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KAL858기 사건 폭파범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사면된 김현희 씨가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1987년 115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태운 채 공중에서 사라진 KAL858기 사건에 대한 숱한 의혹은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으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진상조사가 진행중에 있다.

KAL858기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 '배후'의 작가이자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 조사팀장인 서현우 씨는 처음으로 국정원 발전위의 종합보고서(2007.10.24)와 소송을 통해 확보한 4천여 쪽의 재판기록(2007.9.4 공개 결정) 등을 토대로 이 사건의 의혹들을 종합 분석했다.  

A4 용지 30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석 보고서를 작성한 서현우 작가는 <통일뉴스>에 연재를 의뢰했으며, <통일뉴스>는 KAL858기 사건의 진상규명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해 이 분석 보고서를 매주 5회(월-금) 연재한다. /편집자주


Ⅰ 김현희 신원에 대해서


1. 주소와 출생지에 대한 문제


1-1. 김현희는 자신의 평양 주소지를 ‘평양시 문수구역 문수1동 65반 무역부아파트 7층1호’라고 진술함. (수사기록605,608쪽-1회자필진술서, 수사기록3724,3725쪽-1회검찰신문조서)

▲ 김현희 자필진술서 [자료사진 - 서현우]

▷ 위 주소지는 김현희에 대한 대법원 확정판결에 이르기까지 반영됨. (재판기록766쪽)

▲ 재판기록상의 주소 ‘문수구역 문수1동’, 출생지는 ‘대동강구역 동신동’에서 ‘동대원구역 동신동’으로 바꿈 -1심 재판기록 [자료사진 - 서현우]

▷ 실제 김현희가 언급한 주소지의 ‘문수구역’은 1983.3에 폐지되었는데, 폐지 당시 문수구역 소속 15개 동을 대동강구역(大同江區域)에 편입시키고 대동강구역의 휴암동, 삼골동을 사동구역에 편입시켜, 1987년 김현희 진술 당시엔 ‘문수1동’은 대동강구역에 속해 있었음. (북한총람1983-1993 65쪽, 중앙일보 북한네트지명사전, 국정원종합보고서368쪽)

▷ 국정원종합보고서는 주소지 불일치에 대해 문제를 인정하면서 김현희 진술 이외에는 달리 확인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림. (국정원종합보고서369~370쪽)

▲ ‘문수구역’은 1983.3~1984년 사이 폐지되어 1987년 당시는 ‘대동강구역’임 -국정원종합보고서 [자료사진 - 서현우]

1-2. 김현희는 자신의 신분을 밝힌 1987.12.28의 최초 진술에서 자신의 출생지를 ‘평양시 대동강구역 동신동’이라 했으나, 이후 ‘동대원구역 동신동’으로 바꿈. (국정원자료No.125, 424쪽-국정원종합보고서368쪽)

▷ 국정원종합보고서는 동신동이 ‘동대원구역’에 속한다는 사실과, 문수동이 ‘대동강구역’에 속한다는 사실을 모두 인정했음. (국정원종합보고서368~369쪽)

▲ 주소지에 대한 김현희 진술의 불일치를 인정하면서도, 그 배경보다는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당시 안기부에 책임을 전가함 -국정원종합보고서 [자료사진 - 서현우]

▷ 국정원은 주소지 불일치에 대해 김현희가 장기간 공작원교육을 수행하느라 집에 자주 들르지 못해 일어난 일이라고 해명한 바 있지만, 일반적으로 출생지를 잘못 기억하는 경우는 납득할 수 없음.

