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전 한상범 전 의문사위 위원장과 함께 통일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지난해 포괄적인 과거청산법인 '진실화해기본법안'이 국회의장 직권으로 본회의에 상정되었다가 여야 합의로 법안처리가 2월 임시국회로 미뤄진 바 있다.

지난해 조사대상 범위를 두고 논란을 벌이던 친일진상규명법이 제.개정되었고, 연초에는 한일협정관련 외교문서가 공개되어 의혹으로만 떠돌던 비밀 막후협상의 어두운 면이 드러나기도 했다.

경찰, 군대, 국가정보기관의 자체 과거청산작업도 추진중이다. 가장 먼저 오는 3일 국가정보원내에 설치된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기자회견을 갖고 87년 'KAL858기 폭파사건' 등 5건을 우선 조사대상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이에 통일뉴스는 법학자이자 친일문제연구가이며, 2기 의문사진상규명위 위원장을 역임한 한상범 동국대 법대 명예교수를 만나 과거청산의 현재적 의미, 한일협정의 문제점, 의문사위 활동경험, 현재 진행중인 과거청산 움직임에 대한 평가를 들어 보았다.

한상범 교수는 칠순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게 열정적이었고,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거침없이 잘못된 과거사와 '박정희 망령'을 질타했다. 따로 해설을 붙임이 없이 인터뷰 전문을 게재한다.

한상범 교수와의 인터뷰는 지난 1월 31일 오전 10시, 통일뉴스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다.

▶"친일파가 곧 통일반대세력"이라는 한상범 명예교수.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통일반대 세력이 곧 친일파들"

□ 통일뉴스 : 지금 과거사 문제로 우리사회가 진보와 보수의 대결장이 된 것 같습니다.

■ 한상범 : 지금 문제의식이나 상황으로 봐서는 앞으로 일이십년은 더 싸워야 돼, 한번 상당한 시련을 겪어야 돼. 이것 같고는 안돼요.

□ 아무래도 요즘 과거사 문제가 조명되고요, 자료들이 나오고 하니 관심이 많으시겠습니다.

■ 과거사 관계, 이것은 제가 옛날부터 50년대부터 연구를 했습니다만 이것 넘지 않고는 아무것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청산되지 않은 일제 잔당이나 그 아류들, 현재까지 그 사람들이 잡고 있잖아. 재물이고 권력이고 이름이고 다 장악하고 있어요. 그걸 모르고 겉돈단 말이야.

□ 통일뉴스는 통일문제나 북한문제를 많이 고민하고 있는데요, 결국 과거사 문제와 연결됩니다.

■ 다 연결되죠. 통일반대세력이 누굽니까? 친일파지. 친일파 문제가 독재문제이고 반통일문제고, 다 한 계통입니다. 그래서, 내가 일제잔재, 식민잔재, 동원잔재, 구기득권 부패세력 청산, 이거면 한국 근현대사의 문제는 그걸로 다 모두어져요. 그런데 그걸 입체적으로 생각을 안하고 토막을 쳐서 생각한단 말이야.

그런 사고방식이 우리 사회에 일반적이야, 특히 지식인들이 그래요. 왜 그러냐 하면 지식인들이 서구학문을 일본을 통해 받아들여요. 그런데, 일본이 서구학문을 받아들이면서 전반 체계를 통째로 받을 수가 없으니깐 토막치기를 했단 말이야. 법학에서도 헌법하는 사람은 헌법만 해라. 그런데 이런 게 없어요, 세계에.

□ 학문간 연결이 안되네요.

■ 학문 자체내에서도 연결이 안돼요. 그건 일본이 서양 학문을 빨리 수용을 하려니깐 분업을 했는데, 미국에서는 헌법 가르치는 사람이 노동법도 하고, 세법도 하고 다 연결이 됩니다. 전체의 부분이거든. 전체를 통해 부분을 보고, 부분을 통해 전체를 봐야 해요. 뭐 변증법적 사고방식 얘기를 안하더라도 그렇게 되는 거지. 그걸 토막치기로 봐가지고 다 바보들이거든.

지금 정세문제를 보더라도 친일파 문제가 과거가 아니거든, 현재 문제고 미래문제거든. 그 사람들 세력이 독재세력입니다, 부패세력이고.

그래서 사회과학 방법론, 이것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어요, 사고방식이. 그런 사고방법 가지고는 내내 친일기득권 세력한테 농락당하지. 지금도 농락당하고 있잖아요. 국회의 정치전술에서도 그 자들을 못 따라가지. 그건 자기들 책임도 있어요. 공부도 안하고 쪼가리 부분만 가지고서 아는 체 하고 또 출세가 너무 빨랐거든. 

□ 고쳐야 될 것을 안 고쳐서...

■ 그래요. 아주 아플 정도로 지적을 해주고 재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절대 기대할 것 없어요. 의문사법 하나 통과할 때만 해도 그 사람들 코를 꿰어서 협박을 하다시피 해서 통과시켰지. 그 사람들은 감각이 없어요.

