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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통일 개인과 단체 실질적 참여해야” 문익환 목사 방북 20주년 행사 준비중인 통일맞이 황인성 집행위원장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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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03.10  14: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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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3월 고 늦봄 문익환 목사가 분단의 벽을 넘어 평양을 방문해 고 김일성 주석을 만났다. [자료사진 - 통일맞이]
“나는 말로 하는 대화가 아니라 가슴과 눈으로 하는 대화를 하러 왔습니다. 한편이 이기고 한편이 지는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승자가 되는 길을 찾아 왔습니다.”

1989년 3월 25일 금단의 장벽을 처음으로 뛰어넘어 평양 땅을 밟은 늦봄 문익환 목사는 김일성 주석과 포옹한 뒤 이같이 말했다.

세월은 흘러 20년, 이미 고인이 돼버린 문 목사와 허담 조평통 위원장 간에 서명한 ‘4.2남북공동성명’의 ‘단꺼번에 할 수도 있고 점차적으로 할 수도 있다’는 ‘연방제방식으로 통일’이 6.15공동선언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으로 명기됐지만 정작 문 목사의 방북은 아득한 일로 잊혀지고 있다.

(사)늦봄문익환기념사업 통일맞이(이사장 김상근, 이하 통일맞이)는 문익환 목사 방북 20주년을 맞아 그 의의를 널리 알리는 기념행사를 서울과 도쿄에서 준비하고 있다.

   
▲ ‘늦봄 문익환 목사 방북 20주년 기념사업’을 준비 중인 통일맞이 황인성 집행위원장.
[사진 - 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황인성 통일맞이 집행위원장은 “문익환 목사님의 방북의 의의와 성과를 바르게 이해하고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은 통일운동의 정당성과 역사적인 역할을 국민적으로 공유하는 것이라고 본다”며 “다양한 통일, 평화운동 단체들의 노력이 남북 간의 대결과 대치를 극복하는 화해의 전령사이기도 하고 화해와 협력의 역군이라고 하는 긍정적 이미지가 확실히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하는 조그만 계기가 돼야한다”고 취지를 밝혔다.

황 집행위원장은 “주관은 통일맞이가 한다하더라도 실제로 이 행사의 추진은 다양한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개인과 단체들의 실질적인 참여에 기초해서 이뤄졌으면 좋겠다”며 “집행위 차원에서는 10만원 정도씩 재정후원을 약속하는 단체들이 실질적으로 주체가 됐으면 한다. 개인들도 십시일반으로 참여한다는 의미에서 3만원 정도 후원을 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다”고 참여를 촉구했다.

통일맞이는 ‘늦봄 문익환 목사 방북 20주년 기념사업’을 오는 3월 31일 오후 2시부터 프레스센터에서 심포지움을 갖는 것을 시작으로, 4월 2일 오후 7시부터 프레스센터에서 기념의 밤 행사, 4월 5일 오후 3시부터 일본 도쿄 한국YWCA회관에서 일본포럼을 개최할 예정이다. 특히 일본포럼은 통일맞이와 재일 늦봄통일포럼이 공동 주최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남북겨레 회고모임은 북측이 남북관계 경색을 이유로 난색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져 성사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황인성 통일맞이 집행위원장과 지난 2월 26일 오후 3시부터 <통일뉴스> 사무실에서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분단의 장벽을 김구 선생이후 처음으로”

   
▲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을 맡은 뒤 다시 통일맞이에 복귀한 황인성 집행위원장. [사진 - 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통일뉴스 : 통일맞이에 관여해 오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일했는데, 언제 통일맞이에 복귀했나?

■ 황인성 집행위원장 : 이사 직분은 정부에 참여할 때도 가지고 있었는데, 실제로 집행에 직접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 3월경부터다. 이사이면서 집행위원장을 겸임하게 됐다.

□ 올해가 문익환 목사 방북 20주년인데, 최근 6.15남측위원회에서 20주년 공동행사를 북측에 제안한 것으로 안다. 구체적 제안 내용과 결과는?

