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태 (남북치의학교류협회 상임대표, 수필가)

이 연재 글은 치과의사인 이병태 원장이 지난 9월 27일부터 30일까지 3박4일간 ‘평화3000’(이사장 신명자)이 주최한 북측 지원사업장 방문단 일원으로 참관했다가 쓴 방북기이다. 이 방북기는 평양-백두산-묘향산-청천강의 순서로 7회에 걸쳐 연재될 것이다. 현재 이병태 원장은 치과의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아울러 치의학 관련 남북교류사업도 하면서 틈틈이 글을 쓰고 있다. / 편집자 주

묘향산 공부 (1) 개요

▲ 평양-묘향산간 고속도로. 중앙분리대는 사람 크기의 측백나무이며 휴게소가 없다. [사진-이병태]

묘향산(妙香山)은 우리나라 서북쪽 묘향산 줄기의 주봉이다. 실제 주봉은 비로봉이다. 명산이며 조선8경 중 하나이다.

생전에 히말라야나 알프스는 볼 수 있어도 백두산이나 금강산 또는 묘향산은 꿈에서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겨왔다.

세월과 정세도 함께 흘렀다. 나는 백두산을 중국 쪽으로 20여회, 금강산을 휴전선을 통과해서 60여회 바라보는 변화 속에 이번에는 묘향산 품에 안기는 기회가 있어 그나마 흡족했다.

다리에 힘이 더 빠지기 전에 법왕봉(法王峰) --- 비로봉(毘盧峰) 능선길에서 땀 흘리며 조국 산하를 조망하고 싶지만 어쩔 수가 없다. 묘향산은 북측 평안북도 향산군, 평안남도 녕원군, 자강도 희천시에 걸쳐 넓은 지역을 거느리고 있다.

11세기 초부터 묘(妙)한 향(香)을 풍기는 산이라 하여 그때부터 묘향산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 산에 자생하는 향나무, 측백나무에서 풍기는 그윽한 향과 그 아름다운 산세에 맞는 이름이다.

서산대사는 3대 명산으로 금강산, 지리산, 묘향산을 치면서 묘향산을 으뜸으로 쳤다.

예로부터 4대 명산으로 금강산, 지리산, 구월산, 묘향산을 쳐서 묘향산은 자리매김했나 보다. 이 묘향산에서 김일성 주석이 눈을 감고 정권은 김정일 국방위원장한테 이어졌다.

묘향산 공부 (2) 산봉우리 이름

▲ 향산다리 위에서 찍은 향산호텔. [사진-이병태]

청천강을 거슬러 올라오다가 향산다리를 건너면 향산호텔이 있다. 마치 모습은 설악동의 뉴설악파크호텔과 같아 낯설기는커녕 친근감이 갔다. 오히려 엽서나 출판물에서 본 천연색 사진보다 훨씬 웅장하고 깨끗하며 현대식으로 보였다.

주 계곡 묘향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왼쪽으로 천태계곡과 오른쪽으로 칠성계곡으로 나뉘어지고 이 두 계곡을 분리시키며 솟은 능선 끝에 묘향산의 주봉 비로봉(1,909m)이 솟는다.

▲ 국제친선전람관 2층 난간에서 바라보는 법왕봉. [사진-이병태]

비로봉으로부터 서쪽으로 뻗은 산맥에 진귀봉(1,820m), 원만봉(1,825m), 석가봉, 천태봉, 천탑봉, 향로봉(1,599m), 오선봉(1,365m), 법왕봉(1,392m), 관음봉(1,120m)이 연이어 묘향산 줄기 중간부분을 이루고 있다. 이외에도 문필봉(1,530m), 형제봉(1,230m) 등이 있다.

나는 지금 인도어 클라이밍을 하고 있다. 수많은 폭포와 바위, 이름은 차차 알아봐야 할 일이다. 다녀왔는데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형편이 우리의 현실이다. 안타깝다.

묘향산 공부 (3) 소문과 불심

▲ 멀리 묘향산 주능이 보인다. [사진-이병태]

“거저 묘향산에 세 번만 오르면 됩니다.”
“세 번을 어케(어떻게) 오르오!”
“4월 초파일에 묘향산 꼭대기에 세 번만 오르면 죽어서 극락 갑니다.”

금강산 정상도 비로봉이지만 묘향산 정상도 비로봉이다. ‘하루에 세 번 오르내리면 극락 간다’는 이야기는 그 만큼 심신을 단련하고 몰두해야 한다는 뜻이다. 비로봉 정상을 하루에 세 번 오는 일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묘향산 주변 인가에는 이런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었다.

우리나라 모든 산봉우리 이름이 불교에 따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묘향산 정상을 비로봉, 그 외에 석가봉, 법왕봉, 관음봉이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러나 칠성계곡이라는 명칭이 자리내린 것을 보면 불교가 우리의 고유 신앙을 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칠성은 북두칠성을 뜻하며 석가모니 불교와는 거리가 있었던 것인데 삼성각이라거나 칠성각 등을 포용했다는 것이다.

묘향산 공부 (4) 향로봉의 단군전설

향로봉 남쪽 기슭에 단군굴이 있다. 이 바위굴에서 곰이 사람으로 변해서 단군이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다. 일연(一然)은 태백산을 묘향산으로 봤다.

조선왕조 14대 선조 30(1597)년에 전주사고본인 『조선왕조실록』을 묘향산 보현사 별전으로 옮겨 보관했다.

그 후 강화도로 옮겨 인쇄해서 1606년에 새 인본을 묘향산에 두고 사고(史庫)로 놔뒀으나 후에 무주에 있는 적성산으로 옮겼다.

묘향산 공부 (5) 보현사

▲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 [통일뉴스 자료사진]

묘향산에는 보현사와 안심사를 비롯하여 한 때는 360개에 이르는 절과 암자가 있다고 전한다. 이번 방북(2008년 9월 30일)때 보현사를 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먼저 국제친선전람관으로 안내받았다.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외국으로부터 받은 선물이 전시돼 있고, 미국 워싱턴의 링컨상 같은 김일성 주석상,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김정일 위원장한테 선물한 다이너스티, 실물 크기의 김일성 주석 밀랍상 앞에 마주서서 예의를 표하고 버스에 올랐다.

북측 안내원들은 우리를 채근했다. 특히 나는 적을 것도 있어 끝에 처져서 감시(?) 대상이 되었다. 우리는 버스에 올랐다. 국제친선전람관에서 우리에게 설명했던 여성 네 명이 나란히 서서 우리에게 손을 흔들며 환송했다.

버스에 오르자 북측 안내 선생의 말에 나는 놀랐다.
“시간상, 이제 향산호텔 2층에서 식사하고 순안공항으로 고빠로 가갔습니다. 시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의를 제기했다.
“안내 선생. 아니, 묘향산 와서 보현사를 안 보면 이게 뭡니까. 보고 가야 합니다.”

안내팀과 기사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향산호텔로 식사하러 가기 전에 보현사를 들르겠습니다. 해설 안내를 따라야 하갔습네다. 빨리 둘러보아야 합니다. 식사도 하고 순안공항에 가야 하니까니 처지는 사람 없이 둘러보도록 하갔습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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