내가 의문사위 위원장을 2002년 4월 18일 취임해서 지난해말까지 만 3년동안 해왔거든. 나는 과거청산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명감이 있었지, 50년대부터 이걸 해왔고. 박정희, 전두환 때부터 과거청산 문제에 천착해 왔어요. 다른 이들 나가떨어질 때도 내가 버텼던 것은 맞아죽어도 하겠다는 게 있었거든. 날 보고 빨갱이라고 하고 협박도 하고...

□ 그때 신변위협 때문에 경찰이 경호를 하기도 했지요.

■ 경찰도 골치를 앓다가 호위를 해야겠다고 하더라고. 관두라고 했어, 당신들 신변이나 걱정하라고. 맞아죽어도 괜찮다고 했지.(웃음)

'여운형 인기, 김구 친밀감, 이승만 거슬려'

▶우리말은 '소' 한자만 알고 해방을 맞
이했다며 크게 웃는 한상범 교수.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 선생님은 30년대에 태어나셨으니 칠순을 넘기셨습니다. 일제식민시기, 이승만, 박정희 시기를 다 거쳐오셨습니다. 친일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으시다면.

■ 질문을 잘 했어요. 나는 어렸을 때, 일제 식민지하에서 일본말만 하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조선말을 하지 못했어요. 완전히 황국신민화 되는 거지. 아침저녁으로 황국신민의 맹세를 하고 '서사'라고 있어요, 그걸 외우지. 그런데 소학교(초등학교) 학생들 정도 되면 철이 들지. 일본사람이 조선사람은 아니다, 조선말을 못하게 하고 일본말만 하게 하는 건 잘된 건 아니다.

그런데 일본 역사를 우리 역사로 배우는데, 고려군과 몽고군의 침입을 가미카제 신의 바람이 불어서 막아줬다고 해. 이게 말이 되냐, 웃긴다하고 책장을 찢어버렸어. 그게 들켜 혼도 나고 한참 시달림을 당했지.

이 사람들이 전쟁이 심해지니까 말이야. 물어봐, 일본이 이기냐 영미 제국주의가 이기냐 하고. 다들 주어진 해답 갖고 일본이 이긴다고 했는데, 내 옆에 앉은 같은 동네 사는 얘가 전쟁이 끝나봐야 되지 않냐. 이 놈 큰일날 놈이라고 불려가서 매맞고 학부모 불러다 야단이 나요. 사실 전쟁이 끝나봐야 알지 처음부터 누가 이긴다는 게 어디 있냐. 끝나봐야 아는 거지.

□ 정해진 답을 강요하는 질문이네요.

■ 그렇지. 8.15가 나고 일본이 패전하고 그러니까, 그렇게 악을 쓰고 왕을 신이라고 거짓말하던 체제가 허깨비구나 이렇게 막연하게 느껴요.

이제 해방군이라고 미군정이 들어왔어. 그런데, 이게 해방군이 아니야 소련군하고 똑같아. 내가 해방전에 개성에서 살아서 소련 진주 경험이 있거든. 어거지로, 뭐 약탈은 안 하는데 왠지 하는 게 틀려요. 어린 마음에도.

□ 체질적인 거부감 같은 거네요.

■ 맞아. 또 하나 내가 일제하에서 우리말을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어요. 어머니가 가르쳐 주셨는데 그것도 공부니까 하기 싫어서 '소' 한 자만 배우고 해방을 맞았지.

□ 해방이후 얘기를 들려주시지요.

■ 그래요. 이승만 이 사람이 들어서는데, 지금도 이승만, 김구, 여운형 이 세 사람이 생각이 나요. 여운형 선생은 당연히 인기 있었고 일제시대에도 여운형 선생은 무조건 인기고, 김구 선생은 소박한 친밀감을 주었지.

이승만은 미군 하지 중장이 장충단에서 소개를 해요, 당신들 애국자라고. 근데 왜 우리나라 사람을 미군이 소개를 하나. 거기다 프란체스카 여사라고 부인이 양(洋)부인이야. 자기는 한복입고 왔다갔다 해도.

□ 외국인이었죠.

■ 그렇지, 나는 서먹서먹하더라고. 그 사람에 대해 당시 우익이 신격화시켜서 나라님이니 국부니 하는데. 이승만씨가 어린 맘에도 거슬리는 게 48년, 49년에 반민법 폐지니 자세한 것까진 알아듣고 할 건 없었지만, 6.25때 피난가지 말라고 해 놓고 자기는 도망갔거든. 그리고 다리를 끊어버렸거든. 그랬다가 수복이 되었다고 해서 다시 미군이 들어오니까 피난을 안 간 사람은 '비도강자'라고 해서 부역혐의자로 몰아서 다 두들겨 팼거든.

□ 박완서 선생도 그 때 '도강민'과 '비도강민'이라는 새로운 계급이 생겼다고 하더군요.

■ 그럼. 나도 그 당시 중학교 상급반이지, 아무 죄도 없이 인민공화국 치하에 있었다고 두들겨 패요. 아니 그럼 인민공화국 치하에 있지 어떡해요, 날라가나.(웃음) 이거 고약하다 그랬는데, 6.25가 난 다음 다음해인가 52년 정치파동때..

민주화는 곧 친일파 청산

□ 부산정치파동이요?