■ 공식적인 제안은 하지 못한 상태다. 지난번 이사회에서 문 목사님의 방북과 4.2남북공동선언은 단순히 남측 국민들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북측 당국자와 인민이 다함께 기억하고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같이 회고하고 의미를 살피는 행사를 20주년을 맞는 이 시점에서 같이 갖는 것이 좋겠다는 기본 원칙에 이사들이 같이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법과 일시는 남북 간의 어려운 현실을 감안해서 우리가 뭔가 결정해서 제안하기 보다는 북쪽에 의향을 타진하는 것으로 했다. 이에 따라 6.15남측위 실무회담을 하러 간 우리 집행위원을 통해서 일단은 구두전달을 한 셈이다. 공식적인 제안서를 보낸 것이 아니다.

□ 북측의 일차적 반응은 나왔나?

■ 취지에 대해서는 인정을 하지만 현재 남북 간에 경색된 국면을 감안할 때 책임 있는 답변을 하기 어려운 조건이라 하는 게 그쪽의 현재 상황인식 같다.

□ 추후 정식으로 다시 제안할 계획은?

■ 이사회에 일단 접촉 결과를 보고해서 이사회 논의 결과에 따라서 결정될 문제다. 지금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하기는 이른 시점이다.

□ 20년 전 문 목사의 방북의 의미를 현재적 시점에서 어떻게 재해석될 수 있다고 보나?

■ 당시에는 문 목사님의 방북 결행에 대해서 각기 보는 시각이나 역사적 자리매김이 상당히 보는 사람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었다.

당국이나 보수언론이 보는 것은 정말 방북 의미를 철저히 왜곡하는 것이고, 그것은 지금 시점에서 거론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같이 민주화와 통일, 당시로 보면 민중생존권 투쟁에 함께 하던 분들 사이에서도 다소 의아하게 생각하는, 또 시기가 적절했느냐는 비판적 목소리가 없지 않았다.

그렇지만 전체 대국적인 관점에서 보면, 김구 선생님이 방북했을 때는 분단이 고정되기 전이었다. 분단으로 가는 역사의 흐름을 막기 위해 결행했다고 생각된다. 한국 전쟁이 끝난 이후 분단이 고정되고 남북 간이 완전히 절연된 상태에서 도무지 민간이 넘어가기 힘들다고 생각한 그런 분단의 장벽을 김구 선생이후에 처음으로 방북한 것은 그야말로 얼어붙은 냉전질서를 더 이상 우리가 감내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역사적 통찰의 결과이다.

뿐만 아니라 그 동안 있었던 남과 북 당국자 간에 비밀스러운 접촉과 7.4남북공동선언이라고 하는 것조차도 결국은 7천만 온 겨레의 염원인 통일을 앞당기는데, 또 화해와 협력으로 가는데 크게 기여하지 못하고 정권적 차원에서 악용된 측면도 없지 않았다고 하는 관 중심의 통일 논의와 통일추진이 갖는 불완전성을 명확히 드러내고 민간차원의 통일논의와 화해협력 추진, 통일의 길을 닦는 민간의 노력에 시민권을 획득해 나가는, 논의의 자유와 실천의 합법성을 쟁취해나가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과 북의 체제와 이념 그리고 당국자의 정책을 뛰어넘어 말 그대로 눈과 마음으로 대화하기 위해 가셨다고 했다. 기존의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다수 민의 입장에서 남쪽의 국민의 마음과 정부의 정책이 가지고 있는 장단점을 바르게 북에 전달하고 또 북의 당국자들이나 인민들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한 눈이 아니라 두 눈으로 파악한 것을 서로 소통시킴으로 해서 화해 협력의 가교적 역할을 했다. 그런 의도를 분명히 가지고 방북하셨고 기본 입장도 그러했다. 어느 한편을 편들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은 당시 여러 언행과 그 이후 여러 말씀과 실천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그런 올바른 입장과 동기의 진정성도 중요하지만 그 방북의 결과로 당시에 남과 북의 입장을 상당정도 근접시킨 성과를 가져왔다.

4.2공동성명 “남북간 대화와 협상의 큰 틀 마련”

   
▲ 문익환 목사는 허담 당시 조평통 위원장과 4.2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자료사진 - 통일맞이]
□ 4.2남북공동성명이 갖는 의미는? 특히 연방제에 관한 내용도 설명해달라.

