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뉴스>는 지난 5월 20일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 발표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점에 주목, 진실규명을 위한 '천안함 특별취재팀'을 구성, 운영한다. 아울러  <통일뉴스>의 '천안함 특별취재팀'은 그 목적이 진실규명에 있는 만큼 군사기밀 보호에 최선을 다하고자 자문 변호사의 법률적 자문을 거쳐 기사를 싣고 있음을 밝혀둔다. /편집자 주 

천안함 사고 당시 백령도 000초소에서 경계근무를 섰던 초병이 ‘물기둥’을 보지 못했고 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고 일관되게 진술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 그린 그림에도 물기둥의 모습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따라서 5월 20일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이하 합조단)이 ‘물기둥’이 존재했다고 제시한 가장 중요한 근거가 무너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당초 알려진 것과 달리 천안함 사고 직후인 26일 오후 9시(21시) 30분경부터 해군함정 3척이 사고 현장에 도착해 구조활동을 편 것으로 확인돼, 합조단이 발표한 9시 56분과 20여 분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 의혹이 보태졌다.

<통일뉴스>가 입수한 백령도 해병 000초소 초병근무자 A초병의 3월 28일자 자필 진술서와 B초병의 4월 2일, 4월 4일자 자필 진술서에는 “물기둥은 보지 못했다”고 명기돼 있다.

밖에서 직접 ‘맨눈’으로 상황을 관측했던 B초병은 4월 2일자 첫 번째 진술서에서 “물기둥은 보지 못했다”고 분명히 밝혔으며, 4월 4일자 두 번째 진술서에서는 “물기둥 등 다른 것을 보았냐고 묻는 사람은 있었지만 물기둥 등 다른 것을 보지 못하였다고 했다”고 명확히 재확인했다.

또한 그는 “날이 어두웠고 시정이 좋지 않아 (섬광) 이외에 부유물, 물기둥, 초계함을 목격하지 못했다”고 진술했으며, A초병은 “그날 해무가 심해 시정이 500m여서 00000(관측장비)으로 관측이 불가능했다”고 진술했다.

따라서 A,B 초병 모두 사고 당시 100m 높이의 물기둥을 관측했을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은 지난 5월 20일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물기둥에 대한 질문을 받고 “첫 번째는 백령도 초병이 해상에서 높이 100m, 폭 20~30m의 하얀 섬광 기둥을 발견했다고 진술한 것”을 물기둥이 존재했다는 4가지 근거 중 맨 앞에 내세운 바 있다.

참고로 합조단이 제시한 초병 진술에 등장하는 ‘초병’은 <통일뉴스>가 확보한 자필 진술서를 작성한 초병과 일치한다.

한편 이들은 ‘쾅’하는 폭발음을 들었고, 흰색 섬광을 목격해 “천둥이나 낙뢰로 추정하여 보고했다”고 일치되게 진술했다.

A초병은 “근무를 수행하던 중 21:23분에 낙뢰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들어 ‘쿵’소리와 함께 하얀 불빛이 000초소 기준 방위각 000° 4km 지점에 보였다”고 진술했다.

B초병도 “쾅하는 소리와 동시에 4-5km로 추정되는 거리에서 하얀 빛이 퍼졌다가 소멸하는 것으로 보았다”면서 “쾅소리가 깜짝 놀랄 정도로” 한 번 났고 “부딪치는 소리보다는 폭발음에 가까웠다”고 진술했다. 또한 “이후에 군함이 사격하는 소리를 같은 장소에서 들었는데 당시 사격소리와 유사했고 사격소리 보다 크게 들렸다”고 덧붙였다.

특히 B초병은 자필 진술서에 목격한 섬광을 그림으로 그리고 아래에 설명을 달아두었다.

▲ B초병이 자필로 그린 그림에도 물기둥은 없으며, 맨 마지막에 "물기둥은 보지 못하였습니다"라고 명확히 써놓았다. (아래에서 둘째줄 "근무자와 함께" 앞부분에 두 글자를 삭제했으며, 무인을 흐리게 처리했음)  [사진 - 통일뉴스]
구조함정이 처음 도착한 시각도 초병들의 자필진술서에는 합조단의 발표보다 훨씬 이른 시각인 것으로 확인돼 20여분 동안의 초기 구조시간에 이루어진 뭔가를 합조단이 감추려는 것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A초병은 “그 후 21:30분경 000초소 기준 방위각 000° 2km 지점에서 해군함정 3척이 와서 구조했다”며 “해안 탐조등으로 000초소 근처 해안을 해군들이 이쪽으로 올 수 있게 비추었고, 생존자가 있지 않을까 탐조등을 계속 비추었다”고 진술했으며, 이후에도 계속 해군함이 도착해 구조작업에 참여했다고 적었다.

사고 시각이 초병들의 시계를 기준으로 9시 23분(21:23)이었으므로 9시 30분에 해군함정 3척이 “와서 구조했다”면 합조단이 지난 4월 7일 기자회견에서 “(9시) 56분 고속정 편대 3척 현장도착 인명구조 시작”이라는 발표와 시간상 27분 정도 차이가 발생한다.

물론 초병의 진술이 개략적이어서 9시 30분경부터 해군함정 3척이 이동을 시작해 9시 56분경 사고현장에 도착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초병이 관측한 방위각과 거리를 감안하면 고속정이 전속력으로(보통 30-40노트, 시속 60km 수준) 사고지점에 도착했을 경우 9시 30분경에 도착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B초병은 “구조 당시에는 소형선박 3척과 초계함 정도로 추정되는 큰 선박이 해상에서 계속해서 이동하며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며 “선박들이 크게 흩어지지 않고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고 진술했다.

초병들의 초기 자필진술서에 “물기둥은 보지 못했다”는 명백한 진술에도 불구하고 초병들이 “높이 100m, 폭 20~30m의 하얀 섬광 기둥”을 목격했다고 제시한 점은 합조단이 ‘북한 어뢰설’에 꿰맞추기 위해 초병들의 진술을 왜곡하고 있다는 의혹을 살만하다.

참고로 전날(21) 국회 국방위에서 국방장관 출신인 김장수 한나라당 의원이 속초함 함장이 감사원 감사 당시 함정수사가 있었다고 폭로하자 김태영 국방장관이 사실상 이를 시인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김 의원이 “감사관이 ‘TOD(열상감지장치)로 반잠수정이 촬영됐다. 다른 사람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20명의 공작원이 있는 것도 확인됐다. 새떼가 아니라 반잠수정이었다’며 답변의 번복을 유도했다고 들었다”고 들이대자 김 장관은 “속초함장을 불러 2시간 동안 얘기를 들어봤는데, 사실인 걸로 알고 있다. (함정수사) 형태를 취했다고 본다”고 시인했다.

장교인 속초함 함장도 자신의 진술을 번복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있는 점을 고려할 때 사병인 초병들이 자신의 최초 진술을 외압에 의해 번복했는지의 여부를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수정,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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