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초상(肖像) (4)
 

강냉이 튀김

뻥! 이것이 인생의 전부

=별 수 없는 연명(延命)에의 외가닥길=

남은 건 낡은 기계 두 대뿐

 

4월 7일(금요일) (맑은 날씨)

 

「뻐-ㅇ!」 이것이 내 인생의 전부다. 「뻐-ㅇ!」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있다며 가난과 헐벗음과 말할 수 없는 불만(不滿)뿐이다. 깜짝 놀랄만큼 갑작스러운 소리에 철없는 동네 꼬마들은 좋아라 손뼉을 치며 몰려들지만 영식(3세, 4남)이는 이 소리에 만성이 된지도 오래다.

오늘도 멀리서 울려오는 새벽 종소리에 눈을 비비면서 숯불을 피웠다. 하루 겨우 7, 8백환 벌이가 될까말까 하는 이 노릇을 이처럼 서둘러야 한다. 여섯 식구의 목숨이 「뻐-ㅇ!」하는 소리에 매달려 있다는 것인가?

큰 딸 광순이가 공장에라도 들게 되어 제 밥벌이만한다면 다소 옹색을 면할 텐데... 몇 달을 앓고 누웠어도 약 한 첩 못써봤으니 딸년의 멀건 눈을 보기만 하면 가슴이 떨린다.

1.4후퇴때부터 이곳 천막 안에서 굶주리며 강냉이를 튀겨왔건만 남은 것이란 2만 5천환짜리 간단한 이 기계 두 대뿐-- 이 천막도 내일 모래면 그나마 철거하라는 판인데 아무 곳에나 장소만 정해준다면 이까짓 천막이야 그대로 옮겨서 다시 부엌과 창고를 결한 방한 칸만 마련되면 그만이다. 이 이상 더 망하는 법이야 없을 테니까...

얼마 전 맹장염 수술이 끝난 지 열흘 만에 더 오래 누웠을 팔자가 못되어 나왔더니 동네 사람들이 모두들 혀를 차면서 내 얼굴이 아주 말쑥해졌다고 했다. 얼굴이 부었는지 빠졌는지 도시 알바 아니다.

내 얼굴의 생김새가 어떻든지 그런 것은 상관할 바가 아니다. 먼지와 연기와 그을음 속에 삼백예순다섯날을 파묻힌 식구들에게 있어서는 「꽃철」이란 너무나 당찮은 사치스러움 잠꼬대다. 암만 「뻐-ㅇ」 「뻐-ㅇ」해봐도 시원하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 여섯 식구가 연명하려는 현실 속에 이밖에 다른 뾰족한 수가 없지 않는가?

(제기2동 128번지 18통 12반)

 

윤철 (44)

거리의 초상(肖像) (4)

거리의 초상(肖像) (4) [민족일보 이미지]

[민족일보] 1961년 4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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