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재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미군문제팀장)


천영우의 커밍아웃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중.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공영방송 PBS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그동안 북한이 비핵화를 거부하는 데 대한 충분한 대가를 부과하지 않았다”면서 “북한이 계속 내부 자원을 주민생활 개선이 아닌 군사부문에 투입한다면 어느 순간엔가 북한이 파산할 때가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이 천안함 공격과 연평도 포격에 대해 잘못을 시인하지 않을 경우 공식적인 남북대화를 재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위키리크스에 따르면 지난 해 2월 당시 천영우 외교부 2차관은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미국대사에게 “북한은 이미 경제적으로 붕괴됐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후 2~3년 내 정치적으로도 붕괴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한 것으로 미 외교전문에 나타났다.

천영우 수석이 중.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커밍아웃한 셈이다. 외교부 출신의 천 수석이 왜 이 시점에서 도를 넘어도 한참 넘은 비외교적인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을까. 그것은 초조감 때문이리라. 중.미 정상회담에서 6자회담이 대화로 가닥이 잡히는 것에 대한 조바심 말이다. 그래서 작심하고 중.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재를 뿌리는 발언을 한 것이 아닐까.

중.미 정상회담 재뿌리기

이명박 정부는 1월 초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방한했을 때 중.미 정상회담에서 우라늄농축시설 중단 및 유엔안전보장이사회 회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상주 복귀 등의 조건을 관철해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심지어 “이번 중.미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UEP(우라늄농축 프로그램)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의지가 없다고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또, 남북 대화가 이뤄지려면 북한이 더 이상 도발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야 하고, 북핵 일괄 타결 방식, 즉 ‘그랜드 바겐’에 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가 내거는 대화의 조건은 하나같이 북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이다. 이명박 정부가 이런 조건을 내세우는 것은 자신들은 대화에 나설 의사가 없으면서 대화가 성사되지 않는 핑계를 상대에게 덮어씌우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미국과 중국에 대해서도 대화를 서두르지 말고 북을 계속 압박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요컨대 조금만 더 압박하면 북을 굴복시키거나 붕괴시킬 수 있으니 대결에서 대화로의 정책전환을 하지 말라는 요구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대화의 진정성이 없는 것은 북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다.

사실 이명박 정부는 당선 직후부터 북미대화와 6자회담을 일관되게 반대하거나 방해해왔다.
2008년 12월 이명박 정부는 일본과 손잡고 크리스토퍼 힐 당시 미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가 두 차례나 회담 자리를 박차고 나가게 만든 끝에 결국 6자회담을 파탄으로 내몰았으며, 2009년 여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12월 보즈워스 대표의 방북을 반대했고, 2010년 봄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의 방미도 반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막기 어렵게 되자 천안함 침몰의 원인을 북에 뒤집어씌우고 이를 빌미로 수십 차례에 걸쳐 대북 공격적 전쟁연습을 벌이는 과정에서 연평도 포격전이 발생했다.

천안함 사과? 남쪽이 할 일 아닌가?

천안함 사건과 관련하여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결정적 증거라는 것들은 지혜롭고 용감한 누리꾼들과 일부 전문가`국회의원들의 노력에 의해 증거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심지어 국방부가 결정적 증거의 하나로 제시했던 흡착물질의 성분 등에 대해 스스로 “지엽적인 논란”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경우도 있었고, 어뢰 추진체에서 오랫동안 서식했던 것으로 추정되어 누리꾼 등에 의해 천안함 폭침 주장이 조작이라는 결정적 증거로 제시되었던 가리비를 떼어내 증거인멸까지 자행했다.

이명박 정부가 초청하여 여러 날 조사를 벌인 러시아 조사단도 어뢰 공격을 부정했고, 역시 이명박 정부가 사활을 걸고 추진했던 유엔안보리 의장성명도 공격의 주체를 북한으로 명시하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를 비롯한 반북수구세력이 총동원되어 북풍몰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은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을 준엄히 심판했으며, 작년 7월 중순에 실시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 국민 셋 중 둘은 이명박 정부의 천안함 조사결과 발표를 신뢰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북의 검열단 파견 요구도 거부했고, 중국이 제안했다는 4개국 공동조사도 거절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는 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북에 대해 사과를 요구한단 말인가? 천안함 폭침을 전면 부인하는 북의 입장에서 볼 때 천안함 폭침의 범인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쓰는 것도 억울한데 사과까지 요구하니 완전히 적반하장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사과는 오히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증거도 없이 또 그에 대한 공정한 검증도 없이 북을 범인으로 지목한 이명박 정부가 북에 대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연평도 포격전도 북에 일방적 책임 묻기 어려워