■ 그렇지, 부산에서 1차 개헌때 이승만 직선으로 몰아갈려고. 그때 이승만 욕을 했어요. 그래서 사찰계에 끌려갔지. 사찰계가 지금의 정보과와 수사계를 겸한 곳인데, 거기 끌려가서 곤욕을 치렀지.

□ 사찰계가 일제때 고등계 후신이죠?

■ 일제 때 독립운동가 잡아들이던 데지. 그리고 해방후에도 일제때 고등계들이 그대로 있었구. 날 담당한 형사도 일제때 고등계 끄나풀 정도는 한 거 같애. 나보고 나라님 욕한다고 빨갱이래. 그래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인데 나라님이 어딨냐고 했더니 그런 게 빨갱이라고 조지데요.(웃음)

무조건 이승만 반대하면 좌익으로 몰리는구나, 안되겠구나 막연히 생각을 갖고 있었죠. 나중에 빨갱이로 몰린 사람은 보도연맹이라 해서 모아서 다 죽였잖아요. 그런 소문을 나중에 들었지, 50년 전쟁을 겪으면서 용케 살아남았어요.

□ 법학에 뜻을 두신 건 언제부터입니까.

■ 고등교육을 받으면서 처음에는 노동법을 공부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지도교수나 나한테 관심가진 선배나 교수들이 노동법 공부하면 형무소가고 깡통찬다고 소리지르고 난리쳐요, 그래 헌법으로 바꿨습니다. 법철학을 공부하려 했으나 그런 과목도 없는데 어떻게 교수돼냐 해서 헌법을 공부하면서 인권에 관심을 가졌어요.

인권은 반인권적 세력하고의 싸움이거든. 그리고 인권이 보장되려면 조건이 있어요. 그게 민주화거든. 인권이 곧 민주화다, 인권 세상이 되려면 민주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민주화를 생각하니까 왜 민주화가 안 되는가를 생각하게 되요. 그러니까 결국 친일파 문제가 걸리더라구.

결국 60년대에 교수가 되면서 평생 과제로 인권을 생각하고, 인권을 하기 위해서는 민주화가 되야하고 민주화가 되려면 친일잔재, 구식민잔재, 봉건잔재를 청산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게 됐어요.

원래 신동아에 실으려했는데, 결국 못 싣고 학위논문으로 펴낸 게 있어요. 그게 '한국인의 법의식'이에요. 일제 잔재, 친일법조에 대한 연구인데, 뭐 이렇게 나가면 안 해줄거니까 제목을 바꾼 거지. 뒤(94년)에 '한국의 법문화와 일본제국주의의 잔재'라는 책으로 나왔지.

□ 지난해 친일진상규명법 제.개정을 둘러싼 논란은 결국 박정희 전대통령에 대한 평가문제, 그리고 동아와 조선, 두 언론사주의 친일행적문제를 둘러싼 논란이었습니다. 친일청산의 현재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 과거청산이 없는 민족이나 나라 모양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일본이나 한국이나 나라꼴이 어떻게 되가는지. 

박정희가 쿠데타를 한다 그랬을 때, 그 때는 지방에 조선대학에 있었는데. 나하고 친한 교수들이 전부 잡혀들어 가더라고, 쿠데타 이후, 헌병.경찰 합동으로 다니면서. 나도 차례가 되지 않나 해서 유심히 봤더니 민족자주통일협의회, 교원노조 여기에 관련된 사람들이야.

나는 광주가 객지여서 단체에 정식으로 가입하지 않았지. 그래서 따라다니는 정도였는데, 5.16후에 무슨 리스트를 갖고 잡아갔나 했더니 자유당 정권, 장면 정부 때부터 쭉 내려온 좌익혐의 블랙리스트가 있어. 그걸로 잡아들였지.

그래 군사독재 정권하고 나는 체질적으로 안 맞는다 그랬어. 그 때는 박정희가 만주 중심으로 활동한 친일파라는 사실은 잘 몰랐어요. 그런데, 윤보선씨하고 대결하면서 박정희가 남로당 군사책이라는 거는 드러났지. 그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렇게 쭉 넘어왔지.

그런데 내가 왜 박정희가 왜 친일파라고 딱 찍는 줄 아세요? 박정희가 제일 숭배한 사람이 세지마 류조라고 일본 관동군 참모 중좌가 있습니다. 우리말로 중령이지. 근데 이 사람이 원래는 일본본국의 본부의 참모입니다, 2차대전 기획도 하고.

군국주의자 세지마 류조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구 관동군 참모, 세지마 류조와 박정희의 인연을 설명하는 한상범 교수.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 본영이라고 그랬지요.

■ 대본영이지. 이 사람이 일본에서는 신화적인 인물이야. 박정희가 대통령이 됐을 때 붙어서 지도를 한 거예요. 박정희가 만군 때는 이 사람 앞에 가서 서지도 못했어요. 소위, 중위때니까, 게다가 관동군도 아니고 만군이었거든.

박정희가 이 사람한테 종합상사 수출주도계획, 근대화의 아이디어를 들은 겁니다. 그 당시에 세지마는 이토추 상사 고문이고 거기 간부입니다. 거기다 한일협정 막후 주선인이예요. 그 사람이 인도네시아, 필리핀 강화조약에서 막후 교섭하면서 일본상품 팔아먹는 브로커 노릇을 했어요. 나쁜 놈입니다.

