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북미관계는 종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처럼 객관적 통일정세가 무척 긍정적으로 흐르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통일에 대한 기대가 더욱 높아지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통일기행에 참여하고 있다. 물론 가장 큰 통일기행은 상호 자유로운 방문일 것이지만 아직은 현실이 그러하지 못하기에 일단 남쪽 땅에서 통일기행으로 가장 많이 찾는 파주 일대의 민통선-DMZ 권역을 이번 기행지로 선택하였다.
출발지로는 이러한 통일환경 조성에 가장 크게 기여한 2000년 6.15공동선언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하여 <김대중도서관>을 선택하였고, 이렇게 시작되는 통일기행은 자유로를 이용하여 통일동산과 임진각을 둘러보고 민통선 내부로 들어가 도라산역, 제3땅굴, 캠프보니파스 등 여러 장소들을 보며 그 의미와 현실을 살펴보기로 한다. 또 유엔사 관할지역인 남측 비무장지대로 들어가 판문점과 대성동마을을 둘러본다. 그리고 민통선을 빠져 나오면서는 통일로를 이용하여 서울로 돌아오며 적군묘지, 장준하 묘, 보광사 구 비전향장기수 묘역 등을 살펴보며 돌아오는 것으로 기획하였다.
아직까지 분단의 흔적이 가장 짙게 남아있는 이곳 민통선-DMZ 일대에서 최근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통일의 역사를 직접 몸으로 느끼며 남아있는 분단의 흔적들을 지우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연재 순서는 아래와 같다./필자 주
1. 통일기행의 출발지, 김대중 도서관 2. 자유로와 통일동산 3. 냉전의 전시장 임진각 4. 민통선과 비무장지대 5. 민통선 밖의 분단과 통일 6. 맺음말
(1) 자유로에서 보여지는 <분단의 현실>
이번 기행의 출발지였던 <김대중 도서관>을 떠나 번잡한 신촌로타리를 벗어나 서강대교 밑에서 강변북로에 올라섰다. 서강대교 부근에서 강변북로를 따라 자유로가 시작되는 행주대교까지는 자동차로 약 15분 정도 걸린다. 그런데 가양대교를 지나자마자 서울을 벗어나고 경기도에 들어서는데 통일기행을 위해 찾아온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다름 아닌 도로 위에 육중하게 건설된 콘크리트 탱크방벽이었다. 서울에서 북쪽으로 가는 도로에는 자유로뿐만 아니라 통일로 등 거의 모든 도로에 탱크방벽이 설치되어 있다. 어서 이런 비경제적이고 시각적으로도 안 좋은 이런 것들이 없어지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육중한 콘크리트 탱크방벽을 지나쳤다.
탱크방벽을 지나자 마자 확 트인 시야에 행주대교 북단의 끝 자락에 놓인 덕양산이 <행주산성>에 둘러싸여 정면에 들어온다. 그 정상에는 조국을 지키기 위하여 조선의 아낙네들이 치마자락에 돌을 담아 올려 외세를 물리침으로써 조선민족의 자주성과 민중성을 한없이 드러낸 행주대첩비가 우뚝 솟아있다. 3만 왜병을 조선군 2천 3백 명과 마을 아낙네들의 힘으로 물리쳤다니 그들의 후손으로써 필자는 가슴 뿌듯해진다. 여기 행주산성에서 함께 조국을 위해 싸웠다는 아낙네들의 전투장비(?)로 행주치마가 전부였다니 그 동안 우리에게 정겨운 어머니의 자태로만 느껴지던 행주치마라는 말 속에서 우리 조상들의 민족애와 자주성이 스며있음을 느껴본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의 생활 곳곳에는 지난 날 우리의 역사가 숨쉬고 녹아져 있는 것이다.
행주대교를 지나 계속 하나로 연결되는 도로이기에 운전자들은 전혀 길이 바뀌었다는 것을 느낄 수 없지만 여기서부터 펼쳐지는 도로는 <강변북로>에서 그 이름을 바꾸어 <자유로>라고 한다. 행주대교부터 임진각까지 46.6Km의 도로이다. 행주대교를 지나자마자 나타나는 일산IC 고가도로 밑에는 <자유로>를 나타내는 표지석이 도로 중앙에 있다. 하지만 지나치는 차량이 무척 많고 또 고속으로 달리는 곳이라 그것을 찾아보려고 주의해서 보지 않는 이상 그냥 지나치고 가게 된다.
