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cene #1. 2008.7.5 덕수궁 대한문

(무대 차량 위에 오른다)

사회자 : 국민들이 평화적인 촛불집회를 진행했지만, 정부는 시민들에게 공안정국을 제시했습니다. 우리는 촛불집회에서 국민승리를 다시 한 번 큰 목소리로 선언할 것입니다.

(촛불을 힘껏 들어 올리며 '촛불이 승리한다', '국민이 위대하다' 구호를 외친다)

■ Scene #2. 2009.6.10 서울광장

(비장한 목소리로)

사회자 : 평소 같으면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시지 않으시죠? 여러분, 이 거리에서 만나니까 반갑습니까? 하나도 반갑지 않습니다. 이 거리에 앉아있는 것이 하나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여기서 희망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22년 전, 이 시청 앞 거리에서 군사독재정권에 맞서서 민주주의를 손에 쥐었던 우리 시민들의 정신을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가 잊고 있던 것들을 다시 되살려야 합니다. 여러분 함께 하시겠습니까?

■ Scene #3. 2009.6.22 성공회대 대운동장

(노란 손수건을 팔에 감는다)

사회자 : 오늘 이 자리, 다시 바람이 부는 이 자리, 다시 바람이 느껴지십니까? 바람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바람을 향해 뜁시다. 함께 뛰시겠습니까? 우리 그동안 너무 지쳤습니다. 너무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진짜 희망의 바람을 느낄 수 있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세 사회자는 동일 인물이다. '거리의 사회자'라고 불리며, 연예인답지 않은 소탈함으로, 대중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호흡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배우, 바로 권해효 씨다.

그는 대중들과 함께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노란 손수건을 흔든다. 선뜻 나서기 쉽지 않은 공개집회의 사회를 자처한다. 이런 그더러 누군가는 '소셜테이너(Socialtainer)'라고 했다. '소셜테이너'는 'Social'과 'Entertainer'의 합성어다.

"참여하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아"

▲<통일뉴스>는 지난 23일 오전, 일산 <SBS> 제작센터 앞에서 '4.2 평화통일음악제' 사회를 맡은 배우 권해효 씨를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제가 하는 것이 운동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참여죠. 온전한 참여인 겁니다. '같이 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 큰 것이죠. 왜냐하면, 안 그러면 (세상은) 요만큼도 변하지 않겠더라고요. 지금까지 온 것도 누군가가 피땀 흘려서 조금씩 온 것 아닌가요? 거기에 껴서 한마디라도 하려면 (웃음), 술 먹고서라도 한마디 하려면 참여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지난 23일 오전, 일산 <SBS> 제작센터 앞에서 만난 권해효 씨는 사회 전반적인 영역에 대해 자신만의 확고한 소신과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80년대 중반에 대학을 다녔고, 군대 있을 때 87년 민주화 항쟁을 겪었죠. 대학 재학시절 학교 안은 하루도 최루탄 냄새가 없었던 적이 없었죠. 하지만, 저는 그 안에서 같이 해 본 적이 없었어요. 방관자 정도였죠. 요즘 얘기로 비판적 지지자죠. (웃음)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리 남 보기에 소소하고 작은 일일지언정 그 공간에 참여하고, 같이 한 사람에 대해서 밥상머리에 앉아서 씹을(?) 수 있는 자격이 없다는 생각도 많았죠."

어려웠던 집안 형편상 20대를 학업과 생계를 위해 보내야 했던 그는 또래보다 뒤늦은 시기, 30대를 넘기면서 사회 참여 활동에 뛰어들었다. 불혹을 훌쩍 넘기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됐지만, 그의 열정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30대를 통과하는 과정 속에서 보통 우리 때가 다 그렇지만, 직장으로, 학원으로 들어가면서 소위 기성세대에 편입하면서 가장 빠르게 변화했던 같아요. 그러면서 '처자식 먹여 살리려다 보니까'라는 말 한마디로 모든 게 익스큐즈(excuse)되는 그런 것들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억하는 일".."기억하고 투표해야"

▲권씨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는 일" 이라며 투표에 참여할 것을 강조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그의 참여 활동은 '기억'과 맞닿아 있다. '기억'은 권 씨가 강조하는 부분 중의 하나다.

