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통일뉴스 고성진 기자]
오후 8시, 여의도 공원 인근 산업은행 앞은 6천여 명의 시민들로 북적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민들의 촛불은 더욱 늘어났고, 오후 9시 즈음 1만여 개의 촛불이 소리없이 타고 있었다.
최근 경찰이 일몰 이후 촛불문화제는 불법집회라고 규정하고, 정치적 구호 등의 정치성을 띤 문화제는 집회로 간주하여 관계자를 사법처리하겠다는 방침이 내려지자, 이번에는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또 다시 촛불을 들었다.
촛불문화제 진행 관계자는 "침묵 퍼포먼스는 장소의 상징성과 관련되어 있다"면서 "수면 밑에서 은밀하게 진행되는 의료보험 및 공기업 민영화와 7일 쇠고기 청문회를 앞두고 국회의 직무유기를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출"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평화적 촛불문화제를 불법 시위로 정한 공안 당국에 대한 국민들의 소리없는 아우성이다"라고 덧붙였다.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문화제에 대한 경찰 당국의 탄압이 강해질 수록, 민심은 정부로부터 더욱 멀어지고 있다.
서울에 산다고 밝힌 김재덕(45)씨는 촛불문화제를 불법시위라고 규정한 방침에 대해 "집회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것도 아닌데, 정부가 색안경을 쓰고 있다"며 비판했다. 그는 침묵 퍼포먼스에 대해 묻자 "정부에 대한 국민의 의지를 보여주는 무언의 압력을 행사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어머니 역시 "딸이 불법집회에 갔다는 자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보호자로서 함께 왔다"며 "10시 이후에도 딸과 함께 촛불문화제를 참여할 것"이라고 말해, 문화제에 대한 경찰의 강경대응 자체를 무색케 했다.
이번 촛불문화제 역시 중, 고등학생들의 참여가 많았다. 중, 고등학생들은 방과후 교복도 벗지 않은 채 지친 발걸음을 여의도로 옮겼다.
정릉에서 왔다는 여고생 3명은 "요즘 급식에서 쇠고기 무국이 나와도 먹지 않는다"면서 "광우병이 지금 위험한 것이 아니라 몇 년 지나야 나타나는 무서운 병"이라며, '미 쇠고기 반대 촛불 문화제'에 참가한 이유를 밝혔다.
이들은 "지난 3일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도 참여했다"고 밝히며, "다음 번에는 더 많은 친구들과 함께 오겠다"고 말해,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대한 중,고등학생들의 관심이 얼마나 높은지 짐작케 했다.
촛불문화제는 8시 20분경 점등식을 통해 '생명의 불'을 나눠 새로운 초를 점화시키며 본행사로 접어들었다. 문화제는 철저하게 침묵시위 위주로 진행됐다.
문화제 진행 중에 '미친소, 너나 쳐먹어라'는 구호를 두번 외치기도 했는데, 한 진행요원이 "'침묵 문화제라서 왔는데, 구호를 따라하는 것은 행사의 취지와 맞지 않다'는 참가자들의 항의가 들어왔다"고 밝히기도 했다.
경찰은 촛불문화제 인근의 교통을 통제하며, 참여인원을 파악하는 등 주의깊게 문화제를 살피기도 했다.
오후 10시, 촛불문화제 주최측은 청소년들의 귀가를 권유하는 방송을 내보냈고, 2부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추가, 오후 10시> 2부, '침묵' 촛불문화제 "이색적이다" 시민 반응 뜨거워
오후 10시, 촛불문화제 2부 행사가 이어졌다.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카페 운영진은 "국민의 생존권을 담보한 협상은 실용일 수 없다"면서 "(정부는) 각종 서민 죽이기 정책을 철회하는 것이 실용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며 각성을 촉구했다.
제법 쌀쌀한 날씨였지만, 1,500여 명의 시민들이 자리를 지켰다. 자리를 떠난 촛불들은 여의도공원에서, 여의도역으로 향하는 길가에서도 볼 수 있었다.
여의도 공원 휴게소에서 라면 등 간식을 먹는 시민들의 화두는 단연 미국산 쇠고기였다. 벤치에서 라면을 먹고 있던 대학생 두 명은 "1부 행사가 끝나고 잠시 체력을 비축하고 있다"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그들은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중,고등학생들이 이토록 민감하게 받아들일 줄 몰랐다"며 "요즘 대학생들이 취직 등으로 인해 사회적 이슈들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며 우려했다.
중,고등학생들이 대부분 귀가한 2부 행사에는 대학생, 직장인, 가족단위 시민들이 많았다.
동국대학교 2학년 재학중인 김동규씨는 "친구가 먼저 갔는데, 뭔가 해야될 거 같아서 남아있게 되었다"면서 "미국은 자국내에서 20개월 미만 소만 먹는다는데, 우리 정부가 잘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연인은 "데이트 장소로 촛불문화제를 택했다"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운동에 동참하는 부분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들렀다던 한 남자 시민은 "화가 너무 나서 올 수 밖에 없다"며 "협상을 그렇게 하고 얼굴을 뻔뻔하게 들고 다닐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이날 침묵 퍼포먼스라는 틀로 진행된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시민들은 전반적으로 '재밌다', '이색적이다'는 반응을 보였다.
인천에서 일을 마치고 친구와 함께 문화제에 합류했다는 성효성(26)씨는 "침묵 시위가 일과를 되돌아보고, 정부의 정책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기회를 제공했다"면서 "이명박이 정말 싫고, 친구와 함께 미국산 쇠고기를 먹지 말자고 이야기 했다"고 밝혔다.
또 2명의 직장인 여성은 "침묵 촛불문화제는 매력이 있다"면서 "이렇게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정말 다행스럽고, 자랑스럽다"고 소감을 정리했다.
취직 준비 중이라는 전남대학교 남학생은 '촛불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냐'는 질문에 "나라 걱정"이라며 운을 뗐다. 그는 "정치에 관심이 많다"면서 "나라가 바로 서고 기반이 잘 잡혀야 취직도 할 수 있는 거 아니냐"며 참여 이유를 덧붙였다.
2부 행사는 침묵 시위가 이어진 가운데, 시민들이 '손에 손잡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독도는 우리땅', '태극기' 등의 노래를 따라부르면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촛불문화제를 주최한 카페 진행요원들은 문화제가 끝나기 전부터 30여 명의 진행요원들이 장소를 깨끗이 정리하는 등 문화제 마무리에 힘을 쏟았다.
카페 운영진은 "촛불문화제는 12시 1분에 끝난다"면서 "7일 쇠고기 청문회 관련해서 정부에 국민들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촛불문화제에는 늦은 시간까지 800여 명의 시민들이 함께 했다. 이들은 국회의사당을 향해 1분간 '완전' 침묵 시위로 의지를 밝힌 뒤, "미친소..너나 쳐 먹어라"라는 구호를 외치고 문화제를 마무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