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신문의 탑기사를 장식하고 있을 때 “아직까지 확인된 내용은 없다”며 ‘신중 모드’로의 전환을 시도했던 통일부가 또다시 ‘신중 모드’를 재확인하고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16일 김호년 통일부 대변인은 “여러 가지 첩보사실로 들은 바가 있지만 제가 공식적으로 그것에 관해서 사실이다 확인해 준 바가 없다”며 “사실로서 아직 확인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확인 중에 있다”고만 말했다.

김 대변인은 16일 한발 더 나아가 “정부로서는 확인되지 않는 사안들이 보도되는 것은 남북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고 말해 국정원과 청와대에서 ‘마치 곁에서 지켜본 듯’한 발언들이 나오고 있는데 대해서도 선을 분명히 그었다.

통일부가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에 대해 정부의 ‘입’을 맡기로 한만큼 통일부 대변인의 이같은 일련의 입장 표명은 정부의 공식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원과 청와대는 이례적으로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을 흘리고 있어 그 배경에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9일 김성호 국정원장의 국회 정보위 비공개 보고에서 순환기 계통에 이상이 생겨 수술을 받았고 현재 호전된 상태라며 ‘뇌졸중 또는 뇌일혈’이라고 병명까지 밝혔는가 하면 “부축하면 일어설 수 있는 정도”라고 마치 곁에서 지켜보는 듯한 발언까지 공개돼 논란이 일었다.

11일 통일부 대변인의 ‘신중모드’로의 전환 발언 이후인 12일에도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스스로 양치질은 할 수준”과 같은 ‘실황중계’나 다름없는 발언을 이어갔다.

16일 김 대변인은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상태에 관해서 여러 가지 첩보를 듣고 있다”고 말해 국정원과 청와대에서 흘러나오는 ‘실황중계’에 대해 ‘첩보’라는 입장을 다시 한번 분명히 했다.

첩보와 정보는 엄연히 개념이 다른 것으로 첩보는 단편적으로 수집된 초기 정보로서 사실관계 확인과 엄밀한 분석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정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과 같은 중대한 첩보의 경우 대외적 공개에 신중을 기해야 할 사안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통일부의 ‘신중 모드’는 여러 정황에 비추어보아 정부 공식 입장으로는 타당한 것으로 보이고, 미국이나 중국 정부 역시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상황과도 어울린다.

그렇다면 국정원과 청와대가 외교와 정보계의 상궤를 벗어나 김 위원장 건강에 관해 ‘실황중계’를 내보내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일각에서는 ‘때리고 어르는’ 이른바 ‘역할분담론’이라는 해석도 제기되고 있지만 현실성은 희박해 보인다. 실제로 정부 소식통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고 잘라 말했다.

통일부 대변인이 “정부로서는 확인되지 않는 사안들이 보도되는 것은 남북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고까지 발언하게 된 상황은 정부 내부의 의사소통이나 행동조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국정원과 청와대에서 흘리고 있는 첩보들이 맞을 수도 있지만 신중치 못한 처신은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이며, 만일 이들 첩보가 거짓으로 드러날 경우에는 우리 정보기관은 물론 현 정부가 심대한 타격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국정원과 청와대가 흘린 ‘첩보’를 사실인양 대대적으로 보도한 언론들 역시 이같은 비판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통일부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에 대한 ‘신중 모드’가 향후 정부 내부에서 통일부의 입지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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