□ 그러니까 이 사람은 전쟁시에는 관동군 참모를 하고 끝나니 경제침략의 선봉장 노릇을 한 거네요.

■ 그렇지. 전쟁시에는 전쟁의 기획을 짜고 집행감독을 하고, 전쟁이 없을 때는 남의 나라 전시 체제에 편승해서 군사물자를 비롯한 상품 세일즈맨이예요. 이 사람보다 더 높은 게 기시 노부스케라고 일본 수상을 한 사람이 있어요. 이 사람이 만주에서 활약하던, 만주국 괴뢰국가의 최고간부입니다.

그 밑으로 쭉 딸린 놈들이 지금까지 일본을 지배하는 자민당 간부들이고. 일본은 패전 전서부터의 지배층 그대롭니다. 약간 군국주의로 완전히 찍힌 놈들만 처벌받았지 대동아전쟁 치른 자들이 그대로 지배층이예요. 정치, 경제 지배층이 갈린 적이 없어요. 그걸 알지 못하고 뭐 '친한파', 바보같은 소립니다. '친한파'가 바로 아시아침략의 주역들과 그 후속분자예요.

박정희 이전에 친일파들은 일종의 경성제국대학 중심의 친일파들이 판을 잡았어요. 그랬다가 박정희 때는 친일파가 판을 잡되 만주인맥이 잡았어요. 최규하, 그거 다 친일파 아닙니까. 이선근, 만주국 오족협화 사무국장 아닙니까. 백선엽, 정일권, 다 만주신경군관학교 그거 다 박정희하고 선후배 지간입니다.

그런데, 만주인맥이 잡아서 왜 그렇게 독재가 오래가느냐. 만주에서 (일본)군이 (만주국)괴뢰정권을 관리하던 그 노하우를 다 이용한 겁니다.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그 사람도 30년 독재했던 것도 다 일본놈한테 배웠어요.

□ 뿌리가 깊군요.

■ 세지마 류조한테 가르침을 받는 것은 박정희만이 아니고 전두환, 노태우도 마찬가지예요. 전두환이 쿠데타를 할 때, 일본대사한테 안가에서 미리 통보를 해요. 이게 다 기록으로 있어요. 박선원씨의 박사논문에 다 나와요. 이거 봐요.

□ '79~80년 : 한국의 정권교체기에 나타난 일본의 영향력'이라는 제목이군요.

■ 이걸 한국어로 번역출판한 게 '국제정치학회 논총' 02년 가을호에 실렸어요. 다 나와요. 모 일간지 기자는 내가 모략한다고 그러다 딱 기록을 제시하니까 새파래지대. 전부 기록이 있어요.

전두환이가 세지마 류조한테 인정을 받은 후 조언을 듣는 데, '너는 정당성에 문제가 있으니 국민통합에 힘써라', 그래서 올림픽개최에 나선다구. 노태우는 심지어 퇴임할 때 (세지마 류조에게) '대통령 관두면 뭘할까요' 이렇게 묻기까지 합니다. 이거 말도 안 되는 작자들입니다. 국민들 앞에서는 사납게 칼부림했지만 뒤에서는 전부 일본놈 앞잡이에 미국놈 앞잡이야, 정체를 왜 몰라요.

그래서 나는 도저히 친일파 세상을 끝내지 않고는 안 된다, 이런 일념을 더욱 강화하게 됐어요. 박정희도 일본 괴뢰군에 혈서지원한 자인데, 그게 무슨 대통령이고. 그러다가 남로당에 들었다가 배신하고 가입한 사람 다 죽이고 자기만 살아나고, 이게 인간이예요?

'친일파들 물적기반 해체해야'

□ 의리가 없는 거죠.

■ 일제잔재 청산, 과거청산이 없이는 우리의 잘못된 제도, 뭐 과거청산이 사람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닙니다, 일제나 식민지의 봉건잔재 잔재가 뭘로 남습니까? 법령이나 관례.관습, 이거 다 제도 아닙니까. 사상, 제도, 관념, 물적.인적 잔재, 이데올로기 잔재를 청산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과거청산하면 사람청산 생각하고 사람 죽었으니 그만 아니냐 그러는데, 그거 아니에요.

물적 잔재, 또 하나 있습니다. 친일파 노릇해서 거금을 축적한 사람들이 그거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 물적인 잔재를 해체시키지 않으면 기득권 그대로 갑니다. 기득권세력이 DJ나 노무현 대통령에게 이를 갈며 달라붙는 게 재산이나 자기들 정체가 밝혀질까봐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친일진상규명법 말고 친일파재산환수법 토론회 가서 말했는데, 조중동에서 내가 독설을 하고 허무맹랑한 소리를 한다고 난리쳤는데, 그거 그렇지가 않아요. 내가 데이터를 다 가지고 가서 얘길 했습니다. 특히 해방될 당시 우리나라 재산의 90%가 일본놈 겁니다. 해방될 당시 그게 다 어디로 갔나. 일본놈들이 다 가져갔나, 알몸으로 갔어요. 그럼 보석이니 화폐니 그거 어떻게 됐을 것 같아요. 태워버렸을까? 아니에요, 친일파가 관리한 겁니다.

