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동기 (한국민권연구소 상임연구원)

 

북한의 핵융합 성공 보도를 놓고 진위여부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노동신문>은 2010년 5월 12일자 기사에서 핵융합 반응 성공을 주장하며 “수많은 과학기술적 문제들을 100% 자체의 힘으로 해결”하였다고 주장하였으며 “우리 식의 독특한 열핵반응장치가 설계제작”, “핵융합반응과 관련한 기초연구가 끝났음”, “열핵기술을 우리 힘으로 완성해나갈 수 있는 강력한 과학기술력량이 마련”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안타깝게도 북한 핵융합 반응 성공이 사실인가 여부를 확인할 방법은 아직 없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1989년에 상온핵융합에 성공하였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북한이 김일성종합대학에 핵융합로를 마련해서 핵융합 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해오고 있었다는 데에는 현재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와 보수언론은 북한 핵융합이 “터무니없다”고 반응하기 바쁘지만 흥미로운 점은 반북세력의 나팔수로 전락해버린 황장엽조차도 북한의 핵융합 반응에 대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실토하였다는 사실이다. 북한 핵융합 반응을 무조건 배척하기 전에 북한도 20여 년간 연구해 온 끝에 나름대로의 연구 성과를 얻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 아닐까.

이번 글에서는 북한이 핵융합 연구과정에서 얻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나름의 성과가 북한 산업 전반에 어떤 파급력을 가져올 것인지 살펴보겠다.

열핵융합의 필요조건은 플라즈마 기술

<노동신문>은 “우리 식의 독특한 열핵반응장치가 설계제작”되었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북한이 플라즈마(plasma) 생성을 이용한 핵융합 반응을 연구해왔다고 볼 근거가 된다.

기체에 강력한 전기장을 가할 경우 기체에서 전자(e-)가 떨어져 나와 극성을 띤 상태가 유지되는데 이러한 상태를 플라즈마 상태라고 한다. 주변에서 흔히 보는 형광등도 원리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플라즈마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핵융합 반응의 경우 원료가 되는 수소(H2)기체를 원자핵(H2+)과 전자(e-)로 분리된 극성물질인 플라즈마 상태로 만든 다음에 플라즈마에 전기장과 자기장을 매우 크게 높이면 이온과 전자의 속도를 비약적으로 증가시켜 플라즈마의 온도를 높이게 된다. 이러한 방법의 핵융합을 열핵융합이라 한다. 유럽에서 연구 진행 중인 ITER와 한국의 KSTAR 역시 고온 플라즈마를 이용한 열핵반응장치의 일종이라 볼 수 있다.

열핵융합 반응의 경우, 고도로 발전된 플라즈마 제어기술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플라즈마는 어느 정도 낮은 압력에서 형성이 용이한데 압력이 낮은 경우, 수소기체의 밀집도가 떨어지므로 핵융합 연쇄반응의 조건을 찾기 어렵다. 결국 높은 압력에서 플라즈마가 형성되어야 하는데 이 경우 기술적 조건이 훨씬 까다롭다.

또한 플라즈마는 그 자체로 매우 높은 에너지를 갖고 있고, 또한 그것이 기체와 유사한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재료의 평면에 표면반응을 손쉽게 유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플라즈마를 이용하면 재료 가공기술의 비약적 향상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IC 회로 생산에 응용 가능

일례로 플라즈마는 고순도의 반도체 집적회로(IC : Integrated Circuit)를 제작하는 반도체나 LCD, PDP 화면을 생산할 때 집적회로 정밀가공의 중요한 기술원천으로 광범위하게 응용된다. IC회로 제조공정 가운데 금속배선을 형성하는 Sputtering 공정에 플라즈마가 이용하고 있으며 절연체인 SiO2를 형성하는 반응에 PECVD (Plasma Enhanced Chemical Vapor Deposition) 법이 활용되고 있다. 또한 차세대 유전물질(high-k dielectric material)이나 금속배선의 확산방지막(diffusion barrier)을 제조하는 공법으로 Sputtring 방법과 함께 PEALD(Plasma Enhanced Atomic Layer Deposition)법이 연구, 적용되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플라즈마를 이용한 공법이다. PDP 영상은 구동방식에서 플라즈마를 활용하기도 한다. PDP 자체가 plasma display의 약자이다.

여기서 북한의 집적회로 관련 기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남우석 연구원은 ‘북한의 IT산업’이라는 글에서 북한이 1987년, 국제연합개발계획(UNDP)의 지원 아래 IC회로 시험공장을 설립하였고 1989년에는 평양에 IC 생산공장, 해주와 단천에 반도체 공장을 설립하였으며 1993년에는 평양 대동강 유역에 평양컴퓨터조립공당을 건설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북한은 PDA ‘하나21’을 제작,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지난 5월 3일에 단행된 중국 방문 당시 랴오닝성 다롄시를 방문하였을 때 인텔의 반도체 생산공장을 참관하였다. 이는 북한 당국이 반도체 생산에 커다란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해석될 수 있는 정황이다. 북한이 핵융합 연구과정에서 터득한 플라즈마 생성, 제어기술을 그들이 주목하고 있는 반도체 제조 등의 공정에 접목을 시도할 여지는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특수합금 생산에 응용 가능

또한 플라즈마 기술은 정밀 반도체 가공 뿐 아니라 금속의 표면특성을 강화하기 위한 표면처리의 방법으로 활용될 수 있다. 최근 금속산업에서는 기능성 특수강의 생산능력이 강조되고 있는데 북한 역시 그들이 구축한 플라즈마 기술을 금속산업 분야에 적용할 정황은 충분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플라즈마의 높은 에너지를 이용하여 금속표면을 처리한다면 부가가치가 높은 특수강을 제작할 전망이 밝아질 수 있다. 금속소재의 표면을 플라즈마 처리할 경우 플라즈마 전압을 조정하는 것을 통해 열과 충격에 대한 대응력이 우수하게끔 금속소재의 성능을 개선할 수 있다.