■ 남북간에 공식적으로 합의한 문건이 지금은 여러 개가 있지만 처음이 7.4남북공동성명인데, 그건 대원칙을 이야기했다고 하면 이 남북공동성명에 입각해서 추진하는 과정에서 통일에 어떤 식으로 접근해 갈 것인가 하는 통일방안과 남북간 협상의 우선순위를 두고 남북이 대치하고 있었다.

크게 보면 통일방안에 있어서는 연방제 방식으로 하되 점차적으로,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라고 하는 점에 있어서 북이 가지고 있는 연방제와 남측의 체제연합 방식의 공통성 기반을 사실상 끌어내는 것이었다고 보인다.

두 번째로 대화 협상의 우선순위에 있어서도 북쪽은 군사정치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이쪽은 교류협력을 중심으로 이렇게 접근 시각과 방식이 달랐는데, 이것도 결과적으로는 당시에 문익환 목사님의 입장에서 볼 때 이 두 접근이 상호 연관성이 있고, 특히 민이 갖는 역사의식과 민의 힘을 신뢰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다면 북이 우려하고 남이 우려하고 하는 각 접근시각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 요소를 너끈히 극복하면서 훨씬 더 상승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래서 상호 배타적으로 한쪽 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김일성 주석에게 잘 설명하고 또 김 주석도 이를 수용함으로써 상당한 간격을 가지고 있고 대치하고 있던 남북간 대화와 협상의 큰 틀을 예비하고 마련한 큰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위에서 이후에 나오는 남북기본합의서와 6.15공동선언, 그 실행방안인 10.4선언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남북 간의 대화협력과 통일에 큰 진행방향에 대한 실질적인 토대가 그 때 마련된 것이 아닌가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 당시 문 목사의 방북에 대해 논란과 후폭풍도 있었지만, 통일운동진영에서 가장 큰 논란과 혼란을 겪은 것은 새로운 통일운동체, 이른바 ‘새통체’ 문제였다. 통일맞이 입장에서는 새통체에 대해 어떻게 총평하고 있나?

■ 목사님께서 실제로 범민족 대회를 제안하셨고, 감옥에 계실 때 범민련의 남쪽 의장이셨다. 그분의 방북 경험이 통일운동의 성격과 통일운동의 연대방식에 대해서 상당히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고 느꼈다. 물론 가실 때도 통일이라는 것은 어느 한편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 더 커지고 풍부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각기 가지고 있는 자기주장과 이념을 완고하게 교조적으로 고집만 해가지고는 안된다. 소아를 버리고 대의에 입각해서 크게 단결할 때만이 정말 통일의 길로 가는 것이다.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거나 어느 한쪽을 이롭게 하는 것이 통일운동이 아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하신 것 같고.

남북간의 오랜 대립과 완고한 냉전 대결상태로 인해 엄청난 불신이 상호 존재하기 때문에 통일운동의 입지라고 하는 것이 그 기본 정신은 민에 근거한 민의 해방, 민의 복리, 민주, 그리고 민의 힘에 의해서 그야말로 민족의 진정한 해방과 자주, 이걸 이루어내는 것이 통일이라고 생각한다면, 통일을 밀어가는 힘이라고 하는 것은 현재의 분단구조의 한 축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

그게 나중에 통일운동은 중립적 입지에 서야한다는 말씀으로 정식화된다. 그런데 중립이라는 것 자체가 반통일 세력을 오히려 인정하고 그것의 반민족성을 날카롭게 지적하지 않는 것 아니냐 하는 오해를 불러왔던 것 같다. 그러나 목사님의 그간의 삶과 말씀을 보면 기본 취지는 그런 것이 아니고 훨씬 든든하고 폭넓은 민중의 의식과 정서를 감안하고 인정한 속에서, 그들의 전진과 발전을 내다보는 속에서 통일운동이 문턱을 낮추고, 통일은 아무리 철벽같은 냉전 대립상태라고 하더라도 목사님 눈으로 보면 7천만 겨레가 함께 사는 길이고 또 원하고 있는 게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에, 확정된 미래, 오고 있는 미래라고 보였다.