□ 예전 해방전후사인식을 통해 미군정하의 적산불하 문제에 대해 읽은 기억이 납니다.

■ 그렇지요. 친일파의 물적인 정치자금의 기반이 그거고, 부의 바탕이 된 겁니다. 적산이라 해서 미군정이나 이후 정부에서 부동산은 100원짜리 10원에 불하받아서 축재하고, 6.25전쟁때는 원조물자 오는 거 중간에서 다 말아먹고. 부정축재의 화신들이야. 이거 다 폭로되면 국민들이 가만있겠어요? 다 내놓으라고 그러지. 그러기 때문에 과거청산을 목숨을 걸고 반대하는 겁니다.

과거청산은 제도, 이데올로기, 관행.관습, 물적 재산기반, 인적인 심판, 이것이 없으면 안됩니다. 이걸 안하고 뭘 역사를 바로잡는다는 거예요. 

□ 얼마전 보도를 보니 아직도 조선총독부 명의로 된 땅이 수천만 평이라면서요.

■ 그건 국유재산이예요. 조선총독부라는 관청이니깐 당연히 국유재산이죠. 당연히 이전환수, 정리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안한 게 뭐냐. 과거정부가 친일파이기 때문에 소유를 불분명하게 만들어 공중에 뜨게 만들고 그걸 빼돌려 정치자금으로 쓴 거지. 총독부 재산은 무조건 국유화돼야 하는데, 이것을 토대로 치부한 겁니다.

□ 결국 그거 빼돌려 정치자금하고 치부하고.

■ 치부하고 재산 빼돌리고, 다 외국에 별장 있고. 기가 막힌 게 대한민국 초대 한국은행 총재가 송병준의 외손자예요.

□ 을사오적 중 하나인 송병준 말이죠.

■ 그렇지. 그 송병준이 외손자 구영서, 이게 무슨 나라예요. 이 모양이니 친일파 청산하자니까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게지.

일본군과 총독부, 조직적으로 '건준' 모략

□ 사실 친일파들의 재산을 몰수하는 건 국민감정상 당연한 거 아닙니까.

■ 당연하지, 그런데 저놈들이 국민들의 눈을 가리우고 왜곡하고 그러는 겁니다. 전에 1930년대부터 부르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를 보면 일본이 항복했을 때 9월 이후에 미군이 상륙하잖아요. 그동안 일본이나 한국에 있는 자신에 불리한 자료는 전부 소각했어요. 그래서 그 사람들 죄의 종적이 모두 인멸됐습니다. 이것은 중대한 문제예요. 특히 남한에서 친일파 행적은 모두 인멸됐습니다.

9월에 미군이 상륙할 때 여운형이 만든 인민위원회, 건준이 '빨갱이 단체'라고 조선주둔 일본군 사령부에서 무선교신이 되니까 모략을 해서 미군에 통보합니다. 미군은 인민위원회나 건준을 빨갱이라고 봤습니다. 전부 빨갱이다, 테러리스트다, 장개석의 앞잡이다. 조선주둔일본군과 총독부가 합작을 해서 오끼나와에 있던 미군에게 전부 모략을 합니다. 그래서 인천상륙할 때 건준에서, 인민위원회에서 환영하러 나가잖아요. 그런데 성조기나 태극기 들고 '만세'하니 쏴버렸단 말이에요. 폭도라고 쏴버린 거지.

□ 일제 잔재를 비롯한 과거사를 사법처리하려면 공소시효 문제가 걸립니다. 법적 안정성을 거론하며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 과거 청산을 하려면 현행법의 제약을 돌파해야 합니다. 구시대 악법은 공소시효만이 아니에요, 보안법 비롯해서. 현행법 중에서 구시대의 악법, 정상적인 법이라도 해석을 통해 악법으로 운영된 것, 이런 것들을 총정리해야 합니다.

과거정리가 안되니 일제시대 독립운동하던 사람은 다 전과자죠. 독립운동가 잡던 놈들이 해방후 다시 형사가 돼서 독립운동가한테 '이놈 전과자야' 했단 말이지. 마찬가지죠. 구 시대에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사람들은 다 전과자입니다. 박정희, 전두환 밑에서 일하던 놈들이 민주화운동가들 보고 '너 전과자야' 하게 되는 겁니다. 억울하게 죽은 인혁당 유족에게 '너 빨갱이야' 이러는 거죠. 

현행법 중에 구시대의 악법을 총정리해야 합니다. 이걸 안하고 무슨 개혁이에요. 그러다 보니 의문사법이 현행법에 어긋난다, 의문사위원회가 위헌이다 이렇게 소송하고 나오는 겁니다.

그러고 공소시효가 지났다 이거야, 최종길 교수 사건에 대해 시효가 지났다 이거지. 시효라는 건 정상적인 시민사회에서 생활의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한 거지. 독재하에서 독재권력의 피해를 호소하는 걸 그걸 그대로 둬요? 독재가 끝났다해도 독재시대의 법령이나 판결이 그대로 있는데 그걸 어떻게 뒤집어요. 거기다 시효가 지났다? 이건 법원, 법관의 양식의 문제예요.

