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우 전문기자 (사진가)


또다시 남북교전이 일어났다. 군인이 죽었다. 그리고 민간인이 죽었다. 북측의 피해에 대해 알려진 바 없지만 중국 소식통에 따르면 남측보다 더 심할 것이라고 한다. 남측의 군인과 민간인 사상자들에 대해 깊은 조의를 표한다. 북측에도 발생했을 군인과 민간인 사상자들에 대해 역시 깊은 조의를 표한다. 더 이상 서해교전이 일어나지 말도록 하자고 몇 번을 다짐했건만 평화를 위한 노력은 분단의 현실 앞에서 항상 왜소하고 무기력하게만 느껴진다. 그렇다고 위기에서 기회를 찾으려는 노력을 그만둘 수도 없다. 분단국가의 숙명 앞에선 좌절도 사치이다.

이같은 사태는 매우 오래전부터 반복해서 예고된 것이었으며 남측은 국지전적 도발이라고 정의하고 있으나 북의 오랜 경고에 의하면 전면전 불사, 세계평화 위협의 서막이다. 다음을 보자.

이제 다시 서해해상에서 무장충돌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지난 시기의 서해교전과는 대비할 수 없는 싸움으로 될 것이며 지상과 공중을 포함한 전면전으로 확대되어 우리 민족의 생사는 물론 세계평화도 엄중히 위협하게 될 것이다.1)

위 인용문은 이번 연평도포격 관련 논평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6월 25일 <노동신문>의 기사이다. 북은 연평도포격을 통해 북방한계선 문제에 대해 자신들이 오랫동안 참고 인내해 왔으며 빈말을 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사실임을 증명했다. 미 항공모함이 서해를 향해 오고 있고 북의 포문은 여전히 열려있다고 발표하고 있다.

교전이 발생했을 때 마다 북측 정권의 의도부터 추리하는 맥락읽기가 앞서나갔지만 이같은 의도 읽기는 정작 사건 자체의 본질을 가리는 역할만 해왔다. 맥락을 짚어 숨겨진 의도를 찾는 노력도 필요하나 공개되고 확인된 사실로부터 사건의 경위와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

서해의 영해문제

<조선중앙통신>이 23일자로 전한 조선인민군최고사령부의 입장은 ‘남조선괴뢰들이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11월 23일 13시부터 조선서해 연평도일대의 우리측 령해에 포사격을 가하는 무모한 군사적도발을 감행하였다’로 시작하여 ‘조선서해에는 오직 우리가 설정한 해상군사분계선만이 존재할 것이다’라고 끝맺었다.2)

영해권과 그에 연동된 해상군사분계선 문제가 북측 주장의 핵심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남측의 합참 관계관은 “백령도와 연평도에서 실시한 아군의 해상사격훈련은 사격방향이 북쪽이 아니라 서쪽과 남쪽의 우리 측 방향이었고, 사격지역 자체도 우리 측 구역이었다”고 설명했다.3)

남은 북의 영해권 주장에 대해 남측 영해라는 말 대신 ‘우리측 방향’, ‘우리측 구역’이란 말을 사용하였다. 구역區域과 영토領海와 영해領土를 포함하는 영역領域은 법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구역이 지리개념이라면 영역은 주권, 통치개념이기 때문이다. 합참이 주장하는 맥락은 우리가 먼저 실시한 사격이 북측 영해를 향한 것이 아님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북의 논평을 보자.

25일 <조선신보> 보도에 따르면 24일 저녁 북측 판문점대표부는 “적들은 우리를 자극시키지 않기 위해 섬에서 남쪽방향으로 포사격을 했다고 변명하고 있지만 연평도는 해상군사분계선으로부터 우리측 영해안으로 깊숙이 들어와 위치한 지리적 특성으로 하여 그곳에서 포실탄 사격을 하면 어느 방향으로 쏘든 포탄은 우리측 영해안에 떨어지게 되어있다”고 담화했다.4)

여기서 남측이 생각하는 영해와 북측이 생각하는 영해가 서로 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남측은 북방한계선 북쪽을 북측 영해로 간주하지만 북측은 12해리 영해 원칙에 따라 설정한 자신들의 해상군사분계선 북쪽, 즉 서해5도를 모두 포함하는 해역을 영해로 간주하고 있다. 따라서 연평도에서 남쪽을 향해 포사격훈련을 했어도 그것은 북측 영해에 떨어졌다는 말은 일관성이 있는 논리이다.