"왜 그들(보수진영)은 그렇게 열심히 할까? 정작 바로 그들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애썼던 사람에 대해서 엄청나게 기억을 해 준다는 것이죠. 먹여주고 살려줍니다. 그렇다면 '우리 쪽은 무엇을 해 줄 것이냐'는 것이죠.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 아니 우리 아이들 세대를 위해서 애써왔던 사람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억해 주는 것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그 사람들을 기억할 수 없다면, 자기들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권력을 남용하고, 법의 잣대를 마음대로 들이댔던 인간들에 대해서, 혹은 언론이라고 내세우면서 하지 못한 것들을 했던 사람들에 대해서 기억해 내는 것도 중요한 일이죠."

그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현실적으로 투표하는 일하고, 기억하는 일"이라면서 "잘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기억을 해 줘야 하고, 공익을 충실하게 대변하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을 찍어주고 자기의 사적 이익을 위해서 공익을 내세웠던 인간들에 대해서도 기억해 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성 평등, 장애인 등 사회 소수자 위한 활동도 꾸준히 펼쳐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공연에서부터 2009년 '광우병' 촛불집회와 2004년 노 전 대통령 탄핵반대 촛불집회, 미선.효순이 추모집회 등 '거리의 사회자'로 많이 알려졌지만, 사실 그는 사회 소수자들을 위한 활동들도 꾸준하게 펼쳐왔다.

성 평등, 장애인, 인권 등 일반 사람들조차 외면하는 사안들에 대해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06년에는 개그우먼 김미화 씨와 함께 한국여성단체연합의 ' 성 평등 디딤돌'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열악한 제작환경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독립영화에 대한 애착도 상당하다. 지난해까지 9년째 서울독립영화제 사회를 맡은 그는 '워낭소리', '우리 학교' 등 독립영화 홍보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의 이야기를 담은 '경계도시 2'를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있다.

"많은 분들이 얘기하는 개혁진보진영이 내세웠던 도덕성이라는 것이 어쩌면 한순간도, 한국전쟁 이후 60년 동안 그들(보수진영)이 만들어놓은 프레임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다는 것들, 그 안에서 결국 헤엄치고, 그 안에서 '좀만 더' 이런 식의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에요. 수많은 희생들이 있었고, 너무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요. 많은 생각을 들게 한 영화였어요. 꼭 봐야 하는 영화죠."

"MB 2년 동안 남북관계는 후퇴가 아니라 회복 불능"

▲ 통일에 대한 관심이 각별한 권씨는 최근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평소 통일에 대한 관심도 각별하다. 통일과 관련 행사에서 사회를 맡은 권 씨의 모습을 곧잘 볼 수 있다.

"한반도 남쪽 땅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 어디까지 통일에 대해 생각하고 알아야 하는지 혹은 생각하고 알 수 있는가에 대해서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도대체가 무슨 일만 하면 '친북좌빨'이라고 떠들고 있는 이 나라에서, 헌법이 추구하고 있는 가치인 민족의 화합과 통일이라는 것을 학교 안에서 토론하고 학생들과 얘기하는 것조차 '좌빨'로 몰아붙이는 세상이다 보니까, 이제는 일반 시민들이 통일의 방법론적인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때론 불가능한 것 같기도 해요."

애착만큼이나 안타까움도 많았다. 특히 최근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혀를 내둘렀다.

"이명박 정권 2년이 넘는 시간 동안에 남북관계의 후퇴에 대해서는 누가 언급하지 않더라도, 단순한 후퇴가 아니고 이렇게 가서는 북쪽의 경제난이라든지, 북쪽 인민들의 기아 고통을 생각할 때 후퇴 개념이 아니고 회복 불능 상태로 가지 않을까 걱정스러워요. 도대체 이렇게 개 무시를 해 놓고 나서 다시 (북한에) 손을 내밀어서 잡을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하잖아요. 과거 참여정부를 보면 아마추어 정권이라고. 통일외교문제에 대해서 현 정권에 대해서는 모든 기자와 전문가들이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아무 생각이 없는 아마추어 정권이라고. 그게 정말 정답인 것 같아요. 어떻게 위기를 관리해야 할지도 모르고, 주도할지도 모르고, 그들이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고 있어요."

