그리고 앉은 여러 사람을 가리키며 저주하듯 뇌까렸다.

국토개발사업이 뭔지 우리 같은 사람도 한번 끼어줬으면 살겠다고 한 젊은이가 누렇게 떠오른 얼굴을 내밀며 고함을 질렀다.

「이거보소. 묵을 것없는 우리들을 하필 끌어내다 도로공사 부역을 시키능기오」

이 청년의 말에 가시가 돋혔다.

 
○.... 삼천포시청은 이런 사람들을 구한다고 「춘궁기 결식 난민 구호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각 기관장들이 모여 성금운동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6일 현재 우체국에서 겨우 보리 50되가 들어왔을 뿐 아무런 수도 생기지 않았다.

지난 1월에 시민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절량민을 위해 구호양곡을 요구했으나 아직 이렇다는 소식 한마디 없다고 사회계장 김태환(金台煥)씨는 나무랐다 - 숨 막히는 이 봄의 보릿고개는 한 달 후면 시가지에도 아사자가 생길 판이다.(글·사진=곽인효 기자(郭仁孝 記者))


▲ 사진 = 「벳데기」 죽마저 못 먹는 사람들이 도로부역 공사에 나와 맥없이 쭈구리고 앉아 있다.(삼천포 동금동서)

빛 잃은 계절풍(季節風) - 발의 절량보고(絶糧報告) (1)

[빛 잃은 계절풍(季節風)-민족일보 이미지]
[빛 잃은 계절풍(季節風)-민족일보 이미지]

[민족일보] 1961년 4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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