우리가 북방한계선을 포기하지 못하듯 북도 북방한계선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전협정 체결 당시 서해상에는 어떤 군사분계선이나 지대도 합의한 바 없기 때문에 남북간에 서해상의 분계선을 두고 오랫동안 분쟁이 있어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북측이 주장하는 영해권은 정전협정과는 거리가 있다.

첫째, 다른 나라의 경우 정전협정에 영토문제까지 다룬 예가 있기는 하지만 한반도의 정전협정은 회담시작 전부터 영토문제는 다루지 않는 것으로 합의되었다. 정전협상 시작 전 유엔사무총장은 쌍방의 전선사령관들이 정치적 쟁점을 제외하고 정전문제에 국한시켜 협상할 것을 제안하였고,5) 51년 6월 27일 소련 외무차관 그로미코(Gromyko)는 모스크바 주재 미국대사 알렌 커크(Alan G. Kirk)에게 “야전지휘관들에 의한 휴전협상이 되어야하며 이 협상은 여하한 정치 또는 영토상에 관련됨이 없이 엄격한 군사적인 문제로 국한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6) 그 후 외국군 철수 등 정치문제는 논쟁이 되었으나 영토문제는 논쟁되지 않았다.

둘째, 정전협정 13조 b항에 따른 서해5도지도(Map3)에 표시된 섬 주변의 사각형 점선은 단지 지도상에서 서해5도의 위치를 식별하기 위한 것일 뿐 섬과 관련된 영해의 설정과는 무관한 것이다.7) 따라서 유엔군측이 주장하는 섬주변의 3해리 영해는 정전협정 어디에서도 합의된 바 없을 뿐만 아니라 한국정부가 주장하는 것이면 몰라도 일개 군사기구에 불과한 유엔사측이 언급할 성질의 것도 아니다. 더구나 정전협정은 영토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는 합의까지 있었으므로 정전협정의 정신과도 맞지 않는다.

북은 12해리를 일관되게 주장하여 왔고, 푸에블로호 사건직후 북이 강요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측 사과문에 4번이나 영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미국으로선 억울했지만 결과만 보면 북의 12해리영해를 인정한 셈이 되었다. 그러나 남측과 유엔사가 주장하는 북방한계선은 북으로부터 어떤 공식적인 확인도 받은 적이 없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8) 

북은 1973년 12월1일 군사정전위원회 346차 회의에서 서해5도의 접속수역은 북의 영해이며, 이곳을 통과하는 선박들은 북으로부터 사전허가를 받아야만 한다고 통지했다.9) 북은 영해권에 대하여 ‘바다국경은 국가가 령해권을 선포하면 령해의 바깥선이 자동적으로 국경선으로 된다’10)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어 북은 1977년 8월1일 인민군최고사령부 이름으로 ‘해상경계선’을 설정한다고 선언하였다.11) 북의 12해리 영해 주장은 1994년 유엔해양법 발효와 함께 현실화되었다.

남측 역시 유엔해양법을 1996년 비준함으로써 영해 폭은 12해리로 한다는 것에 대한 논쟁은 없어진 셈이다. 문제는 12해리가 겹치는 부분이다. 이는 등거리원칙 등 국제법적 원칙을 적용하여 당사국이 합의하면 된다.

그러나 남측은 북방한계선과 영해에 대한 협상을 강한 금기의 영역으로 만들어 버렸다. 국방부가 북방한계선이 곧 해상의 군사분계선이라고 주장하는 근거인 ‘응고의 법칙’과 ‘시효의 법칙’은 국제법에서도 인용을 피하는 이론이다. ‘응고의 법칙’이란 관계측과의 합의, 승인, 묵인 등의 복합적 요인에 의하여 권한획득을 인정받아 그것이 현실로 굳어지게 된다는 법칙이다. ‘시효의 법칙’은 영해나 영토주권에 관한 국제법상의 위법행위를 상대측이 항의하지 않고 오랫동안 묵인할 경우 인정된다는 법칙이다. 단, 항의를 받음이 없이 평온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북은 북방한계선을 합의, 승인, 묵인한 적이 없으며 북방한계선을 둘러싼 서해교전 이전부터 남측의 행위에 대해 묵인한 바도 없다. 국방부의 논리는 역으로 북이 스스로 묵인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표현하도록 유인하는 결과를 가져온 셈이다. 연평도포격 직후인 11월 25일 북의 논평을 보자.