2005년 겨레하나 홍보대사로 임명되고, 그 해 4월에 북녘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빵 공장 가동 점검차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당시 기억을 묻자 "속상했다"는 답이 바로 돌아왔다. 남쪽에서 얘기하는 체제경쟁이 굉장히 허황한 이데올로기였다는 사실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우리 민족의 수난이라든지, 남과 북의 분단과정이 한 번도 우리의 뜻대로 된 적이 있나요? 강점기 때부터 지금까지 오는 과정이 전부 다. 그렇다면 최소한 우리 손으로, 우리 힘으로 무엇을 해 보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는 통일 논의를 본격적으로 하려면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04년 참여정부 시기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민족학교 학생들, 일본 알고 남쪽 좋아하고 북 이해하는 친구들"

▲권씨는 "통일 논의를 본격적으로 하려면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권 씨는 재일동포와 관계를 계속 이어오는, 거의 유일한 연예인이다. 2005년부터 매년 수십 차례씩 일본을 오가고 있다. 그는 재일동포 사회에서 한반도의 모순을 고스란히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아팠다고. 또 그래서 이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고.

"일본에서 나고 자란 2, 3세대가 섞이면서 일본의 문제, 한국의 문제, 과거에 대한 문제, 현재에 대한 문제가 모두 섞여 있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혹은 배우지 못했던 우리의 근.현대사가 그 안에 그대로 있었어요. 흥미로웠죠. 그 속에서 작은 통일을 해 보자는 NGO 단체들과 청년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총련학교에도 놀러 가게 됐어요."

영화 '우리 학교' 김명준 감독과 학교 선후배라는 인연으로, 그는 영화 개봉 이후 일본의 여러 학교를 방문할 수 있었다. 그에게 재일 민족학교 학생들은 어떤 의미일까.

"재일본 민족학교 학생들이 정말로 소중한 존재인 것이 그 아이들은 일본을 알고,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남쪽을 좋아하고 북을 이해하는 친구들이에요.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동북아 평화시대에 가교역할을 할 수 있는 친구들인 거죠. 말투는 북한 말투를 쓰지만, 일본말을 모국어로 사용하고, 우리말을 열심히 하려고 애를 쓰고 북쪽 사회를 이해하고, 그리고 남쪽 사회에 대한 반감이 있지 않습니다. 참 정말 소중한 자산들입니다."

"평화와 통일 같이 노래 부를 수 있다면 좋죠"

한반도의 통일을 넘어 재일 동포들의 통일까지 '하나 됨'을 꿈꾸는 권해효, 그가 오는 4월 2일 저녁 7시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리는 '6.15공동선언 10주년, 늦봄 문익환 방북 21주년 평화통일음악제 Again 우리는 하나' 사회를 맡아 통일을 노래한다.

"작년 문 목사님 방북 20주년은 정상적인 정권이고 정상적인 사회였다면 남과 북이 함께 하는 큰 파티가 있었어야 했어요. 서울과 평양을 오가는 큰 행사가 있었어야 했는데 전직 두 대통령의 서거로 소리없이 주목받지 못해서 안타까운 마음뿐이었죠."

그는 "중요한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그리고 6.15공동선언 10주년을 맞이하는 이때, 최소한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사람들끼리 얼굴 한 번 보고, 같이 노래 부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좋은 일"이라면서 많은 이들의 관심과 참여를 호소했다.

"양심수 석방을 위한 시와 노래의 밤을 못한 지가 5년이 넘은 것 같아요. 그만큼 모든 게 팍팍해졌죠. 과거에는 장충체육관, 한양대 체육관을 꽉꽉 채웠어요. 그런데 이제는 웬만한 극장 하나를 채우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운동과 조직의 방식이 변화하는 것도 있겠지만 어쨌든 힘이 많이 빠져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이번 평화통일음악제를 통해 다시 한 번 통일에 대한 열기를 불어넣을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많이 오실 거죠?"

▲배우 권해효 씨는 "평화통일음악제를 통해 다시 한 번 통일에 대한 열기를 불어넣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행사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것을 부탁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