당시 독일 경험을 보면 통일이 급속하게 준비되지 않은 형태로 이루어짐으로 해서 또 다른 문제를 야기시킨 것을 보면서, 통일을 가로막는 것에 대한 투쟁과 함께, 함께 커지고 함께 풍부해지는 제대로 된 통일, 멋진 통일, 모두가 함께 사는 통일을 예비해나가는 훈련이 필요한 것 아니냐. 훨씬 더 미래 지향적인 것을 내다보면서 통일운동의 내용을 좀더 풍부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그래서 통일운동이 설자리가 조금 더 남북체제, 당국의 입장에서 보면, 반국적이 아닌 전국적 관점에서 조금 더 중립적 입장에 서야겠다고 생각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생각에서 보면 당시의 범민련의 결합수준이 현재 민의 의식수준과 발전수준으로 보면 폭넓은 민의 입장에서 보면 조금 더 현실적이지 못하다. 조금 과도하다는 생각을 하시고 실제로 자기 조건에 맞는 통일운동을 남과 북, 해외에서 하면서 실질적인 연대방안을 어떻게 찾아나갈 수 있을까를 모색하자는 문제의식이 마지막 새통체 건설에 나서게 된 기본 생각이라고 본다.

평화운동과 통일운동 “상호 접점 찾고 공통점 확대해야”

   
▲ 동행 방북한 유원호, 정경모 선생 등과 함께 고 김일성 주석을 면담하고 기념촬영을 했다.
[자료사진 - 통일맞이]
□ 20주년 기념행사 중 31일 심포지움부터 소개해달라.

■ 아쉬운 건 더 좋은 일을 많이 했으면 좋겠는데 아쉽다.

31일은 ‘늦봄 문익환 목사 방북 20주년 기념 심포지움’의 하나로 ‘늦봄 방북 20년, 통일운동의 성찰과 전망’이라고 하는 주제로 심포지움을 하게 된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한반도의 냉전체제가 문 목사님의 맨몸 방북 이후 민간차원의 통일논의와 실천이 다양하게 확산되었고, 90년대 들어와서는 당국 간의 접촉도 강화되고 결국 6.15이후 화해협력의 시대로 진행되면서 다양한 국내외적 정세변화에 따라 그야말로 냉전체제가 흔들려왔다.

그래서 지금은 그야말로 한반도의 냉전체제가 해소되는 길로 가고 있고 또 가야하는 시점에 와있다. 지난 방북 20년 이후에 상당한 통일운동 확산과 정세변화가 있었다. 이 점을 객관적인 눈으로 돌아보고 성찰해야 할 점이 어떤 것인지. 성과와 한계도 확인하고, 같이 통일운동의 전망을 내다보는 그런 논의 자리를 갖고자 한다. 일차적으로 20주년 기념 심포지움이다.

□ 발제자가 학자인데 통일운동을 성찰하고 전망을 끌어낼 수 있겠는지?

■ 학자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오히려 토론자가 실천가들이고 더 중요한 것은 플로어에 훨씬 더 많은 활동가나 실천해온 사람들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성찰과 전망이라는 점에서 객관적 위치에 있던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토론해보겠다는 것이다.

□ 오히려 종합토론 세션에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황석영 작가, 서중석 교수, 박순성 교수 등 최고 수준의 연사들이 모인 것으로 보인다.

■ 앞은 성찰이고, 종합토론은 오늘의 긴박한 남북정세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에 토론의 중점을 뒀다. 황석영 작가는 남북 문예, 서중석 교수는 남북 역사학자, 현대사학자라는 차원에서 오늘의 민족적 현실을 어떻게 보고 대응해야 할 것이냐를 말씀해주실 것 같다. 이재정 전 장관은 정치인이고 현 당국자는 아니지만 당국 간 협력의 최선두에 섰던 분이기에 그런 입장에서 오늘 우리 현실을 통찰하고 제안하지 않을까 싶다. 박순성 교수는 일단 북한학을 하고 안보평화통일분야 학자들이 모여 있는 코리아연구원 책임자이기도 하고 시민운동 차원에서 오늘의 한반도 정세를 보고 제안하지 않을까 싶다.

□ 31일 토론회에서 통일과 평화를 아우르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은데, 설명해달라.

