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비가 오락가락하는 21일 토요일 오후 에다가와 조선학교를 지원을 위한 콘서트를 보기위해 건국대로 향했다. 가는 길에는 우중충한 날씨가 기분을 가라앉게 한다며 죄 없는 하늘만 탓했지만, 공연을 보고 난 후 돌아가는 길에선 오히려 흐린 날씨가 다행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왜 나는 좋은 공연을 보고 난 후, 흐린 날씨에 안도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부끄러움 때문이리라.
공연을 보러 가기 전, 공연을 보면서, 공연을 보고 난 후 점점 더 커지는 부끄러움에도 그 나마 흐린 날씨에는 얼굴을 들 수 있어서였다. 맑은 날이었으면 아마도 쏟아지는 햇빛아래 부끄러움이 더욱 빛을 발했을 테니까.
고백하자면 나는 이런 콘서트가 있다며 보고 오겠냐는 지인의 제안을 받기 전까지 이 행사에 대해 전혀 아는 바도, 들은 바도 없었다. 더욱 부끄러운 것은 얼마 전 나는 같은 민족학교 이야기를 다룬 <우리학교>라는 다큐멘터리에 감동 받아 주위 사람들에게 보기를 권하고, 심지어 어느 지방에서 정식 개봉했을 때는 개봉행사의 스텝을 맡기도 했던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나는 일본 우리학교들의 진짜 생활과 어려움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본 순간만의 감동을 간직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린 사실을 사람들에게 아는 체하며 떠들어 댔으니.
공연은 계속 입장하는 사람들 덕분에 6시를 훌쩍 넘겨 시작되었다. 다소 어수선한 공연 초반의 객석 분위기는 무대에 에다가와 학교를 포함한 재일동포들에게 3년 정도 한글서예를 지도했던 오민준 화백의 ‘한민족 한겨레, 우리는 하나’라는 힘찬 붓글씨가 걸리자 조금 경건해지는 듯했다.
그리고 여러 순서가 이어지면서 공연장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같은 감정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역시 부끄러움 이었다.
이 부끄러움의 감정은 비단 나만이 가진 감정이 아니었던 것이다. 출연자도, 준비위원도, 관객도 공연을 보는 내내, 박수를 치는 내내, 노래를 따라 부르는 내내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 느낄 수 있었다.
한 출연자의 말대로 그 공연장에 모인 사람들은 어쩌면 뒤늦은 호들갑을 떨고 있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에다가와 학교를 비롯한 여러 민족학교들이 그 60여년의 시간동안 손, 발, 마음이 다 헤지도록 애쓰며 조국의 통일을 이야기하고, 민족을 이야기하고, 우리 말과 글을 이야기하는 동안, 조국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놓고 이제야 그동안 미안했다며 부끄러운 손을 내밀고 있으니 그 미안함에 어떻게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까?
강제퇴거 위기에 몰린 우토로 어르신들이 무대 위에 올라오셔서 눈물을 훔치며 토해내시던 조국을 한 시도 잊은 적 없고, 우토로를 절대로 떠날 수 없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60년간 그 분들을 모른 채 하며 조국에 살고 있던 우리들 중 어느 누가 떳떳할 수 있을까?
공동대표인 수경스님은 부끄러움에 마이크를 잡길 꺼려하셨고, 가수 양희은 씨는 재일동포 친구들을 생각하며 울먹이며 ‘임진강’을 노래했다. 노래패 우리나라와 가수 이지상 씨는 일본 4개 도시를 순회하며 공연을 할 때 우리학교를 위한 노래를 부르자 다 같이 울었다는 일화를 들려주며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이런 모습을 보는 나는 내내 마음이 무거워졌다. 부끄러움에.
아마도 많은 관객들도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끄러움을 알았으니 움직이는 것이 순서이리라.
‘뜨거운 가슴이 있어도 움직이는 발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라는 공연의 부제처럼 부끄러움을 그냥 마음속으로 간직하고만 있다면 또 다른 부끄러움을 낳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연장에 온 모든 사람들은 이 사실을 그나마 깨달은 것으로 그 부끄러움에 대한 면죄부를 받은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지막 순서로 모두 다같이 ‘아침이슬’을 부를 때는 각자 어떤 다짐들을 했었던 것 같다.
국회의원은 국회에 가서 잠자고 있는 재일동포를 돕는 법률을 통과시키고, 노래꾼들은 그들을 알리는 노래를 부르고, 시인은 그들을 위한 글을 쓰고. 그리고 지갑에서 돈을 꺼내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마음을 전하고....
김용택 시인의 시처럼 늦었지만 조국의 손을 그 아이들에게 주는 것.
이것이 면죄부를 받은 대신 해야 할 일들이 아닐까.
공연장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공연에 진정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을 것이다.
부끄러움을 알게 해주고, 뒤늦은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그래서 이번 ‘에다가와 조선학교 지원을 위한 희망 콘서트’는 희망 콘서트라 이름 붙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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