적들이 노린 속심은 우리의 물리적 대응조치가 없는 경우 우리가 섬의 주변수역을 저들의 《령해》로 인정했다고 오도하려는데 있었다.12)

결국 남측의 군사적 대응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남측의 주장을 인정하는 꼴이 되므로 어떻게든 문제를 제기하고 남측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음을 표현해야 하는 것이 북측이 처한 입장인 것이다. 북의 주장이 변명에 불과하다고 해도 남측이 북방한계선에 씌운 자기최면을 풀지 않는 한 분쟁의 원인제공자라는 혐의를 벗기는 어려워 보인다.

서해5도의 영토문제

북은 그동안 서해5도의 영해에 대해서는 문제삼아왔지만 5개 섬 즉 영토에 대해서는 문제삼지 않았다. 왜냐하면 정전협정에 명확한 합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영토를 문제 삼았다. 북은 연평도를 포격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연평도는 우리에게 군사적 도발을 가해온 본거지로 되였으며 그로하여 우리 군대의 자위적 조치에 따른 응당한 징벌을 받게 되었다”라고 했다. 북측 영해에 도발을 가한 장소가 연평도였기에 연평도에 포격한 것이라는 논리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도발 장소가 선박이면 선박에 포격했을 것이라는 의미가 된다. 북측의 교전수칙이 비례성과 구체성, 제한성을 추구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것은 교전수칙의 적용이란 점에서만 보면 일관된 논리이다. 그러나 서해상에서 바다와 섬은 정전협정상 다른 지위를 가지고 있다. 정전협정 13조 b항에 의하면 서해5도에 대한 통제권은 다음과 같다.

(서해5도를) 국제연합군총사령관의 군사통제하에 남겨두는 것을 제외한 기타 모든 도서는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과 중국인민지원군사령관의 군사통제하에 둔다. 한국 서해안에 있어서 상기 경계선 이남에 있는 모든 도서는 국제연합군총사령관의 군사통제하에 남겨 둔다.

서해5도와 그 이남에 있는 도서들에 대해서는 유엔사령관이 군사통제권을 가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유심히 봐야할 단어가 ‘군사통제’(military control)이다. 군사통제란 일반적으로 점령(Occupation)을 뜻한다.13) 1954년 38선 이북이자 군사분계선 이남인 강원도지역에 대한 행정권 이양과 1962년 비무장지대 내 민간마을인 대성동에 대한 행정권 이양과 관련 유엔사가 한국정부에 보낸 문서에서도 정전협정상 ‘군사통제’라는 단어가 곧 ‘군사점령’을 의미함을 직접 확인하였다.14) 현재의 시점에서 정전협정상 군사분계선 이남에 대한 유엔군사령관의 점령자로서의 지위나 역할은 현실적으로는 희박해진 것이 사실이지만 법적으로 한국정부와 유엔사가 이 문제를 정식으로 매듭지은 기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는다.

현재 서해5도에서 점령자로서 유엔군사령관이 행사하는 권리는 군사작전에 국한되어 있다.15) 과거 미군점령시기와 같은 군정이나 민정은 상상할 수 없다. 치안, 행정, 구호 등 업무는 한국군과 한국정부의 능력만으로도 충분히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이 악화될 시 모든 민사업무는 군사작전을 위해 일관되게 재편성된다. 전시뿐 아니라 위기시 관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연합사령관 겸 유엔사령관의 권한과 의지에 따라 위기상황은 전쟁상황으로 발전될 수도 있다. 사건 직후 한국합참과 한미연합사 겸 유엔사에 위기조치반이 꾸려져 위기절차가 가동 중에 있다. 한국정부가 당장 유엔사령관에게 요구한 교전수칙 개정은 실질적으로 위기시를 전시로 변환시킬 수 있는 핵심사안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결국 정전협정에 명시된 서해5도에 대한 군사통제권, 점령권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며, 연평도 포격은 한국 영토에 대한 포격이자 유엔사 점령지역에 대한 포격이기도 한 것이다. 이것이 정전협정상의 합의가 없는 해상에 대한 공격과 다른 점이다.