지난 해 11월 23일 벌어졌던 연평도 포격전의 경우 남측의 많은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를 비롯한 반북수구세력의 선동에 의해 ‘호전적인 북한이 불법적으로 우리 영토에 포격 도발을 감행하여 무고한 민간인을 살상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냉정히 따져보면 쉽게 어느 한쪽만의 책임으로 규정하기 어렵다.
연평도 포격전 당시 김태영 국방장관의 작년 11월 24일 국회 발언을 종합하면 “신중을 기하기 위해 가능한 우리 조업구역 바로 북방으로 그어져 있는 북측 ‘계선’에 붙여서 사격한다. NLL에서 4~5km 떨어져서 북한측의 ‘계선’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돌려서 하고 있다. 우리 조업지역에 사격하면 어려움이 많기 때문에 위측에 사격을 한다. 연평도로부터 서남방향”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합참 관계자가 민주당에 비공개 보고를 하는 과정에서 “사격훈련의 포가 북의 작전통제선을 넘어갔을 개연성이 있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일 연평도 훈련에서 발사된 모든 포탄이 북측이 주장하는 ‘영해’에 떨어졌는데도 북측은 “적들은 끝끝내 13시경부터 연평도에서 우리 측 령해에 수 십 발의 포사격을 가”(11월 24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했다면서 극히 일부의 포격만을 문제 삼았다. 남측의 연평도 포사격훈련을 사흘 앞둔 작년 12월 17일에도 북측은 남북장성급회담 북측단장 명의의 통지문에서 “(남측이) 아군 해상경비계선 북쪽 우리측 령해수역을 목표로 또다시 포사격을 강행하려고”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를 종합해보면 북한의 작전통제선(계선, 해상경비계선)은 NLL과 NLL로부터 4.5마일(7.2km) 남쪽에 그어져 있는 남한의 어로저지선(적색선) 사이에 그어져 있고, 남한의 포격은 주로 북한의 계선과 연평도 주변의 남측 조업 구역 사이의 구역을 향해 실시되는데, 당일 훈련 과정에서 일부 포탄이 북측의 계선을 넘어 갔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바로 이 포탄들을 영해 침해로 보고 연평도에 포격을 가한 것으로 보인다.

남한 합참이 시사하고 북측이 비판한 대로 연평도 포격전 당시 남측 포탄이 북한 작전통제선 이북으로 떨어져 국제법적으로 인정되는 북한 영해를 침범한 것이 명백하다면 북측의 포격은 정당한 자위권 행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포격은 남측 영해가 아니라 영토에 떨어졌고 민간인까지 희생되었다는 점에서 남측 포격에 대한 필요최소한의 범위 내의 대응 원칙을 넘어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남측의 대응 포격도 포격전의 원인을 남측이 제공한 것으로 판명될 경우 자위권 발동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연평도 포격전과 관련한 책임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따라서 적어도 북에 대해서만 일방적으로 책임을 묻기 어렵다.
이명박 정부가 남측 민간인 희생에도 불구하고 연평도 포격전을 유엔안보리로 끌고 가지 못한 이유도 북방한계선(NLL)의 불법성뿐만 아니라 연평도 포격전의 원인을 남측이 제공했을 가능성 때문으로 보인다.

북의 원자력 건설은 국제법적 권리

이명박 정부는 북의 우라늄 농축시설 문제를 유엔안보리로 넘기려 하고 있다. 그러나 우라늄 농축시설이 평화적으로 이용되는 한 누구도 이를 가로막을 수 없다. 핵의 평화적 이용은 국제법적으로 보장된 주권국가의 합법적 권리이며 9.19공동성명에서도 5개 당사국이 북의 평화적 핵 이용 권리를 인정한 것이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가 북의 우라늄 농축시설을 유엔안보리에 회부하는 것은 대결국면에서 대화국면으로 전환되는 한반도 정세를 또다시 뒤집으려는 음모로 보인다. 2009년 유엔안보리가 북의 인공위성 발사를 비난하는 의장성명을 발표하자 북이 이에 반발하여 2차 핵실험을 함으로써 정세가 대결국면으로 급속히 빠져 들어갔던 전철을 밟으려는 게 아닌지 의심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북미대화와 6자회담을 가로막아 왔고 지금도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전, 북의 우라늄 농축시설 문제로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방해책동은 계속 먹혀들어갈 것인가?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북의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와 미국의 북핵.미사일 능력 재평가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의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가 미국에 준 충격

