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일 임진각의 한 커피숍에서 민주통합당 한반도평화본부가 주최한 '남북경협 활성화 간담회'가 진행됐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규모가 작은 업체들은 다 조사받고 벌금형을 때렸고 우리 같이 규모가 있는 회사들은 불구속 기소돼서 재판을 받고 있다.”

북한 모래를 채취해 남쪽으로 반입하는 사업을 해온 ㈜천도의 김동욱 대표는 남북경협 업체들의 애로사항을 토로하는 자리에서 뜻밖의 사실을 털어놓았다.

민주당 한반도평화본부(본부장 이해찬)가 16일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마련한 ‘남북경협 활성화 간담회’에서 김동욱 대표는 “저 같은 경우는 지침사항에 따라서 교역을 충실히 했다고 여겼는데, 사실 결론을 보면 재판을 받고 구속 직전에 임박해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날 간담회는 한반도평화본부가 개성공단 방문을 신청했다가 정부가 이를 불허하자 남북철도 시험운행 5주년을 하루 앞두고 도라산역을 방문한 뒤 남북 경협업체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 오른쪽부터 한반도평화본부 정청래 간사, 심재권 위원, 임수경 위원, 민주통합당 김종수 통일전문위원.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날 한반도평화본부의 도라산 방문과 간담회에는 19대 국회의원 당선자인 정청래 간사와 심재권, 임수경 위원이 참가했다.

김동욱 대표와 간담회에 참석한 경협업체 대표들에 따르면 200여 개의 남북 교역업체들이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지 않고 북한으로 물품대금 등을 현금으로 송금했다는 이유로 100만원에서 200만원 정도의 벌금을 물어야 했고, 대북송금의 규모가 큰 경우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남북경협활성화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양근 ㈜두담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제13조 1항에는 교역당사자가 북한 물품을 반출입할 때 대금결제방법에 관해 통일부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 돼 있지만 제13조 2항에는 포괄적 승인 조항이 있다는 것.

따라서 모래와 같은 포괄적 승인품목의 경우 통상 통일부장관의 승인을 거치지 않고 물품을 반입하고 물품대금은 한국은행 확인만 거쳐 일반 은행에서 북측 계좌로 송금하는 것이 오랫동안 관행으로 자리잡았던 것이다.

이에 대해 통일부 관계자는 “포괄승인 품목의 물자를 반출입할 때 승인을 안 받아서, 대금결제도 통일부장관의 승인을 안 받는 것으로 업체가 착각한 것”이라며 “통일부가 경찰에게 수사를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경찰이 남북간 경협과 교류를 전면 차단한 5.24조치가 취해진 상황에서 대북송금 위반사례를 찾다가 이전의 관행을 범법으로 분류해 적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 간담회에 참석한 경협업체 대표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김동욱 대표는 “사실 제 입장에는 어이가 없는 일”이라며 “통일부 지침이 정확하게 있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은행에서 송금 확인을 거쳤고 대부분의 교역업체가 이같은 관행을 당연시했기 때문에 수년간 같은 방식의 대북송금이 이루어졌는데 지금에서야 문제를 삼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김 대표의 경우 여러 차례의 대북송금을 했기 때문에 각 송금 사안별로 별도의 법적 조치를 당하고 있어 고통은 더욱 심하다고 하소연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이같은 사정에 대해 “교역업체 교역은 통일부 승인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통일부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우리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형사정책상 검토해야 될 부분이다”고만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경협업체 대표들은 민주통합당 19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에게 많은 애로사항을 호소했다.

정양근 회장은 “19대 국회나 특히 민주당에게 부탁하고 싶은 이야기는 정말 새 국회에서는 정경분리 원칙으로 경협만 하게 해달라는 것이다”라며 “세계 어느 나라가 정부가 허가해준 개인 사업자들을 가지 못하게 막는 나라가 있느냐”고 말했다.

정부를 상대로 5.24조치로 인한 피해 보상 요구 소송을 진행 중인 정범진 ㈜겨레사랑 대표는 “통일부와 국회와 경협사업자 3자가 참여하는 (경협업체) 피해신고처를 국회 안에 두고 운영해달라”고 제안하고 “실질적인 구제책 내지는 지원책들을 마련해주고, 경협이 재개될 때 어떤 지원책이 있을 수 있는지 현실적으로 고민해달라”고 주문했다.

