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태 (남북치의학교류협회 상임대표, 수필가)

이 연재 글은 치과의사인 이병태 원장이 지난 9월 27일부터 30일까지 3박4일간 ‘평화3000’(이사장 신명자)이 주최한 북측 지원사업장 방문단 일원으로 참관했다가 쓴 방북기이다. 이 방북기는 평양-백두산-묘향산-청천강의 순서로 7회에 걸쳐 연재될 것이다. 현재 이병태 원장은 치과의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아울러 치의학 관련 남북교류사업도 하면서 틈틈이 글을 쓰고 있다. / 편집자 주

백두산(1) 비행기에서

▲ 고려항공 (평양순안공항---->삼지연공항) 기내에서. [사진-이병태]

비행기에 금연석과 흡연석이 있을 때 나는 담배를 피면서도 금연석에 앉았다. 좌석을 배치 받으려고 줄을 섰다가 내 차례가 되면 못하는 영어지만 꼭 먼저 하는 말이 있었다.

“No smoking. Window side please.”

이 말 한 마디로 나는 비행기 날개를 비껴 앉으면 내 하늘 아래는 전부 볼 수 있다.

미국대륙
- 케네디공항 --- 필라델피아 --- 워싱턴 (프로펠러 비행기)
- 워싱턴 --- 시카고 --- LA : 대륙횡단 (그랜드캐니언을 내려다 보다)
- LA --- 서울 : 대륙간 지구 1/3 비행
  (SF, 골든게이트, 알라스카와 발틱해협, 홋카이도, 캄차카반도)

아시아대륙
- 베이징 --- 프랑크푸르트
  천산산맥, 기린산맥, 고비사막, 초원

유럽대륙
- 프랑크푸르트 --- 도쿄
  몽블랑, 아이가, 마타호른, 융프라우

평양에 착륙하면서 그리고 이륙하면서 비행기가 기울 때마다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서울 같으면 거미줄 같은 도로와 수도권도 교통도로망이 역시 거미줄 같고, 산마다 골프장, 산소 아니면 등산로 때문에 푸르른 산은 흙으로 노출되거나 능선마다 등산로가 신작로처럼 생겨있는 것이 현실이다. 북녘 산줄기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북<로동신문>. 5년 전보다 종이질이 좋아졌다. [사진-이병태]

고려항공 JS5101. 내 손에는 9월 28일(일)자 <로동신문>이 들려 있었다. 5년 전에 보았던 신문보다 종이 질이 좋아져 있는 것을 보았다. 대학 때부터 신문 편집에 시간을 쏟았던 내 눈에 종이 질이 좋아진 것이 눈에 띄었다.

백두산 가는 비행기에서 북녘 산하를 내려다보았다. 평양순안공항을 이륙하고 15분경, 아래는 이리 구불 저리 구불, 마치 동강 줄기 같은 지형이 눈에 띄었다. 외국 여행 중이었으면 스튜어디스라거나 기내요원한테 물을 수가 있지만 북측 상공에서 지상 구조물과 지형에 관해 묻는 것은 철저한 금기사항이다. 스스로 지킨 금기사항이었다. 짐작컨대 대동강 줄기 같았다. 비행코스를 미리 알아볼 수도 없는 상태였다.

고도를 잡고 비행기는 백두산을 향해 북진하고 있었다. 다시 내려다 본 지상은 검푸른 삼림이었다. 산은 봉우리와 봉우리를 이으며, 줄기는 줄기대로 계곡은 계곡대로 그대로 있었다.

30분쯤 비행했다. 그래도 삼림이다. 마치 손을 폈을 때 손가락 사이가 계곡인 것처럼 모여서 생긴 강을 보았다. 거기가 청천강은 아니었다. 금강산 형상도 아닌 것 같았다. 어딘지 몰라 궁금했다. 계속 밀림 위를 비행하고 있다.

