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어릴 적 사진도 헷갈리는 북한 특수공작원

거짓말도 자꾸 하다 보면 그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사실로 착각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1987년 중동 근로자 등 115명의 승객을 태운 KAL858기가 사라졌고, 이후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는 북한 노동당 조사부 소속 특수공작원 김현희.김승일이 88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공중폭파 시켰다고 발표했다.

한국 정부는 ‘무지개공작’이라는 암호명으로 이 사건을 87년 대통령선거에 써먹었고, 미국은 이 사건을 계기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지만,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테러라는 한국 측의 주장에 대해 어떤 결의도 채택하지 않았다.

최근 천안함 사건을 유엔 안보리에서 다룬 정황을 보아서 알 수 있듯이, 이는 KAL858기 폭파가 북한의 테러라는 것을 한국 정부가 입증하지 못했음을 뜻한다. 한국 정부의 수사결과 발표는 전적으로 김현희의 진술에만 의존했고 안보리 회원국들이 수긍할 수 있는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던 것이다.

천안함 사건과 마찬가지로 사건 발생 당시부터 여러 의혹이 불거졌던 KAL858기 사건은 그 이후 숱한 정부 발표의 번복으로 이어졌고, 김현희의 진술 중 결정적으로 중요한 대목들도 하나하나 입증할 수 없거나 거짓인 것으로 밝혀졌다.

1988년 1월 15일 안기부의 수사결과 발표 당시 김현희가 북한 공작원이라는 가장 중요한 근거로 제시됐던 ‘화동사진’ 속의 북한 소녀는 귀볼 모양이 둥그런데 김현희의 귀는 귓불이 없어 ‘칼귀’논란을 빚었고, 이를 재조사한 국정원과거사위는 “김현희가 왜 두 차례나 자신이 아닌 소녀를 자신이라고 진술했는지에 대해서는 김현희의 진술 외에는 달리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최종 판단했다. (국정원,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 Ⅲ권 363쪽)

또한 김현희가 아버지라고 진술한 앙골라 무역대표부 수산대표 김원석은 국정원과거사위 조차 “김현희의 자술 이외에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자료가 없으므로 단정하기 어려움”이라고 결론지었다.(국정원,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 Ⅲ권 367쪽)

국빈대우에 ‘007작전’, 정치적 이벤트 요소 두루 갖춰

자신의 어릴 적 특별한 기념사진도, 아버지의 신분도 거짓으로 진술한 김현희 씨가 이제는 일본인 납북자에 관한 증언을 위해 한일 정부의 협조를 받으며 화려한 일본행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일본 언론조차도 그가 특별히 새로운 증언을 내놓을 것으로는 기대하지 않는다고 솔직히 시인하고 있다. 그의 진술이 사실이더라도 이미 오래 전에 북한을 떠난 김 씨가 납북자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할 것이 없다는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김 씨의 방일은 납치문제를 부각시키려는 일본 정부와 북한을 궁지에 몰아넣으려는 한국 보수정권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정치 이벤트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실제로 김 씨의 방일은 20일 새벽 일본 정부가 제공한 전용기로 인천공항을 빠져나가 도쿄 하네다공항에 새벽 4시에 도착하는 등 ‘007작전’을 방불케 했으며, 일본에서의 특별 경호와 하토야마 전 통리 별장을 숙소로 삼는 등 국빈급 대우, 헬리콥터를 동원한 언론사들의 취재 경쟁 등 화려한 이벤트 적 요소를 고루 갖췄다는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국정원과거사위 위원장으로서 KAL858기 사건을 재조사했던 안병욱 카톨릭대 교수는 “87년에는 KAL기 폭파로 무고한 인명을 살상하고 한국 대선(대통령 선거)을 엉망으로 만들었고, 이번의 경우는 일본과 공모해서 또 한번 한반도를 갈등과 분쟁 속으로 밀어 넣는 일종의 반역사적인 일본 조종에 놀아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 서현우 조사팀장은 “김현희가 북한 출신이라는 것 자체가 검증되지 않았다”며 “그런데 공작원 훈련 과정을 통해 알게 된 일본인을 납치자와 연결시키는 것은 사기다”고 규정했다.

한일 정부의 말바꾸기, '다쿠치 야에코=리은혜'?
고졸 호스티스가 김현희에게 일본 헌법을 가르쳤다?

김 씨의 이번 방일 일정 중 가장 중요한 이벤트는 납북자로 알려진 다쿠치 야에코와 요코다 메구미 가족과의 만남이다. 그는 자신이 북한에서 공작원 훈련을 받을 당시 일본인 현지화 교육을 담당했던(1981.7-1983.3) 리은혜가 다쿠치 야에코이며, 공작원 동료 김숙희가 요코다 메구미로부터 교육을 받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물론 둘 다 전적으로 김씨의 증언 외에 아무런 증거가 없다.

먼저 리은혜가 다쿠치 야에코인가에 대해서 살펴보면, 김 씨의 수사.재판기록 상 그는 한국에서 수사받고 재판받는 과정 중에 단 한 번도 다구치 야에코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김 씨가 다쿠치 야에코를 알게 된 것은 그보다 훨씬 후다. 1991년 5월 15일 당시 안기부가 ‘밤 9시에’ 기자회견을 갖고 “그동안 김현희씨의 진술을 토대로 일본경시청과의 공조수사를 벌인끝에 일본수사팀이 15일 내한, 김씨를 만나 야에코씨의 사진을 보이자 김씨가 ‘이 여자가 내게 일본어를 가르친 은혜라는 여자가 틀림없다’고 확인했다”(경향신문, 991.5.11)는 것이다.

