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통합진보당 서대문위원회 공동위원장)


통합진보당의 심각한 내분 속에 25~30일 당직선거가 실시된다. 특히 당대표 후보로 강기갑 혁신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과 강병기 전 경상남도 부지사가 나서 이른바 '강 대 강' 대결이 벌어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통일뉴스>는 강기갑 후보와 강병기 후보를 지지하는 기고문을 각각 의뢰해 싣는다. 기고문의 모든 내용은 전적으로 기고자의 의견이며, 표기는 '후보'로 통일한다. 강기갑 후보를 지지하는 이상훈 통합진보당 서대문위원회 공동위원장의 기고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주


4년전 분당사태의 데자뷰

처음 해 보는 일이나 처음 보는 대상, 장소 따위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현상을 데자뷰라고 일컫는다. 지금 통합진보당을 둘러싼 모든 논쟁과 논리들이 어쩌면 이렇게 4년 전과 같을 수가 있을까? 같아도 너무 같다. 2008년 2월 3일, 임시당대회는 지금의 모든 논리와 상황을 말해주고 있으며, 심지어 앞으로 벌어질 사태까지 예견하고 있다.

놀랍지 않은가? 심상정 비대위는 강기갑 비대위로, 일심회 두 당원은 이석기, 김재연 두 의원으로 둔갑했다. 당내 패권문제와 정파적 갈등의 산물인 제명문제를 풀어나가는 논리도 되풀이 된다. 다만 ‘단결’이라는 레토릭이 진보대통합 시대에 맞게 ‘통합’이라는 레토릭으로 바뀌었을 뿐. 모든 것이 같다.

달라진 것이라고는 당시는 총선을 앞두고 있었고, 지금은 총선이 끝난 상황이라는 점, 그 결과 늘어난 의원숫자와 4년이라는 세월, 그리고 주연과 조연의 변화 등등 이런 잡스러운(?) 것들밖에 없다.

▲ [사진제공 - 이상훈]
필자는 4년전 심상정 비대위 혁신안과 두 당원 제명안에 대해서 백 프로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의 단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던 무언의 폭력에 대해서 지금도 문제인식을 갖고 있다. 왜냐면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미완의 혁신과제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상황에 대처하는 각 진영의 논리다. 당시 심상정 비대위 진영에서는 ‘당의 혁신’을 주장했고, 이를 반대하는 자주계에서는 ‘당의 단결’을 주장했다. 결과는 결국 자주계들만의 ‘단결’로 심상정 비대위의 혁신안과 두 당원의 제명은 부결되었다. “관뚜껑이 열린 것 같다”라는 평등파 대의원의 뼈있는 농담이 당시 기사의 흔적에 남아 있다.

분당으로 인한 양 진영 모두, 홀로서기의 찬바람을 맞고 이를 거슬러 올라 원위치로 회복하는데 4년의 시간이 흘렀다. 혹독한 시련을 겪고, 우리는 진보대통합을 당의 노선으로 채택하고 다시 되돌려 놓았다. 이명박 정권의 탄압과 폭압, 신자유주의로 인해 모든 노동자, 서민, 온 겨레가 신음하고 있는데, 겨우 다시 되돌아가는 데만 무려 4년이란 시간이 흐른 것이다.

2008년 2월 3일, 그 현장으로 다시 되돌아간 오늘. 나는 그때 어떤 선택을 해야 했는가? 그리고 나는 오늘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답은 너무나 분명하다. 아니 이렇게 역사가 4년 내내 처절하게 가르쳤는데 아직도 오답을 택한다면 너무한 것 아닌가?

과거 민주노동당과 현재의 통합진보당은 여전히 정파연합당이다. 진보라는 큰 틀 속에서 서로 다른 노선과 지향을 가진 주체들이 상호존중의 질서를 구축하고 함께 운영하는 것이다. 어디든 다수와 소수가 있기 마련이며, 우리는 자본주의식 논리의 다수결의 원칙을 배제하고, 다수가 소수를 배려하고, 소수가 다수의 결정에 함께하는 진보적 원리를 내세워야 한다.

뿐만 아니라 부정에 있어서 누구도 예외일 수 없고, 함께 합의한 원칙에 따라 에누리 없이 집행되어야 한다. 그 원칙이 지켜질 때만이 서로 다른 주체들은 ‘신뢰’를 쌓게 된다. 원칙이 무너지고, 억지와 비상식이 판을 치는 지금의 상황에서 어떤 신뢰와 미래를 약속하겠는가? 우리는 5월 12일 당대회를 통해 너무 많은 것을 경험해버렸다.

내안의 ‘괴물’을 죽여야 모두가 산다

내 안의 ‘괴물’을 꺼내서 죽여야 우리 모두가 산다. 이번 기회에 패권주의라는 고질적인 병인을 없애지 못한다면 진보당은 언제 또다시 지금의 사태가 반복될지 모른다. 그리고 과연 상처투성이 당원들이, 실망한 국민들이 또다시 기회를 줄지 정말 의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통합’을 내세울 때가 아니라 ‘혁신’을 내세울 때다. 이미 진보대통합을 통해 통합진보당을 창당했는데, 강병기 후보가 내세우는 통합은 결국 자주계들만의 ‘통합’, 4년전 분당으로 인도했던 자주계들만의 ‘단결’ 논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진정 통합을 바란다면 당을 혁신해야 할 것 아닌가? 4년 전, 진보진영 모두가 함께 겪어야했던 피의 교훈 아닌가?