한.미 서해 군사연습

조지워싱턴 항모의 서해 배치는 한미동맹의 상징인 연합사 차원의 대응이자 정전협정 당사자인 유엔사 차원의 대응이라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북측의 연평도에 대한 포격은 남측의 군사연습에 대한 대응사격이었지만 유엔사도 필연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샤프 유엔사령관이 연평도를 직접 방문하여 이번 사건이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말한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샤프 사령관은 용산기지의 시누크 헬기로 연평도까지 가는 동안 헬기가 인천에서 직선으로 바로가지 않고 먼 바다로 우회하여 가는 것에 의문을 제기했을 것이다. 1999년 1차 서해교전 후 북이 선포한 조선서해해상군사분계선과 2000년 3월에 선포한 통항질서에 따라 제2 수로상공 즉, 덕적도 상공을 직선으로 지나 비행하다가 경기만 해상에서 거의 90도로 방향을 틀어 북진한 뒤 연평도에 착륙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선택은 북측이 지정한 제2 수로 항로만이 사령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항로이기에 불가피한 것이다. 따라서 위험을 무릅쓰고 결행한 사령관의 연평도행은 서해상의 분계선과 영해문제를 자연스레 학습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런 배경에서 정전협정 위반을 언급한 것이다. 정전협정 위반이면 유엔사령부가 이 문제의 최종적인 해결 당사자가 되는 것이다. 즉 미국이 어떤 식으로든 응답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2006년 북측이 서해의 분쟁은 ‘전면전으로 확대되어 우리 민족의 생사는 물론 세계평화도 엄중히 위협하게 될 것이다’라고 한 경고에 말려들기라도 하듯 미국의 항모전단이 서해에 배치되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군사대응조치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AFP통신>은 복수의 미국 정부관계자들을 인용해 미국이 이번 사태를 악화시킬 어떤 조치 혹은 북측의 도발에 대한 보상도 검토하지 않는 것 같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해결책이 제한된 상황에서 미국은 군사적 대응보다는 외교적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같은 미국정부의 태도는 군부의 손발을 묶어 버리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조지워싱턴 항모전단의 서해 배치는 한국과 미국이 ‘뭔가 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것일 뿐이란 <인디펜던스> 아드리안 해밀턴의 주장이 더 현실적인 묘사로 보인다.

정전협정, 유엔헌장, 남북불가침조약 위반문제

국방부는 사건당일 발표에서 북측의 연평도 포격은 정전협정과 유엔헌장과 남북불가침조약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전협정 13조 b항에 의하면 서해5도지역에서 ‘이유없이 기한이 넘어도 군사역량을 철거하지 않을 때는 상대방은 치안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어떠한 행동이라도 취할 권리를 가진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3개월만에 소멸될 정전협정이 57년을 끌어오는 동안 교전쌍방은 군사력의 철거는커녕 증강시켜 온 것이 현실이며, 따라서 쌍방 누구라도 이미 어떠한 행동도 취할 권리를 가진 셈이다.

한편 일방의 정전협정 위반에 대해 타방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정전협정 폐기, 전쟁개시이다. 미국이 북의 정전협정 위반을 강도 높게 비난한다 해도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전쟁개시를 선언하는 것이 최고 강경한 조치이다. 그러나 사실 북측은 한.미의 정전협정 위반을 들어 정전협정 폐기를 수없이 선언하였고 정전협정으로부터 거의 구애를 받지 않아 왔다. 따라서 정전협정 폐기는 이미 북측이 내린 조치이며 한국과 미국은 정전협정을 유지하는 것이 현재의 목표가 된 상황이다. 정전협정 위반에 대한 대응으로서 취할 수 있는 조치가 궁색한 상황이다.