▷ 김현희의 또 다른 진술엔 평양의 적십자병원과 남산진료소가 모두 ‘문수구역’에 있다고 했으나, 1987년 당시 적십자병원은 ‘동대원구역’에, 남산진료소는 ‘대동강구역 문수동’에 있음이 확인되었음. (국정원자료No.112쪽,-국정원종합보고서369쪽)

▲ 평양 시내 지리에 대한 진술의 불일치 -국정원종합보고서 [자료사진 - 서현우]

2. 김현희의 부 김원석 신상에 대한 불일치

2-1. 수사발표 당시 안기부는 김현희의 진술에 따라 김현희의 부 김원석이 당시 ‘앙골라 주재 북한 무역대표부 수산대표’라면서, 확인 중에 있다고 발표함. (수사발표문4쪽, 수사기록608쪽-1회자필진술서, 수사기록718쪽-2회자필진술서)

▲ 안기부 수사발표문 [자료사진 - 서현우]

▲ 김현희 자필진술서 [자료사진 - 서현우]

▷ 당시 아사히신문은 앙골라에는 북한 무역대표부 수산대표라는 직책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으며, 국정원은 2005.9에 이르기까지 김원석의 위 경력을 확인하지 못했음을 시인함. (국정원종합보고서366쪽)

2-2. 김현희는 자신의 부 김원석이 1961.4 김일성종합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후 외교부에 배치되었으며, 그 대학 4학년 재학 시 어머니 림명식과 결혼하였다고 진술함. (수사기록4034쪽-4회검찰신문조서)

2-3. 김현희는 또 자신의 부 김원석이 1962~1967.2 기간에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서기관으로, 1970.3~1972.9 기간에 소련 주재 북한대사관 서기관으로 근무했다고 진술함. (수사기록4034쪽-4회검찰신문조서)

▲ 김현희 검찰신문조서 [자료사진 - 서현우]

▲ 김현희 검찰신문조서 [자료사진 - 서현우]

▷ 국정원종합보고서가 확인한 쿠바외교관 명부엔 1963~1965 기간 'Kim Uon Sek'이 있으나, 1966~1967 기간의 해당 이름은 없었음. (국정원종합보고서364쪽)

▲ 국정원종합보고서 [자료사진 - 서현우]

▷ 이에다 KAL858기 사건 이전에 출간된 ‘북한인물록’엔 김원석의 경력이 ‘1961.9 북한군 대좌 신분의 군사정전위원회 위원, 1962 인민군 소장, 1962.6~1970.2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무관’으로 기재되어 있음. (북한인물록1987.11판-국정원종합보고서365쪽)

▲ 북한인물록1987.11판 -국정원종합보고서 [자료사진 - 서현우]

▷ 위의 자료들을 통해 볼 때 김원석의 경력에서부터 쿠바 근무연도와 근무지위에 이르기까지 모두 불일치함.

▷ 국정원자료에 실린 한 전문엔 “1962년 Kim Uon-sok이 하바나 주재 북괴대사관 주재관으로 근무하였고, 처는 Yim Myen-sik”이라 기재되어 있으나, ‘전문’의 성격이 당시 안기부 파견관의 것으로 보이며, 특히 김현희의 모 림명식의 ‘림’을 ‘Lim’이 아니라 남한식인 'Yim'인 것으로 볼 때 신뢰성에 의문을 남김. (국정원자료No.31-국정원종합보고서364쪽)

▲ 'Lim'이 아니라 'Yim', '림‘이 아니라 ’임‘ -국정원종합보고서 [자료사진 - 서현우]

3. 쿠바로부터 귀국한 시기의 불일치

3-1. 김현희는 ‘1963년 부 김원석을 따라 전 가족이 쿠바로 이주했으며, 1967년 부 김원석의 근무지 변경으로 귀국했다’라고 진술함. (수사기록607, 712~713, 3278쪽)

▲ 김현희 자필진술서 [자료사진 - 서현우]

▷ 다른 진술에선 ‘1966년 여름’에 가족이 먼저 귀국하고, 이듬해인 1967년 부 김원석 귀국이라 함. (국정원자료No.105-국정원종합보고서370쪽)

▷ ‘북한인물록’엔 김현희의 진술과 달리 김원석이 쿠바로부터 귀국한 연도가 1970년2월임. (북한인물록1987.11판)

▷ 김현희의 자필진술서 중 1회 진술서와 반성문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진술서엔 ‘꾸바’란 북한식 표기 대신 남한식 표기인 ‘쿠바’라고 되어 있음. (수사기록712쪽-2회자필진술서)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