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KAL858기 폭파범 김현희(48) 씨가 ‘007작전’을 방불케하는 초호화판 일본 방문을 진행했다. 이를 지켜보는 1987년 사건 당시 실종된 115명의 가족들은 어떤 심경일까?

일본 언론은 물론 국내 언론들까지 일본 정부가 제공한 전세기편으로 모두가 잠든 새벽에 인천공항을 출발해 오전 4시경 도쿄 하네다 공항에 도착, 숙소인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 별장으로 향했다는 보도를 내놓고 있다.

<뉴시스>는 “일본 언론의 뜨거운 취재 열기 속에 도착한 흰색 정장에 선글라스 차림의 김현희씨는 숙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나카이 히로시(中井洽) 일본 납치문제담당상과 면담을 가지고 오후에 납치 피해자인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씨 가족과 숙소에서 만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김 씨는 21일 납치 피해자 요코다 메구미 가족을 만난 뒤 23일 귀국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참여정부 시절 국정원과거사위 위원장으로서 KAL858기 사건을 재조사했던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는 “김현희가 대한민국을 두 번 죽이고 있다”며 “87년에는 KAL기 폭파로 무고한 인명을 살상하고 한국 대선(대통령 선거)을 엉망으로 만들었고, 이번의 경우는 일본과 공모해서 또 한번 한반도를 갈등과 분쟁 속으로 밀어 넣는 일종의 반역사적인 일본 조종에 놀아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안병욱 교수는 특히 일본 정부의 행태에 대해 “일본은 한국 사람 수십만을 강제연행하고 죽게 한 것은 전혀 반성도 없이 북한 정권에 의해 납치된 일본사람 십여명만 그렇게 중요한가?”라고 묻고 “식민지 40년 동안 조선 사람들이 침탈 희생됐을 뿐만 아니라 60년이 지나도록 사과하고 해결하지 않는 것은 뻔뻔스럽고 모욕을 주는 더 심각한 문제”라고 짚었다.

그는 “일본 정부가 또다시 김현희를 데려다가 농간을 부리는 것이 화가 나고, 보수언론은 또 그걸 가지고 덧붙여서 장난까지 쳐댈테니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직접 피해 당사자인 KAL858기 가족회 차옥정 회장은 “‘어떻게라도 좀 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가족들의 전화를 오늘 많이 받았는데, 무슨 힘이 있어야 항의라도 할 것 아니냐”며 “자꾸 사건 당시가 생각나 마음이 편치 않아 차라리 안 보는 게 속 편하다”고 체념섞인 분노를 표했다.

차옥정 회장은 “정부가 예우해야 할 115명의 가족들에게는 예우를 하나도 안 해주면서 우리가 하지 말라는 것은 죽기살기로 하고 있으니 참 희한한 나라다”라며 “김현희를 원망하기 보다는 내 조국을 원망한다”고 정부에 화살을 돌렸다.

차 회장등 KAL858기 가족회 임원들은 지난해 2월 외교통상부를 방문해 김현희 씨의 방일을 반대한다는 뜻과 항의서한을 전달한 바 있다. [관련 기사 보기]

가족회 류인자 부회장은 “어이가 없고 기도 안 찬다. 할 말이 없다”며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이렇게 약한 나라에 산다는 것이 챙피하다”고 역시 체념을 쏟아냈다.

류인자 부회장은 “애를 기르는 엄마의 입장에서 정정당당하고 떳떳하게 나서야지, 하다못해 우리 가족들을 만나 안아라도 줬다면 모르지만, 이렇게 일본 앞잡이 노릇이나 하고 싶을까?”라며 “범인이 아니니까 일본에 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KAL858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 서현우 조사팀장은 “한마디로 사기”라며 “칼기 사건의 모든 부분이 의혹투성이 인데 그것을 해명해야 하는 것이 김현희의 1차적 의무임데도 불구하고 엉뚱한 짓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정원과거사위의 면담요청과 가족들의 면담요청을 거절하고, 국내 언론 앞에도 서지 않은 김 씨가 지난해 부산에서 일본 납치자 가족을 만난데 이어 일본을 방문한 것에 대해 “국민이 보기에 말이 안 되는 이상한 짓”이라는 것.

서현우 팀장은 “김현희가 북한 출신이라는 것 자체가 검증되지 않았다”며 “그런데 공작원 훈련 과정을 통해 알게 된 일본인을 납치자와 연결시키는 것은 사기다”고 규정했다.

그는 “김현희는 다쿠치 야에코에 대해 공식 수사가 끝날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다가 일본 당국이 다쿠치 야에코가 김현희가 일본인화 교육을 받은 리은혜로 추정된다며 확인을 요청하자 갑자기 맞다고 했다”는 점과 “모른다던 요코다 메구미의 경우도 2003년 김정일 위원장이 납치 사실을 인정하고 유골사건이 발생한 뒤 메구미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가 작년부터는 메구미를 만났다고 적극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들어 “시류 따라 번복되는 김현희의 진술을 전혀 믿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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