“2008년도에 진출해서 개성공단 후발업체에 속한다”는 ㈜오오엔육육닷컴의 강창범 대표는 남북관계 악화로 북측 근로자 기숙사 건립 등이 진행되지 않아 인력수급 문제가 심각하다며 “3,000명이 들어와야 하는 상황인데 200여명 가지고 1년 6개월을 버티다 보니까 매달 가동적자만 1억 5천에서 5천까지도 봤던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가동률이 낮아 재무제표가 악화됐고, 결국 신용등급이 8등급이나 떨어져 대출금 이자가 5% 수준에서 14%, 17%까지 급등해 이미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며 정부가 저리로 ‘대체자금’을 지원해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

교역업체로 등록돼 있는 산과들농수산의 박종화 대표는 협력업체로 전환시켜 줄 것을 요구했다. 교역업체는 등록만 하면 쉽게 남북교역업에 종사할 수 있지만 대신 매 건별로 승인을 받아야 하는 불편이 있고, 경협업체는 까다로운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대신 사업계획별로 일괄승인을 받아 경협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협력업체 승인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금강산에 대규모 투자를 해놓고 애를 태우고 있는 이종흥 금강코퍼레이션 대표는 “정말 피가 끓는다”며 “차라리 (금강산구역을) 재난구역으로 선포해달라”고 울분을 터트렸다. 재난구역으로 선포되면 피해보상이라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금강산에 현대아산 다음으로 최대 규모인 150억원 정도를 투자한 일연인베스트먼트 안교식 대표는 “관광이 중단되고 4년 뒤, 지금 정부로부터 일부 지원을 받았지만 4년 중단된 동안에 제 개인 채무만 30억이 늘었고, 제가 약 4억 정도 사채를 3부(이자) 정도로 쓰고 있다”며 “저희 회사를 얼마나 끌고 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통일부는 10억원 이하를 투자한 경우 80%선까지 금융지원을 해주고 있지만 상한선을 15억원으로 두고 있어 대규모 투자업체의 경우 혜택이 미미한 실정이라는 것이다.

▲ 간담회를 마치고 장단콩마을에서 점심식사 후 기념촬영.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경협업체 대표들의 절박한 호소를 경청한 정청래 당선인은 “충격적이다”며 “한마디 한마디가 정말 가슴 절절하고 눈물나올 정도다”, “이 정도까지인 줄은 저도 몰랐다. 죄송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 당선인은 “국가가 잘못한 것을 국민이 온통 온몸으로 떠안고 있는 이런 현실이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또 공직에 몸담고 있는 우리로서 굉장히 부끄럽다”며 “19대 국회가 개원되면 특위가 됐든 무슨 모임이 됐든 추진하도록 해서 여러분의 실태가 좀더 많이 알려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임수경 당선인은 역시 “너무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다”며 “사실 아직 당선자 신분이기 때문에 말씀을 못 드린다. 오늘 말씀 된 내용은 토씨하나 빠지지 않게 이해찬 본부장께 보고 드리고 논의를 깊이 있게 진행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구 민주당에서 남북교류협력특위 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는 심재권 당선인은 “사실 민주당에서 많은 노력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개선책이 안 이루어졌다”며 “정부에서 마이동풍으로 오불관언으로 이렇게 철벽을 세워놓으니까 더 이상 진척이 안 되는 것”이라고 정부 측에 화살을 돌렸다.

심 당선인은 “우리 당이 의석도 조금은 더 늘었고, 더 중요한 것은 대선국면이 오고, 아마 새누리당도 뭔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기대감을 표하고 “통일부에서도 얼마나 힘이 될지 모르겠지만 좀 반영토록 노력해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김종수 민주통합당 통일전문위원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간담회에는 통일부 이창렬 기획재정담당관 등 통일부 직원들이 배석했다.

▲ 경의선 육로 남측 북단에 세워진 2차 정상회담 기념비 앞에서 포즈를 취한 방문자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한편 한반도평화본부 정청래 간사와 임수경.심재권 위원은 이날 오전 10시경부터 도라산역을 둘러보고 남북출입사무소에서 설동근 소장으로부터 현황브리핑을 받았으며, 군부대 책임자의 안내를 받으며 도라산전망대를 참관했다. 이해찬 본부장은 민주통합당 대표 경선에 뛰어들어 이날 도라산 방문에는 불참했다.

이에 앞서 민주통합당 한반도평화본부는 지난 11일 연평도를 방문해 연평도 포격전 현장 등을 둘러봤으며, 연평도 주민들과 간담회를 가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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