진정으로 통합을 바란다면 강기갑 혁신비대위를 지지해야 한다. 진정으로 혁신을 바란다면 강기갑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 2012년, 야권연대를 통해 정권교체를 이루고, ‘이명박근혜’ 정권탄생을 저지하기 위해서라면 강기갑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 역사와 순리가 가르치고 있다. 따라야 한다.

(이 글을 쓰는 중에 장창준 동지의 강병기 후보 지지글이 공개됐다. 어차피 관련된 글인 만큼 그 글에 대한 의견을 첨부한다. 물론 반론을 환영한다. 필요하고 조건이 된다면 필자도 재반론하겠다.)

장창준 동지의 글을 보며 우선 반가운 마음부터 든다. 90년대 학생운동의 어려웠던 시기를 함께 헤쳐 왔고, 당을 혁신시키기 위한 열정과 마음이 통해 왔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서로 다른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왜일까?

장창준 동지는 강병기 선본은 혁신 중이며, 젊은 세대들로 구성되어 당의 혁신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했다. 필자는 장창준 동지의 진심을 믿는다. 그리고 강병기 후보의 진심도 믿는다. 하지만 뭔가 명확하지 못하다. 당의 혁신에 동의하고, 강병기 선본은 혁신중이라지만 그 혁신의 방법에 있어서 잘못됐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당을 혁신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면 결국 필자와 장창준 동지와의 차이점은 혁신하기 위한 방법론의 차이이다. 혁신이라는 것도 대단히 상대적일 수 있기 때문에 어제보다 오늘이 새롭다고 모든 것이 다 혁신일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을 ‘봉합’이라고 부른다.

사람을 정리하는 문제만큼 어려운 것이 없을 것이다. 그 사람이 같은 대의와 노선을 가진 동지라면 더욱 그렇다. 경위야 어쨌든 당은 두 의원에게 사퇴를 명령했고, 두 의원은 그것을 거부했다. 그리고 절차에 따라 당기위원회에서 제명절차를 밟고 있는 것이다.

당조직에서 조직의 최고 의사결정을 거부하는 구성원을 제명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지위가 당대표든, 최고위원이든, 국회의원이든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더더욱 당적 지도력과 통제력을 발휘해야 한다.

당의 최고 의사결정을 따르지 않은 두 의원 등 후보들은 당의 규율과 질서를 지켜야 한다. 그것이 원칙이다. 이것을 두고 ‘정치적 살인’이니, ‘음모’니 라고 하는 것은 궤변일 따름이다. 시간만 끌다가 언론의 뭇매를 맞고 결국 타당의 의원들에 의해서 의원직을 박탈당한 과거 성남 시의원 이숙정 의원의 경험대로 흘러갈 뿐이다.

당원과 국민의 바램은 적당한 미봉이 아니라 철저한 혁신

또한 민주노동당 창당이후 지금까지 지난 10년 동안 혁신의 대상이라고 여겨왔던 그들과 함께 당의 혁신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맞지 않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당을 개혁하는 것이 아니다. 당원들과 국민들은 지금의 상황을 싸우는 두 양진영이 적당히 타협하고 봉합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21세기에 맞는 진보의 가치를 혁신하고 과거 패권적이며 낡은 당운영 방식을 모두 혁파하겠다는 강력하고 과감한 혁신의지가 필요하다. 그러하기에 당의 혁신은 결국 인적 혁신에서부터 출발한다. 물론 동부측 인사라고 무조건 ‘주홍글씨’를 새기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인맥과 정파적 연줄이 아니라 자질과 능력을 충분히 검증하여 함께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혁신재창당을 추진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쉽게도 강병기 후보는 이 점에 대해 아무런 입장이 없다. 우리의 진보대통합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강기갑 후보는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진보대통합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노동중심성 강화와 더 큰 진보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지난 총선당시 부산.울산.경남 총선의 결과가 말해주고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결론은 혁신의 방법이다. 필자는 장창준 동지의 방법론이 결국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우려를 떨칠 수 없다. 이 기회에 근본적으로 혁신하지 못하면 반드시 같은 문제가 재발할 것이고 그렇게 하기에는 우리에게 시간도 없지만, 이미 받은 상처가 너무 크다.

이미 혁신은 야권연대의 필수적 전제

끝으로, 며칠전 박지원 원내대표는 강병기 후보가 되면 야권연대가 파탄날 것을 경고했다. 그리고 오늘 유시민 전공동대표는 강병기 후보가 되면 대선후보에 나서지 않겠다고 언명했다. 강병기 후보 측에서는 특히 박 원내대표의 발언이 외압이고 정치공세라고 반박할 수 있다. 유시민 전공동대표의 경우도 외부인사는 아니지만 유사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장창준 동지가 이야기하고 있는 국민적 눈높이에서 보면 이것은 정치공세가 아니라 민심이다. 그리고 당심이다. 또한 현 상황은 이렇듯 비상한 발언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위기국면이다. 올해 정세에서 결정적인 국면인 대선에서 ‘이명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야권연대가 사활적으로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진보당의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가 불출마하겠다고 하고 진보당의 야권연대 파트너인 민주당이 연대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과연 이 대표적인 대중정치인들이 각각 당심과 민심을 모른다고, 잘못 읽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언제나 가장 근본이 되는 판단기준은 민심과 당심, 당심과 민심이다. 이를 얼마나 제대로 제때 파악하는가에 모든 것이 좌우된다. 혁신의 원칙과 방법도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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