북한의 특수합금 생산능력은 2009년 4월, ‘은하2호’ 로켓 발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은 ‘은하2호’를 자체 기술로 제작하였는데 우주발사체에 들어가는 소재는 가벼우면서 강도가 매우 우수해야 하며 온도변화에 대해 팽창률이 현저하게 낮아야 한다. 또한 대기권 탈출 시 발생하는 커다란 압력에 대한 내구성이 우수해야 하며 특히나 고온의 열을 내뿜는 로켓엔진을 이루는 부품들은 높은 성능이 보장되어야 한다.

전 세계적 제재에 놓여 있는 북한이 이런 특수합금을 해외에서 수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은하2호’의 모든 부품들은 북한이 자체적으로 생산, 제조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북한의 플라즈마 기술이 특수합금 제작과 결합되었을 정황이 충분한 것이다.

무엇보다 특수합금은 국방무기 체계에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다. 가벼우면서도 견고해서 탄두에 대한 방어력이 우수한 장갑이 개발된다면 전차의 기동능력은 비약적으로 향상될 수 있다. 국토의 70%가 산지이면서 농경지의 대부분이 습지인 논으로 되어 있는 한국의 특성상 전차의 경량화는 전차전 수행의 필수요소이다. 가벼우면서도 열과 충격에 대한 내구성이 우수한 합금을 장착한다면 전차의 무게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초전도 기술의 응용 가능성

플라즈마의 고온을 이용하는 열핵융합 반응의 경우, 천문학적 수치의 자기장을 형성하기 위해서 전기저항이 ‘0’이 되는 초전도 물질을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초전도물질은 대개 매우 낮은 온도에서 초전도 현상이 나타난다.

1973년 영하 250도 부근에서 초전도 현상이 나타나는 Nb-Ge(니오브-게르마늄) 합금이 발견되었으며 1987년에는 영하 200도 부근에서 초전도 현상이 나타나는 Y-Ba-Cu-O라는 물질까지 발견하였다. 영하 200도 부근이면 저렴한 액체질소를 통해 냉각할 때 도달할 수 있는 온도이므로 여러 실험에 적용범위가 넓어지게 된다.

북한 <노동신문>도 1989년 핵융합 기사에서 김일성종합대학의 해당 연구진이 초전도물질에 대한 연구 성과를 내왔다고 했다. 적어도 학계에 이미 알려진 수준의 초전도물질은 북한 내에서도 자체적으로 제조하고 성능을 실험할 여건은 충분해 보인다.

초전도체는 그야말로 전기저항이 ‘0’이기 때문에 강력한 자기장을 발생시켜야 하는 전자석, 한꺼번에 많은 전기를 저장해야 하는 충전장치 등에 적용될 수 있다.

또한 초전도물질을 냉각시키는 냉각기술이 매우 높은 수준에서 도달되어야 한다. 온도가 1억 도에 달하는 고온 플라즈마의 바로 옆에서 온도가 영하 200도보다 낮은 극저온이 형성되어야 하기 때문에 열 차폐에 대한 높은 기술력이 없이 핵융합 반응 시도는 불가능하다. 즉, 냉각효율이 매우 뛰어나야 할 뿐만 아니라 단열기능이 매우 우수한 소재를 개발해야하는 것이다.

북한은 이미 성진제강연합기업소에서 주체철 생산체계를 완성하였다든지,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대형 산소분리기, 냉각탑 등을 자체 기술로 제작하였다고 주장해왔다. 이러한 냉각탑은 공기를 단열팽창시켜 그 온도를 계속 떨어뜨려 결국 기체상태의 공기가 액화하는 영하 200도까지 떨어뜨리는 대용량의 설비를 말한다. 냉각탑은 냉각효율이 우수할수록, 열차폐 효과가 우수할수록, 상용화, 대형화가 가능해진다. 이러한 대형설비를 이미 자체 기술로 제작, 가동하고 있다는 것은 북한의 냉각기술, 열차폐 기술이 수준급에 올라있다고 볼 근거가 된다.

기술과 산업의 연계에 주목해야

북한이 핵융합 반응 성공을 주장하자 이른바 이에 대한 진위논란이 과열되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핵융합 반응 성공 주장에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보유한 기술과 산업의 연계 가능성이다.

핵융합은 세계적 과학기술강국이라고 하는 나라들도 이제 막 성공의 문턱을 넘고 있는, 그야말로 최첨단의 기술영역이다. 북한이 20년 이상 핵융합 반응을 연구해왔다는데 그들이 핵융합 반응만 연구하고 그 연구 성과들은 산업 각 부문에 전혀 적용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이므로 과학기술 개발도 국가가 주도하고, 관리한다. 북한의 핵융합 기술진은 이미 오래 전부터 우주발사체 개발진, 국방무기 개발진, 각종 산업설비 연구진들과 공동연구를 수행해오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야지만, 제재로 묶여있는 북한에서 발사한 ‘은하2호’가 우주진입에 성공한 상호 모순적 정황이 설명될 수 있다.

이 모든 종합적 정황에는 전혀 눈을 돌리지 못한 채, 핵융합이 성공이냐 실패냐 하는 논리에만 집착하는 이명박 정부의 대응은 아둔하다 못해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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