또한 국방부는 유엔헌장 위반을 언급했다. 아마도 유엔헌장 2조4항의 무력사용금지원칙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유엔헌장 51조는 무력공격 발생시 개별적 집단적 자위권을 보장하고 있다. 남측의 자위권 행사는 당연하지만 북측의 자위권 행사도 무시될 상황은 아니다. 자국의 영해에 무력공격을 받았다는 북측의 주장은 결국 남북의 영해가 어딘가의 문제로 귀착되고 자위권문제가 아닌 영해권문제로 의제가 옮겨갈 가능성이 있다. 외교부가 사건 초기 유엔안보리 회부를 기피했던 이유도 이와 연관 있을 것이다.

국방부는 남북불가침조약 위반을 언급했다. 남북불가침조약은 남북기본합의서와 함께 체결되었으나 남측 국회에서 비준되지 않은 채 현재에 이르고 있다. 6.15선언이나 10.4선언보다 남북기본합의서가 더 중요하다고 언급한 이명박 정부조차 국회비준에는 무관심했다. 발효되지 않은 조약은 조약이 아니다. 상대방에 지킬 의무를 부과하지 않은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데 남북불가침조약 위반을 누구에게 강요할 수 있겠는가.

때문에 연평도사건은 이번뿐 아니라 다른 경우에도 해결방법이 제한되어 있다고 판단하는 미국정부의 판단은 대체로 옳다.

선택의 기로

북측의 경고는 분명하고 구체적이다. 영해사수이다. 이에 대한 남측의 위기관리 목표는 현재로서는 혼란스러워 보인다. 국방부 발표에서 ‘북방한계선 사수’라는 단어가 나왔지만 현재의 대응과정은 ‘도발’이란 단어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남북 대화가 단절된 상황에서 북이 영해문제를 군사적 대응으로 제기한 것이라면 우리의 대응도 찬성이든 반대든 위기관리 목표는 영해문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다른 의제를 설정하여 북이 제기한 영해 의제를 무시해 버릴 수도 있다. 어쨌든 북이 서해해상군사분계선보다 영해문제에 더 방점을 찍은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북방한계선이나 서해해상군사분계선은 정전협정의 문제이므로 한국정부가 아니라 최종적으로는 유엔사와 상대해야 한다. 영해문제는 유엔사가 들어설 자리가 없는 남북 주권의 문제이다.

현재 남측의 정세로 보아 북방한계선에 대한 교섭은 물론 영해문제에 대한 교섭도 그 자체가 정권 탄핵사안이 될 만큼 부담스러운 주제이다. 노무현정부 때인 2006년 5월 북측으로서는 파격적인 결정인 서해상의 분계선을 원점에서 논의하여 새로이 설정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서해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던 이 제안조차도 한국정부는 받을 수 없었다. 그러자 다시한번 서해해상분계선 문제에 대한 북의 공세는 거세어졌다. 결국 북의 근본문제해결우선주의와 남의 점진적 해결주의의 타협점으로 10.4선언의 합의에 이른 것이었다. 그러나 10.4선언이 무력화된 상태에서 북이 원래의 근본문제해결주의로 돌아섰고, 해상의 군사분계선 문제도 아닌 영해권 문제를 남측에 던진 것이다.

10.4선언이냐 교전이냐를 강요받는 상황에서 남측은 국방장관을 경질할 만큼 전투태세가 완비되어 있지도 않고, 한국전쟁 초기처럼 연평주민들조차 원조, 구호할 준비도 안 되어 있는 상태임이 드러났다. 더구나 전국민을 장기간 전시대비 태세로 끌고 가는 것도 남측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대북 적개심도 높아지겠지만 전쟁피로도 급속히 증가할 것이다. 북은 한미연합훈련이 영해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한 직접적 대응은 하지 않을 것이나 자신들이 주장한 영해 안에서 이루어질 때는 어떤 식으로든 대응을 안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 도발에 대한 전쟁으로 나아갈 것인가. 영해문제에 대한 10.4선언 방식으로 돌아갈 것인가 우리는 기로에 서 있다.