그리고 이 곳부터 펼쳐지는 한강하류의 강 기슭에는 분단을 알리는 철조망이 빈틈없이 쳐져 있고 그 철조망 사이 사이에는 적(?)들의 침투를 확인할 수 있도록 철조망 곳곳에 자갈이 정교하게 올려져 있다.
▲ 자유로와 37번 국도를 따라 한강변과 임진강변 전체에 설치된 간첩침투 방지 철조망. 사진 속의 철조망은 행주대교와 김포대교 사이 한강변이며 철조망 뒤편에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로 이어지는 김포대교와 일산IC이다. [사진-유영호]
서울을 벗어나자 마자 우리를 맞이한 탱크방벽과 함께 철조망으로 둘러친 이런 모습에 왠지 슬퍼진다. 바로 앞 행주산성에서 과거의 적은 외세였지만, 철조망이 펼쳐지는 여기서부터 현재의 적은 바로 북녘 땅의 우리 민족이기 때문이다. 행주대교를 기점으로 남동쪽 서울방향으로는 한강고수부지가 시민공원으로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지만, 서북쪽 임진각방향으로는 철조망이 쳐져 있으며, 곳곳에 간첩선 침투를 경계하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 긴장과 경계를 불러일으키고 있어 너무도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또 김포대교 바로 아래에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한해 앞두고 건설된 <신곡수중보>가 있다. 한강에는 두 개의 수중보가 있는데 하나는 잠실수중보이며, 나머지 하나가 바로 김포대교 아래 놓여진 신곡수중보이다. 이 두 개의 수중보가 모두 한강 수위를 조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김포수중보는 잠실수중보와 달리 한강 수위 조정이라는 목적 외에 올림픽을 앞두고 북의 무장 간첩선이 서해에서 한강을 타고 침투하지 못하도록 만든 것이라는 견해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 자유로에서 일산 신도시와 김포시를 잇는 김포대교 밑의 신곡수중보(1987년 건설). 이는 서울올림픽 대비 한강유람선 운행을 위한 한강수위 조절과 동시에 간첩선 침투방지의 목적으로 건설되었다. [사진-유영호]
무엇이 옳은 말일까 생각하며 이 생각 저 생각해보는 사이에 자동차는 이산포IC를 지나고 파주시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런데 파주시를 1Km정도쯤 남겨둔 구산IC 근처의 철조망 넘어 “무장간첩 섬멸 기념”이라고 새겨진 기념비가 우뚝 솟아 있는 것이다.
▲ 자유로 이산포IC를 지나 구산IC직전에 설치된 <무장간첩 섬멸 기념비> (1980). 한강하구는 군사분계선이 없는 관계로 따라서 비무장지대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남과 북 쌍방의 간첩단이 쉽게 넘나들 수 있었던 곳이다. [사진-유영호]
이 기념비를 보는 순간 ‘아~, 이래서 철조망이 쳐져 있었던 것이구나’라는 생각과 또 ‘김포대교 밑의 신곡수중보도 간첩선의 침투를 막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 맞네’라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그것은 이제는 지난 역사 속의 한 페이지로 접어두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지난 냉전의 시대 불행했던 과거는 이제 남북화해를 알리는 6.15공동선언 이후에는 그저 역사 속에 담아두었으면 한다. 그렇지 않고 이것을 과거가 아닌 현실 속에 끊임없이 재생산해 내는 방식으로 현실을 구성한다면 조국통일이란 우리의 미래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기 어렵다고 보아야 한다. 지난 60년 동안 냉전의 기억 속에서 우리의 조국통일이란 역사적 과업은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던 것을 우리는 알지 않는가? 이제는 좀 마음을 넓게 갖고 보다 큰 미래를 그릴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자유로를 따라 늘어선 이 분단의 철조망 옆에는 현재 고양시와 LG-필립스 공장이 들어서 있는데, 고양시는 지난 2006년 ‘뉴스위크’지에 의해 후쿠호카, 라스베가스 등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10대 도시로 뽑혔고, 또 ‘LG-필립스 공장’은 최첨단LCD를 생산할 뿐만 아니라 그 규모 역시 세계 최대의 LCD공장이다. 이처럼 여기 자유로 변에는 분단과 통일, 전쟁과 평화, 과거와 미래가 혼란스럽게 공존하고 있기에 우리는 전쟁과 분단이라는 과거를 걷어내고 평화와 통일이라는 미래를 준비하며 이제는 이 철조망을 걷을 준비를 해야 할 시기인 듯하다.