2010년 11월 평양을 방문하여 영변핵시설을 둘러본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에 따르면, 북은 2012년 완공을 목표로 실험용 25~30MWe 경수로 건설 공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현대식 제어통제시설을 갖춘 2,000여개의 우라늄 농축 원심분리기 시설을 가동 중에 있다고 한다. 이러한 북의 핵능력은 미국의 예측을 훨씬 뛰어넘는 것으로 해커 박사와 동행했던 로버트 칼린은 “너무나 충격적인 광경을 보고 잠시 정신이 나갔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북의 주장대로 2,000여개의 원심분리기가 가동을 시작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를 통해 연간 2t의 저농축우라늄 생산이 가능하다. 이는 이란이 나탄즈에 보유한 농축시설(연간 4000SWU(분리작업단위 Separative Work Unit)의 2배에 해당하는 연간 8000SWU를 생산할 수 있는 용량이다. 이를 고농축우라늄(HEU) 생산으로 전환하면 1년에 40Kg의 HEU(핵무기 2개 제조 가능) 생산이 가능하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북한이 플루토늄 핵탄과 우라늄 핵탄 2가지 프로그램을 모두 갖게 되어 핵무기 역량을 비약적으로 증대시킬 수 있는 문턱에 도달했음을 말한다. 이는 미국 입장에서 볼 때 북이 핵분열성 물질과 원심분리기 수출 등 확산 잠재력을 갖춤으로써 핵확산 위협이 현실화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우라늄 농축시설은 탐지가 어렵고 은닉하기 쉬우며 별도의 핵 실험 없이도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측면에서 플루토늄에 비해 훨씬 미국 안보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북정책 전문가들은 미국의 정책실패에 대한 비판과 대북정책 전환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작년 11월 북을 방문했던 조엘 위트는 “전략적 인내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를 구축하는 일과 북핵 억제 및 제거, 핵기술 확산 차단 등 모든 전선에서 실패하고 있다”며 “북한과의 지난 16년간 관계에 대한 철저한 재검토, 북핵 현황에 대한 분석, (미국의)선택사항에 대한 정직한 평가”를 통한 대북 정책 전환을 촉구했다. 로버트 칼린 전 국무부 정보조사관은 영변 우라늄 농축시설은 “미국이 추진하는 정책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음을 보여줬다”고 주장했다.

군축협상에 한반도 공고한 평화 보장 내용 담아야

한편,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11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직후 “북한의 핵무기 및 장거리 미사일 개발은 미국에 직접적인 위협을 주고 있다”면서 “미 해안에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5년 이내에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지난해 2월 초 미국 국방부가 펴낸 탄도미사일방어계획 검토보고서(BMDR)에서 “북한이 앞으로 ‘10년 안에’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한 것을 5년 앞당긴 것이다.

게이츠 장관은 또 “북한의 도발과 위협에 한국이 질려 있기 때문에 한반도의 전쟁위험은 높다”며 “협상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게이츠 장관은 “북한이 핵 및 미사일 실험 유예와 같은 특별한 조치를 취하는 등 군축협상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야한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이 전략적 인내를 접고 5년 내에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직접적 위협’을 해소하기 위해 핵미사일 문제를 중심으로 북과 군축협상에 나설 것임을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이 핵확산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인 본토에 대한 위협을 들고 나온 것은 동북아 MD(미사일방어)체제 구축 카드를 통한 중국과 북에 대한 위협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대북 제재와 압박에만 매달리면서 대화를 거부하는 이명박 정부와 미국내 강경파들에게 미국 안보와 직결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과 대화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간접접적으로 표명하는 것일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계속 북미대화와 6자회담을 방해할 것이고, 이로 인해 곡절이 있겠지만 미국의 절실한 안보적 이해에 따라 북미대화와 6자회담은 머지않은 장래에 열릴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열릴 회담은 게이츠 장관이 얘기한 것처럼 군축협상, 즉 핵심적으로는 북미 쌍방 간에 정치군사적 문제를 두고 벌이는 군축협상이 될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으로 귀결될 것인데, 문제는 그 내용이다. 한반도의 공고한 평화를 항구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평화를 위협하는 근본요인들을 모두 해결하는 내용이 담겨야 한다. 그것은 바로 한반도의 온전한 비핵화,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과 조중동맹 폐기, 남북군축 등이다. 이제야말로 주한미군 내보내는 한반도 평화협정 실현운동을 범국민적으로, 거족적으로 벌여야 할 때다.

 유영재 (평통사 미군문제팀장)

전 애국크리스챤청년연합 부의장
전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 사무처장
전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사무처장
전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범국민대책위원회 정책위원장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미군문제팀장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