반인륜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건, 강금실 법무장관이 있을 때 공소시효배제입법을 추진했는데 그거 따로 않더라도 법적 근거가 있습니다. 1968년 유엔총회에서 반인륜범죄에 대해 공소시효 배제 결의를 해요. 현재 헌법 해석상 헌법 총강에 따라 공소시효 배제를 적용할 수 있어요.

□ 헌법 6조인가요?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 국제관습법에 국내법과 동등한 효력을 부여하는.

■ 그래요. 현재 사법관료의 의식구조가 안 돼 있고, 개혁에 대한 몰이해죠.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사법관료 상층들은 전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런 사람들 밑에서 출세한 사람들이잖아요. 그런 사람들이니 성공한 쿠데타는 쿠데타가 아니다라는 논리가 나오는 겁니다.

60년대 5.16 쿠데타 했지, 70년대에 유신헌법이니 비상국민회의가 입법권 행사했지. 80년대는 국보위가 악법을 만들었지. 10년마다 이런 짓을 한 거야. 이런 악법들 다 정리해야 됩니다.

한일협정, "강화조약이 됐어야"

▶"한일협정은 강화조약이었어야 한다"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 최근 문서가 공개된 한일협정과 관련해서 개인청구권이 소멸된 거냐는 논란이 있는데요.

■ 한일협정 문제는 따로 시간을 내서 얘기할 필요가 있는데, 간단히 정리하면 한일협정이 밀실 굴욕외교고, 정통성이 없는 정부가 한 것입니다. 정통성이 없으니 일본이나 미국의 압력을 받아 밀려서 한 거죠.

우선 일본하고 관련해서는 정치자금이 필요했던 거예요. 박정희가 6,600만불 받아먹은 것이 그 증거죠. 미국은 월남전하는 중이라 동북아안보에 신경쓸 여유가 없어요. 그래 일본을 끌어들인 겁니다.

□ 문서를 보면 미국 관리들이 압력을 가한 사실들이 드러납니다.

■ 특히 한국을 월남전에 끌어내려고 미국 관리가 압력을 가합니다. 어쨌든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잘못된 것은 한국 정부가 책임을 져야죠.

95년에 나는 한일협정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96년에는 한일협정 개정안을 만들어봤습니다. 97년 김영삼이 일본 방문했을 때 주문했고 98년 DJ에게는 방일전 일본기자들 앞에서 한일협정을 개정검토를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외교관리들이 묵살했어요.

할 수 없이 2000년에 '순국'이라는 잡지에 그 내용을 기고했습니다. 2001년에는 일본의 전쟁 책임에 대한 자성을 촉구하는 일본시민단체 토론회에서 한일협정 개정의 이유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그걸 '한일협정(1965년), 왜 개정해야 하나?'라는 제목으로 2002년 '아태공법연구'에 발표한 겁니다.

□ 왜 개정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시겠습니까?

■ 한일협정 왜 개정해야 하나. 먼저 한일기본조약을 비롯한 부속협정은 강화조약도 아니고... 원래 강화조약이 되야 하잖아요, 우릴 침략해서 강점했던 나라와 피침략과 항일투쟁을 했던 정통성이 있던 정부간의 조약이면 조약의 경위가 먼저 나와야지요. 이러저러해서 침략을 했고 사죄한다.

이것이 전제가 되면 배상금이 되는 겁니다. 독립축하금이 아니라 배상금입니다. 그걸 안 했기 때문에 배상금이라는 말을 다 뺀 겁니다.

배상금을 빼서 독립축하금이니 청구권이라고 한 것도 문제려니와 제일 문제는 일본이 책임을 안 진다는 것 이전에 어느 정부나 개인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말소할 수 없습니다. 이걸 국제법이나 조리에 어긋나서 유족의 동의도 없이 말소한다, 그것에 대한 절차를 밟았다고 하지만 절차의 정당성이나 적법성이 문제되고 있습니다. 주지기간이라든지 주지내용이라든지 절차 자체가 어물쩍 요식행위지 피해자를 구제하고 피해자의 구제를 위해서 공지기간도 제대로 안됐고, 보상금액도 그렇고 다 잘못된 겁니다.

독일의 경우 뒤에 새로운 사정이 생기니까 자꾸 제도를 변경해서 유족의 청구를 들어주고 그러거든요. 이런 사정변경의 원칙을 들어서도 다시 체결을 해야 하고, 개인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무시한 점을 들어서도 그렇고, 더군다나 이런 조약이 밀실에서 불법적인 야합을 한 비밀외교의 부산물이거든. 그래서 정통성을 결여하고 있고. 이런 제반 사정을 들어서 다시 할 수 있지.

일차적으로 우리 정부에 책임이 있습니다. 그간 사실을 은폐하고 가려온 정부가 일차적으로 사죄를 하고, 피해자와 시민단체 측과 진지하게 협의를 해서 대책을 강구해야지요. 일방적으로 정부가 이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 유족들은 유족에게 갈 돈을 정부가 가로챘다고 반발합니다. 또 그 돈으로 경제개발 했으면 이제 보상해야 하지 않느냐고도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 경제개발이니 뭐니 (이전 정부 말은) 다 핑계입니다. 그렇게 단순논리로 하지말고, 중요한 것은 유족의 권리를 불법 부당하게 침해한 겁니다. 박정희 때문에 경제개발이 된 것이 아니라 우리 노동자의 힘으로 된 것이죠.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박정희가 경제 공로자, 이런 논리로 하면 안돼요. 개인청구권을 일방적으로 말소한 것과 불법적인 밀실 막후 흥정, 이런 것은 명백히 잘못됐다, 정부가 지금이라도 무조건 사죄해야 한다, 이게 핵심입니다.

