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초상(肖像) (3)


우산 고쳐 

비 오는 날엔 한목 벌어
시골선 여섯 식구가 돈오기만 고대
하루 6백환이면 혼잔 살죠

4월 4일 (火) 비

 

새벽에 눈을 뜨니 밖에는 분명 비가 내리고 있다. 비바람이 건너편 판잣집 양철지붕을 요란스럽게 두들기고 있지 않는가... 비 오는 날이라야 내 직업은 수지가 맞는 것이다. 내 옆에 자고 있는 날품팔이 김서방을 흘겨보았다.

 

벌써 잠이 깨었다가 비가 오니까 그냥 내처 자는 모양이다. 갠 날도 일이 얻어 걸리지 않아 그냥 오곤 했는데 비 오는 날이니 일자리가 있을리 만무하다 그러고 보면 내 직업은 김서방과는 정반대인 모양이다. 비 오는 날이라야 우산 고치는 사람이 많아 벌이가 잘되므로 나는 언제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하숙집 아주머니의 서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아침밥이 다 된 모양이다. 이 집에 하루밥값이 400환,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백환짜리 점심 한 그릇은 먹어야 되고 하루 70환짜리 「진달래」 한 갑은 피어야 하니 결국 하루 600환을 넘어 벌어야 사는 것이 아닌가...

지난달에는 내가 쓰고도 만여환을 시골집에 부쳤는데 이 달에도 돈을 부칠 수 있게 벌이가 잘되었으면 좋겠다. 언제가 갠 날인데도 하루 최고로 1,400환을 번 일이 있었다.
큰 기와집에 사는 예쁜 아가씨의 「파라솔」을 고쳐주고 400환을 달랬더니 1천환 짜리를 주며 그냥 가라는 고마운 분부가 내려다. 그날은 톡톡히 수지가 맞았던 것이다. 그러나 하루 종일 서울 장안의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다니며 「양산 고쳐」 「우산 고쳐」 목이 터져라고 외쳐도 누구 한 사람 부르는 사람이 없는 날도 흔히 있지 않았던가...

얼마 전 시골집에서 온 편지에는 집에 양식이 다 떨어졌다고 적혀 있었다. 양식이 다 떨어진 시골집에서 늙으신 부모를 모시고 있는 마누라가 불쌍하다. 「아빠 돈 많이 벌면 때때 옷 사가지고 와 - 」하던 네 살짜리 아들 생각도 간절하다.

집에서 굶고 있을 여섯 식구가 양식 살 돈 오기만 고대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답답하기만 하구나. 빨리 아침밥을 먹고 궤짝을 걸머지고 나가야겠다.
요전에 비 오던 날에는 三천환돈을 벌었는데 오늘도 그날만큼은 벌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서대문 무명(無名) 하숙옥(下宿屋)
정성용 (32)

거리의 초상(肖像) (3)

[거리의 초상(肖像) (3)-민족일보 이미지]
[거리의 초상(肖像) (3)-민족일보 이미지]

[민족일보] 1961년 4월 6일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