■ 의외로 최근에 오면서 통일보다는 일반 시민단체에서는 평화라는 개념이 더 전면에 서있다는 생각이 들고, 또 어떤 면에서는 다 그렇지는 않지만 일부는 통일과 평화가 상호충돌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통일운동하는 사람들은 철저히 평화통일을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국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담론에 빠져있는 것처럼 오해하고 있는 측면도 없잖아 있는 것 같다. 평화운동도 다양한 범주가 있다고 생각되지만 한반도에서의 질높은 평화라는 것은 개인이나 공동체의 평화 기량이랄까, 성숙된 평화역량이랄까, 개인적 공동체 질서, 그런 것도 있지만 더 크게 보면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하드웨어의 상당한 개편이 없이는 힘들다고 본다. 그래서 지금의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이끌어내는 좀더 총체적인 민족의 정치역량이 전제되지 않은, 내밀한 평화라든가 다양한 그런 걸 제가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좀더 민족적 차원에서 선차적으로 고민해야 할 통일과 연관된 평화체제의 모색이 상호 순작용이 될 수 있도록 해야하지 않는가 하는 문제의식이다.

사실은 통일운동의 대중화에서 이 문제가 중요하다. 통일운동은 굉장히 열정적이고, 민족주의적이고 뭔가 이런 분들이 하는 것이라는, 조금 갇혀있다라는 인상을 가진 분들이 시민운동 속에 의외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았다. 상호 접점을 좀 찾고 공통점을 확대해나가는 노력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4월 2일 기념의 밤 행사에 대해서도 설명해달라.

■ 목사님이 3월 25일부터 4월 3일까지 북한에 계셨는데 4.2공동성명은 두 차례의 김일성 주석과의 면담, 조평통과의 회담 결과를 종합해서 합의한 내용이다. 굉장히 소중한 역사적인 합의이고 북쪽의 당국과 남측의 민간차원에서 이루어진 첫 중요한 역사적 문건이고 목사님 방북의 성과가 집약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실상 목사님 방북의 성과와 동기가 무엇인가를 바르게 기념하는 자리로서 기념의 밤을 마련하기로 했다.

4월 2일 저녁 7시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이때는 가능한 경향 각지의 문 목사님을 기억하고 통일운동을 하는 모든 동지들이 함께 모여서 뜻을 확인하고 지금 시점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할 것이냐는 의견을 모아내는 다짐을 공동으로 채택하는 뜻깊은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행사를 추진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평화.통일 개인과 단체 실질적 참여해야”

   
▲ 황인성 집행위원장은 "다양한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개인과 단체들의 실질적인 참여에 기초해서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사진 - 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4월 5일 일본포럼에 대해서 설명해달라.

■ 4월 5일 일본에서, 작년에도 조금 작은 규모로 동경에 있는 교회에서 추모예배를 드린 적이 있는데, 금년에는 20주년이라 문 목사님을 따르는,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일본에 있는 우리 동포들과 당시에 문 목사님의 방북을 지원했던 일본 교회, 그리고 일본의 지식인들이 통일맞이와 함께 일본에서 기념 포럼을 하기로 했다.

세부적인 안은 우리가 하기 보다는 일본에서하기로 돼 있다. 일본은 우리와 달리 행사를 하면 다양하게 여러 사람을 내세워서 추진위원을 모집한다. 공동집행위원장 중에 문 목사님 시비 건립할 때도 그렇고, 10주년 때도 오셔서 정경모 선생의 글을 낭독해주신 재일한국연구소 김광남 선생이 축이 돼서 준비하고 있다.

□ 이번 20주년 기념 행사를 준비하면서 중점에 두고 있는 바는?

■ 문익환 목사님의 방북의 의의와 성과를 바르게 이해하고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은 통일운동의 정당성과 역사적인 역할을 국민적으로 공유하는 것이라고 본다. 당시에 문익환 목사님에 대한 엄청난 악선전과 악선동, 그야말로 북의 조정을 받아서 한, 소위 말하면 통일전선전술의 희생자 비슷하게, 통일전선전술의 최첨병에 서 있는 사람, 혹은 현실을 모르는 감성적 통일론자 이런 식으로 다양하게 실제 방북의 진정한 동기와 의의와 엄청난 역사적 성과들이 일차적으로 묻혀버렸고 더 나아가서는 철저히 왜곡된 것이 그간의 사정이다.