"의문사위, 정치살인 폭로로 독재흑막 드러내"

□ 의문사진상규명위 활동의 의의에 대해서 설명해주시죠.

■ 아직도 개혁 법령이 많지만, 의문사진명규명위가 중대한 전기를 마련한 것은 구 독재정권, 독재권력에 편승한 사람들이 반대무리를 탄압하기 위해 저지른 정치살인의 아주 중요한 실체를 드러낸 것입니다. 독재정치의 가장 나쁜 점이 바로 정치살인입니다. 그런 정치살인을 폭로함으로써 독재정치 흑막구조의 일부를 국민에게 보여줬다는 것이지요. 그럼으로써 개혁을 뭘 어떻게 해야하느냐, 개혁의 방향을 국민에게 보여준 거고.

두 번째는 독재 폭력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들, 고인이 된 사람이나 관계된 사람들의 민주화 투쟁이 정의롭다, 정당하다는 것을 확인한 것입니다. 정의가 순환적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피로서 밝혀진다. 이런 것들이 그간 의문사위원회의 활동을 통해서 드러난 것이, 개별 사건의 실체를 밝혀낸 것보다 더 중요한 실적입니다.

실제적으로 조사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타기관의 갈등을 조정할 권한도 없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3년간 그만한 실적이라도 남길 수 있었느냐. 그건 다른 게 아닙니다. 국민의 지원하는 힘. 그것하고 진실이 백일하에 드러난다, 진실 앞에는 어떤 괴물도 무기력하다. 국민과 진실, 정의, 이것이 의문사진상규명위가 남긴 실적이고 선물이라고 봅니다. 

□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비전향장기수 변영만씨 재심 결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시겠습니까?

■ 그거 간단합니다. 한 인간의 전력이 어떻든 그의 행적은 행적대로 평가하는 겁니다. 그런데 일부 언론은 그런 것 없이 예단과 추단으로 매카시즘 수법을 풀이했어요. 그들이 추앙하는 박정희를 보자는 겁니다. 정운현 기자가 쓴 '실록 박정희'를 봐요. 그럼 1949년 여순반란당시 남로당 군사프락치로 유죄선고를 받았던 전력이 있는 박정희에 대해서는 왜 아무 말도 안해요?

변형만 씨가 죽음으로 항거해 세간에 알려지고 후에 폐지된 사회안전법은 일제 치안유지법제의 일환으로, 독립운동가를 잡아들이고 후에는 민주화운동가를 잡아들이던 최대 악법입니다. 변형만 씨의 단식과 죽음이 사회안전법을 없애는 계기가 된 점을 평가하는 데 왜 그렇게 인색합니까?

의문사위 재심 결정은 비전향장기수였다는 전력에 상관없이 변형만씨가 우리 사회 민주화를 진전시킨 공이 있음을 인정한 겁니다. 그게 '민주화관련성 인정'의 의미죠.

"국정원은 백서발간부터 해야"

▶"과거청산은 모든 악법의 총정리"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 과거청산의 현안으로 세 가지가 있습니다. 지난해 개정된 친일진상규명법이 있고, 전반적인 과거사를 조사하는 진실화해기본법, 그리고 각 기관의 자체 과거청산위원회가 있습니다. 지금 국정원이 가장 앞서 가는 것 같습니다.

■ 국정원 과거청산은 의심이 있어요. 스스로의 비리를 스스로 조사한다면 누가 믿겠어요. 먼저, 1961년 중앙정보부 창설이래 주요 의문사나 중대의혹사건에 대해 스스로 백서를 발간해야 합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불법, 범법에 대해 사죄하고 개혁방침을 천명하는 게 다음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정원이 보유, 관리하는 정보를 제3의 기관이 참여하여 실사해야 합니다. 이런 방법으로 의혹을 조사해야지요.

□ 진실화해기본법 제정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는요?

■ 국정원 관계, 현재 과거사 관계법이 미약하고 여러 가지 불완전하다고 하지만 일단은 한 고지 확보를 해서 가동을 시키도록 법을 확정을 하고 그 보완조치를 따라 붙여야 합니다. 완전한 법을 만든다고 시간 끌고 뺑뺑이 돌리고 이것은 자멸행위다, 우선 법을 가동시키고 나중에 보완하는 겁니다.

의문사위법도 세 차례, 네 차례 보완조치 했잖아요. 그리고 의문사위를 없앤 것도 개혁에 있어 치명타입니다. 새 법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없애버리니 개혁세력이 흩어지고, 법을 만들 세력은 헤매고 있고... 이것은 구세력의 함정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그것을 다시 되풀이하면 안돼요.