다음날인 1991년 5월 16일에는 김현희가 직접 내외신기자회견을 통해 “사진을 보는 순간 은혜선생님임을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이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살이 찐 모습을 본 적이 있어 그때 모습이 눈에 떠올랐으며 그리움과 함께 불쌍하다는 느낌이 들었다”(세계일보 1991.5.17)고 재확인했다.

이때부터 ‘이은혜=다쿠치 야에코’라는 공식이 성립했으며, 김현희는 1995년에 『이은혜, 그리고 다구치 야에코』(고려원 간)라는 책을 발간해 이은혜와 1년 8개월여 간을 같이 살아온 내용을 소상히 공개했다.

그러나 정부의 입장은 달랐다. “최성홍(崔成泓) 외교장관은 1일 ‘북일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일본측에 행방불명자 조사결과를 확인해 준 다쿠치 야에코가 대한항공 폭파범 김현희가 언급한 `이은혜`와 동일 인물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일본측 설명’이라고 말했다”고 보도됐다.(연합뉴스, 2002.10.1)

당시 외교통상부 관계자도 “북한은 이번에도 이은혜라는 인물은 없다는 것이 공식입장”이라며 “김현희의 증언이 유일한 물증인데 북한이 시인하는 증거를 내놓기 전에는 추정할 수는 있지만 확인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통일뉴스, 2002.10.2)

이같은 정부측 기류는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바뀐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일본 경찰이 다구치 야에코가 이은혜와 동일 인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고 한발 나갔다.(통일뉴스, 2009.2.12)

그렇지만 역시 다쿠치 야에코가 리은혜와 동일 인물이라는 어떤 물증도 제시되지 않았고, 김 씨는 지난해 3월 부산에서 다구치 야에코의 가족들과 면담을 갖고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다쿠치 야에코가 리은혜가 아니라는 반박도 제기됐다. 서현우 조사팀장은 “납북 당시 고등학교 졸업 학력의 22세의 나이에다, 도쿄의 ‘할리우드’란 상호의 카바레에서 호스티스로 일하고 있었다는 다구치 야에코”가 어떻게 김 씨에게 ‘일본 헌법’과 ‘일본의 지방별 민족적 행사’, ‘일본의 지리, 역사’ 등을 가르칠 수 있었겠느냐는 의혹을 제기했다.(통일뉴스, 2010.1.4)

김현희는 요코다 메구미를 알고 있다?
지난해부터 갑자기 언급, 20년 이상 침묵한 까닭은?

또다른 논점은 김 씨가 북한이 납북자로 인정한 요코다 메구미를 알고 있거나 만났느냐는 것이다.

요코다 메구미는 중학교 1학년(13세) 때 실종됐으며, 이후 2002년 북측이 납치 사실을 인정하면서 1993년 3월 13일 29세로 숨졌다고 통보했다.

애초에 김 씨는 요코다 메구미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도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요코다 메구미가 일본에서 납치 피해자의 상징적 존재로 부각된데 이어 한국에서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 2009년 경에야 메구미를 안다고 증언하기 시작했다.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김현희씨는 작년 1월 기자와 인터뷰하면서 자신의 동료인 김숙희에게 일본어를 가르쳐 준 사람이 요코다 메구미였다고 처음으로 털어놓았다”고 밝힌 바 있다.(월간조선, 2010.2)

그러면서 친절하게도 “그 전에 자신이 쓴 책이나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은 ‘유일한 친구’를 보호해 주기 위해서였거나 아무도 묻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나름의 견해를 붙였다.

그러나 요코다 메구미는 언론에 집중 부각됐고 리은혜의 경우 단행본 책까지 써낸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아무도 묻지 않았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았으리라고 믿기는 어렵다.

김 씨는 지난해 3월 부산 기자회견에서 “요코타 메구미 씨는, 저희 공작원 동료인 김숙희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다. 제가 숙희와 같이 있으면 같이 찍은 사진도 보고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면서 “87년도에 끝나고 들어갔을 때 남조선 사람과 결혼해서 딸을 낳았다는 얘기도 들었다”, “요코타 메구미 씨가 사망했다던가 하는 것을 저는 믿을 수 없다”고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말했다.

한마디로 김 씨가 요코다 메구미에 대해 언급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이며 공개적 언급은 지난해 3월 부산 기자회견이 처음이다.

그러면 김 씨는 1987년부터 2008년까지 20년 이상을 요코다 메구미에 대해 잘 알면서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셈이 된다. 없던 말까지 지어내 숱한 의혹을 받았던 김 씨가 잘 아는 중요한 문제에 대해 한마디도 않고 20년 이상을 지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조갑제 대표는 “입이 무겁고 말은 계산적으로, 정확하게 하는 김현희씨”가 “김숙희를 통하여, 또는 직접 만나서 메구미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았을 것”이라며 “김현희씨는 이때 목격한 메구미에 대하여 그의 부모를 만나면 자신이 아는 것을 전부 말씀드리겠다는 자세이다”고 또다른 추정을 내놓았다. 김 씨가 메구미를 직접 만났을 것이라는 강한 암시를 준 것이다.

서현우 팀장은 “중1 때 납치됐다는 메구미가 공작원에게 일본어를 가르친다는 것이 사리에 맞느냐”고 반문하고 “김현희는 꼭 어떤 사회적 문제가 발생한 뒤에야 자신이 그것을 알고 있다고 뒤늦게 연결짓곤 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한마디로 사기극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김현희 씨의 잇단 일본인 납북자 관련 발언이 거짓말도 여러번 반복하다 보면 본인은 물론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마저 사실처럼 믿게 되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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