< 각주 >

1) 군사론평원, "민족의 머리우에 전쟁의 참화를 들씌울《북방한계선》의 진상을 론한다",《로동신문》, 2006.6.25; 조선신보 재인용
2) 조선신보 2010.11.23
3) http://www.mnd.go.kr/Main_2009/index.jsp
4) 조선신보 2010.11.25
5) 김학준, 한국전쟁, 박영사, 1989, p243.
6) Royal Institute of International Affairs, Documents on International Relations 1951(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54), pp.633 ;「1951년 6월 27일 그로미코(Gromyko)일기」『Documents of Ministry of Foreign Affairs, U.S.S.R. 구소련 외무성문서』; 김보영, 한국전쟁휴전회담연구, 2008, p51-52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한국전쟁 하, 1991, p.21-27

7) 정전협정 부속 지도3 (한국서부연해섬들의 통제) 주2. 각 도서군을 둘러싼 장방형의 구획의 목적은 다만 국제연합군총사령관의 군사통제하에 남겨두는 각도서군들을 표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장방형 구획은 아무런 의의가 없으며 또한 이에 다른 의의를 첨부하지도 못한다. (이문항, JSA-판문점(1953~1994), 소화, 2001, p.365재인용)

8)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5279
미국은 한때 미국에서 열렸던 유엔해양법회의 참가자들에게 북한지도를 배포하면서 거기에 서해의 ‘가상경계선’을 국제해양법이 규제한 등거리원칙에 기초하여 ‘북방한계선’보다 훨씬 남쪽으로 표기한 적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북의 주장을 수용했다고 볼 수는 없다. 이처럼 국방부가 북이 북방한계선을 인정하였고 그 실효성이 발생했다고 주장하는 7가지 사례는 국제법적인 시효나 응고의 원칙의 사례로 인정되기에는 억지에 가까우며 북을 설득 할 수 없는 자기최면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 참조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234

9) 한국일보 1977.9.3 
10) 국제법사전, 사회과학 출판사, p40.
11) 그 적용 범위는 동해에는 50해리, 서해에는 경제수역 경계선으로 하며 규제 내용은 군사경계선 구역 내의 수상, 수중, 공중에서 외국인, 외국 군용함선, 외국군용비행기의 행동을 금지하며 민용선박, 비행기등은 사전합의 또는 승인하에서만 항행 및 비행이 가능하고, 민간선박과 항공기라도 군사적 목적을 가진 행동과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활동은 금한다는 것이다. 

12) 조선신보 2010.11.25
13) 1948년 4월 베를린위기시를 다룬 글에 다음과 같은 용례가 있다. ‘소련은 무작위로 그러나 점점 더 베를린을 통과하는 육상교통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미국점령지의 군사통제자인 클레이(Lucius Clay)장군은 소련이 올가미를 죄는 궁극적인 목적은 서방국가들을 베를린 밖으로 몰아내기 위한 것이라는 우려감을 나타냈다...클레이 장군은 미국의 점령권을 거듭 주장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으나 소련에 의해 제지를 받을 경우 열차 경비병이 이를 뚫고 나가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James E. Dougherty, Robert L. Pfaltzgraff, Jr., American Foreign Policy FDR to Reagan,(New York: Haper & Row, Publishers, Inc.) 1986 ; 이수형역, 미국외교정책사 루즈벨트에서 레이건까지, 한울아카데미, 1997, p98-99재인용)

14) Text of my letter to President Rhee. From Tokyo CINCUNC To Secretary of State No:C-69271, Aug 10, 1954 (Army Message); 이시우, 한강하구, 통일뉴스, 2008, p383재인용

15) 전쟁관계도 아니면서 타국의 섬을 ‘점령및 시정’(Occupy and Administer)한 것으로는 키프로스(Cyprus)나 오키나와의 경우가 있다. 키프로스섬의 법적지위가 국제법상의 문제로 등장하게 된 것은 터키가 러시아의 도발적인 침략을 받을 경우, 영국이 터키를 원조하는 대가로 터키는 그 영토인 키프로스섬을 영국에 이양하여 그 점령및 시정하에 있게 한다는 이른바 이양조항을 포함한 영.터 양국간의 동맹조약이 채택된 1878년 6월 이후의 일이다. 이러한 점령및 시정은 주권의 변경을 의미하는 어떠한 종류의 분리나 영토의 할양이 아닌 ‘시정권만의 인정’이란 것이었다. 일본의 오키나와섬 역시 미국의 군사기지화를 위해 미국 점령하에 있다가 반환된 사례이다.(김정균, 성재호, 국제법, 박영사, 2006, p422-423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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