1950년대 후반, 내가 중3, 고1 때부터 보던 우리나라 지도가 떠올랐다. ‘나는 지금 등고선에 따라 고동색, 노란색으로 표시된 부전고원, 장전고원 그 상공을 통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공상을 하늘에 뜬 비행기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

백두산(2) 야, 보인다

▲ 기내에서 보이는 백두산의 원경. [사진-이병태]

비행기 왼쪽 날개 위로 접시를 엎어놓은 형상, 그 산이 나를 놀래켰다. 놀란 흥분은 곧 지나온 기나긴 세월에 정과 아낌을 주고받지 못한 아쉬움으로 변했다. 연두에서 조금은 푸르며 아주 은은한 모습, 잔잔하고 납작하지만 가운데가 있음을 알 정도로 솟은 듯 안 솟은 듯한, 드러내지 않은 백두산의 먼 모습을 보았다.

나만 머리가 좌우로 오가는 줄 알았더니 남들은 벌써 디카로 찍고 있었다. 나도 찍었다. 얼떨결에 내 입에서는 외마디처럼 나왔다.

“선배님, 김 박사. 저기가 백두산야!”

그러자 사진을 찍기만 하고 있던 일행들은 두 눈을 부릅뜨듯이 응시했다.

여기는 분명 고원지대 상공이다. 백두산 남쪽 기슭의 평원 그 삼림지대, 부전고원, 장전고원 위를 날고 있는 것이다.

아쉽다. 누가 ‘여기는 어딥니다’ 하고 확인해주지 않고, 알지 못하고 가는 것이 억울하다. 그냥 보기만 하면 자막도 없고 사운드도 없는 무성영화를 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총천연색이며 파노라마였다.

와, 왼쪽으로 그 백두산, 눈 높이와 같은 백두산, 은빛도 아니고 백색도 아니지만 은은하고 연두와 담청색의 납작하게 퍼진 온유한 백두산을 본 것이다. 포근히 엎드려 잠든 아기의 깨끗하고 도툼하고 퍼진 듯한 엉덩이를 옆에서 본 듯하다.

삼지연공항. 타고온 고려항공과 대기중인 버스. [사진-이병태]

서울 내 주변에는 80살을 넘긴 원로 산악인 선배 두 분이 계신다. 이 분들은 내가 중국연변 조선족 자치주 제2인민병원에 다니면서 백두산을 다니는 것까지는 이해한다면서도 반대의견을 분명히 하셨다.

“이보시오. 이 박사. 우리가 백두산을 가면 어찌 중국 쪽으로 오르겠소. 우리는 남에서 북으로 우리 땅을 밟고 가겠시다. 아니면 안 가겠어요.”

수도 없이 장백산을 갔던 나를 책망하듯, 야단치듯, 화풀이 하듯 하는 그 말을 자주 들었다. 내가 처음으로 중국 쪽 천지 물을 마셨을 때, 그리고 오늘 2008년 9월 28일 우리 쪽으로 백두봉에 올랐을 때 공통점이 있다. 구름 하나 바람 한 점 없는 천기(天氣)이다. 이 어인 일인가. 사실은 내가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못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어디로부터 누구로부터 받은 기부인가. 행운인가.

백두산(3) 봇나무

▲ 삼지연공항에서 백두산을 향하는 고원의 삼림간 도로. [사진-이병태]

삼지연공항에서 백두산 정상 주차장까지 1시간 20분 걸린다. 정상 주차장은 종착역이고 여기는 산악 궤도전차역이었다. 이름은 향도역이다.

고원 산간 도로를 시속 60Km로 달린다. 낙엽송, 자작나무, 전나무가 고원지역을 말하듯이 굵고 크다가 위로 오를수록 수종이 바뀌거나 가늘어졌다.

“안내 선생. 저거 무슨 나무요?”
“조금 전에 그 나무? 아, 지금 저 나무 말입네까? 봇나무입네다.”
“봇나무? 흰 나무인데.”
“김정일 국방위원장님 생일이 2월이잖습네까? 그땐 눈도 희고 나무도 희다해서 봇나무라 하지요. 자작나무입네다.”
“아, 자작나무.”
“네, 여기 백두산에는 자작나무가 쎄게 많습니다.”

중국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안도현을 통해 ‘장백산 입구’를 지나 구불거리는 도로를 지프로 오를 때 보이는 자작나무는 폭풍설과 풍우에 시달려 분재한 수목처럼 보여 특이한 느낌을 가졌었다. 지형상 남향이라서인지 그렇게 구부러지고 밀식되어 있지 않았다. 전문가들이 보면 뭔가 확 느끼는 것이 있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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