□ 지난해 행자위 취재를 했는데요. 여당 의원들은 진실화해기본법안의 조사시기와 관련해 1945년에서 1948년 미군정하 사건을 조사할 때 미국과의 외교마찰을 자주 지적했습니다. 그 시기 사건을 조사하면 미군정이 관계되지 않을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 미군정이나 미국 정부와의 관계를 걱정하는데 미국은 정보자유법에 따라 30년 이상 되면 어떤 정보도 공개하게 돼 있습니다. 그것도 미국시민만 입수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도 가능합니다. 소련 KGB도 가능했어요.

우리 정부가 했다고 미국이 뭐라고 할 것 없어요. 미국법 자체가 국적이나 신분 고하, 신분여하를 불문하고 공론에 부치는 것을 전제로 해서 만든 법입니다. 이런 걱정은 미국을 과도하게 잘못 인식한 것이에요. 친일, 친미도 좋지만 이런 친미는 미국을 위해서도 옳지 않습니다.

□ 선생님의 의문사위 활동 경험에 의거해 앞으로 이루어질 과거청산 과정에서 예상하는 어려운 점들을 지적해 주신다면?

■ 기구의 위상 자체가 뭘 해야 하느냐 또 뭘 하지 않으면 안 되느냐, 이런 목적의식, 문제의식이 뚜렷해야 합니다. 이것만으로는 안 되고 또 자질과 능력이 있어야 한다. 자질과 능력이라는 건 의문사위법에 명시된 바와 같이 과거 민주화 투쟁경력이나 시민운동 경력이나 그 사람의 행적, 실적을 봐서 평가받고 검증을 받아야 되요.

왜냐하면 과거청산기구에 자리가 많아지는데 이걸 무슨 관청의 감투로 생각하면 큰일납니다. 자기헌신이라든지 개인의 이해를 초월한 봉사 차원에서의 국가사업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생각 없이 벼슬 감투나 쓴다고 생각하는 건 아주 잘못된 겁니다. 그 동안의 우리 실적을 볼 때, 독재정권이 오랫동안 부당한 권력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많이 오염됐습니다.

나이나 지위를 따지고, 청빈하고 돈 못 먹고 승용차 하나 없이 산다고 욕하는 게 세상 인심입니다. 사리를 따지면 욕먹도록 세상이 잘못되어 있어요. 

'구세력의 언어조작 뚫고 정확한 정보 전해야'

□ 덧붙일 말씀이 있다면?

■ 언론매체가 옛날과 달리 앞서나가고 다양하고,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에서는 언론매체가 상품광고로, 구 전체주의에서는 정치광고로 타락하게 됩니다.

우리는 상품광고뿐만 아니라 구세대, 1905년 일제식민 해방 후 60년, 결국 100년 동안 친일파가 지배해왔습니다. 그래서 친일파들이 정보와 지식을 갖고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다듬어서 내놓습니다. 지금도 의식적으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언어조작입니다. 일본 놈들이 잘 하던 건데요. 볼셰비즘을 과격파라고 매도하는 데, 그건 다수파란 뜻입니다. 아나키즘은 무정부주의가 아니라 무권력주의입니다. 또 '항복조서'를 '종전조서'라고 바꿔 부릅니다.

우리도 비슷한 언어조작을 당하고 있습니다. 친일파 놈들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이게 2000년대 들어 아주 심해졌어요. DJ개혁정부가 들어서면서 구세력의 언론조작이 굉장히 노골적으로 됐습니다. 실제 핵심정보를 전부 자기들 유리하게 왜곡시키고 변질시키고 변형시키는 것이 한도를 지나쳤어요. 심지어는 사설이나 표제를 통해 훈수를 하고 있어요. 뭘 해라, 뭐는 하지 말아라 해요.

이런 언론이라는 것이, 조작의 한도를 떠난 언론이라는 것이 세계에 없습니다. 여기에 대충 중독이 되고 또 하나 매카시즘에 중독이 돼서 아무개가 좌익이다, 친북이다, 빨갱이다 하면 다들 알아서 몸 사리고 피해버립니다. 이런 두 가지 취약점이 우리의 정신세계나 일상 정신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것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 수구세력입니다.

나 같은 사람도 대한민국 관청의 기관장인데 그 관청에 수십 명이 와서 '한상범 빨갱이'라고 시위해요. 그래서 '국가보안법으로 고발해라, 안 하면 니들 불고지죄다'고 했어요. 체포조 얘기해요. 이건 불법살인예비음모에 해당합니다.
 
우리 사회 분위기가 아직도 이렇습니다. 그래서 진실을 말하는 살아있는 언론이 필요합니다. 진실을 말하고 판단이나 평가는 독자가 할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라. 판단이나 평가를 하는 사람은 자기의 실명을 제공하고 그 판단의 이유와 근거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런 것도 없이 막연히 '한상범 빨갱이'라고 계속 되풀이해서, 최면술을 쓰는 것처럼 밀어붙여서 기정사실처럼 만들고 있습니다.

언론계의 분위기 쇄신이 우리 사회의 앞날이나 앞으로의 향방을 좌우합니다. 우리 국민들이 독자 대중으로서 제대로 된 판단력을 가지고 키워줄 언론, 양식을 가진 언론을 가려낼 판단력을 키워야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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