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2시 30분,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서 100여 명의 추도객이 참가한 가운데 故 문익환 목사의 15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잘린 반도의 허리를 넘어 북녘 땅으로 향한 故 문익환 목사의 발걸음을 쫓아 수많은 발자국들이 눈 길을 내며 마석 모란공원을 찾았다.

그토록 열망하던 통일을 보지 못하고 고인이 민족의 '늦봄'으로 생을 달리 한지 15년, 새해를 맞아 흰 눈으로 옷을 갈아입은 그의 묘지에는 통일을 염원하는 제2의 '늦봄'들이 머리를 조아렸다.

17일 오후 2시 30분,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서 (사)통일맞이 늦봄문익환목사기념사업(통일맞이, 이사장 김상근)은 100여 명의 추도객이 참가한 가운데 故 문익환 목사의 15주기 추모식을 열었다.

"민통령, 진정한 민중의 대통령, 민중과 진정으로 통하는 영혼, 마하트마 문익환 목사님"

▲ 한상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한상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는 고인을 '민통령'이라며 목 놓아 불렀다.

그는 "우리들의 관성주의, 물질주의, 패배주의 때문에 목사님이 피눈물을 흘리고 계신다"며 가라앉은 목소리를 토해내고는 "바로 저 때문에 울고 계심을 깨달았다. 목사님처럼 자신의 몸을 낮추어 밑으로, 밑으로 가는, 죽고 죽어지는 것이 진정한 소통인 것을 서울 구치소에서 알게 되었다"고 회한했다.

그는 "목사님이 더 이상 눈물 흘리지 않게 하겠다"며 "4.2 공동성명 20년의 세월, 역사와 함께 부활의 삶을 사신지 15주년, 당신의 정신은 후대에 계속 이어지고 계승될 것"이라고 머리를 조아렸다.

89년 고인과 함께 방북했던 정경모 '씨알의 힘' 대표도 바다 건너 일본에서 뜨거운 형제애를 추모사로 보내왔다.

그는 "형님은 역사는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살기 위해 가노라고 하시면서 그때 평양으로 떠나셨다"면서 "그것은 남의 나라가 멋대로 그어 놓은 38선을 기어이 걷어 치워야 하겠다는 형님의 굳은 의지 때문이었고, 그러한 의지의 실현 절차를 그때 발표하신 4.2남북공동성명에서 밝히셨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그는 "4.2공동성명으로부터 20년이 되는 올해, 세계 금융체제가 무너지면서 팍스 아메리카 종주국 미국의 일득패권이 소멸되는 모습을 목도하면서 역사는 종언을 고한 것이 아니라 계속되고 있음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며 "팍스 아메리카의 붕괴는 38선의 붕괴를 예언하는 것이 형님께서 4.2공동성명에 붙이신 뜻을 점차로 실현의 과정을 밟으리라 예상된다"고 통일이 머지않았음을 알렸다.

이창복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은 문 목사가 민중의 가슴 속에서 부활해 주기를 기원했다.

그는 추모사에서 "15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놓여있는 현실 때문에 우리는 더욱 목사님을 그리워하면서 이 자리에 모여 있는지도 모르겠다"며 "역사의 진전이 아니라 통일의 역사는 후퇴하고 있다"고 통탄했다.

▲ 고 문익환 목사의 아들 성근씨와 아내 박용길 장로.[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그는 "다시 한 번 민주통일세력들이 일어나 통일의 깃발을 높이 들고 분기하도록 목사님께서 도와주시기 바란다"며 "그리하여 삼천리금수강산에 8천만 민족이 하나 되어 동북아는 물론 세계인류 평화공영에 이바지 할 수 있는 폭발적인 민중의 힘으로 주도적으로 성취하고자 한다"고 '영원한 지도자' 늦봄이 민중의 곁에서 함께 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두 팔을 벌리고 '민족'을 끌어안으려 했던 고인의 생전 모습이 걸린 묘지와 흰 설원으로 변한 모란공원을 찾은 추도객들은 묘지 뒤에서 꽃망울을 맺으며 봄을 기다리는 목련나무처럼 '늦봄'을 기다렸다.

김상근 통일맞이 이사장은 "목련은 엄동설한에 봄을 꿈꾸고 있다"며 "이 목련처럼 우리는 북쪽에 서 있다. 머지않아 현란한 목련처럼 흰 꽃을 피울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해학 목사는 "늦봄의 꿈은 봄길로 이어가리라"며 "그의 생명은 강한 힘에 의해 희생당한 약자의 생명이었다"고 고인의 정신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고인의 15주기 추모식을 맞아 각계각층의 많은 이들이 모였다. 아내이자 동지인 '봄길' 박용길 장로와 가족들을 비롯해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한상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 정동익 4월 혁명회 상임의장, 이수호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표명렬 평화재향군인회 상임대표,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원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고인이 신학을 공부했던 한신대에서 신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 10여 명도 발걸음을 해 "우리가 탯줄을 끊고 밖으로 나왔을 때, 당신은 통일을 품고 북으로 갔다. 우리가 공부하며 성장할 때 당신은 역사가 되셨다"며 "당신의 땀방울은 아직 식지 않았다"고 한 목소리로 고인의 발자국을 따를 것임을 다짐했다.

▲ 고 문익환 목사의 15주기를 맞아 추모곡을 부르는 한신대 재학생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유가족들을 대표해 배우 문성근 씨는 문 목사를 아버지가 아닌 '역사적 인물'로 평가했다. 그는 "역사적 인물은 문고리가 있다고 느끼는데 첫 문고리는 '이제 내가 죽을 차례다'며 자신의 존재를 던져 놓은 것"이라며 문 목사를 추억했다.

그는 "또 하나는 문 목사님은 더욱 커지기 위해 작은 차이를 극복하자고 호소했다는 것"이라며 통일을 열망하는 많은 이들이 힘을 합쳐 고인의 뜻을 이어가 달라고 부탁했다.

통일맞이, 문 목사 방북 20주년 국내외 행사 계획
"문 목사님 초심 받들어 현 남북관계 풀 수 있는 계기 만들 것"

통일맞이는 문익환 목사 방북 20주년을 맞은 올 해, 국내외에서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오는 3월 31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는 학술심포지엄과 기념식을 개최하며, 4월 5일에는 일본에서 기념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또한, 북측과 협의를 통해 남북공동행사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 헌화를 하는 김희선 전 국회의원(가운데)과 배은심 여사.[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고정호 통일맞이 사무처장은 "남북공동행사는 작년 6.15 남북협의 때 나왔던 부분인데 구체적인 합의 내용이나 사업 내용은 정해진 바 없다"며 "남북관계가 꽁꽁 얼어붙은 상황이 변수로 작용할 것 같다"고 말했다. 공동행사는 내달 회의를 통해 구체적인 계획이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 사무처장은 문익환 목사 방북 20주기 기념 사업에 대해 "목사님이 걸어왔던 길들은 단순한 개인의 것들이 아니다. 특히 올해 남북관계가 더 어려운 상황에서 기념과 관련한 단편적인 부분은 아니"라며 "20년 전으로부터 시대는 변화됐지만, 문 목사님이 방북했을 때의 그 마음은 지금도 똑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문 목사님이 '걸어서라도 평양 갈거다'라고 했던 처음의 마음처럼 이명박 정부 들어 꽁꽁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풀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 참배하는 추모객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고 문익환 목사의 묘.[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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