▲ 구파발에서 문산으로 이어지는 통일로 입구로 2006년 뉴스위크지에서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세계 10대도시’로 경기도 고양시가 선정되었음을 알리는 선전간판. [사진-유영호]
참고로 행주대교 북단부터 드리워진 철조망이 지금 공사중인 일산대교(자유로 이산포IC에서 일산과 김포시가 연결되는 다리)가 완공되는 시점에 철거된다고 하니 다행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일산대교가 건설되고 있는 이산포IC까지만 철거된다고 한다. 이는 자유로 46.6km에 드리워진 철조망 가운데 약 8km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철조망들을 걷어내듯이 우리의 현실은 통일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확신하며 필자는 파주로 향하였다. 출발지인 김대중도서관을 떠나온 지 30분 정도 밖에 안되었지만 파주시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 최근 만들어진 <자유로 휴게소>에 잠시 머물러 쉬었다 가기로 하였다.
(2) 자유로 중간쯤에 있는 ‘자유로 기념비’
파주시가 시작되는 곳에 위치한 <자유로휴게소>에 들어옴으로써 고양시를 벗어났다. 이곳은 최근 신도시가 개발되기 시작한 파주시 교하읍이다. 이제부터 ‘분단의 끝, 통일의 시작’이라는 본 통일기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경기도 파주시이다. 그런데 ‘교하(交河)’라는 지명은 한강의 물과 임진강의 물이 교차하는 곳이라 하여 ‘교차할 교(交)’와 ‘물 하(河)’자가 결합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무심코 지나쳤던 지명 속에 들어있는 두 글자이지만 자신을 이보다 더 극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가 싶을 정도로 잘 지어진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 휴게소 입구에는 ‘자유로’라고 새겨진 커다란 기념비가 놓여져 있어 그 앞에 가서 안내문을 보니 이 글을 쓴 사람은 다름 아닌 노태우 전대통령이었다. 자신의 통일을 향한 자유로 건설업적을 남기고 싶었던 것인가 보다. 참고로 통일로가 시작되는 구파발에 있는 통일로 표지석의 ‘통일로’라는 글씨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글씨이다.
▲ '자유로' 표지석(자유로휴게소에 위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친필이다. [사진-유영호]
▲ '통일로' (구파발 통일로 입구에 위치) 표지석.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이다. [사진-유영호]
그런데 이것을 보는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자유로를 알리는 이 기념비는 자유로가 시작되는 고양시 일산IC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왜 이곳 파주시에 있는 것일까? 이 기념비는 자유로휴게소가 건설되기 이전부터 이곳에 있었다. 물론 휴게소 건설을 위한 부지조성은 이전부터 되어 있었지만 실체적인 휴게소가 건설된 것은 노무현정부 때의 일이고, 이 기념비는 텅 빈 휴게소 부지 위에 홀로 서있었던 것이고 그것은 노태우정부 때부터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부터 자유로가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사람도 있다. 이곳에 오는 동안 행주대교 부근에서 본 표지석은 도로 중앙선 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산IC라는 입체교차로 기둥과 혼란스럽게 서있고 또 그 크기도 자유로휴게소에 있는 것보다 훨씬 작아 고속 주행 속에서 주의해서 보지 않는 이상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 곳 휴게소에 있는 비석은 어느 누구도 이것을 안보고 지나칠 수 없을 만큼 크고 훤하게 드러내놓고 있다. 일반인들의 상식으로 참 이상한 일이다. 나름대로 필자의 짧은 지식을 동원하여 그 이유를 설명할만한 논리를 구성해 보았다.
자유로휴게소는 ‘파주시 교하면 산남리’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혹시 교하(交河) 노(盧)씨 창성군파인 노태우대통령이 자기 가문의 고향인 이 곳에 세운 것은 아닐까? 이리하여 조선왕조 광해군시절 제기되었다 이루지 못한 ‘교하천도론’을 통일된 후 수도를 이곳 교하로 옮기어 후대인 자신이 이루려 한 것일까? 등등. 조금은 황당하지만 그저 노태우대통령이 쓴 ‘자유로’라는 글씨에 이런 짧은 지식을 동원하여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주:교하천도론은 1612년(광해군 4) 조정에서 서울을 교하로 옮기자는 논의로써 당시 임진왜란을 겪은 후 역적의 변란이 계속되어 민심이 동요되고 있을 때, 지리학에 밝은 이의신은 서울의 지덕(地德)이 쇠하여 왕기(王氣)를 잃었으므로 파주 교하(交河)로 천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왕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삼사(三司), 즉 사헌부•사간원•홍문관에 명하여 교하 일대의 지도를 작성하도록 하였다. 조사를 마친 후 천도의 가부를 정하였는데, 결국 천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