그래서 이번 20주년 행사를 통해서 그 진정성이 바르게 알려지고 그렇게 함으로 해서 통일이라고 하는 것이 불안한 것이 아니라는 것, 요즘 젊은 세대는 통일이 굉장히 희망차고 서로가 안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대단히 불안하고 뭔가 좀 나쁘게 말하면 부정적이고 위협적으로까지 느끼는 젊은이들이 없지 않더라. 정말 통일에 대한 바른 이해를 진작시키는 다양한 통일운동과 정부 정책이 부족한 데서 오는 아주 부정적 현실이라고 본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통일, 평화운동 단체들의 노력이 남북 간의 대결과 대치를 극복하는 화해의 전령사이기도 하고 화해와 협력의 역군이라고 하는 긍정적 이미지가 확실히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하는 조그만 계기가 돼야한다고 생각한다.

□ 통일맞이가 문 목사를 회고하고 통일운동을 실천하는 것으로 아는데, 최근 활동이 썩 활발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렇게 큰 행사를 추진하기 위한 동력이랄까 추진력을 어떻게 마련하려고 하나?

■ 아무래도 사전에 미리 준비해서 안을 수립하고 의논해서 준비하는 것까지는, 일종의 주관은 통일맞이가 아무래도 좀 한다하더라도 실제로 이 행사의 추진은 다양한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개인과 단체들의 실질적인 참여에 기초해서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것이 저희들의 생각이다. 실질적인 후원단체나 개인들의 참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을 차제에 당부하고 싶다.

□ 구체적으로 단체나 개인의 참여방안은?

■ 지금으로서는 후원인과 후원단체로 참여해 주십사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분들이 그야말로 실질적인 주체가 되고 주관은 통일맞이를 중심으로 해서 실제로 관련성 있는 단체로 하되 후원주체는 다양한 단체들이 참여한다. 집행위 차원에서는 10만원 정도씩 재정후원을 약속하는 단체들이 실질적으로 주체가 됐으면 한다. 개인들도 십시일반으로 참여한다는 의미에서 3만원 정도 후원을 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솔직히 부끄럽다.

□ 통일맞이는 장영달, 이재정 전 이사장 등 정치권에 있는 분이나 사회적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많이 속한 곳인데, 이번 행사에도 많은 분들이 참여할 예정인지?

■ 문목사 방북은 그야말로 민족사적 중요한 의미를 가진 역사적 사건인데, 이것에 의미를 지금에 와서는 좀 바로 역사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의미에서 사회 각계, 특히 70년대 이후 자주, 민주, 통일, 민생 이런 문제를 가지고 애써 함께 노력해왔던 분들이 다함께 참여하는 행사가 되도록 최대한 노력할 것이다.

□ 통일맞이 이사장인 김상근 목사가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로 선출됐는데, 계속 이사장을 맡게 되나.

■ 그렇다. 이사장 역할을 하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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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보기(3)
신종학 () 2009-03-14 18:55:04
정말로 정말로 남북통일를 간절히 바라는 분은 누구일까요? 곧바로 권리없이 빈곤 하층에서 허덕이는 북한백성들이고
다음은 세상 만사를 걱정해주는 남한 유식인사들이다.
남북통일를 제일싫으하는 분은 북한최고 **자이고
다음은 모자라게 산다하는 남한 *민이다
심혈 기울러 조절할분은 누구 일까요?
남한정부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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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 () 2009-03-10 23:17:09
자기기만으로 시작하고 자기기만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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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변열 () 2009-03-10 22:35:08
남북 통일은 민족의 인격의 회복이며 민중의 해방이고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부터 자력으로 해방하는 의미의 기반이 필요하다.남북 정권의 대립은 주의주장의 상위도 아니고 사회제도의 상위도 아니다 통일 문제를 정략에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북쪽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자력으로 해방했다고 주장해 국민은 이의를 허용 않은 제도이다.남쪽은 반공을 국시로서 반북을 강제하고 있다 북쪽의 공산주의의 주장은 공산주의가 않인고로 기만이며 남쪽의 반공 주의도 기만이 된다.문목사님의 북한 방문이 국민적 평가와 지지를 얻을 수 없는 것은 남북 정권의 정략을 민중이 감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연방제의 실현이 이상적이지만 김대중 대통령 시대에 실현되지않은 이상 정권간의 통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남북 민중의 모순은 존재하지 않따 민중은 통일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남북 통일의 길은 민중의 교류이다 남북이 독립국가를 서로 인정해 국교 수립을 도모해 민중의 교류를 촉진시키는 것이 민족 통일의 빠른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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