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영화 <보이 에이(Boy A)>는 이 물음에 답하려는 하나의 시도일 수 있다. 이름을 바꾸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잊고 싶은 과거와의 단절일 것이다.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생활을 했던 소년은, 출옥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바꾸게 된다. 그러나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와 열망은 결국 비극으로 이어지고 만다. 새로운 이름이 자신의 몸과 사회의 기억까지 바꾸지는 못 했기 때문이다. 몸 속에 각인된 기억과 사회가 저장하고 있는 기억은, 단절에 대한 개인의 욕망을 압도한다. 이 영화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지금은 이름을 바꿨다고 알려진, 김현희 씨다.

1987년 11월 29일, KAL858기가 115명의 사람들과 함께 사라졌고 당시 안기부는 이를 북쪽 공작원인 김현희의 폭탄테러로 발표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의혹과 함께 ‘진실’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22년이 지난 지금, 개명을 하고 잠적했었던 당사자와 한국사회는 ‘김현희’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한반도 현대사에서 이 사건은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올해 추모제와 관련해 이런 물음을 던지게 된다. 그렇다고 했을 때, 사건발생 22주기는 두 가지 점에서 지난 몇 년과는 다르다고 생각된다. 바로 김현희 활동재개와 진실위 조사취하다.

먼저 김현희 씨는 작년 말 이른바 ‘자필편지’를 통해 재조사 관련 과거정권 동안 ‘추방생활’을 했고 ‘협박’을 받았다고 공개했다. 그리고 올해 3월 일본인 납치문제 기자회견에서 자신은 “가짜가 아니다”며 10년 넘는 잠적생활을 깨고 자신을 드러냈다. 자신의 입장에서는 억울했겠지만, 이런 활동에는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 사건에는 처음부터 의혹들이 있어 왔고, 김현희 씨는 이를 성실히 해명해야 할 당사자다. 예컨대 리처드 브로이노브스키(Richard Broinowski) 당시 주한 호주대사는 대사관이 사건을 분석한 결과 “북쪽이 한 것일 수도 있지만, 정확히 평양의 누구를 비난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결정적인 근거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김 씨에 대한 의문을 표시했다(전자우편 면접). 또 당시 진술들에 많은 모순점이 발견되는데 ‘시한폭탄을 누가 작동시켰느냐’의 문제도 그렇다. 공식수사에 따르면, 동행했던 김승일이 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김현희 씨 영문판 수기에는 자신이 직접 한 것으로 기록했다(<The Tears of My Soul>, William Morrow & Company, 104쪽). 이런 문제들을 김현희 씨가 재조사에 응해 떳떳하게 밝혔다면 어땠을까.

다음으로 사건에 대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위)의 재조사가 중단됐다. 바로 올해 6월, 실종자 가족들이 재조사 신청을 취하한 것이다. 꼭 이 사건에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진실위가 출범하기 전부터 위원회의 미약한 권한과 관련해 많은 이들이 한계를 지적해왔다. 문제가 많았던 국정원 재조사 때와는 달리 가족들에게 많은 기대를 갖게 했던 진실위는, 시간이 갈수록 조사권한과 그 의지에서 한계를 보였다. 그리고 이에 실망한 가족들은 고민 끝에 어려운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구조적으로 어려웠겠지만, 진실위가 좀더 열의를 보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찌됐든 이 사건은 위원회 관계자의 표현대로 “말만 남은 사건”이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국정원과 진실위에 의한 두 번의 재조사는 또 다른 의문과 논란을 남기게 되었다. 아울러 두 기관은 몇 달 전, 본인이 제기한 재조사 관련 정보공개 청구를 모두 거부했는데 유감스러운 일이다.

흔히들 이 사건은 끝난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재조사가 있었으니 이런 말은 더욱 힘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차옥정 가족회장의 말대로, 아직 “안 밝혀졌으니까” 규명에 대한 움직임은 어떤 형태로든 이어질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은 형식상 두 번의 재조사로도 밝히지 못 하는 어려운 사건일 수 있다(실질적인 권한을 갖춘 독립적인 기관에 의한 철저한 재조사, 혹은 남북-북남 공동조사가 이루어졌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면에서 이 사건은 끝나지 않았고, 어쩌면 끝날 수도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최근의 상황만 해도 그렇다. 재조사를 거부했던 김현희 씨는 가족들과의 만남은 뒤로 한 채, 일본방문을 추진하고 있다. 어느 실종자 가족은 집 주위에서 비행기 소리가 들릴 때마다 “가슴이 아파” 더 듣기 싫다고 한다. 11월 29일, 그 굉음이 더욱 잔인하게 들리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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